전출처 : Ritournelle > * 효리처럼 방송하기의 진실

* 한겨레21(2007. 4. 5) / 방송한다면 효리처럼?

‘실력’ 논란을 오락 프로그램·CF의 ‘이미지’로 만회하는 ‘신기함’은 계속될까

▣ 강명석 <매거진t> 기획위원

농담 56%쯤 곁들여서 이런 제안 하나 해보자. 이효리가 리얼리티 쇼를 한 편 찍는다. 온갖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톱스타인 이효리의 연예계 활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이효리가 출연한 드라마의 연기력이나 노래의 가창력을 비난하는 글들을 보면 괴로워하고, 억대 출연료의 방송광고(CF) 계약을 하면 기뻐한다. 어떤 시청자들은 이효리가 잘 안 되는 모습에 만세를 부를 것이고, 또 다른 시청자들은 이효리가 결국 잘되는 모습을 보며 “효리 파이팅!”을 외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어찌됐건 시청률은 꽤 높을 것이다. 물론 이효리가 이런 리얼리티 쇼를 찍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이효리의 연예계 활동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리얼리티 쇼였다. 리얼리티 쇼처럼, 이효리는 매년 위기와 반전을 반복했다.


2005년에는 연기 데뷔작 SBS <세잎 클로버>가 형편없는 완성도와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해 ‘이효리 위기론’이 일었고, 2006년에는 3년 만의 정규 음반 타이틀 곡 〈Get ya〉가 발표와 동시에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조용히 묻혔다. 그리고 2007년, 이효리의 새 소속사 엠넷미디어가 제작하고, 이효리가 주연으로 출연하며, 이효리의 디지털 싱글이 삽입곡으로 쓰인 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아예 논란 덩어리다. 이효리의 연기력은 물론 조폭과 시한부 인생 등의 진부한 소재를 다룬 드라마의 완성도, 과도한 간접광고(PPL), 거대 기획사가 공중파 방송사에 무상으로 콘텐츠를 제공한 데 따른 방송윤리의 문제까지 모든 것이 논란거리가 됐다.

‘이상적인 여자친구’캐릭터 완성!

그러나 놀랍게도 이효리는 여전히 자타 공인 톱스타다. 이효리가 지난 1개월간 출연한 한국방송 <상상플러스>, SBS <헤이헤이헤이>, 문화방송 <놀러와> <무한도전> 등은 모두 동시간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게다가 이효리는 여전히 많은 CF에 출연하고, CF 프로모션을 위해 부른 노래 <애니모션>과 <애니클럽> 등은 히트했다. 끊임없이 논란에 시달리지만 추락하지는 않고, 진지하게 시도하는 노래와 연기는 늘 안티 팬의 공격에 시달리지만 오락 프로그램과 CF는 성공한다. 하지만 이효리는 계속 노래와 연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계속 논란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이효리는 보통의 스타들과 다른 방식으로 대중에게 소비되기 때문이다. 지금의 톱스타 이효리는 가수 이효리와 오락 프로그램의 이효리의 결합이다. 이효리의 솔로 데뷔 곡 〈10 minutes〉는 이효리를 ’섹시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다. 핫팬츠와 배꼽티로 대표되는 섹시 콘셉트의 패션과 온몸을 이용한 웨이브를 보여준 〈10 minutes〉는 이효리에 대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창조했고, 이 이미지는 이후 수많은 CF에서 반복되면서 이효리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키는 중요한 포인트가 됐다.

그러나 〈10 minutes〉는 핑클 시절부터 한국방송 <해피투게더>까지 쌓아온 이효리의 또 다른 캐릭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핑클은 남성들이 바라는 각각의 여자친구 캐릭터를 모아놓은 것 같은 그룹이었고, 이효리는 핑클 활동에 이어 <해피투게더> 사회(MC)를 맡으며 남성에게 ‘이상적인 여자친구’ 캐릭터를 완성했다. 보통 남성 MC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무는 일반적인 여성 MC들과 달리, 이효리는 학창 시절의 부끄러운 경험이나 연애담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등 남자 MC 신동엽에 밀리지 않는 입담을 선보였다. 또 멋진 남성 게스트가 출연했을 때는 장난스럽게 그들을 유혹하기도 했고, 여자 게스트가 출연하면 애교 있게 자신의 외모를 뽐냈다. 어떤 이야기든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털털하지만 애교도 있고, 예쁘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10 minutes〉는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가 난 남자를 쉽게 유혹할 수 있다고 외치는 자만이 아니라 이미 모든 남자들이 사귀고 싶어하는 여자가 ‘드디어’ 섹시한 옷을 입고 살짝 웃으며 사귀자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효리의 섹시함은 부담스럽지 않았고, 이효리처럼 매력적인 여자친구가 되길 원하는 여성들에게는 따라해야 할 유행으로 받아들여졌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이효리에게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직업이라기보다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쌓아온 캐릭터를 더 상업적인 형태로 구체화할 수 있는 창구였던 것이다.


실력을 강조할수록 반감은 커진다?

그래서 가수를 통해 이효리의 캐릭터는 적극적으로 소비됐지만, 정작 ‘음악’은 잘 소비되지 않았다. 〈10 minutes〉 발표 뒤 이 노래의 콘셉트를 살린 이효리의 CF는 계속 방영됐고, 술집이나 옷가게 등 ‘유행’이 필요한 곳에서는 〈10 minutes〉가 쉴 새 없이 나왔다. 그러나 〈10 minutes〉가 수록된 음반 판매량은 이효리의 화제성에 비해 저조했다. 이효리의 딜레마는 여기서 시작됐다. 이효리가 섹시 아이콘이자 트렌드 리더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가수로서의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대중은 이효리를 가수라기보다는 매력적인 캐릭터나 섹시 아이콘으로 받아들인다. 인기는 있다는데 정작 ‘가수’로서의 실적이나 능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실력 없이 섹시한 이미지만으로 인기를 얻었다는 논란이 생겼고, 이효리의 인기는 〈10 minutes〉 발표 당시 하루 걸러 스포츠신문 1면에 이효리의 사진이 등장했던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효리는 이런 논란들을 자신의 ‘실력’을 부각시키는 방법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 그는 SBS 드라마 <세잎 클로버>에서 실제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가난한 여공을 연기했고, 〈Get ya〉에서는 특유의 귀여운 섹시함 대신 공격적이고 격렬한 춤으로 터프한 모습을 선보였다. 누가 봐도 그것은 이효리가 자신의 실력을 놓고 대중과 벌이는 정면 승부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효리의 이런 활동 방향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왔다. ‘이미지’로 소비된 가수가 ‘실력’으로 승부하겠다고 나설 때, 대중의 기대치는 당연히 높아지며, 그 기대치를 만족시키려면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상당한 발전을 해야 한다. 게다가 귀엽지도 섹시하지도 않은 이효리에 예전 같은 호의를 보이기란 어렵다. 이효리는 애초에 이기기 쉽지 않은 싸움을 걸었고, 그 결과는 늘 대중의 인정 대신 ‘논란’이라는 딱지로 돌아왔다. 그 과정이 반복될 때마다 이효리는 안티 팬에게서 ‘실력 없는 톱스타’라는 비아냥을 듣게 됐다. 발표 전에는 정면 승부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큰 관심을 모으는데 결과물이 좋지 않았으니 다른 가수와 비슷한 수준이라도 ‘과대 포장’이라는 반감을 산 것이다. 특히 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이효리의 딜레마를 더욱 확대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 이효리는 가난한 가수 지망생을 연기했고, <잔소리> 같은 발라드로 이미지 변신을 노렸다. 그건 <세잎 클로버>와 〈Get ya〉의 실수를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효리가 가창력으로 인정받는 가수 지망생을 연기하는 모습에 감정이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은 거대 기획사 엠넷미디어의 힘을 등에 업고 공중파 방송사에 무상으로 제공돼 금요일 밤에 특별 편성됐다. 그러나 결과물은 과도한 PPL과 진부한 설정으로 점철된 그저 그런 작품이었다. 거대 기획사가 톱스타를 앞세워 밀어붙인 무리수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충분히 예상될 만한 일이었다. 이효리가 엄청난 결과물을 내놓지 않는 한, 이효리는 실력을 강조할수록, 그가 톱스타라는 것을 강조할수록 오히려 반감에 부딪히는 이상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 이효리는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에서 가난한 가수 지망생을 연기해 또 한 번 ‘논란’에 불을 붙였다.

드라마 실패에서 구해준 CF <애니모션>

그런 이효리를 구원해준 것은 ‘가수 겸 연기자’ 이효리가 아니라 ‘매력적인 캐릭터’로서의 이효리였다. <세잎 클로버>의 실패로부터 이효리를 구한 것이 CF <애니모션>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애니모션’은 이효리에게 이미지 변신을 요구하거나 그의 가창력과 춤솜씨를 강조하는 대신 이효리만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순응했다. 이효리에게 특유의 건강하고 밝은 섹시 아이콘의 모습을 강조하는 춤을 추도록 했고, 트렌드 리더로서 이효리를 부각시킬 수 있는 트렌디한 클럽 음악을 선사했다. <애니모션>이 발표된 뒤 누구도 이효리의 가창력이나 연기력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그에 상관없이 <애니모션>은 히트했고, 이효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곡이 됐다. 현재의 이효리에게 중요한 것은 가창력이나 연기력이 아니라 캐릭터의 콘셉트와 긍정적인 이미지다.

그것은 결코 허상뿐인 이미지만은 아니다. 그 이미지야말로 지난 10여 년 동안 이효리가 오락 프로그램을 통해 착실히 쌓아온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효리가 〈Get ya〉의 표절 시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역시 한국방송 <해피투게더-프렌즈>에 MC로 복귀해 〈Get ya〉의 무대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이효리만의 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이효리가 가수로서도 연기자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기뻐할 일이다. 그러나 대중은 주의 깊게 보고 들어야 연기력과 가창력이 더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수준의 가수 겸 연기자 이효리를 원하지 않는다. 이효리가 보여줘야 할 건 가수도, 연기자도, 오락 프로그램 MC도 아니지만 어쨌든 ‘가장 매력적인 여자’인 이효리만의 어떤 매력이다. 지난 3월26일 방영된 SBS <야심만만>에서 이효리는 8살 연하인 탤런트 김혜성에게 장난스럽게 대시하고, 자신의 부끄러운 실수담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하면서 프로그램의 분위기를 능숙하게 이끌었다. 이효리 외에 현재 한국에서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매력을 이렇게 잘 드러낼 줄 아는 20대 후반의 여성 톱스타는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잘 노는’ 이효리, 평지로 내려올까

이효리를 둘러싼 논란은 어쩌면 아직 대중문화에서 오락 프로그램에서 ‘잘 노는’ 엔터테이너의 역할과 가치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효리가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인기와 잘 만들어진 무대 위의 이미지만으로도 톱스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면, 이효리 스스로나 대중 모두 마음 편하게 이효리의 캐릭터를 즐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이효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정말 모두가 기립박수를 칠 만큼의 노래나 연기를 보여줄까, 아니면 노래나 연기를 잘하건 못하건 브라운관에 얼굴만 비추면 사람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좋은 엔터테이너로 남을까. 물론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증명하듯, 연기와 음악에서 논란이 일면 자신의 캐릭터를 살린 오락 프로그램이나 CF에서 이를 만회하는 이효리의 ‘신기한’ 활동 방식은 아직 유효하다. 그러나 논란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이효리의 이미지 자체를 식상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 것이고, <야심만만>에서 이효리가 밝혔듯 그도 이제 29살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끝이 다가온다. 이효리는 줄에서 무사히 내려와 탄탄한 평지를 걸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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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는즐거움 2007-04-12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모두가 기립박수를 칠 만큼의 노래나 연기를 보여줄까

이건 불가능 하지 않을까요......위와 같이 될려면 적어도 거미수준은 되야하는데
빡빡한 방송일정에 게다가 29살의 나이에 그런 실력을 쌓을 시간은 없어보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거미 수준까지는 되지 않아도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몇년동안 각인시켜온 이미지를 바꿀 정도의 가창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거미정도의 실력은 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번만 이라도 가능하면 그렇게 하고 이미지의 확대 재생산과 약간의 언론 플레이등을 노리면 되겠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으니깐요.)

제 생각은 아래의 문장에 담겨있습니다.

이효리 외에 현재 한국에서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매력을 이렇게 잘 드러낼 줄 아는 20대 후반의 여성 톱스타는 그리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게 이효리가 가진 힘이 아닐까요, 물론 이효리를 대체할만한 섹시 아이콘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또 그런 섹시 아이콘들 중에서 대중들에게 이효리 정도의 친화력을 보여 줄수 있는 스타가 나타나기전까지요. 광고주들 입장에서는 나이많고 몸값많은 스타를 계속 이용하여 대중들에게 지겨움을 유발할 필요까진 없으니깐요.
하여튼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기인 2007-04-13 0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 그러니까 톱스타겠죠... 이 톱스타가 어떻게 톱스타인지, 어떻게 시장에서 소비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East of Eden (Paperback, Deckle Edge) - Steinbeck Centennial Edition
존 스타인벡 지음 / Penguin U.S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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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서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스타인백의 원서를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읽기 쉽다.

이 소설은 3대에 걸친 가족사 소설이며, 자전적 소설이라는 장치를 곳곳에 삽입한 (필립 르죈의 의미에서)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 내에서 '존 스타인백'의 이야기는 간혹 'I'로 등장할 뿐 서사에서 중요하게 기능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사실'이라는 뉘앙스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이 소설의 중심 키워드는 '자유의지'이다. 기독교 성경을 미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널리 알려진 해석은 인간에게는 왜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유일하다라는 기독교적 언명을 미국이라는 배경하에서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 아담으로 하여금 이브에게 유혹당하여 에덴동산에서 좇아내게 만들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소설에서 되풀이된다.

소설 속 Cathy는 태어날 때부터 '양심'이라는 것이 없는 괴물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순수한 악의 표상인 그녀는 아담을 이용하기 위해 아담과 결혼하고 그의 동생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마침내 아담에게 총을 쏘고 달아나서 포주가 된다. 이브-뱀-사탄이라는 연쇄!

아담은 카렌을 한없이 사랑했기에 절망의 늪에 빠져들지만, 지혜로운 두 남자, 샘과 리(중국인 하인)에 의해 다시금 의지를 회복하게 된다. 이 와중에 중요한 것이 성경의 한 구절이다. Timshel! 이는 'thou mayest' 라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신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 자유의지를 부여한 것.

인간은 물론 환경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자신의 유전자에 의해 상당부분 결정된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말 속에, '주체'라는 단어에는 '선택'의 책임이 있다. 즉, 다시금 떠오른 '주체'의 문제이다. 철학, 사회학이 발달될 수록,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고, 이는 즉 인간'현상'을 외부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상과 관찰이라는 이분법은, 결국 인간을, 인간 행위를 남김없이 설명하려는 시도이고, 설명은 궁극적으로 모든 조건을 부여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을 지향한다. 한 인간의 유전자, 성장배경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면,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인문'과학'의 꿈이 아닌가?

그러나 그 와중에, 연구자-인간에 의해 결국 '인간'은 '현상'으로 떨어지고 만다. 구조속의 효과로 환원되어, 원자들의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예측되고 분석될 수 있는 존재로 된다. (*그렇지만 주지하듯이, 원자의 정확한 위치를 현대 과학은 '알 수 없음'을 그 '가능성'만 추정할 수 있음을 말한다. 원자를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빛, 즉 광자의 개입이 있어야 하는데, 연구자가 광자를 원자에게 쏘아보내서 이의 반사된 것을 가지고 원자의 위치를 추정하려고 하면, 이미 그 원자는 광자와의 충돌 때문에 그 위치에 있지 않은 것.. 이는 '연구자'라는 개입이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에 반하는 것, 다시금 '주체'를 말하고 '자유'를 의미화하는 작업들. 그러한 '자유' 때문에 인간은 위대하다는 언명. 스타인백의 소설은 그러한 '인간주의'의 한 극점을 감동적이고도 아름다운 소설로 재구성하였다.

그러나 기실, 나는 이러한 인간주의에 대해 한편으로는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발 물러나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한 '인간주의'의 효과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 그가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데에 복무할 수 있다. 노숙자나 비정규직 종사들의 문제를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속삭이듯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것을 '혁명적 주체성'의 문제로, 자발상을 넘어선 의식성의 문제로, (레닌 식으로) 전유할 수도 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묻는 나는 무엇일까. 인간이란 과연 유적존재일까. '인간'이라는 것은 있을까? 스타인백은 심지어 Cathy마저도 인간임을 보여준다. 모두가 <인간>이라고, 모두는 자유의지의 선택가능성이 있다고. 그래,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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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재야철학자 이정우의 소운서원

* 한겨레(20007. 3. 15) / ‘아카데미’에서 ‘서원’으로 우리시대 철학의 집 짓다
한겨레  고명섭 기자 
» 이정우씨
커버스토리 / ‘소운서원’ 연 재야 철학자 이정우씨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조선 철학자 퇴계 이황을 만나 우리 시대를 이야기한다? 재야 철학자 이정우(48)씨가 서울 한복판에 서원을 열었다는 소식은 이런 흥미로운 초시공간적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한동안 철학아카데미를 이끌었던 그는 지난달 자신의 호를 따 ‘소운서원’(逍雲書院·www.sowoon.org)이란 이름의 연구 공간을 세웠다. 마포구 동교동 한적한 골목 6층 건물의 5층에 자리잡은 이 서원은 말하자면, 현대판 학문 공동체다. 30평이 채 안 되는 조그만 공간이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회원들이 각자 공부할 수 있는 방이 있고, 그 안쪽에 연구실과 세미나실이 있다. 과거의 서원이 특정한 인물이나 집단의 지도 아래 국가철학을 익히며 관료 예비군을 키우는 곳이었다면, 이 새로운 서원은 공부와 연구에 전념하는 학자 공동체라는 점에서만 옛 서원을 닮았다. 출세의 욕망은 뒤로 돌리고 용맹정진의 정신만 오늘에 되살려 낸 곳이 이 서원이다.

이정우씨는 외국 유학을 하지 않은 순수 국내파 철학자다. 그의 이력은 동·서 철학의 만남으로 요약할 수 있다. 통상의 철학 연구자들이 서양이면 서양, 동양이면 동양의 어느 한 철학 유파를 주로 공부하고 그 유파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것과는 달리, 그는 서양과 동양을 가로지르는 철학적 회통의 길을 찾아 왔다. 들뢰즈 철학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이면서 동시에 동북아 철학 사상을 찬찬히 탐색해 왔다. 학문 내부를 억지로 갈라놓은 벽들을 뛰어넘어 전체를 조망하려는 것이 그의 야심이라면 야심이다.

동서양 가로지르고자 대학 교수직 스스로 반납
철학아카데미 세워 7년간 강좌 ‘철학 대중화’
“이제 정신의 식민지성을 깨야 합니다”
탐구 밀도 높일 ‘학자 공동체’ 서원 불밝혔다

그런 ‘가로지르기’의 태도는 그가 대학이라는 제도권 아카데미를 벗어나 재야에 선 이유가 되기도 했다. 1998년 그는 서강대 철학과 교수직을 스스로 반납했다. 미셸 푸코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제도권 식 구획으로 보면 서양 철학 전공자, 그것도 프랑스 현대 철학 전공자였다. 그런 그가 동북아 철학을 연구하고 한국철학을 강의하는 것을 교수 사회는 일종의 금기 위반으로 보았다. 제도가 자유를 제압하는 모습이었다. 탐구의 열정은 어떤 장벽 앞에서도 멈출 수 없다고 믿은 그는 미련 없이 강단을 내려왔다.

2000년 그는 철학아카데미를 세웠다. 제도권 바깥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대중 교육 공간이었다. 조광제 공동대표를 비롯한 다른 철학 연구자들과 함께 철학의 자유정신을 대중화하는 시민 교육에 힘을 쏟았다. 7년 동안 500여 강좌를 열었고, 7000여명의 수강생들이 철학의 세례를 받았다. 고등학생부터 할머니·할아버지까지 이 개방된 시민교육 공간에서 지식의 샘물을 나누어 마셨다. 만만찮은 성과였고 보람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엔 아쉬움도 쌓였다. 대중을 상대로 하여 가르치다보니 자기 사상을 세우는 데 필요한 공부 시간이 부족했다. 그가 소운서원을 세운 건 나름의 결단의 결과였다. 탐구의 밀도를 한 급 더 높여 새로운 철학을 제시할 때가 됐다는 판단이었다. 좀더 집약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결과물을 생산할 공간을 그는 옛 서원의 모습에서 따왔다.

 

“동유럽에 슬로베니아학파가 등장해 지금 세계 철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듯이, 이제 한국도 독자적인 철학사상학파를 내보일 때가 됐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남의 것 배우는 데만 몰두했습니다. 영·미권이든 독일어권이든 프랑스어권이든 그쪽 철학을 공부했으면 한국이라는 용광로에 융해시켜야 하는데, 다들 자기가 공부한 철학에만 매달려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서양철학은 언어권 별로 구분돼 있지만, 현대 한국 철학이라는 코너는 따로 없습니다. 우리 사상이 없는 겁니다. 이런 정신의 식민지성을 깨야 합니다.”

소운서원은 그 자신에게는 자기 사상을 닦는 공간이지만, 더 넓게 보면 학문적 고립을 극복해 우리 시대의 한국 사상을 찾는 터전이기도 하다. 현재는 20여명의 연구자들이 중심이 돼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자크 라캉의 <세미나>를 텍스트로 삼아 두 종의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그 중 5~6명을 따로 모아 저술·번역팀도 꾸렸다. 함께 공부할 사람들이 더 모이면 세미나를 매일 가동할 계획이다. 대학의 여름·겨울 방학에 맞춰 고전읽기 교실로 열 생각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 전집 같은 고전을 집약적으로 읽고 토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헤겔은 철학을 ‘개념으로 포착한 시대’라고 표현했는데,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9세기 산업사회가 열려 노동자계급이 출현했는데, 마르크스는 그 시대 현상을 ‘소외’라는 개념으로 포착했습니다. 철학은 이렇게 자기 시대를 설명해야 합니다. 거기에 더해 철학은 미래를 전망하는 기능을 해야 합니다. 우리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좋은 삶을 살려면 인간은 어떠 노력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그게 철학이 할 일입니다. 서양과 동양의 철학을 깊고 넓게 공부해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 속에서 융합한다면 학문적 보편성과 삶의 구체성이 만나는 경지를 밝힐 수 있을 겁니다.” 문의 (010)3008-8636.글·사진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우리는 누구인가’ 대중철학에 이정표
이정우가 쓴 책들은…

이정우 소운서원 원장은 <담론의 공간> (민음사, 1994)에서부터 <세계의 모든 얼굴-현대 회화의 사유> (한길사, 2007)까지 모두 11권의 책을 썼다. 박사학위 논문을 갈무리해 펴낸 <담론의 공간>은 미셸 푸코의 철학에서 담론이 지닌 의미를 파헤친 저작이다. “담론의 공간을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은 바로 우리 삶의 조건을 이해하는 것이며, 그러한 조건을 경유해 주체를 세울 때 그 주체는 환상적 주체가 아닐 수 있다.”

그의 학문 여정에서 두 번째 이정표가 된 책은 <인간의 얼굴>(민음사, 1999)이다. 이 책은 역사와 철학, 전통과 현대, 동과 서를 가로지르면서 오늘날 도대체 우리는 누구인가을 질문하고 답은 찾는 작업이다. 인간에게 가장 궁극적인 문제인 자기 이해야말로 철학적 사유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뒤이어 잇달아 펴낸 <시뮬라크르의 시대> <삶·죽음·운명> <접힘과 펼쳐짐> <주름·갈래·울림>은 대학원 학생들을 상대로 하여 들뢰즈를 비롯해 서양철학의 주요한 변곡점을 이룬 철학을 알기 쉽게 설명한 강의록이었다. 그 가운데 앞의 두 권은 <사건의 철학>(철학아카데미, 2003)이란 제목으로 합본돼 다시 나왔다. 철학아카데미에서 했던 강의를 다듬어 펴낸 <개념 뿌리들1·2> (철학아카데미, 2004)은 철학적 사유의 바탕이 되는 ‘근본 개념들’을 역사적으로 꼼꼼히 살펴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살폈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소수자 연대 통한 보편철학’ 시동 건다
이정우가 쓸 책들은…

“지금까지 쓴 책들은 대체로 대중 교육용 책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철학서를 쓰겠다.” 그가 계획한 책 가운데 일부는 올해부터 출간될 예정이다. 그 중 가장 먼저 나올 책이 <신족과 거인족의 투쟁-이데아와 시뮐라크르>다. 이 책은 서양 철학을 신족과 거인족의 싸움으로 규정한다. 플라톤이라는 신족이 펼친 ‘존재의 철학’에 대항한 것이 니체·베르그송·들뢰즈라는 거인족의 ‘생성의 철학’이라고 그는 말한다.

올해 나올 또하나의 책은 <천하나의 고원-소수자 윤리학을 위하여>이다. 들뢰즈가 <천 개의 고원>에서 보여준 사유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새로운 윤리학을 정립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서구에서 68혁명이 새로운 실천철학을 낳은 계기였다면 우리의 경우엔 1987년 6월항쟁이 그런 계기를 마련해주었다고 그는 평가한다. 그의 관심은 지배적 다수의 윤리학이 아닌 소수자의 윤리학, 소수자들의 연대를 통한 보편적 윤리의 정립에 있다. 세 권짜리 <세계철학사> 시리즈도 올해부터 나올 예정이다. 첫쨋권 <지중해 세계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서양 철학의 흐름을 살피는 책이며, 둘쨋권 <아시아 세계의 철학>은 동북아를 중심으로 하여 아시아 지역 철학사의 맥을 짚는다. 셋쨋권 <근현대 세계의 철학>은 앞의 두 권으로 철학사의 흐름을 잡은 뒤 그 위에서 오늘날에 직접 영향을 주고 있는 철학 사조들을 검토하는 책이 될 예정이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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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비80 > 2007년 제1분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우수문학도서

* 며칠전 2007년 제1분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우수문학도서가 다음과 같이 결정되었습니다.
선정작은 총 47종 47권입니다.


시(17종)

  지난 3월 28일(수) 오후 2시, 우수문학도서선정을 위해 유안진 문인수 김해화 최정례 손택수 시인 5명이 문화예술 추진위원회의 아르고 미술관 3층 회의실에 모여, 등단 년도로 유안진을 위원장으로 하고 위원회 측의 김근시인을 사무담당으로, 일차심의를 통해 회부된 30권의 후보신작시집을 엄정 심사하여 우수시집17권을 선정했다.
  위원회측은 같은 출판사의 도서가 모든 분야합계로 총 5권을 넘지 않고, 첫 시집과 지방출판사도 안배할 것을 권고했으나, 저희 5명의 시인들은 먼저 작품의 우수성만을 기준으로 각자 17권의 시집을 선정 합산하여 최다득점 순위로 결정한 결과에 따라, 위원회의 권고를 참고하기로 합의했는데, 선정결과는 다행히 위원회가 권고한 사항이 모두 포함되었다.
  선정된 우수시집 17권의 선정사유는, 4명의 시인들이 4권씩 나누어 쓰기로 했으며, 나머지 한 권 시집의 선정사유와 총평은 위원장이 쓰기로 합의했다.

1 강기원『바다로 가득 찬 책』민음사  

2 고은『부끄러움 가득』시학  

3 박현수『위험한 독서』천년의시작  


4 배창환『겨울 가야산』실천문학사

  
5 성선경『몽유도원을 사다』천년의시작


6 손종호『새들의 현관』시와에세이

  
7 오탁번『손님』황금알  

 

 

8 유홍준『나는, 웃는다』창비

  
9 윤성택『리트머스』문학동네  


10 이병률『바람의 사생활』창비  


11 장옥관『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랜덤하우스코리아  


12 정낙추『그 남자의 손』애지  


13 조영석『선명한 유령』실천문학사

  
14 최영철『호루라기』문학과지성사  


15 하재연『라디오 데이즈』문학과지성사

 
16 황학주『저녁의 연인들』랜덤하우스코리아  


17 휘민『생일 꽃바구니』서정시학



소설(11종)

  우수문학도서 최종후보로 추천 된 총 38권 중 1차 심의를 통과한 도서는 모두 28권. 다섯 명의 선정위원들은 우선 심의기준 및 도서 선정 원칙을 숙의한 뒤 28권의 선정 대상 작품을 놓고 개별 투표보다는 각 도서에 대한 충분한 토의 과정을 갖기로 합의했다. 첫 창작집 10%, 지역 출판 5%, 특정 출판사 집중 10% 등의 할당 기준은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선정 위원들은 우선 선정 도서로서 결정적 결함이 있는 작품을 가려 선정대상에서 제외한 뒤 11종의 우수도서 선정에 들어갔다.
  선정위원들은 심의기준(작품성과 순수문학 및 기초예술 저변확충에 적절한 작품)에 가장 적합다고 생각하는 도서를 각기 5,6권씩 추천한 뒤 그 도서들에 대한 검증작업을 벌였다. 그 과정을 통해 우선 6권의 도서를 선정도서로 확정했다. 나머지 5권의 도서 선정 역시 선정위원들이 각기 1권씩 추천한 뒤 그 도서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했다.
  오랜 논의 끝에 소설부문에서는 11편의 도서를 1/4분기 우수문학도서(소설)로 선정하는데 선정위원 5명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1 김종은『첫사랑』민음사  


2 김종호『산해경草』랜덤하우스코리아


3 김혜정『수상한 이웃』문이당

  
4 박소연『눈부처』실천문학사

 
5 박형서『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

 
6 성석제『참말로 좋은 날』문학동네

 
7 원종국『용꿈』문학과지성사

 
8 이기호『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문학동네

 
9 이남희『그 남자의 아들, 청년 우장춘』창비

  
10 최인석『목숨의 기억 』문학동네

 
11 홍구보『조통장 난봉기』청옥

 

아동청소년문학(9종)

  아동ㆍ청소년문학 부문은 도서 선정이 매우 까다롭다. 아동문학 장르 안에 존재하는 동시, 동시조, 창작동화, 아동소설, 청소년 소설이라는 하위 장르와 저학년, 고학년, 청소년이라는 독자층이 동시에 고려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이번 분기의 대상도서는 새로운 캐릭터의 창조, 흡입력 있는 동화적 상상력, 그리고 우리 시대의 문제성 있는 작품이 많아 선정의 어려움도 그만큼 켰다.
  이번에 접수된 도서 50권 중에서 엄정한 심의 기준에 따라 다음 9권의 도서를 선정했다. 김옥의 『청소녀 백과사전』, 남상순의 『나는 아버지의 친척』, 박재형의 『이어도로 간 해녀』, 방미진의 『금이 간 거울』, 배익천의 『안녕, 이구아나』, 송재진의 『회초리도 아프대』, 이윤학의 『왕따』, 정도상의 『돌고래 파치노』, 최진영의 『땅따먹기』가 그것이다. 이들 선정 도서는 『안녕, 이구아나』와 같은 전통적인 동화 문법에 충실한 작품도 있지만, 새로운 시도를 보인 도전적인 작품이 많았다. 또한 시와 소설을 쓰던 일반문인들의 참여와 작품 수준이 두드러졌다. 그것은 분명 아동ㆍ청소년문학의 내용적 확장 면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고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에 비해 저학년 동화나 동시집이 상대적으로 취약성을 보인 점이다. 보다 더 저학년 도서의 문학적 성취와 동시문학의 활성화에 기대를 걸게 했다.

1 김옥『청소녀 백과사전』낮은산  


2 남상순『나는 아버지의 친척』사계절출판사

 
3 박재형『이여도로 간 해녀』베틀북

  
4 방미진『금이 간 거울』창비

  
5 배익천『안녕, 이구아나』계림닷컴  


6 송재진『회초리도 아프대』청개구리  


7 이윤학『왕따』문학과지성사

  
8 정도상『돌고래 파치노』문학동네

  
9 최진영『땅따먹기』청년사




수필(5종)

  자기 삶을 표현하지 않으면 언제 살았나 싶게 세월은 흔적도 없이 그냥 흘러가고 만다. 사는 일이 힘든 만큼  문학은 삶과 사람을 위로하고 성찰하며 풍요롭고 다양하게 의미짓는다. 그래서 문학이 인생을 축제로 만든다고 본다 . 수필 심사대상에 오른 도서는 58권이었다. 심사하는 내내 잠잠히 우리의 삶도 돌아보게 만들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심사규정에 따라 1차로 심의 위원당 10권씩을 선정하여 보고하였다. 심의 위원은 2차 선정대상 도서 18권을 정독하면서 엄정한 심의를 거쳤다. 3월 28일 한국문회예술위원회 아르코 미술관 3층 강당에서 최종 심의회의를 갖고 최종적으로 5권을 선정하였다.
  읽은 후 하루 이틀 지나도 계속 마음에 남는 문학적 감동과 오랜 시간동안 절차탁마의 정성을 얼마나 기울였는지 우선으로 두었다. 수필이 그냥 마음가는대로 자연스럽게 쓰는 글이란 정통적의미를 너머 지금 이곳과 그리고 미래의 현대인들에게도 자극과 성장을 위해 의미지울 수 있기를 바랬다. 그래서 책 전체를 꿰고 가는 확실하고 분명한 컨셉을 중요시 여겼다.
  응모된 작품들은 자신의 삶과 체험을 통해 발견한 인생의 의미를 보여주는 주관적 수필과  자신의 삶을 벗어난 문화읽기와 비평, 칼럼, 논술 등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인 ‘산문집’이 섞여 있어 우선순위를 따지기가 쉽지가 않았다. 이견이 생겨 어려움이 컸으나 공정성을 기하려 최선을 다하였다.

1 김풍기『삼라만상을 열치다』푸르메

  
2 박도『항일유적 답사기』눈빛출판사

  
3 이문재『이문재 산문집』호미

  
4 정진권『내 아내는 잘라 팔 머리가 없다』수필과비평사

 
5 한기호『열정시대』교양인

 

평론(4종)/ 희곡(1종)

 ‘희곡·평론’ 분야의 심사 대상 도서 가운데 일차 심사를 통과한 것은 15권 (희곡 3권) 이었다. 배정된 5권의 선정 작 가운데 희곡분야를 1권을 안배하기로 하고 심사를 진행하였다. 심사는 문학성과 새로운 문학적 개성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희곡집’ 중에서 예전에 이미 발표된 희곡들을 재출간한 경우와, ‘비평집’이라기 보다는 ‘연구서’나 ‘산문집’에 더 가까운 저작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 책들은 연구서로서 혹은 산문집으로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여겨졌지만, ‘문학평론’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판단이었다. 그 결과 연구서와 산문집 성격의 책들을 배제하고 현재의 한국문학 현장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가진 신진 평론가들의 작업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선정 작을 선택하였다. 결과적으로 희곡집 1권, 아동문학평론집 1권, 문학평론집 3권으로 선정 작을 결정하였다.

평론(4종)

1 김문주『소통과 미래』서정시학

  
2 김상욱『어린이문학의 재발견』창비

  
3 오윤호『깨어진 역사 비평적 진실』시와에세이

 
4 윤지영『서정과 환상-모방의 시학』푸른사상



희곡(1종)

1 최병화『최병화 희곡집』예니

 

<선정위원>
시 : 유안진, 문인수, 김해화, 최정례, 손택수
소설 : 전상국, 이경자, 최윤, 이순원, 김영하
아동청소년문학 : 김용희, 김남중
수필 : 서숙, 신현림
평론/희곡 : 박상률,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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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영어로 강의하기, 한국어로 학문하기

어제 <영어, 내 마음의 식민지>(당대, 2007)에 관한 리뷰를 올려놓았는데, 생각난 김에(멍석이 깔린 김에) 영어 강의('외국어강의'라고도 표현하지만 99%는 '영어강의'를 가리킨다)에 관한 자료들도 모아놓는다. 대학 경쟁력 강화와 세계화를 명분으로 영어강의의 비중을 늘이는 게 대학가의 추세인데, 그것이 필요한지에서부터 얼마나 가능한지, 또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영어공용어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신 분들도 제한적인 범위에서의 공용어론, 곧 '학문어로서의 영어공용어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강의 현장의 교수 두 분과 작년 경향신문의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이란 타이틀의 기획기사들을 옮겨놓는다.

교수신문(07. 03. 16) 외국어로 강의하기와 한국어로 학문하기

여러 대학에서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을 늘이고 있다. 외국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과목에 대해서는 연구보조비를 지급하고, 폐강 기준을 완화하며, 절대 평가도 허용하고, 강의 시수도 높게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신임 교수는 반드시 1과목 이상을 외국어로 강의하도록 하고, 학생들은 반드시 외국어로 진행하는 과목을 수강하도록 강제하려고 한다. 

국제화 시대에 우리 대학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설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내 대학에도 외국 유학생이 늘어나고, 우리 학생들도 국제무대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전문 분야의 차원에서 외국어에 능통할 필요가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또 우수한 외국인 교수를 초빙하여 교수진 구성도 다양하게 한다면 당연히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이 개설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의 확대가 한국어가 학문의 언어로서 자리 잡아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학문 분야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 강의실에서 쓰이는 한국어는 정상적인 한국어라 하기 어렵다는 점이 거듭 지적되어 왔다. 주요 용어는 물론 서술어조차 외국어 일변도이고 한국어는 ‘토’로만 쓰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강의를 외국어로만 하는 과목이 늘어난다면 한국어는 지식의 생산과 소통의 역할을 급격하게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다(*이미 의학, 공학, 자연과학 분야의 경우 한국어는 학문어로서의 위상을 거의 상실한 것 아닌가? 가령, 의학 드라마들에서 주요 용어들을 우리는 '한국어 자막'으로나 접수하듯이 말이다).

사실 근대 직전까지 우리는 한문으로 학문을 해왔고, 학문의 영역에서 한글은 기껏 경전의 번역용이었을 뿐이었다. 한글이 공용문자가 된 것은 1894년부터이며, 대학에서 학문의 언어로 자리 잡은 지는 이제 겨우 60년이 되었다. 그것도 난삽한 한자어, 번역어, 외래어 및 외국어로 점철된 한국어로 우리는 학문을 해왔던 것이다. 제대로 된 한국어로 학문을 하려는 노력도 전개되어왔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외국어로 전공 강의를 하도록 하니 우리 학문의 세계에 마치 제 2의 중세가 도래하는 느낌이다. 그래도 지난 중세에는 한문으로 학문을 했어도 수업만은 한국어로 했는데, 이제는 수업도 외국어로 하자니 말이다. 

원효, 퇴계, 율곡 등 여러 선인들이 한문으로 세계적인 학문을 했으니 장차 우리가 외국어로 세계적인 학문을 할 가능성은 충분하다(*하지만 그때의 '세계적인 학문'이 '한국 학문'이며 '한국 철학'인 것일지는 의문이다. 한국인이로서 '세계적인 학자'가 된다는 것과 '세계적인 한국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 세계에 널리 쓰이는 언어로 학문을 하여 곧장 외국 학자들과 소통하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일원화의 방향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다원화의 방향에서도 이루어진다. 지식의 창조 역시 다양한 언어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라틴어 못지않게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가 훌륭한 학문의 언어 역할을 하듯이 한국어도 한문 못지않게 세계적인 지식을 창조하는 언어로 자리 잡아야 한다(*현재와 같은 한국어의 위상과 역량으로 가능한 일인지에 대해서 나는 회의적이다. '우리말로학문하기모임' 도 없지는 않지만. 가령, '한국어 철학'이 현재 가능한가?). 그것을(*그것은) 학문하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그러므로 외국어로 강의하는 과목을 개설한다면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국어로 창조적인 학문을 하는 일에 이바지하는 것이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김종철/ 편집기획위원` 서울대) 

대학신문(07. 04. 01) 영어 강의, 우리말 강의

우리 대학도 국제화 촉진의 일환으로 영어로 하는 강의가 부쩍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 학생들의 영어능력 향상은 물론, 늘어나는 외국인 학생들이 들을 수 있게 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의해서도 영어 강의는 필연의 대세로 자리잡을 것 같다. 교재와 강의 내용이 이미 영어로 잘 정리되어 있는 전공 분야에서는 그런대로 큰 문제가 없을지 모르나 교재 개발이 잘 되지 않은 과목이나 인문 사회 예술계의 특수 전공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가능성도 있겠다.

나는 1992년 봄 학기 이래로 대학원 과목을 벌써 16년째 줄곧 영어로 강의해 왔다. 농생대 대학원 공통과목인 ‘세포생물학특강’, ‘분자유전학’, ‘유전자조작론’, ‘유전체학’을 두꺼운 원서로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바로 바꿔 가며 학생들을 위해 독파해 주었다. 범위도 많고 어렵다고 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바로 이 교재를 하버드, 엠아이티, 캠브리지 대학은 물론, 이웃 일본과 중국에서도 그리고 국내 다른 경쟁 대학에서도 사용’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자긍심과 명예를 걸고 노력해 줄 것을 호소했다.

학생들은 고맙게도 열심히 공부했고, 정말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학생들이 최신 논문을 읽어 발표할 때 영어로 하면 가산점을 주어 독려했다. 앞으로 국제 학술대회에 나가서 자신의 논문을 발표하게 될 날을 생각하며 준비하라고 했다. 의외로 많은 학생들이 호응했고, 해가 갈수록 그 수와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 그 당시 내 영어 강의를 듣고 유학의 길에 올랐던 많은 학생이 이제는 귀국도 하여 여러 곳에서 활동하는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영어 강의를 시작할 그 시절, 주소와 성명을 밝히지 않은 어느 암자의 수도승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대학에서 영어로 강의한다는 것은 나라말을 버리고 민족정신을 흐리게 하는 심각한 사안이니 즉시 중단하라는 권유였다. 깊은 생각 끝에 시간을 내어 글을 썼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우물 안 개구리들을 탈출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불타는 나의 영어 강의는 계속되었다. 국제화로 치닫는 지구촌 시대가 지속되는 한, 대학의 영어강의는 더욱 확대 보급될 것이 분명하다. 한 사람이 3~4개 국어를 구사하는 시대도 도래할 것이다.

한편 우리말의 세계화도 크게 신장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나는 이제 달리 깨닫고 있다. 영어로만 읽고 쓰기를 계속하는 한, 과학 기술은 우리 학생들에게는 먼 서양에서 빌려 온 동화 속 이야기 또는 수입 상품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하되, 과학적 사고 자체를 영어를 통해서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언제까지 얼마나 철저하게 요구할 것인가? 젊은이와 일반인이 과학과 문화를 우리말로 배우고 생각하고 쓰는 가운데, 창조적 과학과 원천 기술이 샘솟아 나오는 시대를 원한다면, 이는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망상일까?(*현재로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일반에게 보급한 마틴 루터가 처했을 시대적 상황과 관념의 두터운 장벽을, 그리고 후세에 끼친 영향을 잠깐만이라도 음미해 본다면, 우리말 교재와 강의의 병행은 너무나도 작은 망상이 아닐까? 영어도 처음부터 국제어로 군림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 누군가 물줄기를 바꿀 것이면 그것이 오늘 우리들여서는 안 될까?(김병동 교수/ 농생대·식물생산과학부)

경향신문(06. 06. 27)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上) 준비안된 부실수업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하는 대학 강의들이 늘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이고 교수들의 영어수업 역량도 떨어지면서 부실강의로 이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글로벌화의 명분 아래 진행되는 영어강의의 그늘을 2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주

#1. ㄱ대의 ‘수리물리학’ 시간. 원서를 보며 영어로 진행되는 강의지만 책을 보고 읽는 수준이었고 어려운 개념을 설명할 때는 학생도 교수도 진땀을 뺐다. 수업에 참여한 한 학생은 “교수와 학생들 사이에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주요 대학들이 글로벌화 명분 아래 영어강의의 비중을 급격히 높이고 있지만 오히려 부작용만 속출하고 있다.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천차만별인 데다 일부 교수들은 영어강의를 소화할 역량이 없다. 영어에만 집착한 나머지 부실한 강의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다.

26일 각 대학에 따르면 고려대는 전체 강의 중 30%가 영어강의이며 2010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2007학년도부터 5개 이상 영어전공강의를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졸업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연세대도 전체 수업 중 18%가 영어로 진행되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2010년까지 40% 선으로 영어강의를 늘리려 한다”며 “영어강의시 강의료를 추가 지급하는 등 인센티브를 줘 더 많은 영강이 개설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강대 역시 2006학년도 입학생은 3과목, 2007학번은 4과목 이상 들어야 졸업할 수 있게 된다. 서울대는 2006학년 1학기 전체 교양강좌의 10%를 영어강의로 지정했다. 이중에는 한국 근현대사·한국문학 등 한국학 관련 과목도 포함됐다.

문제는 이런 영어강의의 확대가 대학본부로부터 상명하달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굳이 영어로 할 필요가 없는, 혹은 해서는 안 되는 강의를 영어강의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고려대는 한국사학과 등 역사관련학과를 ‘한국학의 세계화’를 위해 영강의무화 학과로 지정했다(*강의를 담당할 만한 교수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김모씨(21)는 “영어에 없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선 결국 학생·교수 모두 한국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학생간 영어 실력차와 교수들의 영어강의능력 부족도 걸림돌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영어원서를 읽는 수준이거나 아예 영어회화수업으로 변질된 강의도 많다. 문제는 강의 질이 떨어지더라도 전공필수 과목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수강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양대 영문과 조모씨(22)는 “지난 학기에 영어강의 ‘문학과 시’를 수강했는데 영어능력 향상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학생 허모씨(24·여)는 “교수님들도 영어강의를 하면 의미가 70%밖에 전달되지 않는다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지난 3월 고려대 학보인 고대신문이 재학생 375명을 대상으로 영어강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56%가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불만족의 이유로 ‘영어수준이 너무 높아 이해하기 힘들어서’가 42.5%였다. 연세대 언더우드국제학부의 모종린 학장은 “굳이 영어강의가 필요없는 곳도 많다”며 “전공별로 차별화해서 영어강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김준일·이호준·김유진기자)

경향신문(06. 06. 28)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下) 교수들도 피해자

독일에서 10년 넘게 여성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김모씨(42)는 지난해 모 국립대에서 사회학과 교수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여성학에 관해서는 상당한 자신이 있던 김씨는 면접자리에서 당황했다. 면접위원들이 독일어가 아닌 영어로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무사히 면접을 마치긴 했지만 임용에는 실패했다. 김씨는 “임용된 사람을 알아보니 그 학교 출신에, 영어회화가 뛰어난 사람이었다”며 “실력보다는 영어가 중요시되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유럽에서 공부한 박사들은 요즘 좌불안석이다. 김씨는 “사회학이나 법학은 세계적으로 독일이나 프랑스를 더 알아주지만 국내 분위기는 오직 영·미권을 우대한다”며 “같이 공부한 사람끼리 만나면 미국으로 유학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한탄한다”고 전했다. 대학들의 영어강의 확대로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뿐 아니다. ‘영어 강의능력’이 능력평가의 주요 지표가 되면서 영·미권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각광받는 반면 유럽출신 박사들은 임용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고 있다.

‘영어강의 능력’ 우대는 국내 학계의 영·미 편향성이 더욱 심화되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상명대 영어교육학과 박거용 교수는 “최근 유럽에서 공부해 임용되는 교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학문의 미국 종속이 심화되고 있다”며 “영어지상주의가 불러오는 폐단”이라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이어 “학자라면 외국 학문을 우리말로 정착시켜 ‘한국적인 학문’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한데 번역없이 영어로 떠든다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말했다. “영어를 잘하는 것과 강의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다.

상당수 대학들이 신규임용 교수들에게 영어강의를 의무화하고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영어강의를 진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임용된 고려대의 한 교수는 “내 전공은 실습위주 과목인데 억지로 영어로 진행하다보니 의사소통이 안돼 어려움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나이든 교수님들이 영어강의를 안하다보니 영어강의 부담은 전부 젊은 교수들에게 지워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영어만능주의에 대한 반발기류도 나타나고 있다. 고려대 이상신 교수는 지난 3월 어윤대 총장에게 보낸 공개 질의서에서 '“교수가 되려면 대학원 과정부터 미국에서 다녀야 한다”는 발언과 학문적 능력이 검증 안된 외국인 교수를 채용하도록 여러 학과에 요구한 점, 학문을 고려치 않고 영어강의 능력을 채용기준으로 설정한 점’ 등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지난 5월 고려대 문과대 교수회는 “문화적 정체성을 위협하고 자유로운 진리탐구 역량을 훼손하는 영어강의 전공과목 이수 의무화 방침을 거부한다”고 결의했다. 전공과목을 영어교육의 실습수단으로 여기는 발상에 대한 항의였다. 고려대도 교수회의 일부 주장을 받아들이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영어강의 확대 방침은 여전히 확고한 상황이다.

물론 세계화의 거센 파고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영어강의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많다. 고려대 화학과 최동훈 교수는 “어느 나라에서 공부하든 국제어인 영어로 소통할 일이 많기 때문에 교수들 역시 영어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세대의 한 교수는 “영어강의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대학측이 운영의 묘를 살려 학문과 영어실력 둘 다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김준일·이호준·임지선기자)

경향신문(06. 06. 27) [대학 영어강의의 그늘]조기 어학연수 붐

“이왕 갈 어학연수라면 일찍 가는 게 낫죠.” 대학들이 영어강의를 확대하면서 캠퍼스 풍속도 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조기 어학연수 붐. ‘영어강의 스트레스’를 못 이긴 신입생들이 영어실력을 높이기 위해 조기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려대 언론학부 이모씨(20)는 “친구들 절반 정도가 2학년 마치기 전 어학연수를 생각하고 있다”며 “영어 스트레스로 군입대를 서두르는 후배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재외국민 특례입학 학생들의 약진도 눈에 띠는 현상.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경험 덕분인지 의사표현이 적극적인 데다 최소한 영어강의시간에 자기 뜻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학점을 잘 받고 있다.

서강대생 박모씨(26)는 “교수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영어회화를 잘하는 특례입학생의 학점이 더 잘 나온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전공지식보다 영어로 학점이 결정되는 현실에 분개하는 사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학원생들도 죽을 맛이다. 각종 과제와 시험 채점은 대학원 조교의 몫인데 영어강의가 늘면서 채점 스트레스가 늘었기 때문이다. 고려대 대학원생 김모씨(28)는 “문법이 틀리는 영어를 읽는 것도 괴롭지만 정확한 점수 매기기가 어려워 단어 중심으로 채점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틀이면 끝나던 채점이 일주일을 넘길 때는 정말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김준일기자)

07. 04.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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