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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st of Eden (Paperback, Deckle Edge) - Steinbeck Centennial Edition
존 스타인벡 지음 / Penguin U.S / 2003년 6월
평점 :
* 번역서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스타인백의 원서를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읽기 쉽다.
이 소설은 3대에 걸친 가족사 소설이며, 자전적 소설이라는 장치를 곳곳에 삽입한 (필립 르죈의 의미에서)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소설 내에서 '존 스타인백'의 이야기는 간혹 'I'로 등장할 뿐 서사에서 중요하게 기능하지 않는다. 다만 이것이 '사실'이라는 뉘앙스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이 소설의 중심 키워드는 '자유의지'이다. 기독교 성경을 미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널리 알려진 해석은 인간에게는 왜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으며, 이로 인해 인간은 유일하다라는 기독교적 언명을 미국이라는 배경하에서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 아담으로 하여금 이브에게 유혹당하여 에덴동산에서 좇아내게 만들었을까? 이러한 질문은 소설에서 되풀이된다.
소설 속 Cathy는 태어날 때부터 '양심'이라는 것이 없는 괴물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순수한 악의 표상인 그녀는 아담을 이용하기 위해 아담과 결혼하고 그의 동생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마침내 아담에게 총을 쏘고 달아나서 포주가 된다. 이브-뱀-사탄이라는 연쇄!
아담은 카렌을 한없이 사랑했기에 절망의 늪에 빠져들지만, 지혜로운 두 남자, 샘과 리(중국인 하인)에 의해 다시금 의지를 회복하게 된다. 이 와중에 중요한 것이 성경의 한 구절이다. Timshel! 이는 'thou mayest' 라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신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 자유의지를 부여한 것.
인간은 물론 환경에 의해 제약을 받고, 자신의 유전자에 의해 상당부분 결정된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말 속에, '주체'라는 단어에는 '선택'의 책임이 있다. 즉, 다시금 떠오른 '주체'의 문제이다. 철학, 사회학이 발달될 수록,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고, 이는 즉 인간'현상'을 외부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상과 관찰이라는 이분법은, 결국 인간을, 인간 행위를 남김없이 설명하려는 시도이고, 설명은 궁극적으로 모든 조건을 부여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과학'을 지향한다. 한 인간의 유전자, 성장배경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면, 그의 행동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인문'과학'의 꿈이 아닌가?
그러나 그 와중에, 연구자-인간에 의해 결국 '인간'은 '현상'으로 떨어지고 만다. 구조속의 효과로 환원되어, 원자들의 움직임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예측되고 분석될 수 있는 존재로 된다. (*그렇지만 주지하듯이, 원자의 정확한 위치를 현대 과학은 '알 수 없음'을 그 '가능성'만 추정할 수 있음을 말한다. 원자를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빛, 즉 광자의 개입이 있어야 하는데, 연구자가 광자를 원자에게 쏘아보내서 이의 반사된 것을 가지고 원자의 위치를 추정하려고 하면, 이미 그 원자는 광자와의 충돌 때문에 그 위치에 있지 않은 것.. 이는 '연구자'라는 개입이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에 반하는 것, 다시금 '주체'를 말하고 '자유'를 의미화하는 작업들. 그러한 '자유' 때문에 인간은 위대하다는 언명. 스타인백의 소설은 그러한 '인간주의'의 한 극점을 감동적이고도 아름다운 소설로 재구성하였다.
그러나 기실, 나는 이러한 인간주의에 대해 한편으로는 감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발 물러나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러한 '인간주의'의 효과란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 그가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는데에 복무할 수 있다. 노숙자나 비정규직 종사들의 문제를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속삭이듯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렇게 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것을 '혁명적 주체성'의 문제로, 자발상을 넘어선 의식성의 문제로, (레닌 식으로) 전유할 수도 있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이란 무엇일까,를 묻는 나는 무엇일까. 인간이란 과연 유적존재일까. '인간'이라는 것은 있을까? 스타인백은 심지어 Cathy마저도 인간임을 보여준다. 모두가 <인간>이라고, 모두는 자유의지의 선택가능성이 있다고. 그래, 여기서부터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