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 지음, 최호정 옮김 / 박종철출판사 / 1999년 2월
절판


레닌은 직업 혁명가로, 당대 러시아 상황에서 혁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전술과 전략에 입각해 있다. 전제주의에 대항해서, Bg와도 연합하고, 사회 전 계급, 계층으로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에게 정치 의식을 외부에서 '전달'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낙후'한 러시아와 대비하여, 지금 남한 사회의 민주주의 발달 정도, 즉 시민사회의 구성 정도 등에 입각해서 레닌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3장쪽

사회 민주주의가 노동자 계급을 대표하는 것은 각각의 기업가들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현사회의 모든 계급들 및 조직된 정치적 힘인 국가에 대한 관계에서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경제 투쟁으로 자신을 제한할 수 없을 뿐더러 경제 폭로가 자신들의 지배적인 활동이 되도록 방치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 교양과 그들의 정치 의식 진전에 적극 매진해야 한다.-74쪽

여기서, 정치 교양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물음이 생겨난다. 그것은 전제주의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적대성이라는 사상을 선전하는 것에 한정될 수 있는가? 물론 아니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억압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그들과 고용주들의 이해 관계가 상호 대립함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했던 것처럼). 이 같은 억압이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는 바를 선동해야 한다(우리가 구체적 경제적 핍박 현상들에 관해 선동을 시작했던 것처럼). 이 억압은 사회의 그야말로 다양한 계급에게 행해지고 있으며, 직장에서, 공공 생활에서, 개인과 가족, 종교 생활과 학술 활동, 기타 등등 삶의 온갖 다양한 분야에 걸쳐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전제주의에 관한 전면적인 정치 폭로를 조직하는 일을 자신의 몫으로 짊어지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의 정치 의식을 진전시키기 위한 우리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 분명하지 않은가?(경제 선동을 행하기 위해서는 공장 내의 악덕 행위 사례를 폭로해야 했던 것처럼) 핍박의 구체적인 현상들에 관해 선동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들을 폭로해야만 하지 않겠는가?-75쪽

레닌은 경제주의자들을 논박하며, 경제 투쟁이 대중을 정치 투쟁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반박하며, 전분야에서 전면적인 폭로와 투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깊은 뜻을 담은 듯 혁명적으로 들리는 "경제 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화려한 문구 뒤에는 사실 사회 민주주의 정치를 노동 조합주의 정치로 격하시키려는 케케묵은 열망이 숨어 있는 것이다! (...) 사실상 "경제 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문구 속에 들어 있는 내용은 경제 개혁을 위한 투쟁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80-81쪽

혁명적 사회 민주주의 당은 그 활동의 일부로서 항상 개혁을 위한 투쟁을 포함시켜 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그러나 "경제" 선동을 활용하는 것은 정부에 갖가지 조치들을 취하도록 요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전제주의 정부를 종식시키도록 요구하기 위해서이기도(게다가 이것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하다. 또한 사회 민주주의 당은 경제 투쟁을 바탕으로 해서만이 아니라 사회 생활과 정치 생활의 전반적인 모든 현상을 바탕으로 해서 이 같은 요구를 정부에 제기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간주한다. 한마디로 사회 민주주의 당은 부분을 전체에 종속시키듯이, 개혁을 위한 투쟁을 자유와 사회주의를 위한 혁명 투쟁에 종속시킨다.-81쪽

당연히 정부로서는 "경제적" 양보(아니면 거짓 양보)를 하는 편이 가장 값싸고 가장 유리하다. 왜냐하면 정부는 그렇게 함으로써 노동자 대중에게 정부에 대한 신뢰를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우리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경제 개혁이 우리에게 더 많은 가치가 있다거나 아니면 마치 우리가 바로 그것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듯한 그러한 견해(혹은 오해)가 들어설 여지를 어떤 식으로도 절대 남겨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82쪽

"노동자 대중의 활동성 상승"은 우리가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선동"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획득될 수 있다. 그런데 정치 선동의 필수적인 확대를 위한 주요 조건들 중의 하나는 전면적인 정치 폭로의 조직화이다. 이러한 폭로를 통해서가 아니라면 대중의 정치 의식과 혁명적 활동성을 교양할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종류의 활동은 모든 국제적인 사회 민주주의 당들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이다.-90쪽

노동자들이 전횡과 탄압, 폭력과 권력 남용이 행해지고 있는-그것이 어느 계급에 관계된 것이든-각종의 모든 사례들에 대응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관점에서가 아닌 바로 사회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대응하는 법을 익히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정치의식이 될 수 없다. 노동자들이 구체적인, 게다가 항상 절박한(당면한) 정치적 사건과 사례들을 통해 다른 사회 계급들의 지적, 도덕적, 정치적 생활이 표출되는 모든 현상에 걸쳐 그것들 각각을 관찰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리고 모든 계급, 계층, 집단의 생활과 활동의 모든 측면에 대해 유물론적 분석과 유물론적 평가를 실천적으로 적용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노동자 계급의 의식은 진정한 계급의식이 될 수 없다. 노동자 계급의 주의, 관찰력, 의식을 배타적으로,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우선적으로 노동자 계급에게로 돌리려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왜냐하면 노동자 계급의 자기 인식은 이론적 지식만이 아니라, 아니 더 올바르게 말하자면 이론적 지식보다는 정치 생활의 경험에서 생겨난, 현대 사회의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에 대한 충분하고도 명료한 이해와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91쪽

바로 그렇기 떄문에, 경제 투쟁이 대중을 정치 운동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가장 널리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우리 "경제주의자들"의 설교는 그 실천적 중요성으로 볼 때 극히 유해하며, 극히 반동적이다. 노동자가 사회 민주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주, 성직자, 고급 관리, 농민, 학생, 부랑인 등의 경제적 본질과 그들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상을 분명히 이해하고, 그들의 강점과 약점을 알고, 각 계급 및 계층이 자신들의 이기적 의도와 본 "마음"을 은폐할 때 흔히 사용하는 문구들과 갖가지 궤변들을 분석해야만 한다. 또한 어떤 제도와 법률들이 누구의 이해 관계를 반영하는지, 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어떤 책에서도 이 같은 "명료한 이해"를 얻을 수 없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들,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하다못해 귀엣말로 소근거리면서라도 나름대로 얘기하고 있는 이들, 그리고 여러 사건들, 수치들, 판결문 등등에서 드러나고 있는 일들을 생생하게 펼쳐 보이고, 그때 그때 놓치지 않고 폭로하는 것만이 그러한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이러한 전면적 정치 폭로는 그 자체로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을 교양하는 필수적이고도 기본적인 조건이다.-91-92쪽

대중에게 행동을 촉구하는 문제로 말하자면, 열정적인 정치 선동과 타오르듯 생생한 폭로만 있다면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이다. (...) 포괄적인 의미가 아닌 구체적인 의미에서 촉구한다는 것은 행동이 일어나는 장소에서만 가능하며, 즉 각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의 일, 사회 민주주의적 평론가의 일은 정치 선동 및 정치 폭로를 강화하고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다.-93쪽

"경제 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요구는 정치 활동의 여역에서 자생성에의 굴종을 가장 선명한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경제 투쟁은 자연히, 즉 "지식 집단이라는 혁명 균"의 개입 없이도, 의식적인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개입 없이도, 언제나 정치적 성격을 띠게 마련이다. (...) 사회 민주주의자들의 임무는 경제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 선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임무는 이 노동 조합주의 정치를 사회 민주주의 정치 투쟁으로 바꾸는 것이며, 노동자들을 사회 민주주의 정치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경제 투쟁이 노동자들에게 무심히 던져 준 섬광 같은 정치 의식을 활용하는 것이다.-95쪽

"경제주의자들"과 테러주의자들은 자생적 경향의 양 극단에 굴종하고 있다. "경제주의자들"은 "순수한 노동 운동"이라는 자생성에, 테러주의자들은 노동 운동과 혁명 활동을 단일한 범주로 묶어 파악할 능력이나 가능성이 없는 지식인들의 뜨거운 분노라는 자생서엥 굴종하고 있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버렸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믿은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테러 이외에 자신의 울분과 혁명적 열정을 붙출할 다른 출구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98쪽

테러로 정부를 "위협하고", 그럼으로써 조직을 괴란하는 것이 이제는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강령에 의해 신성시된 활동 영역으로서의 테러, 즉 하나의 투쟁 체계로서의 테러를 완전히 단죄함을 뜻한다. 둘째로, 이는 "대중의 혁명적 활동성 교양"이라느 ㄴ과업과 관련된 우리의 절박한 임무를 이해하지 못한 전형적인 경우라는 점에서 더욱 특징적이다. 자유 그룹은 노동 운동을 "선동하고" 그것에 "강한 자극"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테러를 선전하고 있다. (...) 과연 특별한 "흥분" 수단을 고안해 내야 할 정도로 러시아의 삶에 폭정이 부족하단 말인가? (...) 러시아의 전횡을 겪어 보고도 격분하지 않고, 격분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정부와 한줌의 테러주의자간의 한판 대결 역시 "코를 후비면서" 바라볼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지 않은가?-101쪽

계급적 정치 의식은 오직 외부에서, 즉 경제 투쟁의 외부에서, 고용주에 대한 노동자의 관계라는 영역 밖에서 노동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 이 같은 지식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국가와 정부에 대한 모든 계급 및 계츠의 관계라는 영역이며, 모든 계급들의 상호 관계라는 영역이다.따라서 노동자에게 정치적 지식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경제주의"에 경도된 실천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실천가들을 만족시키는 한가지 답변만을 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로 가라"는 답변말이다. 노동자에게 정치적 지식을 가져다 주려면 사회 민주주의자들은 모든 주민 계급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기 군대의 분견대를 모든 방면으로 파견해야 한다.-104쪽

이상적 사회 민주주의자는 노동 조합의 서기가 아니라, 전횡과 억압-그것이 어디에서 발생하건, 어떤 계급, 계층에 관계된 것이건 상관없이-이 드러나는 온갖 현상에 대응할 능력이 있는, 그리고 이 모든 현상들을 경찰의 폭력과 자본주의적 착취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종합할 능력이 있는, 또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민주주의적 요구를 표명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프롤레타리아트 해방 투쟁의 전세계적,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그 어떤 사소한 사건이라도 활용할 능력이 있는 그러한 인민의 호민관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아무리 주장해도 충분치 않다.-105쪽

우리는 이론가로서, 선전가로서, 선동가로서, 그리고 조직가로서 "주민의 모든 계급 속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회 민주주의자의 이론 활동은 개별 계급들의 사회적, 정치적 처지가 갖는 모든 특수성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107쪽

"공산주의자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는 것, 따라서 우리에게는 한 순간이라도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감추지 않으면서 전국민 앞에서 일반 민주주의적 과제를 표명하고 강조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사실상 잊고 있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일반 민주주의의 문제들을 제기하고 첨예화시키며 해결하는 데서 자신이 만인의 앞에 서 있어야 한다는 의무를 사실상 잊고 있는 자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108-109쪽

경제 폭로가 공장주에 대한 선전 포고이듯이, 정치 폭로는 바로 정부에 대한 선전포고이다. 나아가 이 같은 폭로 운동이 폭 넓고 힘있게 되면 될수록, 전쟁 개시를 위해 선전 포고를 하는 사회 계급의 수가 많고 결단력이 높게 되면 될수록, 이 선전 포고는 더욱 큰 도덕적 의의를 갖게 된다. 때문에 정치 폭로는 이미 그 자체로 적대 체제를 붕괴시킨느 하나의 강력한 수단이자, 일시적이고 우연적인 적의 동맹군을 적으로부터 이탈시키는 수단, 전제주의 정권의 항시적인 참여자들 사이에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하는 수단인 것이다.-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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