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진화론의 진화

[통섭논쟁] 진화론도 진화한다

 

[연세대 대학원신문 152호] 현대 진화생물학의 전망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wukheehong@yahoo.co.kr

 

학문과 학문, 학문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시도가 요즘들어 부쩍 활발하다. 비단 학계 뿐만이 아니다. 기업에서도 창의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을 강조하며 산업간 교류에 열을 올린다. 이른바 통섭(統攝). 진화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Consilience>를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채택된 이 단어는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에 ‘모든 것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의상이나 원효가 사용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 때나 지금이나 통섭 논쟁의 화두가 ‘무엇을 중심으로?’라는 것이 재미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통섭 논쟁을 다루어보려고 한다. 그리고 통섭 논쟁이 진화생물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점에 주목해 진화생물학과 사회생물학의 현주소를 짚어보고자 한다. 이번호는 진화생물학이, 다음호는 사회생물학이 주제가 될 것이다. <편집자>

다윈과 진화생물학
 

‘진화(Evolution)’라고 하면 흔히 생물의 진화가 연상된다. 그런데 국어사전의 정의에도 그러하듯 ‘진화’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진보’ 또는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생물진화를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진행되는 생물들의 진보 또는 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 일례로, 과거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부릴 때 그 주된 논리는 흑인들이 진화적으로 백인들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나 나치의 게르만주의의 배후에도 역시 그런 왜곡된 논리가 숨어있다.  


과학 역사상 가장 탁월한 이론의 하나로 간주되는 진화의 개념과 그 메커니즘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최초의 연구자가 바로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다. 다윈은 1831년부터 1836년까지 근 5년 동안 영국의 군함 비이글호를 타고 세계 전역을 일주하면서 생물 진화의 증거들을 풍부히 수집했다. 이런 증거들에 바탕 하여 다윈은 진화의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 이론을 처음으로 제안하게 된다.

   

다윈은 맬서스(Thomas Malthus)가 1798년에 발표한 인구론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맬서스에 의하면 모든 생물종은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서 만약 기아나 질병과 같은 재해에 의해서 억제되지 않으면 그 수가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의 생물들이 대부분 안정된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각 세대에서 소수의 자손을 제외한 대다수 개체들이 강제로 죽기 때문이다.


멜서스의 이론을 따라 다윈은 각 세대에서 도태되는 자손들은 아마도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열등한 개체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가축이나 곡식들이 인간에 의해 선택됨으로 해서 점진적으로 종자가 개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계에서도 어떤 선택의 메커니즘이 존재함으로 해서 생물종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윈 이후의 진화생물학

다윈은 자연선택의 개념으로 진화를 설명함으로써 현대 생물학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러나 자연선택의 이론은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그는 자연선택과 진화의 관계를 동료 과학자들에게 설명하는 데에 많은 곤란을 겪었다. 19세기의 과학자들은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선뜻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그것이 자연선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심지어 다윈조차도 자연선택의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을 납득시키는 데에 더욱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다윈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진화론 연구가 현대의 진화생물학으로 발전하는 데에는 다윈과 거의 동시대 사람인 멘델(Gregor Johann Mendel, 1822-1884)에서부터 시작된 유전학이 20세기에 들어와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는 점이 커다란 기여를 했다.


금세기 초엽, 멘델의 업적이 재발견됨으로 해서 과학계는 비로소 유전자와 자연선택 사이의 관련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유전학적 지식이 처음부터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일례로, 초기의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은 돌연변이가 대부분 개체에 해로우며 그 영향도 점진적인 것이 아닌 아주 대규모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정도였고, 결과적으로 자연선택에서 요구되는 새롭고 유용한 변이들은 거의 발견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점차 유전학에 수학이 가미되면서 유전학에서 얻어진 결과들이 자연선택설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유전학과 자연선택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원리가 종합되었는데, 이를 ‘신다윈주의(Neodarwinism)’라고 부른다.

사회생물학의 등장

신다윈주의가 출현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도브잔스키(Dobzhansky), 메이어(Mayr), 심프슨(Simpson) 등은 집단유전학, 계통학, 고생물학 등에서의 연구 결과들이 신다윈주의의 원리들과 모순되지 않음을 천명하였다. 이렇게 해서  ‘현대 종합설(The Modern Synthesis)’이 마침내 완성을 보게 되었는데, 이는 진화의 주된 메커니즘으로 자연선택설이 타당하다는 점을 전 세계 생물학자들이 인정한 쾌거라 하겠다.


그러나 진화의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작업이 신종합설의 제창으로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신종합설이 대두되기까지 주로 고생물학, 계통분류학, 유전학 등에 의존해서 발전했던 진화생물학은 1950년대부터는 주로 분자생물학의 발전에 힘입어 현재까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다. 이런 과정 중에서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를 비롯한 일단의 신다윈주의자들은 생물들 사이의 경쟁이 그다지 치열하게 전개되지 않는다는, 많은 현장 생물학자들의 관찰을 근거로 정말로 중요한 진화의 메커니즘은 생식을 위한 개체들 간의 경쟁이 아니라 유전자들 사이의 경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도킨스, 윌리암스(Williams), 스미스(Smith) 등에 의하면 진화는 다음 세대에 가능한 한 더 많은 유전정보를 남기려는 유전자들의 투쟁으로 정의된다.


1970년대에 출현한 윌슨(Edward O. Wilson)의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유전자 중심 진화론의 연장이다. 사회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생물들 사이의 경쟁과 투쟁을 부추기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현상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한다. 만약 자연선택이 옳다면 어떻게 생물들 사이에서 다른 개체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 현상이 빈번히 관찰될 수 있으며, 또 흰개미나 꿀벌의 집단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로 협조하는 공생 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다윈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논의하기로 한다).

현대인과 진화생물학

다윈 이래 진화론에 대한 논쟁은 항상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때로는 그런 관심이 지나친 나머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일례로, 과학으로서의 진화생물학을 반대하는 일부 비전공 과학자들은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창조(?)해서 진화생물학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처럼 그것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과학자들이 단체를 결성해서 한 과학 분야를 공격한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진화생물학은 비단 창조과학자들과 같은 비전공 과학자들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보다 빈번하게는 일반 대중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그런 한 예가 아래의 풍자만화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진화생물학은 앞에서와 같은 세속적인 차원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시야를 크게 해서 널리 바라본다면, 학문으로서 진화생물학의 중요성은 그것이 바로 인류의 장래 문제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인간도 다른 모든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에 적응하면서 살아간다. 이러한 환경에의 적응을 다윈은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의 원리로 설명했는데, 우리는 자연계에서 지나치게 적응에 성공했던 나머지 나중에 갑자기 새로 변한 환경 속에서는 살아남지 못하고 멸종에 이르렀던 많은 생물종들의 예를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현재 지나치게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가? 그리고 이런 지나친 적응이 우리 인류의 장래를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


인류의 번영은 환경 파괴와 병행하고 있다. 우리는 열대우림, 산호초, 바다와 호수, 늪지, 강과 하구 등 생물상이 가장 풍부한 장소들을 파괴하고 있으며, 오존층을 훼손하고 있고,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를 더해서 온실효과를 부추기고 있다. 또, 매년 그 사용이 늘어나는 유독성 화학물질들은  우리의 식량원인 곡식의 품종을 단순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환경 훼손과 파괴는 필경 새로운 환경 조건을 조성해서 우리 인류로 하여금 바뀌어진 환경 속에서 살 것을 강요할 것이다. 과연 인류는 이러한 적응에 성공해서 영원히 번영할 수 있을까?


진화생물학은 바로 이런 질문들에 대답을 구하는 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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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서로 주체성 전문가 비평

* 담론비평(2007. 4. 13)  / 우리 철학의 서론으로서의 서로 주체성

 

[연세대 대학원신문 152호]기획서평 김상봉, 『서로주체성의 이념』(길, 2007)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 swk@ssu.ac.kr

 

서로주체성의 개요


   
▲ 길 펴냄 
주례사 비평을 삼가고 비판적 대면을 바라는 원고청탁서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이 책에 대해, 이 책 스스로가 자임하듯 “우리 철학”의 서론을 열어가는 사유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적극적으로 해 주어도 좋을 듯하다. 좋은 책이 그러하듯 읽어가는 과정에 생각을 자극하는 많은 내용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 책 읽는 시간만큼의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을 이 책과 더불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강단철학의 문제와 한국의 기성 철학의 한계 지적이 근본적인 수위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반성은 한국의 철학계와 철학교수들에 대한 총체적 반성이고, 총체적 불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의 여정은 처음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에 더디고, 또 수시로 자신의 위치를 점검하는 자기조회를 부단히 시도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반복적이다. 그러기에 정치한 서구의 이론에 훈련된 철학자들은, 마치 명연주의 음반에 귀를 버린 음악애호가가 실제 무대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대해 절하하는 평가를 하게 되는 것과 같은 태도를 이 책에 대해 보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책에 도움이 되는 것은 찬사가 아니라 비판일 것이고, 김상봉 교수도 바로 이를 바랄 것이라 생각되어, 세 가지 점에서만 필자의 관점을 피력해 보겠다. 많은 내용 가운데 오직 세 가지만을 적시하는 것은 필자의 관점에 따른 것이니, 다른 부분에 대한 유익한 비판과 평가는 다른 기회에, 또 다른 분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겠다.

관념론적으로 설명된 서로주체성의 문제

이 책의 전체 걸쳐 활용되는 은유가 있는데, 그것은 비추임이라는 은유이다. 이는 철학적 반성을 말하는 것이고, 이 점을 표현하는 매체가 거울이고, 물이고, 우물이다.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윤동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김상봉 교수는 서로주체성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거울이 필요했는데 그것은 독일 관념론이었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독자가 이 책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면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언어가 관념론적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언어는 수단이 아니다. 언어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 자체를 형성하고 있는 벽돌과 같은 것이다. 김상봉 교수는 우리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관념론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관념론에 본래적으로 내재된 문제를 자신의 개념 속으로 고스란히 가져와버리지 않았는가하는 의문을 금할 수 없다.


관념론의 근본적 문제란 주객분열의 문제이다. 그것은 인식의 주체를 설정하고 모든 것을 대상으로 삼는 의식철학적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분열된 주객의 통합을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관념론은 문제는 만들었어도 해결은 결코 할 수 없는 사유의 패러다임인 것이다. 그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후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데카르트적 성찰』에서 후설이 상호주체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려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철저하게 의식철학적 패러다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 김상봉 교수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서양철학의 시도는 언어에 대한 이해였는데, 김상봉 교수에게는 언어에 대한 충실한 검토가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관념론적인 복잡한 설명으로 복잡하게 된 생각을 담은 전반부와, 언어의 힘을 보이는 시를 활용한 서로주체성에 대한 진정한 해명을 담은 후반부로 구성된 것이 아닐까.

변신론적 역사관의 활용

서로주체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만남에 대한 강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김상봉 교수는 만남에 대한 선험적 이해를 요구한다. 이는 만남이 세계를 구성하는데 있어 구성적 지위를 가지기 때문에 요구된다. ‘요구’된다는 말은 그것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 '나르시스의 꿈', 한길사 펴냄
그런데 서양의 홀로주체성과는 다른 주체성을 우리가 형성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자기상실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주체성의 탄생과 경험을 위해서는 자기상실의 경험이 필수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우리가 그러한 것을 과연 요구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론적으로 필요할 때 동원되는 장치가 역사이고,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변신론적 장치이다. 그리고 이 변신론적 장치는 우리가 동의할 수 없는 그러한 경험의 필연성을 교묘하게 정당화한다. 이 책의 곳곳에서 활용되는 역사철학은 반성되지 않은 변신론적 기재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지 의심되어야 했다.


이런 장치가 필요 없으려면 이 책에서 거울로 사용하고 있는 관념론적 패러다임을 보다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만남이 더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다. 만남은 ‘선험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설명방식이 아니라, ‘살가운 만남이 몸으로 요구되어야 한다’가 원래의 의도를 더 잘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본다.


만남(Bebegnung)에 대한 김상봉 교수의 지적, 즉 서양의 철학에서 만남에 대한 강조가 없는 것, 심지어 만남의 사상가인 부버에게서 나타나는 만남의 제한성의 지적은 너무나 적절하다. 사랑, 인정, 책임, 환대라는 말이 홀로주체성의 표현이라는 지적은 참으로 적확하다. 여기에 나는 자비의 원리, 똘레랑스, 노블리스 오블리쥬도 포함시킬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만남, 서로주체성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용운의 “복종”은 시이지 철학이 아니다. 우리는 김상봉 교수에게 더 철저한 철학적 분석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이젠 서론이 아니라 본론을

겸손하게, “저는 부족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맞아요, 당신은 부족해요”라고 응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대화법이다. 김상봉 교수는 겸손히, 이 책이 서론이라고 했다. 이 말에 대해, 맞아요, 이 책은 서론에 불과해요, 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김교수께 본론을 부탁하고 싶다. 구체성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그리고 사족처럼 덧붙이고 싶은 것은, 후설과 레비나스에 대한 평가다. 후설이 상호주체성을 말하고 레비나스가 타인의 얼굴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정확히 문제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후설에 대한 평가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후설과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홀로코스트에 대한 경험을 나름대로 담은 레비나스의 경우는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자기상실을 경험한 유대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시온주의와 같은 공격성으로 표출하기도 했다. 그것이 오늘의 중동사태를 낳았다. 하지만 유대인들 가운데도 시온주의와는 다른 길로 걸어간 사상가들의 생각은 김상봉 교수의 서로주체성과 잇댈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보인다. 물론 이는 나르시스적 주체성의 세계 속에서 이루어진 자기상실의 경험이므로, 우리의 경험과는 다른 부분이 많겠지만 말이다.


한 가지 더. 우리의 경험은 남미와 아프리카의, 상실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과의 연대성을 불러일으키는 만남이 가능할 것이다. 김상봉 교수는 이미 이에 대한 인식을 통해 만남을 갖고 있으므로 이 만남의 이야기를 곧 들려줄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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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푸하 > 언론자유에 대하여 - 고종석

[이런 생각]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2003/11/12


고종석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주의 자유가 아니라 기자들의 자유라고 말한 바 있다. 지금처럼 그 시절에도 몇몇 보수 신문의 눈 밖에 나 있던 그는 사주에 대한 기자들의 독립성을 북돋움으로써 그 기자들이 쓰는 기사의 논조가 자신에게 덜 적대적이 되기를 바랐던 듯하다.
그의 기대는 이뤄지지 않았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에 대한 그의 인식이 흐릿했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언론기업이 '언론 자유' 과점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노 대통령의 발언은 반만 옳다. 다시 말해 완전히 틀렸다. 언론의 자유는 물론 언론사주(만)의 자유가 아니지만, 기자들(만)의 자유도 아니다. 우리 헌법 제21조가 명확히 규정하고 있듯, 언론 자유의 향유자는 모든 국민이다. 17세기 영국에서 언론의 자유라는 개념이 태어났을 때, 신문으로 대표되는 대중적 저널리즘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영어의 Freedom of speech나 독일어의 Redefreiheit라는 말이 또렷이 드러내듯, 언론의 자유는 말의 자유다. 다만, 근대 이후 신문을 비롯한 대중 인쇄매체가 중요한 언로가 됨에 따라, 언론의 자유가 흔히 언론출판의 자유로 묶여 거론되며 저널리즘의 자유인 듯 좁게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오늘날 한국의 언론자유 상황은 어떤가? 언론의 자유를 정치권력과의 맞버팀 속에서 소극적으로 해석할 때, 한국 땅에 넘쳐 나는 것이 언론의 자유다. 누구라도 신체적 위협을 느끼지 않은 채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대통령을 조롱할 수 있고, 심지어 쿠데타를 부추기는 듯한 선동문을 제 잡지에 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를 민주주의의 적극적 구성원리로 이해할 때, 다시 말해 효과적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로 이해할 때, 한국 사회에 언론의 자유는 크게 부족하다. 그것은 총량 과잉 상태의 언론자유가 너무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옛 사회주의 체제를 자유사회라고 부르지 않은 것은 그 사회에서 자유라는 재화가 노멘클라투라라고 불렸던 핵심 당원들에게만 쏠려 있었기 때문이다.

자유는 그것이 고르게 분배됐을 때만 의미를 지닌다. 언론의 자유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는 우선 시민사회 일반보다 언론기업에 너무 쏠려 있다. 게다가 이 언론사들 다수는 정치적으로 짙게 오염된 언론당들이다. 이 언론당 당원들은, 언론당으로부터 후보 당원증을 발급 받은 일부 지식인들과 더불어, 일반 시민에 견주어 훨씬 더 큰 적극적 언론의 자유를 누린다.

시민사회 일반에 재분배돼야

그런데 어느 사회에서든 한 개인이 지닌 발언권의 양은 그가 누리는 권력의 양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현대 정치의 한 측면은 미디어크라시(미디어 지배)다. 발언권을 과점함으로써 언론당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되었다.

다음, 언론의 자유는 그 언론당들 가운데서도 거대 자본의 밑받침을 받는 몇몇 보수 신문당에 쏠려 있다. 쌍방향 매체라는 찬사를 받는 인터넷도 아직은 이 비대 보수 신문들이 설정하는 의제의 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비대 신문사에서 사주와 기자들의 이해는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노 대통령이 언론의 자유는 기자들의 자유라고 강변하며 사주와 기자들의 긴장 가능성에 주목했을 때, 그는 몰라서 그랬든 일부러 그랬든 순진했던 셈이다. 기자들이 점차 중산층 이상에서 충원되고 그들이 소속 언론사의 경제적ㆍ상징적 재산을 나누고 있다는 현실을 생각하면, 언론사주와 기자들의 갈등 가능성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한 해외망명객의 조국 방문에 즈음해 국가보안법 문제가 개인의 처신 문제로 변질돼 버린 것이나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난데없이 ‘귀족’의 작위가 내려진 것도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고르게 분배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언론 개혁이라는 것은 언론의 자유라는 재화의 재분배를 모색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고종석 님이 몇 살이더라?'  위 글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질문입니다. 기자로  살아온 고종석 님의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갖게 한 시평입니다. 짧은 글안에서 '언론자유'라는 상식적 의미-강요된 상식-를 살짝 뒤집으며 기존의 주장들이 사실 개념의 오해에서 비롯된 원천적으로 흠이 있는 논의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네요. 한국신문의 대부분의 시사칼럼에서 보여지는 맥락없는 당위적 명제의 제시와 성토에 기반한 주장들은 사람들을 언론에 냉소적으로 만들고 무관심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언론과 기득권세력이 노리는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일 수도 있겠습니다. 무관심이 야기하는 결과는.... 
 그런 점에서 고종석이라는 세련된 언론인은 중요합니다.  한국 언론은 고종석이라는 개별자의 자기전개에 적지 않은 빛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성동맹과 함께 살기>를 읽으며 위의 사설을 보고 거듭 감탄하며 여러 번 읽은 글입니다.(논의의 전개와 글쓰기 스타일을 배우기위해 위의 글을 필사까지 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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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비정규직이라는 악마의 얼굴

* 한겨레(2007. 4. 12) / 10명 중 1명만 정규직으로 탈출 ‘비정규직 수렁’

[한겨레] 중소 전자업체에서 8년 동안 정규직으로 일했던 박미영(가명·38·여)씨는 2001년 외환위기를 맞아 회사가 파산하며 일자리를 잃었다. 일할 곳을 찾아다녔으나 당시 정규직으로 뽑는 곳은 거의 없었다. 정규직 구직을 포기한 그는 2002년 서울 구로디지털산업단지의 위성라디오 제조업체에 ‘파견 노동자’로 재취업했다. “회사에서 일만 열심히 하면 정규직을 시켜준다고 하더군요. 헛된 꿈이었죠.” 박씨는 넉 달 뒤 파견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됐다. 회사에 직접 고용됐으니, 그래도 운이 좋았다.



박씨는 정규직을 꿈꾸며 100만원 남짓한 월급에도 땀흘려 일했다. 2005년 9월, 그는 해고통지서를 받았다. 그러고 지금까지 실업자다.

2000년 6월부터 서울 중구 소공동에 있는 ㄹ호텔에서 7년째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는 김경희(가명·47)씨는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월급은 적었지만 호텔 직원으로 자부심을 갖고, 내집처럼 쓸고 닦았어요. 솔직히 정규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죠. 지금은 꿈도 꾸지 않고 있지만 ….” 김씨는 2001년 8월 룸메이드 업무가 외주로 바뀌면서 소속 용역회사가 바뀐 것만 네 차례다. “월급도 불만이지만 고용 불안에 정말 힘든다”고 토로했다.

박씨와 최씨처럼 우리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은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함정’이라는 실증적 통계가 처음으로 나왔다. 12일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사회적 배제 시각으로 본 비정규직 고용’ 보고서를 보면, 비정규직이 되면 정규직 이동이 쉽지 않고 되레 실업상태로 될 확률이 높다. 실제 ‘노동패널’ 1~8차년(1998~2005년) 자료를 분석한 결과, 8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 이동현황을 조사해 보니, 정규직 전환은 12.8%에 머물렀고, 62.7%는 계속 비정규직이었으며, 20.3%는 실업 상태였다. 또 개인 추적조사를 통해 처음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사람의 일자리 이동을 분석한 결과도 7%만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노동패널이란 1998년부터 해마다 동일한 표본(5천가구)을 대상으로 경제활동을 조사하는 국내 유일의 가구조사 자료다.

다른 자료인 지난해 통계청의 경제활동 부가조사에서도 비정규직이 1년 뒤 정규직으로 이동하는 비중은 10%였고 실직 가능성은 20.1%에 이르렀다. 또 비정규직 노동의 장기화는 빈곤 문제도 낳는다. 8년 동안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한 노동자들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8%가 86만원 미만의 임금을 받고 있었다. 또 국민연금 가입률은 12%, 고용보험은 15% 수준에 머무는 등 이들은 저임금에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장지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이동 통로는 거의 차단돼 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며 “현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가는 다리가 아닌 함정이 되고 있다”며 “더 본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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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4-13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 저희팀에도 용역직, 계약직, 정규직... 다양한 고용형태가 존재하는데 .. 이런 문제를 생각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 맘이 복잡해져요.

기인 2007-04-1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자본'주의라는 말. 역시 '자본'위주로 돌아가는 것이겠죠. 요즘 괴로운 것이, 실천적으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고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전출처 : 로쟈 > 번역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일자 한겨레에 저명한 번역자 김석희씨의 이야기가 기획기사로 실렸기에 옮겨놓는다. 비록 소설가로서는 문명을 드높이지 못했지만 일급의 번역자로서 그의 능력과 태도는 귀감이 될 만하다. 번역에 너무도 많은 걸 빚지고 또 의지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런 현실과는 전혀 걸맞지 않게) 한편으론 번역을 홀대하는 문화적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지만) 다시금 공유하도록 한다. 

한겨레(07. 04. 13) “번역이 살아야 학문도 출판도 살지요”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가 1968년 <설국>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일본 소설을 영어로 옮긴 미국 번역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공로에 주목했다. 그의 번역을 놓고 이러저러한 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번역문이 <설국>에 묘사된 탐미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풍경을 탁월하게 형상화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일본어 원문보다 더 낫다는 평판을 얻은 영어판 <설국>이 아니었더라면, 서구인들이 가와바타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번역은 일종의 문화 간 통로였던 것이다.

한국 출판 시장에서도 번역은 통로 구실을 한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통로라기보다는 병목에 가깝다. 단행본 출판물의 4분의 1이 번역서이고, 자비 출판이 아닌 시장을 상대로 한 출판물만 따로 놓고 보면 번역서의 비율은 이보다 훨씬 더 높다. 번역서의 비중이 이렇게 큰데도, 역량 있는 번역 전문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문장의 표층뿐만 아니라 심층까지 책임지는 번역가가 드물다보니, 마음 놓고 즐길 번역서를 찾기도 쉽지 않다. 오문으로 점철돼 무슨 뜻인지 알아먹을 수 없는 책들이 겉포장만 그럴 듯하게 꾸며져 독자를 유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번역서는 쏟아져 나오는데 믿을 만한 번역서는 찾기 어려운 것, 번역이 통로가 아니라 병목인 이유다.

김석희(56)씨는 이런 황량한 번역 풍토에서 자기 세계의 꽃을 피운 드문 번역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통상의 번역가가 영어면 영어, 일본어면 일본어, 어느 한 언어를 번역 품목으로 삼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는 영어·일본어·프랑스어에 두루 능통하다. 지금까지 번역한 책이 150종, 200권 남짓 되는데, 그 가운데 50%가 일본어 책, 30%가 영어 책, 나머지 20% 가량이 프랑스어 책이다.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국문과에 편입한 뒤 대학원에서 한국 근·현대시를 공부했는데, 근·현대시를 연구하려면 일본어로 된 1차자료를 읽어야 한다. 일본어를 그때 익혔다.” 그의 일본어 번역 실력은 <로마인 이야기>(전 15권)로 정평이 나 있다. 시오노가 직접 한국인 독자에게 이야기하듯 생생하고 자연스런 문장은 <로마인 이야기>가 인기를 얻은 또 하나의 이유다.

그는 속전속결의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웬만한 두께의 책도 잡았다 하면 한 달을 넘기지 않는다.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 권을 받은 게 지난해 12월 17일이었는데, 번역을 끝내고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게 1월 7일이었다. 200자 원고지로 쳐 1800장을 번역하는 데 딱 20일 걸린 셈이다.” 번역가 정영목씨는 “번역이란 머리나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김석희씨도 그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8·8·8’의 생활 수칙을 지키고 있다. 하루를 셋으로 나눠 8시간은 잠을 자고 8시간은 쉬고 8시간은 책상 앞에 앉아 번역 일을 한다. “번역이란 게 자기관리 못하면 무너지는 일이다. 나에게 번역은 직업이다. 8시간 노동제를 어떻게든 지키려 한다.”(*이런 경우를 '프로'라고 할 터이다.) 

출판 편집자들이 하는 일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번역문을 매끄럽게 다듬은 일이다. 비문을 바로잡고 거친 문장을 솔질하고 앞뒤가 앉맞는 문장을 가려내는 것이 편집자들이 늘상 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보면 김석희씨는 예외적 존재다. 편집자들 사이에서 그는 완성도 높은 문장을 구사하는 사람으로 이름이 높다. 번역 원고를 그대로 조판해 책으로 만들어도 문제 없을 만큼 그의 문장은 빈틈이 없다. 편집자들이 그의 문장에 손을 대는 건 일종의 금기다. “바른 문장을 쓰고 맞춤법, 외래어 표기법을 지키는 건 글쓰는 사람의 기본 의무다. 그걸 편집자들에게 맡겨선 안 된다.”

서양사학자 박상익 우석대 교수는 좋은 번역을 이루는 성분을 “외국어 실력 30%, 해당 분야 지식 30%, 그리고 한국어 실력 40%”라고 이야기하는데, 김석희씨가 그런 경우다. 그의 번역문이 잘 읽히는 것은 그가 한국어로 능숙하게 글을 쓰기 때문이다. 전문 번역가로 나서기 전에도 그리고 그 후로도 한 동안 그의 꿈은 소설가였다(*내게도 '소설가 김석희'가 먼저였고, '번역'은 그의 부업으로 알았다. 이젠 거의 '전업 번역가'라 해야겠지만. 초창기 번역으로 기억에 남는 건 데즈몬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정신세계사, 1991). 김석희씨는 모리스의 자서전도 우리말로 옮겼다).

문학청년 시절 시와 소설을 썼고,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돼 등단하기도 했다. 소설 쓰기로 다진 한국어 문장 실력을 번역에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번역을 하다보면 원서의 저자가 힘주어, 공들여 쓴 단락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땐 문장을 뛰쫓아가는 식으로 번역하지 않고, 전체 문단을 숙지한 뒤 우리 말로 다시 써본다. 그러면 문장이 훨씬 명확하고 유려해진다.”

1급 번역가인 그가 볼 때 한국은 번역을 홀대하는 나라다. “가장 문제가 큰 쪽은 학계다. 전공 분야의 고전을 번역해도 연구업적으로 대접을 안 해준다. 짜깁기 논문 하나 쓰는 게 더 점수가 높다. 그러다 보니 비전공자가 고전을 번역해 망쳐놓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런 허술한 번역서를 읽느니 차라리 원서를 읽겠다고 낑낑거리는 게 현실이다. 먼저 학계에서 용기를 내야 한다. 전문 분야 번역을 대우해줘야 학문도 살고 출판도 산다.”

그는 일본의 예를 강조했다. “일본은 번역을 통해 근대화를 이룬 나라다. 이미 개화기 때 일본어 번역판이 나온 책 가운데 상당수가 아직도 우리말로 나오지 않았다. 번역을 우습게 알다보니, 우리 책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도 똑같은 잘못을 범한다. 아무리 질 높은 작품도 고등학생 수준으로 번역해 놓으면, 그쪽 사람들은 ‘겨우 그 수준이야’ 하는 식으로밖에 인식 못한다. 가와바타의 <설국>을 서구에 알린 사람은 결국 사이덴스티커였다.” (고명섭 기자)

07. 04. 12.

P.S.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아니지만 기사를 읽다 보니까 기억에 떠오르는 책은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한길사, 1997)이다. 저자가 60권의 번역서를 낸 걸 기념하여 역자후기만을 모아놓은 책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150종, 200권 남짓을 번역했다고 하니까 지난 10년간 최소 90종의 책을 더 번역한 셈이다.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150> 정도의 증보판이 나올 만하다. 아마도 이윤기, 안정효 선생과 자웅을 겨룰 만하지 않나 싶다. '번역의 달인'들이 따로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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