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물만두 > usatoday 선정 지난 25년간 영향력 끼친 25권의 책

1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 J.K. Rowling (1998)  

2 The Deep End of the Ocean - Jacquelyn Mitchard (1996)

3 The Da Vinci Code - Dan Brown (2003)

4 The 911 Commission Report - the National Commission on Terrorist Attacks (2004)

5 Chicken Soup for the Soul - Mark Victor Hansen and Jack Canfield (1993)

6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 John Gray (1992)

7 Dr. Atkins' New Diet Revolution - Robert C. Atkins (1992)

8 And the Band Played On - Randy Shilts (1987)

9 Beloved - Toni Morrison (1987)

10 The Greatest Generation - Tom Brokaw (1998)

11 Bridget Jones's Diary - Helen Fielding (1998)

12 Left Behind - Tim LaHaye and Jerry B. Jenkins (1995)

13 The Purpose Driven Life - Rick Warren (2003)

14 Fast Food Nation - Eric Schlosser (2001)

15 The Satanic Verses - Salman Rushdie (1989)

16 The Closing of the American Mind - Allan Bloom (1987)

17 The Bonfire of the Vanities - Tom Wolfe (1987)

18 The Joy Luck Club - Amy Tan (1989)

19 What To Expect When You're Expecting - Heidi Murkoff, Arlene Eisenberg and Sandee Hathaway (1984)

20 A Brief History of Time - Stephen Hawking (1988)  

21 Iacocca - Lee Iacocca (1984)

22 Waiting to Exhale - Terry McMillan (1992)

23 Cold Mountain - Charles Frazier (1997)

24 Backlash - Susan Faludi (1991)

25 Final Exit - Derek Humphry (1991)

미국 신문 유에스에이투데이는 10일 지난 25년간 독자와 출판계에 큰 영향을 끼친 25권의 책을 선정, 발표했다. 이 책들이 우리에게 준 영향도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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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박노자가 본 한미FTA

 

레디앙(07. 04. 09) 한미FTA 정치사회적 겨울 온다

"미국과 한국의 시장을 통합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정책을 수립할만한 여지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세부적인 혜택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이 나라에서 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어떤 정책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환영하는 것 같다"

"한미FTA 체결되면 정치사회적 겨울이 올 것"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박노자 교수는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지배층이 한미FTA를 추진하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한미FTA 협정이 체결되면 우리 사회는 미국식 모델 외에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될 것이라면서 "사회와 국가의 장기 보수화, 일종의 정치사회적 겨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박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를 들먹이고 진보적 슬로건을 하나의 어법으로 이용하면서 일부 민중을 포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국가를 미국형 사회모델, 한 편에는 소수의 부유층과 고소득층과 중산층 상층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70-80%나 되는 빈곤층과 준빈곤층, 몰락 중인 하급중산층이 있는, 민중에게 대단히 고통스러운 사회모델로 몰아가고 있다"고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박 교수는 한미FTA의 효과로 소비자 잉여가 증대될 것이라는 논리에 대해 "소비자가 바로 노동자다. 소비하려면 우선 벌어들여야 하는데, 직장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이고 있는 공무원 '퇴출 쇼'가 그런 것인데, 일종의 시범케이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모델이 공고화된다면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은 공포의 나날이 될 것"이라며 "당장 다음 달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연속일 것"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 같은 사람이 한국 민중에 가장 위험"

박 교수는 노 대통령에 대해 대단히 신랄했다. 그는 "(노 대통령같은) 그런 자들이 장기적으로 한국 민중에 가장 위험하다. 카멜레온처럼 기만책을 대단히 잘 구사한다. 일부 민중층을 포섭하는 언어적 수법에 능하다. 또 자수성가한 민중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민중운동을 파괴하는 데는 가장 쓸모가 있다"고 맹비난했다.

박 교수는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진보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고, 좌파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고 분별하면서 자신과 노 대통령을 진보로 규정한 데 대해 "조기숙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이화여대에서 시간강사를 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 중에 교수가 될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수 많은 시간강사들, 수 년 동안 시간강사 일을 해온 사람들, 상당수는 정규직 교수에 비해 능력 좋고 업적 좋은 사람들, 조기숙 선생이 만들고 싶은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고 꼬집었다.

"민주노동당 보면 참담…대중적 호소력 강한 사람이 후보돼야"

박 교수는 이번 대선과 관련해 "지금 같아선 극우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것이 뻔해 보인다"면서 "(민주노동당이) 그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제대로 저항해서 수 백만 표를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극우 세력과 제대로 투쟁하면서 한국의 보수화를 제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요즘 민주노동당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문제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당이 젊은층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은) 80년대 운동권의 보수적이고 서열위계적인 문화가 강하다. 양성평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도 많지 않나 싶다"면서 "20대 여학생이 친근하게 대하기 굉장히 힘든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당 지도부나 국회의원 후보 선출시 비정규직에 쿼터를 부여하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심상정 의원이 제안한 비정규직 대상의 당원 가입 특례안에 대해서도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호응했다.

박 교수는 민주노동당의 대선 레이스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면서 "대중적인 호소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한미FTA 문제가 주제였지만, 한미FTA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다른 이슈들로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특히 북한 문제에 대한 박 교수의 분석은 독특하고 흥미로웠다.

"북한은 미국만 허락하면 가장 친미적인 국가 될 수 있어"

박 교수는 북미관계와 관련,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 남한까지 견제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라며 "북한은 미국이 허락만 한다면 가장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허락한다면 북한의 자체 식민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미국 자본과 남한 자본, 일본 자본에게 자기 나라의 저임금 노동력을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 북한 지배층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분석에서 보듯 북한의 현 지배층에 대해 박 교수는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러니 북한의 지배층을 추종하는 운동권 내의 일부 경향에 대해 박 교수가 어떤 입장을 갖고 있을지는 능히 짐작되는 바다.

그는 '탈북자' 문제와 관련, "남한 운동 진영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탈북자를 체제 부적응자나 심하면 배신자로 규정해서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 "주사파를 이해하기 힘든 게 이런 점이다. 본인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하는데,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면서 무슨 놈의 민족주의인가. 이건 조선민족이 아니라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위주로 놓고 생각하는 아주 악질적인 국가주의"라고 맹비난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7일 낮 12시부터 성균관대학교 야외 휴게실에서 약 90분에 걸쳐 진행됐다. 인터뷰를 마치고 혜화역으로 가는 길에 보니 대학로에선 한미FTA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준비되고 있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한마FTA 협상이 타결됐다. 어떻게 평가하나.

= 자세한 평가는 세부 내용을 봐야 가능할 것 같다. 정부는 개성공단 문제와 관련해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앞으로 대중국 정책 방향에 따라 결정될 문제다.

"미국에게 북한은 대중국 전략의 종속변수"

- 한미FTA 특위 열린우리당측 간사인 송영길 의원은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치 건을 놓고 "동북아에서 경쟁력 있는 통일경제의 꿈"을 말했다.

= 송영길 의원이 말하는 경쟁력이라는 건 60~70년대 한국식 성장모델의 재판이다. 한국 노동자 대신 북한 노동자를 저임금 착취 모델로 몰아내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섬유제품 등을 미국에 팔아 60~70년대 한국자본주의의 기적을 재현해 보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북한 정권이 한국 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북한 지배집단의 동향을 보면 여기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이렇게 되면 북한 노동자들은 한국 자본과 북한 지배집단이라는 대리인에 의해 이중착취 상태에 놓일 것이다.

북한 민중이 절대적 기아사태를 면하면 다행이지만 이중착취 구조에서 생활수준도 크게 개선되지 못할 것이고, 결국 지금과 같은 무권리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송영길 의원의 기대대로 된다고 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송 의원의 기대대로 풀리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이 이란 침략 계획을 실행하지 않고 보류한다면 다시 한 번 동아시아로 눈을 돌려 잠재적 경쟁 상대인 중국을 약화시키는 집중적인 포위 프로젝트에 착수할 확률이 높고, 그 한 부분이 북한 때리기다.

북한은 미국의 대중국 전략의 종속변수다. 중국의 대국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에 따라 미국의 북한 때리기는 언제라도 재개될 수 있다.

- 미국에겐 대중국 정책이 상수라는 얘긴데.

= 그렇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유전처럼 약탈할만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미국에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는 최적의 교두보다. 이는 열강정치에서 확인된 지 오래다.

러일전쟁을 앞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1901년부터 협상을 했는데, 당시 러시아측 요구가 뭐였느냐면 39선 이북 지역의 중립화였다. 한반도 북부지역을 일본 영향권과 대륙 영향권 사이의 완충지대로 파악한 것이다. 지금 중국이 북한을 보는 것도 당시 러시아의 시각과 같다.

당시 일본, 그리고 현 미국 세력의 영향권과 대륙 세력의 영향권의 충돌의 문제이지 북한 자체를 특별히 미워할 것도 없고 북한을 공격해서 얻을 것도 없다.

"북한문제와 한미FTA를 묶어 강매하려는 속셈"

- 송영길 의원은 운동권 출신이고 햇볕정책의 신봉자다.

= 햇볕정책이라는 것이 북한의 지배집단을 잘 포섭하자는 얘기 아닌가. 싸우자는 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을지 몰라도 한국 지배계급의 자기 위주 발상이다.

- 구여권에 있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 가운데는 한미FTA와 남북관계 개선을 같은 궤에 놓고 보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 지금 정부와 구여권이 팔아 먹을 수 있는 건 북한 문제밖에 없다. 복지정책은 내세울 게 없고, 부동산 값도 잡히지 않고 있다. 민생파괴와 농업파괴는 한미FTA로 이미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도시의 30~40대 화이트칼라, 농민, 노동자들에게 팔아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유일한 게 북한 문제다. 이들은 진보적 지지층에 먹힐 수 있는 북한문제와 전혀 먹히지 않을 것 같은 한미FTA를 묶어서 강매하려는 것이다. 북한과 잘 되기를 원하면 한미FTA를 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속아넘어갈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 그런 단기적 속셈 말고 통일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상의 일단을 비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 만의 하나 미국이 앞으로 10~15년간 중국을 대상으로 침략과 포위 전략을 쓰지 않을 경우 북한은 동북아에서 일본 이상의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 북한은 이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다. 제일 약자다. 북한은 중국에게서 투자도 받고 원조도 받고 있는데, 이런 과정에서 종속적인 관계가 되어 가고 있고, 이는 북한 지배층으로선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러시아, 남한까지 견제할 수 있는 카드는 미국이다. 북한은 미국이 허락만 한다면 가장 친미적인 국가가 될 수 있다. 미국이 허락한다면 북한의 자체 식민화가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미국 자본과 남한 자본, 장기적으로는 일본 자본에게 자기 나라의 저임금 노동력을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 북한 지배층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다.

한반도 진보진영의 나쁜 전통

- 한반도 남쪽 진보진영은 어떤 각도에서 통일문제에 접근해야 하나.

= 한반도 진보진영에겐 나쁜 전통이 하나 있다. 외부에서 이상향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다. 처음에는 소련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한국 공산주의 운동은 러시아 혁명의 파급 효과로 구성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러시아는 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적 성격을 상실하기 시작했고, 30년대 이후로는 국가자본주의 국가가 됐다. 그런데 한국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스탈린주의 및 러시아 혁명의 왜곡과 반동화를 비판한 사람이 없다.

중국만 해도 진독수와 같은 사람이 있었다. 한국에 트로츠기 전통이 생건 건 90년대 초반이다. 소련이 한국 공산주의자들에게 숭배 대상이었는데, 이게 나중에 엄청난 재앙을 낳았다. 그리고 수십년 후인 80년대 남한에서 그 비극이 재연됐다. 스탈린주의를 사회주의로 착각했고, 소련이나 동독을 희망으로 여겼다. 이것이 운동권 문화를 왜곡시켰고 운동권 붕괴의 원인이 됐다.

동구권이 붕괴된 후 이런 환상은 가라앉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북한을 대상으로 해서는 지난 20년대부터 있어왔던 이상향 찾기의 욕망이 계속 투사되고 있다. 이른바 주사파들 사이에 이런 경향이 강하게 존재한다.

운동권은 이를 완벽하게 버리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고 대중화될 수 없다. 남한 대중은 북한의 실체를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운동권에서는 계속 비현실적인 환상들을 붙들고 있다. 이것이 운동권 전체가 대중화될 수 없는 이유다.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에 기대 걸어야"

- 소위 좌파 진영도 이렇다 할만한 대북 접근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겠나.

= 최적의 방향은 북한 민중이 혁명적인 노선으로 가는 것이다. 북한 지배계급에 대한 민중적 혁명이 한반도 정치를 급진화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을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최선의 방향을 얘기하기 어렵다.

그래도 내가 보기엔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에 기대를 거는 것이 민중 진영의 유일한 길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기대가 일정한 현실성이 있는 이유는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민중의 계급적 각성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전국 조직이 없어 그렇지 적어도 지역적으로는 노동자의 저항이 강해지고 있다. 민중 저항에 참여하는 사람만 해도 지난해 300만명이 넘었고, 저항의 방법도 급진화되고 있다.

중국 민중들이 중산계급과 지배계급의 개발연대에 대한 정치적 반대노선으로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 저항의 분위기가 맨 바닥에서 형성되고 있다. 북한은 중국이나 베트남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럴 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북한 민중이 그간 얼마나 속았으며 지배계급의 전략에 어떻게 놀아났는가 각성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런 각성에는 위험성도 따르는데, 남한 사회에 대한 미화로 빠져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은 천국이라는 인식이다. 탈북자들이 대개 극우적인 성향을 띠는 것도 이런 이유다. 북한 지배계급에 대한 반항심이 남한 지배체제에 대한 동경으로 잘못 흘러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남한 민중세력이, 남한 지배체제와 북한 지배체제를 동시에 반대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혹은 그런 운동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북한 민중의 계급적 각성에 도움되지 않을까 싶은데, 실제로는 남한 운동 진영이 탈북자를 철저히 외면한다. 탈북자를 매개로 북한 민중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줄 수 있을 텐데도 그렇다.

남한 운동 진영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는 탈북자를 체제 부적응자나 심하면 배신자로 규정해서 왕따시키는 게 아닌가 싶다. 이건 대단한 손실이다. 인간적으로도 말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주사파들 이해하기 힘든 게 이런 점이다.

본인들을 민족주의자라고 하는데, 같은 민족인 북한 사람들을 이렇게 대하면서 무슨 놈의 민족주의인가. 이건 조선민족이 아니라 북조선이라는 국가를 위주로 놓고 생각하는 아주 악질적인 국가주의다.

"한미FTA, 한국 지배층의 새로운 유토피아"

- 어느 강연에선가 한미FTA를 '제2의 을사늑약', 이런 식으로 비유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청와대가 반대진영을 쇄국론자로 몰아붙이는 논거 중 하나가 '어떻게 한미FTA를 을사늑약과 비교하느냐' 하는 것이다.

= 나는 물론 한미FTA가 을사늑약과 같다고 보지 않는다. 하나의 비유였을 뿐이다. 그 비유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고종황제는 을사늑약에 반대했다. 주요 각료는 찬성했지만 황제가 반대했다. 지배층 중에서도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는 데 대한 반대가 있었던 셈이다. 자기 사유물처럼 국가가 남의 손으로 넘어가니까 고종으로선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미FTA는 좀 다르다. 한국의 지배계급 전체가 한미FTA를 찬성할 뿐더러 끌고 가고 있다. 대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기업에 종속된 중소기업도 환영하고, 고소득 전문직종에 있는 사람들도 환영한다. 이들 엘리트들이 한미FTA를 환영하는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공고화시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시장을 통합시킬 수 있다면 더 이상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대하는 정책을 수립할만한 여지가 남지 않을 것이라는 발상이 아닌가 싶다. 어떤 세부적인 혜택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이 나라에서 부자들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어떤 정책도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환영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한미FTA 협정을 체결하면 부유세 같은 정책을 시행하는 게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에 없는 정책을 한국에서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민의료보험도 자기 부담 위주로 가는 완성되지 못한 제도로 남거나 미국처럼 민간보험 위주로 퇴보할 수 있다.

미국이 하나의 모델이 되면 교육의 공공성도 흔들리기 쉽다. 아직까지 3불정책이 유지되고 있고, 평준화 정책을 탈피하고 싶어도 국민 불만을 생각해서 원칙을 지키고 있는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모든 학교가 귀족학교와 빈민학교로 나뉘는 시스템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한국 지배층의 새로운 유토피아다.

- 한미FTA를 찬성하는 이유 중 하나가 신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의 역진불능성에 대한 기대에 있다는 지적은 흥미롭다.

= 한국이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은 굳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도 많다. 일본 모델도 있고 서유럽 모델도 있다. 서유럽 모델 중에선 독일,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모델 등이 있는데, 국가를 통한 재분배가 위주가 된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선 북구식 복지국가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여론조사 해보면 상당히 높게 나온다. 그런데 한미FTA로 인해 이런 모델에 대한 모색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 사회와 국가의 장기 보수화, 일종의 정치사회적 겨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개방이냐, 쇄국이냐'는 구도는 허구

- 정부는 한미FTA 찬반 논쟁을 '개방이냐, 쇄국이냐'는 구도로 몰아가고 있다.

= '개방이냐, 쇄국이냐'는 구도는 허구적이다. 조선 말기의 경우 강화조약 이전 조선의 무역의존도는 1%가 안됐다. 지금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한미FTA를 하지 않더라도 80%에 달한다.

한미FTA는 쇄국의 반대어로서의 개방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시장과 미국 시장을 높은 수준으로 통합하는 문제이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국가사회 발전모델을 미국식 모델에 종속시키는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진보를 들먹이고 진보적 슬로건을 하나의 어법으로 이용하면서 일부 민중을 포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국가를 미국형 사회모델, 한 편에는 소수의 부유층과 고소득층과 중산층 상층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70~80%나 되는 빈곤층과 준빈곤층, 몰락 중인 하급중산층이 있는, 민중에게 대단히 고통스러운 사회모델로 몰아가고 있다.

- 한미FTA로 피해를 입게 될 70~80%의 민중층 가운데 상당수가 이 협정을 찬성하고 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 문화적 헤게모니의 문제다. 한국은 국가와 보수적 재벌과 미디어가 영합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나라다. 보수신문의 한미FTA 보도를 보면 가히 대국민 선전선동, 대국민 홍보 수준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개발주의 신화가 강하다. 70년대 개발주의가 특정 시기에 일정 부분 성공한 면이 있고, 박정희 시대의 이런 성공 신화를 미디어들이 재생산하고 있다. 한미FTA에 대한 찬성 여론은 '박정희 신화처럼 해보자'는 분위기에 도움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박정희 시대의 개발은 외자와 차관, 무역 위주의 개발이었고 지금과 같은 시장통합적 개발은 아니었다. 박정희 개발주의가 일정 부분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시장통합을 하지 않고 미국 재벌로부터 한국시장을 보호한 데 있다. 이게 성공비결이라면 비결인데, 한미FTA는 이 부분을 무시하고 시장통합으로 가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무원 '퇴출 쇼'가 의미하는 것

- 불리한 여론지형을 극복하고 반대론이 힘을 얻을 수 있을까.

= 아직 협상은 체결된 것이 아니다. 미국쪽 사정 때문에라도 협정 체결은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한국의 경우 협정으로 인해 극심한 피해를 입을 계층과 지역이 존재한다. 반대 여론을 커지게 하자면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얘기해야 한다. 농민들이야 너무 분명하니까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될 정도지만.

도시근로자들도 일부의 고소득 전문가층을 빼고는 장기적으로 혜택보다 피해가 많을 것으로 내다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식 모델이 강하게 도입되면 우선 직장의 안정성부터 흔들릴 것이다.

한미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소비자잉여를 자주 얘기하는데, 소비자가 누군가. 바로 노동자다. 소비하려면 우선 벌어들여야 하는데, 직장의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그 효시로 보이는 것이 진행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벌이고 있는 공무원 '퇴출 쇼'가 그런 것인데, 일종의 시범케이스로 봐야 할 것이다. 장차 공공부문 시장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 모델이 공고화된다면 한국에서 직장생활은 공포의 나날이 될 것이다. 당장 다음 달을 예측할 수 없는 공포의 연속일 것이다.

서울시의 공무원 '퇴출 쇼'를 보면서 궁금한 건 왜 사람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나 하는 것이다. 인권침해 요소가 대단히 큰 일 아닌가. 근무태만 같은 분명치도 않은 근거로 한 개인의 직장 안정성을 파괴하는 것이 법적으로 유효한가도 따져봐야 한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수 많은 다른 직장에서도 태만과 무능을 이유로 노동자들이 퇴출될 것이다.

무능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사람이 언제나 보스일 것이고 보스가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유럽의 경우 노동자 해고사항은 노조와 경영자측의 협의사항이다. 노조의 동의 없이 노동자를 해고시키는 것은 유럽에선 보기 드문 일이다.

반면 한국은 공무원노조를 국가가 인정도 않고 있다. 해고할 때 노조 동의는 커녕 아무 고려 없이 경영자의 판단으로 노동자를 무능력자로 규정해 왕따시켜 밀어내는 것은, 일본 영화 '배틀로얄'에 그려진 대로 약육강식이란 사회진화론적 이론을 현실화시키는 잔인한 쇼다.

"우리는 아직 국가주의에 지배당하고 있다"

- 피해당사들이 협정 체결 후 어떤 피해를 입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실감을 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런 각도에서 지금까지의 한미FTA 반대 투쟁을 평가한다면.

= 민족경제론적 발상으로 협정을 반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일종의 애국주의적 기조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제적 분업구조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다. 오늘날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분업구조가 복지망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 적용될 때 민중의 생활을 파탄시킬 것이라는 게 문제다.

우리가 미국 농민이나 중국 농민을 혐오할 이유는 없다. 예컨데 중국 농민이 생산하는 농산물이 한국에서 소비되는 것이 그 자체로 해악은 아니다. 다만 현재의 구조에서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 농민층의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고, 기댈수 있는 복지망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사태를 맞을 경우 농민들의 삶은 파탄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점이다.

- 찬성측과 반대측이 공히 자신들의 논거로 드는 것이 있다. '국익'이다.

= 국익이라는 건 실체 없는 얘기다. 나라를 무엇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다. 만약 협정이 체결되면 일부 대기업은 득을 볼 것 같고, 거기에 하청화되어 있는 일부 중소기업들도 득을 볼 것이고, 귀족학교와 귀족병원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일부 고소득층도 득을 볼 것이다.

우리가 나라의 실체를 이 기업들과 이 고소득층으로 본다면 한미FTA는 국익에 부합하는 것일테다. 그러나 이 나라에는 부자들만 사는 게 아니지 않나.

- 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국익을 말한다.

= 한국에는 아직 국가의 신화가 강하다. 민중의 이득을 말하면 되고, 그게 훨씬 더 실체에 가까울텐데, 우리는 민중이라는 얘기를 고상하게 하려면 국가 얘기를 꺼내야 한다. 국가 없이는 고상하고 고매한 당위론적 담론이 서질 않는다. 우리의 사고방식 자체가 아직 국가주의에 지배당하고 있다.

민중이 살만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세 가지 조건

- 국제적 분업구조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정부는 반대론자들에게 반대만 하지 말고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대안은 한 국가 내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최선의 궁극적인 대안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당장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안은 국제적인 신자유주의적 분업구조에 깊이 들어가기 전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튼튼한 재분배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 재분배 장치라는 건 농민들의 소득보전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다. 부유세, 교육무상화, 의료무상화의 3대 조건이 충족된다면 한국은 그나마 민중들이 살만한 사회가 될텐데, 지금 전혀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

- 방금 말한 3대 조건이 충족되면 FTA도 가능하다는 의미인가.

= 이런 것들이 개선된 이후에도 굳이 FTA를 모색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 가까운 나라와 서로 민감한 부분을 100% 감안한 후에 체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의 경우 잘 하면 노동시장까지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언어 배우기도 쉽고, 지리적으로 가깝고, 시스템이나 문화가 비슷하고. 한국 노동자들에게 선진국인 일본 노동시장 유입을 보장하는 그런 FTA라면 민중들에게 덜 해롭지 않을까 싶다.

- 진보진영 일각에선 대안적 FTA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다.

= 자본보다 민중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FTA일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노동시장 진입 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라나라에도 불법 체류자가 많지만, 일본에서 불법으로 노동하는 한국 노동자들도 많다. 고생도 많이 하고 잡혀서 송환도 당한다.

한국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 일본에 가서 노동하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어떤 협정을 맺더라도 우선적인 고려는 이런 것이 돼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노대통령은 민중진영 일부 포섭해 무력화하는 게 특기인 '쇼맨'"

- 협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몇 가지 물으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자칭 '유연한 진보'라고 한다.

= 그 사람 얘기 별로 하고 싶지 않다(웃음). 그런 자들이 장기적으로 한국 민중에 가장 위험하다. 카멜레온처럼 기만책을 대단히 잘 구사한다. 일부 민중층을 포섭하는 언어적 수법에 능하다. 또 자수성가한 민중 출신이다. 그런 사람이 민중운동을 파괴하는 데는 가장 쓸모가 있다.

한국 사람들이 노무현 열풍 같은 것을 다시 재현하지 않으려면 지배계급이 어떻게 민중을 기만할 수 있는지 철저히 학습해야 한다. 2002년을 생각하면 허무하다. 당시 주관적으로는 스스로를 진보라 여기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이라는 속 빈 이미지에 얼마나 놀아났는가. 이런 것이 재현되면 안 된다.

- 역시 유쾌한 질문도 아니고 유쾌한 답변도 나올 것 같지 않은데, 현 정부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을 했던 조기숙이라는 정치학자가 이런 취지의 말을 했다. 진보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고, 좌파는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다. 그런 분류법에 따를 때 자신과 노 대통령은 진보다.

= 조기숙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이화여대에서 시간강사하고 있는 수 많은 사람 중에 교수가 될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묻고 싶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조기숙 교수와 같은 정규직 교수가 5만명 있고 시간강사가 6만명 있다. 지금의 구조에서 6만명 중 정규 교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소수다. 한국 대학의 재정상황이나 운영 방향으로 볼 때 많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수 많은 시간강사들, 수 년 동안 시간강사 일을 해온 사람들, 상당 수는 정규 교수에 비해 능력이 좋고 업적이 좋은 사람들, 조기숙 선생이 만들고 싶은 사회에서는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질 것인가,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

한국 교수들 참 이상하다. 시간강사 한 달 벌이는 100만원 될까 말까 하고 조기숙 선생같은 정규직의 급여는 잘은 몰라도 300~400만원은 될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것에 대한 죄책감 같은 것이 없다. 희귀한 사람들이다.

시간강사들이 주당 시수도 훨씬 높고, 시간강사들이 많은 수업을 해가면서 적은 돈을 받으니까 정규 교수들이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건데, 말하자면 자신들이 하급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는 건데, 이런 데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안 한다. 희귀한 사람들이다.

- 노무현 정부를 파시즘에 가까운 정부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 (노 대통령은) 그냥 '쇼맨'이다. 쇼맨인데, 이 쇼맨의 특기가 뭐냐하면 민중진영의 일부를 포섭해서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미FTA 계기가 돼서 더 이상 이런 쇼맨들이 특기를 발휘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파시즘은.... 원래 한국 우파의 기본 심성이 파시즘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그의 동반자, 정적들도 다르지 않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더하면 더하겠지. 파시즘은 한국 우파의 기본 정서다. 국내에서 실행되고 있는 상당수의 법안들은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극우적이다. 이주노동자에 관한 법안 같은 것이 그렇다. 유럽 극우들이 꿈꾸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40대 운동권 아저씨들이 거드름 피우는 곳"

- 이번 대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 지금 같아선 극우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게 뻔해 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이를 막을 수는 없어도 제대로 저항해서 수 백만 표를 얻을 수 있다면 앞으로 극우 세력과 제대로 투쟁하면서 한국의 보수화를 제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민주노동당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담하다.

- 민주노동당의 가장 큰 문제가 뭔가.

= 당은 정파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데, 당 사업의 중심에 정파갈등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것들이 서있는 것 같이 보인다. 결국 이 갈등에 에너지가 소모되면서 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 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20~30대층, 학생이라는 미래의 노동자를 흡수하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젊은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당의 문화 자체가 20-30대 위주가 아니지 않나. 80년대 운동권의 보수적이고 서열위계적인 문화가 강하다. 양성평등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도 많지 않나 싶다. 예컨데, 20대 여학생이 민주노동당을 친근하게 대하기 굉장히 힘든 구조다.

- 학생들은 민주노동당을 어떻게 보나.

= 40대 운동권 아저씨들이 거드름 피우는 곳으로 보는 것 같다(웃음). 80년대 운동권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얻어 작은 수령님 노릇하는 아저씨들의 놀이터, 이렇게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다. 이래서는 성공 못한다. 당은 더 민주적이어야 하고, 미시적 문화도 젊은층과 여성 위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노르웨이 사회당이나 좌파를 보면 20대 국회의원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지도층이 40대 후반 아닌가.

- 다른 문제는.

= 당은 비정규직을 포획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당의 중심에 비정규직이 없다.

- 어떤 대안이 가능할까. 얼마 전 심상정 의원은 비정규직 지분을 높이기 위한 당원 가입 특례를 제안한 적이 있는데.

= 일리 있는 제안이라고 본다. 또 당 지도부를 뽑을 때 비정규직에 일정한 쿼터를 할당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회의원 후보를 뽑을 때도 여성 쿼터처럼 비정규직 쿼터를 주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비정규직이 당 사업의 중심으로 들어오기 힘들 것 같다. 비정규직의 투쟁이 있는 곳마다 민주노동당이 달려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기본일테고.

"대중적 호소력 강한 사람이 후보로 선출돼야"

- 당에 조언하고 싶은 게 있다면.

= 좀 이상하게 생각되는 게 있다. 그 이론을 받아들이진 않더라도 '다함께'라는 그룹의 활동 자체는 생산적인 것 같은데, 당내에서 그 분들에 대한 반감이 강한 이유가 뭔지 이해하기 힘들다. 개인적으로 '다함께'의 활동 가운데 마음에 드는 부분은 탈북자에 대한 태도다. 민중진영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대상인데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그들은 하고 있다.

북한 정권에 대한 태도나 미국의 이라크 침략 반대 등은 다함께 이데올로기에 찬성하지 않아도 충분히 동의가 될만한 활동인데, 왜 당에서는 '다함께'를 왕따시키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들의 이론에 찬성을 하지 않는 것은 않는 것이고. 나만 해도 트로트키주의를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아무튼 나름의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동지들인데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얼마 전 <레디앙>에서 정성진 교수의 책을 놓고 오간 논쟁도 그렇다. 물론 정 교수의 논리에 몇 가지 점에서 오류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적대적으로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특히 기사의 댓글들에서 확인되는 '다함께'에 대한 적대감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다함께'는 섹트적이지만 내부 문화가 비교적 민주주의적이고 학생을 확보하는 능력도 좋다. 당이 '다함께'의 활동방식에서 배울 것도 많다고 본다.

- 당내 대선 경쟁은 관심 갖고 보나.

= 유심히 보고 있다. 대중적인 호소력이 제일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은 대중성이 생명 아닌가. 나중에 그 사람의 정치노선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있더라도, 우선은 대중적인 호소력이 가장 강한 사람이 선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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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1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4-11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아마존에 검색해보니 많이 나오는데요? 한국책으로 번역된 것은
서명 / 저자 : 생명의 불꽃, 사랑의 불꽃 / D. H. 로렌스 지음 ; 허상문 옮김.
이 있습니다. ^^

2007-04-11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민노당이 선동해서 순진한 사람 하나 잡았네…."
  
  지난 1일 한미FTA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하얏트 호텔 근처에서 분신한 허세욱 씨의 소식이 전해진 직후, 협상을 취재하던 모 신문 기자가 중얼거린 말이다. 물론 이런 반응이 다음날 지면에 그대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문 지면과 달리 누리꾼들의 생각이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드러나는 온라인 공간에서는 좀 더 노골적인 언어가 쏟아졌다. 각종 포탈 사이트에 실린 허 씨의 분신 사실을 알리는 기사 아래에는 온갖 '악성 댓글'이 가득하다. "중학교를 중퇴한 허 씨가 한미FTA에 대해 무엇을 알고 극단적인 행동을 했겠느냐"거나, "허 씨가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니냐"는 반응 등이다.
  
  이처럼 익명성의 그늘에 숨어 '악성 댓글'을 다는 경우와 달리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온 말에서 비슷한 인식이 드러난 경우도 있다.
  
  지식인은 장교, 노동자는 사병?
  
  허 씨가 분신한 다음날인 2일, 한나라당 전여옥 최고위원은 갑자기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꺼냈다. 이날 전 최고위원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영국군 장교들은 인간의 목숨이 최고로 중요한 것을 알아서 전선 맨 앞에 섰기 때문에 영국군 장교의 전사율이 가장 높았다"며 "(좌파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FTA 반대 운동을 주도한 이들을 '장교'에 빗댄 것이다. 이런 비유대로라면 분신한 허 씨는 '장교 대신 몸을 던진 사병'이 된다.
  
  이런 발언들에서 허 씨는 '자신의 머리로 한미FTA의 문제점을 판단할 능력이 없는 사람', '진보 지식인들의 발언에 휩쓸려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른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앞서의 '악성 댓글'들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 가운데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몸을 불사르며 쏟아낸 발언의 진정성을 훼손한 태도, 허 씨의 인간적 존엄성을 무시한 발언 등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가방 끈 짧은 사람'은 그저 불쌍한 사람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다.
  
  하지만 허 씨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대해서도 불편해한다. 허 씨가 정규 교육은 제대로 받지 못 했지만, 남의 말에 휘둘리는 꼭두각시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삶에서 부딪힌 문제에서 출발해 사회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으로 나아간 경우라는 게다.
  
  허 씨와 함께 참여연대 활동을 한 김 모 씨는 "시장만능주의를 외치는 지식인들에게 무비판적으로 휘둘린 노무현 대통령이 오히려 꼭두각시와 닮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는 허세욱 씨를 보며, 이탈리아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한 '유기적 지식인'을 떠올리곤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람시가 이야기한 '유기적 지식인'은 노동자 계급 속에서 형성된 실천적 지식인을 뜻한다.
  
  "김대중만 되면"하던 철거민이 활동가가 되기까지
  
  실제로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 하고 서울에 올라온 허 씨는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 1994년, 마흔 살의 그는 삶의 분기점을 맞는다. 서울 봉천6동 철거민으로 지내던 시절이다. "김대중 씨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좀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 외에는 딱히 정치의식이랄 게 없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강제철거에 맞서고, 철거지역에 살던 세입자 대책을 행정당국에 요구하는 주민운동 활동가들을 만나며, 새로운 배움에 눈을 떴다.
  
  그냥 이리 저리 떠밀려 살아서는 삶이 던지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가려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는 것. 또 힘든 상황에서도 이런 원칙을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의 배움은 이런 깨달음에서 시작됐다. 그때부터 그는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95년 결성된 관악주민연대에 가입했다. 강제 철거에 맞서 싸우던 종래의 '철거투쟁'을 넘어 주민 자치능력을 키우는 활동을 위한 단체다.
  
  이어 그는 참여연대에, 또 민주노동당에 가입했다. 자신이 겪은 강제철거의 배경에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다. 그리고 이런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에도 가입했다.
  
  이런 다양한 사회단체에서 그는 그저 이름만 올려놓은 회원이 아니었다. 120만 원에 조금 못 미치는 월급을 떼어 꼬박꼬박 회비를 냈고, 단체의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그리고 틈만 나면 신문과 책을 읽으며 세상에 대해 공부했다. 그렇게 13년을 보냈다. 그래서 서울 관악구 일대의 사회단체 활동가들 사이에서 그는 유명 인사다.
  
  봉천동 철거촌에서 '선생님'을 만나다
  
  관악주민연대 활동가 이명애 씨는 "(허세욱 씨가) 봉천3동, 6동에서 '철거투쟁'을 하며 만난 활동가들에게는 아무리 젊어도 꼭 '선생님'이라고 부르곤 했다"고 말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우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를 찾아나섰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관악구 봉천3동, 6동 일대는 1994년만 해도 거대한 빈민지역이었다. 1994년 당시 그곳에서 허 씨에게 깊은 인상을 준 활동가 중 한 명이 강인남 씨다. 당시 철거 지역 세입자 대책위원회에서 주민교육 등을 담당했던 강 씨는 이듬해 관악주민연대 결성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명애 씨는 "당시 봉천동에 좋은 주민활동가가 참 많았다. 강인남 씨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들 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모습이 허 씨를 감동하게 했다. 허 씨는 자신보다 어린 강 씨를 꼬박꼬박 선생님이라 부르며, (원칙적인 삶의 태도를 보여 준 것에 대해) 무척 고마워했다"고 술회했다.
  
  허 씨가 강인남 '선생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는 참여연대에서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올해 2월호에 실린 '회원 인터뷰' 기사에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은 당시 <참여사회>가 참여연대 열성 회원인 허 씨를 인터뷰한 내용 일부다.
  
  "참 부끄러운 기억이 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요. 95년 봉천6동 철거촌에 살 때였죠. 그때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살 때라 그날이 그날 같았죠. 빈민운동을 하던 강인남이라는 여자 간사가 있었는데 용역깡패들에게 얻어맞는 일이 벌어졌는데 나는 그냥 구경만 했었죠. 그 뒤 많은 걸 깨달았죠."
  
  국밥이 식어가도 개의치 않고 그 시절을 즐겁게 회상해갔다. 많이 배우고, 젊고 예쁜 선생님들이 어떻게 우리 편에 서서 우리의 입장을 세상에 알리려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지,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지금도 고마울 따름이라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용역깡패들이란 사람이 아니예요. 갈 곳이 없어 못 떠나는 혼자 사는 할머니집 지붕에 구멍을 2군데나 내고 담을 헐고, 장마철에 그랬으니 가재도구가 어떻겠어요? 이불이 다 물에 젖고, 할머니는 울고 있고, 정말 남의 일 같지가 않았죠.

  
  떠나지 못한 50여 세대가 똘똘 뭉쳐 새로운 가족이 되었죠. 그 중심에 선생님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죠. 빈 집에 간사들이 '철거민들이 갖추어야 할 행동'이라는 게시물을 보고 또 감동을 받았죠. '내부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 내부에서 소란하지 않습니다.' 등등 일상적인 내용이었는데도 그때는 그 가르침이 가슴을 파고들었죠."
  
  강인남 씨는 주민운동을 연구하기 위해 현재 필리핀에 머물고 있다. 허 씨의 분신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강 씨는 최근 이명애 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평소 "나는 나를 버린 적이 없다"고 종종 이야기해 왔던 허 씨에 대한 부끄러움과 책임감이 담긴 내용이었다.
  
  생각이 다르면, 그저 유인물 한 부 놓고 가던 사람
  
  국내에 없는 강 씨 대신 1994년 봉천6동에서 허 씨가 만났던 다른 활동가를 만났다. 현재 민주노동당 민생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신장식 씨다. 신 씨는 1990년대 초부터 서울 관악구에서 빈민운동을 해 왔다. 1994년 허 씨를 처음 만났을 당시의 기억에 대해 물었다. "눈에 띄는 분이 아니었다. 참 조용한 분이었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신 씨를 기자에게 소개한 인권단체 활동가는 신 씨에 대해 "허세욱 씨가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도록 권했다"고 설명했었다. 하지만 신 씨는 "그렇지 않다. 허세욱 씨는 민주노동당 창당 직후 스스로의 뜻에 따라 가입한 당원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창당 전부터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해 왔다는 것이다.
  
  이어 신 씨는 허 씨의 별명 중 하나가 '달리는 민주노동당'이라고 말했다. 택시를 몰며, 승객들과 끊임없이 진보적 의제에 대해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 씨가 진보적 의제를 낯설어 하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드는 태도를 취했다는 뜻은 아니다.
  
  신 씨는 "(허 씨가) 워낙 겸손한 분이었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항상 존대를 했다"고 말했다. 그것은 허 씨의 지인들이 공통적으로 전하는 말이기도 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에게는 넌지시 뜻을 전하는 게 전부였다는 것.
  
  "얼마 전 한미FTA반대 집회에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원을 지지하는 이들이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허 씨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에게 다가와 '저런 사람들은 끝까지 가기 힘들텐데요. 저런 사람들이 앞에 나서는 것은 좀 위험해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정도면 허 씨가 꽤 세게 뜻을 전한 것이다. 허 씨는 자신이 속한 단체의 방향이 자신의 생각과 좀 다르다 싶으면, 단체 사무실에 자신의 생각과 가까운 내용의 유인물을 살짝 놓고 나오는 분이다. 그게 허 씨의 의사전달 방법이었다." 신 씨의 말이다.
  
  빨랫줄 잘못 매서 두들겨 맞았던 어린 시절, '배달의 기수'로 지낸 젊은 시절
  
  허 씨의 이런 면모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활동가들이 입을 모았다. "조용하고, 겸손하며, 진지했다"는 것. 그런데 일상적인 모습은 어땠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별 대답이 없었다. 평소 개인적인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함께 지내는 가족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활동가들과 나이 차가 컸던 탓이기도 했다.
  
  그래서 허 씨의 회사 동료를 만났다. 한독운수 노동조합 황규금 위원장이다. 황 위원장은 지난 1999년 이 회사에 입사했다. 허 씨는 이보다 앞서 지난 1991년 입사했다.
  
  황 위원장은 "처음에는 허 씨를 잘 몰랐다"고 말했다. 8만 원이 넘는 사납금을 채우려면 "택시 밑바닥 먼지를 털 틈도 없이 달려야" 했던 시절이어서다. "교대자가 교대시간보다 십분이라도 늦게 도착하면 화내고 싸우던 시절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조용한 성격의 허 씨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었다"라는 게 황 위원장의 말이다.
  
  황 위원장과 허 씨가 가까워진 것은 2002년 초부터다. 이전까지 한독운수 노동조합은 한국노총 소속이었다. 그런데 2002년부터 민주노총 소속으로 바뀌었다. 사납금 인상을 놓고 회사와 노조가 갈등하던 중, 노조 위원장이 잠적한 게 계기였다. 한독운수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으로 바뀐 2002년 5월, 긴 파업 투쟁을 통해 조합원들의 불만이 컸던 사납금 제도를 없애고 월급제를 끌어냈다.
  
  "허 씨가 사실 '스피커'가 안 되지. 그래서 앞에 잘 나서지는 않았지만, 원칙에 대해서는 아주 꼿꼿했어" 황 위원장이 전하는 허 씨의 인생 역정은 좀 더 구체적이다.
  
  "허 씨 고향이 경기도 안성이었다지. 9남매 중 다섯째인데…. 중학교 때 집에서 빨래줄 잘못 맸다고 큰 형님한테 작대기로 맞았대. 그래서 서울로 도망왔다나봐. 서울에서 안 해본 일이 없다더군. 주로 배달을 했지. 막걸리 배달, 꽃 배달, 박카스 배달. 그래서 내가 이렇게 불렀어. '배달의 기수'라고. '온갖 배달을 다 하더니, 결국 '사람 배달'까지 하는구나' 그랬었지." 황 위원장의 술회다.
  
  '노 대통령 탄핵 반대' 외치며 촛불 들었는데….
  
  허 씨가 분신하기 하루 전인 3월 31일의 기억도 떠올렸다.
  
  "분신하기 전날이지. 나를 좀 보자고 하더라고. 그러더니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죽 하는 거야. '내가 그때 서울로 도망오지만 않았더라도, 집에서 농사지으면서 잘 살았을텐데….'하고 말이지.
  
  아 그리고 허 씨가 노조에서 정치통일부장을 맡고 있거든. 그런데 갑자기 정치통일부차장을 한 명 뽑아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아니 다른 부서도 다 차장이 없는데 왜 거기만 차장을 뽑느냐'하고 말았지.
  
  그때는 잘 몰랐어. '이 양반이 왜 이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게 다 (분신을 결심했다는) 신호였는데…."
  
  이 대목에서 황 위원장은 말을 멈췄다.
  

▲ 한미FTA 반대 1인 시위를 하는 허세욱 씨 ⓒ그날이오면

  그런데 내성적인 성격의 허 씨는 왜 갑자기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됐을까. 허 씨가 스스로 말을 꺼내기 전에는 알기 힘들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위 사람들 역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최근 허 씨가 느꼈을 절망감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이야기는 흔했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허 씨가 찾아와서 '이럴 수가 있느냐. 혼자서라도 (구호가 적힌)플래카드를 내걸고 싶다'며 답답해했다.
  
  지난 2002년 미선, 효순 양 사건 당시 촛불집회에 모였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갔냐는 게다.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미선이, 효순이를 너무 금세 잊어버렸다'며 허탈해 하던 허 씨의 표정이 떠오른다" 허 씨의 이웃 집에 사는 이동영 관악구의원(민주노동당) 소속 관악구의원의 회상이다.
  
  '관성적인 집회, 바뀌지 않는 현실'이라는 조합에 대해 허 씨는 그 무렵에도 답답함을 느꼈던 듯 하다.
  
  허 씨의 답답함은 노 정권 임기가 진행될 수록 더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이동영 의원은 "지난 2004년 노 대통령이 탄핵 당했을 당시, 허 씨는 탄핵 반대 촛불 집회에도 적극적이었다"고 전했다. 허 씨는 민주노동당 당원이지만,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주도한 대통령 탄핵은 부당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2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노 대통령은 한미FTA 체결을 추진했다. 허 씨는 왜 정부가 무리를 무릅쓰고 한미FTA 체결을 밀어붙이는지 이해하지 못 했다. 노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허 씨가 느꼈을 절망감을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가난한 활동가를 걱정하는 가난한 허세욱, "밥은 먹고 다니니?"
  
  "허 씨는 평소 옳다고 믿어 왔던 원칙이 훼손될 때면 무척 속상해했다"는 게 허 씨 지인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원칙이 흔들리면 "목숨을 던져서라도 바로잡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고, 그때마다 주위에서 "어떤 운동도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운동은 긴 전망을 갖고 해야한다"고 만류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항상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분이다. 그런데 정부의 한미FTA 체결 과정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게 진행되는 것을 보며 (허 씨는) 평소 무척 답답해했었다. 아마 이런 답답함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 뿐'이라 여기고 (분신을) 결심한 것 같다" 신장식 씨의 말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라는 허 씨의 고민이 꼭 과격한 행동으로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이런 고민은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철원군 농민회 회워들이 집회를 하다 경찰서에 잡혀갔던 적이 있다. 그때 허 씨가 택시를 몰고 경찰서 앞에 가서 기다렸다. 그리고 회원들이 풀려나니까 그들을 역까지 태워줬다" 신장식 씨의 말이다.
  
  하지만 활동가들 사이에서 가장 자주 나온 이야기는 가난한 활동가들에게 '먹을거리'를 챙겨줬던 기억이다. 참여연대 간사 최인숙 씨는 "허세욱 씨는 사무실에 들를 때마다 간사들에게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고 챙겼다. 손에 과일 한 봉지씩 들고 나타나는 날도 많았다"고 말했다.
  
  관악주민연대 활동가 이명애 씨도 비슷한 기억을 전했다. "봉천동 언덕길을 터벅터벅 내려가던 날이었지. 그런데 갑자기 택시가 내 앞에 서는 거야. 허세욱 씨더라고. 그러더니 같이 갈 곳이 있다며 타라는 거야. 그래서 탔더니 가까운 곳에 있는 회사의 노동조합 행사장에 내려주더군. 거기 행사에 쓰기 위한 떡이 좀 있는데, 그걸 좀 챙겨가라는 거야. (내가) 음식을 제대로 못 챙겨먹는 것 같아서 안쓰럽다면서 말야."
  
  가난한 활동가들의 먹을거리는 부지런히 챙기는 허 씨였지만, 정작 자신은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았다. 택시 교대 시간에 맞추려면 식사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던 탓도 있지만 애당초 100만 원에서 120만 원 사이를 오가는 월급에서 각종 사회단체 회비로 8만 원 가량을 떼고, 활동가들에게 밥과 술을 먹이고 나면 남는 게 없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 집세를 내고 각종 책과 신문 등을 샀다.
  
  신영복 강의 들으며, '석과불식'을 되새기다
  
  그런데 취재 중 만난 한 민주노동당 당원은 기자에게 "허 씨가 최근 기자와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지난해 12월 1일 저녁, 서울대 법학교육100주년기념관 강당에서 만났던 것. 당시 기자는 서울대 앞에 남아 있는 유일한 사회과학 서점인 '그날이 오면' 후원 행사로 마련된 강연장에 있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강연이었다.
  
  그때 취재 중이던 기자의 바로 옆에 앉아 강연 내용을 꼼꼼히 받아 적던 초로의 사내. 신 교수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내용을 묶어낸 책인 〈강의〉를 옆에 펼쳐 놓고, 강연 내용과 비교하던 그가 바로 허세욱 씨였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신영복 "진보의 열매 거두려면 씨앗부터 지켜야")
  
  실제로 허 씨는 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을 후원하는 모임 회원이기도 했다. 그는 후원 모임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을 뿐 아니라 각종 진보적 행사와 집회 포스터를 서점에 날랐던 사람이었다. 허 씨가 나른 포스터들이 '그날이 오면'을 사회과학 서점답게 만들었다.
  
  '그날이 오면' 서점 김동운 대표는 "허 씨가 최근 '그날이 오면' 상품권을 20만 원 어치나 샀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는 조카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허 씨는 '조카가 '그날이 오면'의 진보적 지향에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또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이 살아나야 한다는 말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기 직전까지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의 생존을 걱정하던 허세욱 씨. 주변 사람들은 허 씨의 분신 소식을 듣고, 지난해 말 허 씨가 들었던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다시 떠올렸다고 이야기했다.
  
  당시 신 교수는 '석과불식'(碩果不食, 씨가 있는 과실은 먹지 않는다)이라는 한자성어를 소개했다. '보다 나은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라는 열매를 기대한다면, 진보의 씨앗을 잘 지켜야한다는 뜻이다. 같은 자리에서 신 교수는 '엽낙분본(葉落糞本, 떨어진 낙엽이 뿌리를 거름한다)'이라는 화두도 꺼냈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낙엽을 떨어뜨린다"는 뜻. 나무의 근본인 뿌리를 위해 거름을 마련하는 행위다. 이런 한자성어들을 소개하며 신 교수는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진보적인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인 사회과학 서점을 진보의 씨앗, 혹은 뿌리에 비유했다.
  
  "노동 속에서 다듬어진 진보의 꿈….이대로 그를 쓰러지게 할 수 없다"
  
  그 자리에서 강의를 받아적던 허 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허 씨를 알고 지내던 이들 사이에서 이미 허 씨는 '진보의 씨앗이자 뿌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
  
  취재 중 만난 허 씨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허세욱 씨는) 대학 시절, 읽은 책 몇 권을 들먹이며 진보를 이야기하는 지식인들과 다르다. 중학교를 관두고 서울에 올라와, 힘든 노동 속에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을 다듬어 갔던 그를 이대로 쓰러지게 한다면, 무슨 낯으로 진보의 미래를 말하겠느냐"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불사른 '진보의 씨앗'은 지금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지난 4일 큰 수술을 무사히 치렀지만, 쾌유까지 가야할 길은 멀다. 더 큰 어려움은 3억 원을 훌쩍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치료비.
  
  치료비가 모자라 '진보의 씨앗'이 재로 변하는 것을 차마 지켜볼 수 없다면 온라인 공간에서 '힘내세요, 허세욱님' 카페(
http://cafe.daum.net/taxidriver53)를 찾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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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4-0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설적으로 풀어보자면..
이나라가 부정적인 모습으로 이꼴이 되버린 까닭은 전부 가방끈이 긴 사람들이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싶은데요..^^

기인 2007-04-10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 근데 그 말씀은 또 바꾸어보면, 가방끈 짧은 분들은 책임이 없다는 말씀도 되어서, 지식인-민중, 파워엘리트-민중이라는 구도에서 순수하고 힘없는 민중이라는 인식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지식인의 잘못이 크고, 잘못을 물어야 하지만, 민중의 자생성에도 물음표를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릴케 현상 2007-04-1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순수하면 안 되는 힘없는 민중이라고 생각하고 싶네요
 
 전출처 : 로쟈 > '비극의 탄생'을 읽기 위하여

 

교수신문(06. 01. 02) 고전번역비평-최고번역본을 찾아서(23)니체의 ‘비극의 탄생’

‘비극의 탄생’은 니체의 나이 불과 28세에 쓰인 처녀작으로 청년 니체의 열정과 고뇌를 강렬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니체는 이에 대해 스스로 ‘청년의 용기와 憂愁가 가득한 책’이라고 평했다. 이 책에서 니체는 청년다운 대담함과 재기발랄함으로 그리스 비극의 기원과 본질에 대해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는 한편,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염세주의로부터의 탈출구를 그리스의 비극정신에서 찾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극의 탄생’은 당시 그리스 비극의 기원과 본질에 대한 고전문헌학적 연구를 넘어서 삶과 세계의 본질과 고통 그리고 그것의 극복방안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탐구이기도 하다.

이 책에 대해 니체는 나중에 일정 거리를 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가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니체 자신의 사상 전개 뿐 아니라 철학과 미학을 비롯한 인문학과 예술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니체의 저작들 중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못지않게 고전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입증하듯 국내에서 ‘비극의 탄생’ 번역본만 8종이나 나왔다. 이위범 역(양문사 刊, 1960), 김영철 역(휘문 刊, 1969), 이일철 역(정음사 刊, 1976 외), 김병옥 역(대양서적 刊, 1978 외), 박준택 역(박영사 刊, 1976), 곽복록 역(동서문화사 刊, 1978 외), 김대경 역(청하 刊, 1982), 성동호 역(홍신문화사 刊, 1989), 이진우 역(책세상 刊, 2005)이 그것이다.

박준택 譯 일어중역, 오역도 많아 

이 글에서 번역본 전부를 살펴볼 순 없다. 번역자들 중 철학전공자로서 니체사상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박준택과 이진우를 제외하면 나머지 역자들은 주로 독문학(곽복록, 김대경)이나 심지어 영문학(이일철)을 전공했기에 일단 번역자로서 요구되는 전문성이 결여됐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이들 번역의 많은 곳에서 어렵잖게 오역과 부자연스러움을 발견하게 된다. 이 중 김대경 역은 1982년 이래 1997년까지만 해도 16쇄가 나왔을 정도로 가장 많이 읽히는 번역본이라 생각되기에 여기에선 박준택 역, 이진우 역, 김대경 역만을 살펴보겠다.

고전번역의 완전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보다 원전에의 충실성과 가독성이라고 여겨진다. 이 두 기준에 입각해 우선 박준택 역과 이진우 역을 비교하겠지만, 지면관계상 본문의 첫째 문장 번역만 검토할 것이다. 본문의 첫 문장은 보통 번역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기에 이 문장에 비춰 우리는 번역의 전체적인 수준과 성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원전에서 본문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Wir werden viel f?r die ?sthetische Wissenschaft gewonnen haben, wenn wir nicht nur zur logischen Einsicht, sondern zur unmittelbaren Sicherheit der Anschauung gekommen sind, daß die Fortentwicklung der Kunst an die Duplizit?t des Appolinischen und des Dionysischen gebunden ist: in ?hnlicher Weise, wie die Generation von der Zweiheit der Geschlechter, bei fortw?hrender Kampfe und nur periodisch eintretender Vers?hnung, abh?ngt.”

이 문장을 이진우는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세대(世代)가 지속적으로 투쟁하면서, 단지 주기적으로 화합하는 남성과 여성의 이중성에 의존하는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예술의 발전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논리적 통찰뿐만 아니라 직관의 직접적 확실성에 이른 상태라면, 우리는 미학을 위한 큰 소득을 얻게 될 것이다.”(이진우, 29쪽)

이 번역은 아무리 읽어도 그 의미가 분명히 파악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제 동일한 문장에 대한 박준택 역을 살펴보자. “만일 우리가 다음에 말하는 것을 머리만으로써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구체적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된다면 미학(美學)에 크게 기여하는 바가 많으리라고 믿는다. 즉, 예술의 발전이라는 것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에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생식(生殖)이라는 것이 부단한 싸움 속에서도 단지 주기적으로 화해하는 남녀 양성(男女兩性)에 의존되어 있는 것과 흡사하다.”(박준택, 9쪽)

박준택 역은 일본 암파문고판의 번역을 그대로 옮긴 것이지만, 이진우 역에 비해 정확할 뿐 아니라 읽기에도 훨씬 자연스럽다. 이진우 역은 ‘세대가 지속적으로 투쟁하면서’ 다음에 쉼표를 찍음으로써 ‘지속적으로 투쟁하는’ 주체가 남성과 여성이 아닌 세대인 것으로 잘못 읽도록 오도하고 있다. 아울러 전체적인 문맥상 ‘세대’라는 번역어보다는 박준택이 택한 ‘생식’이라는 번역어가 더 적합하다고 여겨진다. 이진우 역에서 ‘논리적 통찰뿐만 아니라 직관의 확실성에 이른 상태라면’ 부분에서도 주어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 이 경우도 사람들은 ‘세대’가 주어인 것처럼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논리적 통찰뿐만 아니라 직관의 직접적 확실성에 이른 상태라면’은 지나친 직역으로 매우 부자연스런 번역이다.

니체 텍스트 본문의 첫 문장에 대한 박준택 역은 큰 문제는 없지만 원문을 굳이 의역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서 의역을 했다. 가령 ‘머리만으로써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구체적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된다면’은 원문에 보다 충실하게 ‘논리적으로 통찰할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직관한다면’으로 해도 충분히 자연스럽다. ‘머리만으로써’라는 표현도 보통 쓰이지 않는 어색한 표현이다. 이 문장에 대한 번역 외에도 박준택 역에서는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표현들이 눈에 띄는데, 이는 주로 암파문고판에 대한 중역에 가깝다는 데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박준택은 일일이 지적할 순 없지만 여러 곳에서 심각한 오역을 하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200쪽에서 박준택은 “…비극은 비극적 신화를 통해서 비극적 주인공이라는 인물의 모습을 빌어서, 디오니소스적 세계에의 탐욕적인 충동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옮겼는데, 여기서 ‘디오니소스적 세계에의 탐욕적인 충동’ 부분은 오역이며 ‘개체적인 삶에 대한 탐욕스런 충동’으로 번역해야 한다. 심지어 박준택은 암파문고판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정작 암파문고판에서는 오역을 하지 않은 곳들에서도 오역을 범하고 있다.

가장 충실한 김대경 譯…몇몇 오역의 한계   

첫째 문장의 김대경의 다음과 같은 번역은 가장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 이는 마치 생식이라는 것이 부단한 싸움 속에서도 단지 주기적으로 화합하는 남녀 양성에 의존되어 있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 점을 단지 논리적 통찰로서 뿐만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확실한 직관에 의해 알게 된다면, 이는 미학을 위하여 큰 소득이 될 것이다.”(37쪽)

전체적으로 볼 때도 세 번역본 중 그나마 김대경 역이 원전에 대한 충실성과 가독성면에서 가장 낫다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경 역은 여러 곳에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오역을 범하고 있다. 지면 관계상 그 예를 둘만 들겠다. 김대경 역 48쪽, 49쪽 등에서 보이는 ‘근원적인 한사람’이란 표현의 원문은 ‘der Ureine’로서 원래는 디오니소스적인 세계의지를 가리킨다. 따라서 김대경은 ‘근원적인 한사람’이 아니라 ‘근원적 일자’라고 번역했어야만 한다. 또한 120쪽의 ‘그 자체로서 부패하고 타락한 기독교적인 인간들의 사고방식’이라는 번역은 굳이 원문과 대조하지 않아도 오역이라는 게 분명하다. 이 부분은 ‘인간을 그 자체로 부패하고 타락한 것으로 보는 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이 외에도 김대경 역에선 ‘탐욕적 충동’(130쪽)이나 ‘설득적으로 밀어닥치는’(130쪽) 등과 같이 일본역본을 글자 그대로 중역한 투의 문장들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그리고 138쪽이 대표적인 경우지만 원문의 몇 줄을 번역하지 않고 있는 곳들이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비극의 탄생’에 대해서는 그동안 8종의 역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번역수준은 상당히 실망스럽다.(박찬국/ 서울대·현상학)

교수신문(06. 02. 01) 이진우 교수 번역, "의미파악 어려워"

‘출판저널’에 이번 2월부터 새롭게 연재되는 강대진 건국대 강사(고전그리스문학)의 번역비판 코너 ‘번역의 허와 실’에서 이진우 계명대 교수의 번역을 ‘문제번역’으로 삼고 나서 전공자들의 오역문제 심각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잔혹한 책읽기’(작은이야기 刊, 2004) 등을 통해 국내 고전번역에서 오역의 심각성을 제기해온 강 씨는 연재의 첫 회로 이진우 교수의 ‘니체저집 3: 유고(1870~1873년), 디오니소스적 세계관, 비극적 사유의 탄생 외’(책세상 刊, 2001)을 검토했다.

강 씨가 이 교수 번역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삼는 것은 ‘독일어 직역’이다. 즉, “번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 가령, ‘소크라테스와 비극’이라는 니체 강연원고에 나오는 문장을 이진우 역은 “사람들은 아리스토파네스가 표현한 것처럼, 위대한 마지막 사자(死者)에 대한 동경을 느꼈습니다.”(33쪽)라고 옮겼다. 그런데 이 문장은 전체적으로 보자면, 희랍비극이 에우리피데스와 소크라테스 때문에 소멸했다고 주장하는 내용 속에 들어있는 것으로서 “시인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비평가인 에우리피데스가 소크라테스의 논리 중심주의를 따라 비극을 재조직한 결과, 원래의 비극은 죽어버리고 신희극만이 남겨졌다”라는 논지라고 강 씨는 덧붙인다. 따라서 “위대한 마지막 사자”는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 최근에 죽은 이”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낫다는 게 강 씨의 지적이다. “에우리피데스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들>에서 물 치료법으로 비극예술을 쇠진하게 만들고 또 비극예술의 중압감을 약화시켰다는 공로를 자신에게 돌렸는데”(35쪽)라는 번역도 이해하기 어렵다. 강 씨는 이에 대해 “물 치료법으로 쇠진하게”는 “설사제를 먹여 체중을 줄인 것”이라는 뜻이라고 풀어놓는다. 이 외에도 “우리는 왜 그가 생시에 알량하게도 비극적 승리의 영광만을 얻었는지 이해하게 됩니다”(38쪽)도 고전문학 전공자가 보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는 구절들이 많다는 것. 

사실 번역자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외국에 실력에 준하는 모국어 실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자들은 흔히 번역평가의 기준으로 ‘자연스러운 한국어 구사’를 문제 삼는다. 물론 직역의 원칙을 따를 경우 ‘번역어의 자연스러움’을 희생해야 할 경우들이 생기지만, 그런 경우라도 모국어로서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라면 번역의 의의는 퇴색할 수박에 없다.

이 교수의 번역이 이러한 문제점을 갖게 된 것은 사실 국내 번역자들의 공부하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기도 하다. 강 씨는 “왜 천병희 교수의 좋은 번역들이 나와 있는데 참고하지 않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데, 고전전공자의 번역을 현대독일철학 전공자가 참고하지 않는 것은 학자로서 그리 성실한 태도라 볼 수 없으며, 국내 학자의 번역성과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진우 역 중 “에우리피데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개구리의 입을 빌려 아이스킬로스를 비난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강 씨는 “개구리의 입을 빌려”라는 부분은 틀린 것으로 천 교수 역을 참조했더라면 오류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 외에도 이 교수의 번역에는 중요한 구절이 누락되거나 중요 단어들이 잘못 표기되고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가령 복수의 여신인 에리뉘에스를 “에리스”(75쪽), “에레니메스”(110쪽)로, 아이스퀼로스도 “아르킬루스”(29쪽)로 잘못 옮겼다는 지적이다. “에폭푸테스”(137쪽)의 경우도 ‘추종자들’로 고치는 것이 낫다는 게 강 씨의 제안이다. 

사실 이진우 교수는 그동안 끊임없이 번역서를 내놓아 부지런함을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교수신문 ‘고전번역비평-최고 번역본을 찾아서 23: 니체의 ‘비극의 탄생’’편(제384호, 2005년 12월 26일자)에서 박찬국 서울대 교수(철학)에 의해 번역상의 오역과 부자연스러움 등이 제기되면서 문제가 된 바 있다. 그의 ‘니체전집 2: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刊, 2005)는 총 18종이나 되는 ‘비극의 탄생’ 번역 중 가장 최근 것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전공자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20여년도 더 앞서 번역된 김대경의 ‘비극의 탄생’(청하 刊, 1982) 이 “원문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읽힌다”라는 평가를 두고 학계에서는 “뜻밖이다”라는 반응들을 보였던 것. 박찬국 교수 역시 이진우 역에 대해 “아무리 읽어도 그 의미가 분명히 파악되지 않는다”라고 평가했는데, 그만큼 한국어 구사에 문제는 이진우 번역의 가장 큰 약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진우 교수는 올해에도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뿐만 아니라 하버마스의 저서 한권도 번역해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은 “이 교수의 번역에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만큼 다른 전공자들의 번역과 더불어 이 교수의 번역도 전면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이은혜 기자)

 

교수신문(06. 02. 07) 어느 번역비평 기사에 대한 반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이처럼 간단명료하고 잔혹한 평가는 없을 것이다. 글이든 대화이든 무엇을 말하는지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 의미를 파악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파악의 어려움은 그 주제가 너무 어렵기 때문일 수도 있고, 글을 읽고 듣는 사람이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비평은 그것이 아무리 생산적이고 호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글을 쓰는 사람에겐 정말 감내하기 힘든 혹평임에 틀림없다.

이 말은 종종 비평자의 권력의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는 진리를 논하는 학계에서도 이 말을 얼마나 자주 듣고 말하는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충돌하는 곳에서 어김없이 들리고, 자신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벗어난 이론과 담론을 들을 때면 서슴없이 사용하는 말, 그것이 바로 이 간단한 한마디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 말에는 종종, 설령 제압의 심리학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해의 거부’가 묻어 나온다.

최근 내 자신이 이런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그 시발점은 <니체전집 2: 비극의 탄생>에 대한 박찬국 서울대 교수의 비평이었다. 그는 첫 문장의 번역이 번역문 전체의 수준과 성격을 가늠케 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비극의 탄생>의 첫 문장을 박준택 역 그리고 김대경 역과 비교하면서 이렇게 간단히 평가한다. “이 번역은 아무리 읽어도 그 의미가 분명히 파악되지 않는다.” 첫 문장에 대한 나의 번역문이 다른 두 번역보다 명료하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번역과정에서 다른 번역본을 참조하였던 내가 왜 이렇게 번역하였을까. 번역할 때마다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하였던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서 의역을 해야 할까. 아니면 원전에 충실하게 직역을 해야 할까. 이 문장은 8행이나 되는 긴 가설법 문장이다. “예술의 발전이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논리적 통찰에... 이른 상태라면, 우리는 미학을 위한 큰 소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자는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관련이 있다.”는 직설법의 번역문장을 선호한다. 나는 니체처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는 원문에 충실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원전에 충실하고 동시에 자연스럽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비판은 이중적이다. 생산적이고 동시에 파괴적이다. 첫 문장에 대한 박찬국 교수의 비평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도 부당하게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부분을 전체로 일반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가 정말 나의 번역 전체가 이해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번역문을 원전에 대한 충실설과 가독성의 두 가지 척도로 평가한다. 원전에 충실하다보면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김대경 역이 몇몇 오역에도 불구하고 “원전에 대한 충실성과 가독성 면에서 가장 낫다”고 판단함으로써 나의 번역이 마치 원전에도 충실하지 않은 것처럼 교묘하게 말하고 있다. 오역과 원전에 충실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마땅할 것이다.

전체의 맥락으로부터 분리된 부분을 마치 전체인 것처럼 만든다면, 그것은 왜곡의 폭력이다. 교수신문은 박찬국 서울대 교수의 비평문에 “이진우 譯 의미파악 어려워”라는 표제어를 붙였다. 이렇게 뒤틀린 왜곡은 출판저널 2월호에 게재된 번역비평에 관한 기사에서 다시 한번 이루어졌다. 강대진의 “니체전집 완간의 기쁨과 몇 가지 아쉬움”이라는 글은 번역비평이 어떠해야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글쓰기이다. 그는 그리스 비극에 관한 니체의 글을 올바로 번역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고전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다. 맞는 말이다. 그는 몇몇 군데 잘못 표기된 인명을 예리하게 집어낼 뿐만 아니라 그가 “더 좋은 번역, 더 나은 책 꾸밈새를 위해” 제안하고 있는 지적들은 실제로 주석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는 니체가 다루고 인용하는 그리스 고전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그의 글과 사상이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번역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당시에 고전 문헌학자들을 경악시켰던 그의 글들을 문헌학의 기준에 맞춰 번역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예를 들어 그는 “durch Wasserkur abgemergelt”를 “물 치료법으로 쇠진하게 만들고” 대신에 “설사제를 먹여 체중을 줄이고”로 풀이한다. 이와 관련된 아리스토파네스 <개구리>의 구절은 이렇다. “‘흰 무우’로 그것의 체중부터 줄이고 나서, 책에서 짜낸 잡담의 액즙을 주었지요.” 이 희극의 전체맥락을 알지 못한다면, 이 문장 자체의 뜻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흰 무우”가 당시 설사제로 사용되었다고 해서 뜻이 명확한 “Wasserkur”를 “흰 무우” 또는 “설사제”로 번역해야 할까. 당시의 문헌학자들이 평한 것처럼 몽상적이고, 과장되고,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가 심한 그의 문체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옳지 않을까? 아무튼, 번역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손질할” 수 있도록 지적해준 데 대해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교수신문은 이 비평에 대한 기사에서 비평자의 선의를 악의로 왜곡시킨다. 교수신문은 여기서 비평의 전체적 맥락을 무시한 채 나의 번역을 “문제번역”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매우 선정적인 표제어을 사용한다. “이진우 교수 번역,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처럼 분명한 말로 교수신문이 두 번씩이나 한 인격을 짓밟는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비평에는 호의적 비평도 있고 악의적 비평도 있다. 이들의 비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직역의 문제점을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하라는 주문일 것이다. 번역을 하면 할수록 번역이 어려워진다. 원문이 어려워도 번역은 쉬워야 되는가. 원문이 만연체라도 번역은 간결체여야 하는가. 난해한 하이데거를 이해하기 쉬운 야스퍼스로 만들고, 하버마스를 호르크하이머로 만들어야 하는가. 니체가 말한 것처럼 번역에는 뜻도 중요하지만 리듬, 호흡, 문체도 중요한 것인가. 간단히 말해, 번역은 반역인가? 교수신문의 기사가 아무리 부당하고 잔혹할지라도 이런 문제점을 일깨워준 데 대해 감사할 뿐이다.(이진우/ 계명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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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2월
절판


레닌은 직업 혁명가로, 당대 러시아 상황에서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술과 전략에 입각해 있다. 전제주의에 대항해서, Bg와도 연합하고, 사회 전 계급, 계층으로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에게 정치 의식을 외부에서 '전달'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낙후'한 러시아와 대비하여, 지금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달 정도, 즉 시민사회의 구성 정도 등에 입각해서 레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3장쪽

사회 민주주의가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것은 각각의 기업가들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현사회의 모든 계급들 및 조직된 정치적 힘인 국가에 대한 관계에서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경제 투쟁으로 자신을 제한할 수 없을 뿐더러 경제 폭로가 자신들의 지배적인 활동이 되도록 방치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 교양과 그들의 정치 의식 진전에 적극 매진해야 한다.-74쪽

여기서, 정치 교양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이 생겨난다. 그것은 전제주의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적대성이라는 사상을 선전하는 것에 한정될 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억압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그들과 고용주들의 이해 관계가 상호 대립함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했던 것처럼). 이 같은 억압이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를 선동해야 한다(우리가 구체적 경제적 핍박 현상들에 관해 선동을 시작했던 것처럼). 이 억압은 사회의 그야말로 다양한 계급에게 행해지고 있으며, 직장에서, 공공 생활에서, 개인과 가족, 종교 생활과 학술 활동, 기타 등등 삶의 온갖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제주의에 관한 전면적인 정치 폭로를 조직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짊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정치 의식을 진전시키기 위한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경제 선동을 행하기 위해서는 공장 내의 악덕 행위 사례를 폭로해야 했던 것처럼) 핍박의 구체적인 현상들에 관해 선동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들을 폭로해야만 하지 않겠는가?-75쪽

레닌은 경제주의자들을 논박하며, 경제 투쟁이 대중을 정치 투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반박하며, 전분야에서 전면적인 폭로와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깊은 뜻을 담은 듯 혁명적으로 들리는 "경제 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화려한 문구 뒤에는 사실 사회 민주주의 정치를 노동 조합주의 정치로 격하시키려는 케케묵은 열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 사실상 "경제 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문구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은 경제 개혁을 위한 투쟁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80-81쪽

혁명적 사회 민주주의 당은 그 활동의 일부로서 항상 개혁을 위한 투쟁을 포함시켜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경제" 선동을 활용하는 것은 정부에 갖가지 조치들을 취하도록 요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제주의 정부를 종식시키도록 요구하기 위해서이기도(게다가 이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하다. 또한 사회 민주주의 당은 경제 투쟁을 바탕으로 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생활과 정치 생활의 전반적인 모든 현상을 바탕으로 해서 이 같은 요구를 정부에 제기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간주한다. 한마디로 사회 민주주의 당은 부분을 전체에 종속시키듯이, 개혁을 위한 투쟁을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 투쟁에 종속시킨다.-81쪽

당연히 정부로서는 "경제적" 양보(아니면 거짓 양보)를 하는 편이 가장 값싸고 가장 유리하다. 왜냐하면 정부는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에게 정부에 대한 신뢰를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우리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경제 개혁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치가 있다거나 아니면 마치 우리가 바로 그것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듯한 그러한 견해(혹은 오해)가 들어설 여지를 어떤 식으로도 절대 남겨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82쪽

"노동자 대중의 활동성 상승"은 우리가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선동"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획득될 수 있다. 그런데 정치 선동의 필수적인 확대를 위한 주요 조건들 중의 하나는 전면적인 정치 폭로의 조직화이다. 이러한 폭로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대중의 정치 의식과 혁명적 활동성을 교양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활동은 모든 국제적인 사회 민주주의 당들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90쪽

노동자들이 전횡과 탄압, 폭력과 권력 남용이 행해지고 있는-그것이 어느 계급에 관계된 것이든-각종의 모든 사례들에 대응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관점에서가 아닌 바로 사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대응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정치의식이 될 수 없다. 노동자들이 구체적인, 게다가 항상 절박한(당면한) 정치적 사건과 사례들을 통해 다른 사회 계급들의 지적, 도덕적, 정치적 생활이 표출되는 모든 현상에 걸쳐 그것들 각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계급, 계층, 집단의 생활과 활동의 모든 측면에 대해 유물론적 분석과 유물론적 평가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계급의식이 될 수 없다. 노동자 계급의 주의, 관찰력, 의식을 배타적으로,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선적으로 노동자 계급에게로 돌리려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의 자기 인식은 이론적 지식만이 아니라, 아니 더 올바르게 말하자면 이론적 지식보다는 정치 생활의 경험에서 생겨난, 현대 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충분하고도 명료한 이해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91쪽

바로 그렇기 떄문에, 경제 투쟁이 대중을 정치 운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우리 "경제주의자들"의 설교는 그 실천적 중요성으로 볼 때 극히 유해하며, 극히 반동적이다. 노동자가 사회 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주, 성직자, 고급 관리, 농민, 학생, 부랑인 등의 경제적 본질과 그들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각 계급 및 계층이 자신들의 이기적 의도와 본 "마음"을 은폐할 때 흔히 사용하는 문구들과 갖가지 궤변들을 분석해야만 한다. 또한 어떤 제도와 법률들이 누구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는지, 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어떤 책에서도 이 같은 "명료한 이해"를 얻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하다못해 귀엣말로 소근거리면서라도 나름대로 얘기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여러 사건들, 수치들, 판결문 등등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들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그때 그때 놓치지 않고 폭로하는 것만이 그러한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러한 전면적 정치 폭로는 그 자체로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을 교양하는 필수적이고도 기본적인 조건이다.-91-92쪽

대중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문제로 말하자면, 열정적인 정치 선동과 타오르듯 생생한 폭로만 있다면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다. (...) 포괄적인 의미가 아닌 구체적인 의미에서 촉구한다는 것은 행동이 일어나는 장소에서만 가능하며, 즉 각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 사회 민주주의적 평론가의 일은 정치 선동 및 정치 폭로를 강화하고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다.-93쪽

"경제 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요구는 정치 활동의 여역에서 자생성에의 굴종을 가장 선명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경제 투쟁은 자연히, 즉 "지식 집단이라는 혁명 균"의 개입 없이도, 의식적인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개입 없이도, 언제나 정치적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임무는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선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임무는 이 노동 조합주의 정치를 사회 민주주의 정치 투쟁으로 바꾸는 것이며, 노동자들을 사회 민주주의 정치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경제 투쟁이 노동자들에게 무심히 던져 준 섬광 같은 정치 의식을 활용하는 것이다.-95쪽

"경제주의자들"과 테러주의자들은 자생적 경향의 양 극단에 굴종하고 있다. "경제주의자들"은 "순수한 노동 운동"이라는 자생성에, 테러주의자들은 노동 운동과 혁명 활동을 단일한 범주로 묶어 파악할 능력이나 가능성이 없는 지식인들의 뜨거운 분노라는 자생서엥 굴종하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렸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믿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테러 이외에 자신의 울분과 혁명적 열정을 붙출할 다른 출구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98쪽

테러로 정부를 "위협하고", 그럼으로써 조직을 괴란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강령에 의해 신성시된 활동 영역으로서의 테러, 즉 하나의 투쟁 체계로서의 테러를 완전히 단죄함을 뜻한다. 둘째로, 이는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 교양"이라느 ㄴ과업과 관련된 우리의 절박한 임무를 이해하지 못한 전형적인 경우라는 점에서 더욱 특징적이다. 자유 그룹은 노동 운동을 "선동하고" 그것에 "강한 자극"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테러를 선전하고 있다. (...) 과연 특별한 "흥분" 수단을 고안해 내야 할 정도로 러시아의 삶에 폭정이 부족하단 말인가? (...) 러시아의 전횡을 겪어 보고도 격분하지 않고, 격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정부와 한줌의 테러주의자간의 한판 대결 역시 "코를 후비면서" 바라볼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지 않은가?-101쪽

계급적 정치 의식은 오직 외부에서, 즉 경제 투쟁의 외부에서,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의 관계라는 영역 밖에서 노동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 같은 지식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모든 계급 및 계츠의 관계라는 영역이며,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라는 영역이다.따라서 노동자에게 정치적 지식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경제주의"에 경도된 실천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실천가들을 만족시키는 한가지 답변만을 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로 가라"는 답변말이다. 노동자에게 정치적 지식을 가져다 주려면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모든 주민 계급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 군대의 분견대를 모든 방면으로 파견해야 한다.-104쪽

이상적 사회 민주주의자는 노동 조합의 서기가 아니라, 전횡과 억압-그것이 어디에서 발생하건, 어떤 계급, 계층에 관계된 것이건 상관없이-이 드러나는 온갖 현상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 그리고 이 모든 현상들을 경찰의 폭력과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종합할 능력이 있는, 또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민주주의적 요구를 표명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 해방 투쟁의 전세계적,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도 활용할 능력이 있는 그러한 인민의 호민관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주장해도 충분치 않다.-105쪽

우리는 이론가로서, 선전가로서, 선동가로서, 그리고 조직가로서 "주민의 모든 계급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 민주주의자의 이론 활동은 개별 계급들의 사회적, 정치적 처지가 갖는 모든 특수성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107쪽

"공산주의자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는 것, 따라서 우리에게는 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감추지 않으면서 전국민 앞에서 일반 민주주의적 과제를 표명하고 강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사실상 잊고 있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일반 민주주의의 문제들을 제기하고 첨예화시키며 해결하는 데서 자신이 만인의 앞에 서 있어야 한다는 의무를 사실상 잊고 있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108-109쪽

경제 폭로가 공장주에 대한 선전 포고이듯이, 정치 폭로는 바로 정부에 대한 선전포고이다. 나아가 이 같은 폭로 운동이 폭 넓고 힘있게 되면 될수록, 전쟁 개시를 위해 선전 포고를 하는 사회 계급의 수가 많고 결단력이 높게 되면 될수록, 이 선전 포고는 더욱 큰 도덕적 의의를 갖게 된다. 때문에 정치 폭로는 이미 그 자체로 적대 체제를 붕괴시킨느 하나의 강력한 수단이자,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적의 동맹군을 적으로부터 이탈시키는 수단, 전제주의 정권의 항시적인 참여자들 사이에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하는 수단인 것이다.-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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