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나귀님 > 개역판 "보르헤스 전집"을 기다리며...

민음사 판 보르헤스 전집(전5권)의 번역자인 황병하 씨가 타계한 후에, 아무래도 그냥 정본으로 삼기에는 어딘가 찜찜한 이 책을 출판사 차원에서 어떻게 좀 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는데, 지성이면 감천(?)인지 얼마 전에 <번역은 내 운명>인가 하는 제목의 책을 뒤적이다가, 에스파냐어 번역가인 송병선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발견했다.
- 나와 보르헤스의 관계는 내가 귀국했던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지금은 폐간된 <외국문학>에서 보르헤스 특집호를 당시 '무명'인 나에게 전격적으로 위임했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꾸준히 보르헤스에 관한 글을 출판하고 그의 작품을 번역하며 강의하고 있다. 현재는 민음사에서 출간된 <보르헤스 전집>을 수정, 감수하고 있는데, 보르헤스의 독자들은 곧 새로운 번역본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147쪽)
송병선의 글이 실린 책은 2006년 3월에 나왔는데, 민음사의 개역판 보르헤스 전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과연 언제쯤 나올 것인지, 그리고 과연 어느 정도까지 "수정"이 될 것인지 궁금하다. 송병선의 글을 계속 읽다 보면 보르헤스의 문체에 대한 언급과 아울러 "수정하고 보니 지금 출간된 번역본의 본문과 내가 수정한 판본과는 무려 원고지로 30매 정도의 차이가 났다"는 말과 함께, 지금의 번역본에는 옮긴이 각주가 많이 있는데 자신이 보기에는 "독자들은 보르헤스의 작품에 담긴 서스펜스나 극적인 반전과 같은 서사양식이 아니라, 그의 현학적인 지식에만 관심을 보이며 그가 파놓은 미로에 빠져" 버리기 때문에, 수정본에서는 보르헤스의 현학적 지식을 설명하는 번역 각주를 대폭 빼 버리기로 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솔직히 위의 대목을 읽고 좀 불안했던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송병선은 보르헤스를 번역하기에는 최상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의 문체에 대해서는 내가 논할 처지가 못된다. 제아무리 에스파냐어를 잘 안다고 주장하는, 그리고 실제로도 잘 아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우리말로 번역된 문장을 보면 십중팔구 "뉘앙스 문제"를 갖고 꼬투리 잡기가 십상이다. 똑같은 우리말을 해도 그놈의 "뉘앙스"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든데, 외국어 소설을 옮기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뉘앙스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될 만한 문제가 아니다. 누가 번역하더라도 아쉬움과 미흡함과 어색함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 이에 대해서는 아쉽지만 새로운 판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도리밖에 없다.(아니면 인터넷 찌질이들의 합창 가사마냥 "차라리 원서를 읽는" 쪽을 택하든가. 근데 여기서 말하는 "원서"를 읽으려면 영어가 아니라 에스파냐어를 배워야 할 거다. 근데 인터넷 찌질이들의 특징은 십중팔구 "영어원서"는 읽는다고 깝죽대도 기타 언어로 된 "원서"는 읽을 수도 없고, 읽으려 노력도 안 한다는 것.)
각주 문제에 관해서는... 물론 보르헤스의 현학적 지식에 지나치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는 그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르헤스의 현학적 지식을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해서도 곤란하다. 우리에게는 현학적으로 보이고 어려워 보이고 낯설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보르헤스 본인이 평생 접해 온 지식이고, 평생 생각해 온 내용이고, 평생 기억해 온 고유명사일지 모른다. 그러니 그가 뜬금없이 툭툭 내뱉는 지식이나 내용이나 고유명사 하나하나에 대해서 아예 신경을 안 쓰고 넘어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수많은 각주가 보르헤스를 좀 더 잘 이해하는 데까지 독자들을 인도해줄 만한 탄탄대로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르틴 피에로>에 대한 각주가 없다면, 한국의 일반 독자들이 "끝"이나 "남부" 같은 특이한 단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좋은 것은 <마르틴 피에로>부터 <새들의 회의>에 이르기까지 보르헤스가 언급하는 작품들이나 사항들이나 이름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 그의 책을 읽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그 경지는 아마 보르헤스를 오랫동안 읽고 또 강의해 온 송병선 본인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일 것이다.
내가 보르헤스 번역자로서 송병선을 불신하는 것은 일찍이 몇 권의 번역서에서 보여준 그의 "오역" 때문이었다. 그가 보르헤스를 정말로 좋아해서 그러는지 아닌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만약 그렇다고 친다면 그로선 참으로 불행한 것이 "열성"은 앞서는지 몰라도 "능력"은 충분하지 못한 듯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에스파냐어는 "전혀" 모르고, 보르헤스에 대해서도 그만큼 잘 아는 것은 아닌 평범한 독자인 내가) 그의 보르헤스 번역을 읽고 참으로 황당함을 느꼈던 그때로부터 무려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므로, 그의 번역 능력이나 보르헤스에 대한 이해에도 뭔가 장족의 발전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좀 불안을 느낀다. 예전에 발견한 그의 "오역"들의 경우, 그건 에스파냐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상식"이 부족해서 생긴 오류였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번역을 하면서도 그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몰랐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나로선 그가 "문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각주"의 불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 어딘가 불안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 "문체"의 독특함을 살리는 데에만 치중함으로써, 정작 보르헤스의 단점인지도 모르지만 큰 매력이기도 한 "현학적 장광설"을 외면하고, 결과적으로는 약간의 노력과 수고만 있었어도 피해갈 수 있었던 오류를 양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를 읽는 독자로서, 나는 그의 번역서에 좀 장황한 각주가 달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니, 전집과는 별도로 작은 <보르헤스 소사전>을 만들어 이런저런 작품에 등장하는 갖가지 고유명사나 개념을 설명해 두더라도, 역사적인 의미하고는 약간 다른 "백과사전파"인 보르헤스의 성격대로라면 오히려 재미있어 하지 않았을까? 물론 보르헤스가 이런저런 현학적 지식의 총합인 것만은 아니고, 송병선 역시 아마 그런 면에서 보르헤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지적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보르헤스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충분히 "낯선" 작가다. 그가 노닐었던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한 단락이나, 그가 편애했던 유럽 문학의 주요 작가들, 그리고 그가 재미있어 했던 이런저런 책과 개념과 인물들은 십중팔구 우리에게 "낯설기만" 하다. 그런 문화적, 그리고 "보르헤스적"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 전혀 없다면, 솔직히 보르헤스야말로 가장 "곡해"되기 쉬운 작가는 아닐까?
뭐, 이미 맡은 것, 이제 와서 송병선 말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개역판 보르헤스 전집이 부디 "최소한의 오역"만으로 간행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보르헤스 정도면 송병선이라는 번역자 한 사람의 능력으로는 모두 커버할 수 없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유능한 편집자가 한 사람(가능하다면 여러 사람) 따라붙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냥 교정교열이라는 단순업무 말고도 방대한 "상식"을 지닌 사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최소한 보르헤스가 언급하는 이런저런 현학적 지식들의 출전이며 의미며 하는 것을 일일이 따져볼 만한 "객기"를 지닌 편집자가 말이다. 문제는 요즘 나오는 민음사 책들을 보면 "그 정도"의 소양을 지닌 편집자가 내부에 없는 것 같다는 점이지만...





아... 표지를 위에 쭉 늘어놓고 보니 좀 짜증 난다. 이번에 개역판 만들 때 표지 좀 어떻게 해 보지?(이 박모 씨 표지는 나랑 궁합이 전혀 안 맞는다. 그중 최악은 <여씨춘추>였다는...)
그나저나... 황병하 번역본을 읽으며 종종 이런저런 오역을 발견하고 피식피식 웃기만 했을 뿐, 딱히 정리해 둔 것은 없었는데, 이제라도 보르헤스 전집을 다시 처음부터 읽어가며 오역이나 오류가 의심되는 부분은 정리해 올려야 할까 싶다. 가령 오늘 <픽션들>의 "푸네스"를 오랜만에 뒤적이다가 발견한 오류는, 예수가 처형될 때 쓰인 passion flower 라는 꽃을 "직역하면 <정열의 꽃>"이라고 한 각주다. 이것 참... 상당히 초보적인 오류가 이제 와서 눈에 띄니...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