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리에 상당히 경도" vs “가치법칙 근원 정의는 오류”

[맑스꼬뮤날레](주관단체) - 자율평론

맑스꼬뮤날레취재팀 / 2005년05월30일 18시24분

맑스 꼬뮤날레가 열린 첫날 오후 자율평론 주관의 토론에서 발제자와 플로어간에 격렬한 토론이 이뤄졌다. 이날 세션에서 ‘비물질 노동과 가상실효적 포섭’을 발제한 조정환(자율평론 )씨와 플로어의 이경천(맑스와 자본론 연구소)씨는 가치법칙과 계급투쟁에 관한 입장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했다.

왼쪽 조정환씨, 오른쪽 이경천씨

이경천 씨는 먼저 조정환 씨에게 “맑스이론이 시대적 부합성을 잃었다고 보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맑스는 가치라는 범주, 가치법칙이라는 범주에 기반해서 수많은 범주들을 재구성 했으며 이러한 범주들 자체들이 가치법칙이나 가치라는 범주의 재구성이거나 그러한 범주에 관철된다고 봐야 한다”면서 “가치법칙을 폐기하고 나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맑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또한 이경천 씨는 “조정환 씨가 다분히 무정부주의 자율주의자인 네그리에 상당히 경도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계급투쟁이라는 개념도 맑스 이론을 꼼꼼히 분석해 보게 되면 기본적으로 가치법칙에서 파생된다”면서 “가치법칙이 맑스 이론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적 범주인데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맑스이론의 부정으로 나아갈 뿐 아니라 대안을 부재하게 만드는 무정부주의로 귀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정환 씨는 “가치법칙에서 모든 것들이 파생되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경천 선생님의 독특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단언 했다. 조정환 씨는 “계급투쟁이라는 것마저도 가치법칙에서 나온다고 했을 때 그것은 맑스하고도 정면에서 사실상 대립하는 것”이라면서 “‘공산당 선언에서 세계사라고 하는 것은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말했지 가치법칙의 역사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정환 씨는 덧붙여 “가치법칙이 그 무엇보다도 맑스주의의 핵심적이고 우선적인 원리라는 생각에 정면에서 철저하게 반대하고 싶다”면서 “가치법칙이 끝난다 할지라도 맑스는 끝나지 않고 맑스의 정신과 맑스의 눈은 결코 그 위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경천 씨는 다시 반론을 전개했다. 이경천 씨는 “조정환 선생께서 계급투쟁을 마치 초역사적인 현상으로 풀이를 하면서 맑스의 계급투쟁 이론을 주의주의 내지는 자율주의에서 얘기하는 계급투쟁이론으로 전락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다시 지적하고 “ 가치법칙을 무시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계급투쟁으로 환원시키지 말아야 하며 그것이 바로 자율주의의의 가장 결정적인 맹점이고 이것 때문에 자율주의가 정통 맑스주의에서 철저하게 비판을 받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조정환 씨 역시 이경천 씨의 반론에 재반론을 펼쳤다. 조정환 씨는 “가치법칙을 부르주아지의 계급투쟁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는 한에서 계급투쟁과 가치법칙은 분화되지 않지만 가치법칙을 근원적인 계급투쟁만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근원적 원리로 정의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일시적으로 등장했던 하나의 전략 형태를 영구화하고, 가치법칙이 위태로워지고 흔들리게 되는 것이 맑스주의의 위기이고 혁명의 전망의 위기라고 설파할 때, 지금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르주아적 원리를 받아들이도록 설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반박했다.

조정환vs이경천 토론의 일부 요약

이경천 : 맑스이론이라는 것이 시대적 부합성을 잃었다고 보십니까?

조정환 : 신앙 고백을 하라고 하시니...(웃음)

우리가 하나의 생각들을 검토하고 그것으로부터 배우고자 한다면 역시 현실화되어진 것과 현실화 되어지고 있는 것에서 맥박치고 있는 힘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맑스는 19세기에 태어나 19세기에 죽은 사람이죠. 그래서 맑스는 우리가 지금 겪는 많은 것들을 함께 겪지 못하고 현실적인 체험에서 우리가 겪는 것과 판이하게 다른 것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

맑스는 초기 헤겔, 포이에르바하 비판에서 사회주의 비판과 어떻게 부르주아 사회를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대안까지 총제척인 가르침을 제시한 사람입니다. 맑스가 이론의 현실적인 체계속에서 서술하는 것들의 다양성 중에서 꽤 많은 부분이 우리시대의 현실 적합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맑스의 잘못이 아니라 시대적, 역사적 문제이기 때문에 그 기나긴 역사과정에서 파악해야 하며 맑스 개인 비난으로 귀속되어서는 안됩니다. 서술된 이론체계의 꽤 많은 부분들이 현실 적합성을 상실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 당시의 노동에 대한 맑스의 분석으로서 결과로서의 사회속에서 추상노동으로 종합될 수 있지만 분산된 시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물질노동을 분석의 초점에 두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화된 시간의 공간화 자체만을 문제 삼을 수 있었고 시간의 초시간화, 혹은 실제적 포섭 같은 것을 자기이론에 담을 수 없었다는 것이 맑스 이론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맑스는 물론 상당한 해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근대성 속에 매몰된 사람은 결코 아닙니다.

사회적 노동과 같은 점은 정치경제학 비판 같은 것으로 서술되고 있는 데 바로 지금 우리가 읽어도 우리 시대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역사를 직접적으로 경험가능 한 역사를 넘어서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혜안의 원천은 어디 있는가. 맑스라는 사람이 역사속에 살면서도 현실속에 완전히 봉인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맑스와 주어진 역사적 경험을 넘어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맑스의 속뜻을 통해 읽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한된 시간속에서 제한된 역사성을 극복하고 극복을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고민해 갔던 맑스 자신의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경천 : 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것 같은데 저는 맑스 이론이 시대적 적합성을 가지고 사람들이 이것에 대한 진정한 맑스가 자신의 이론속에서 남겨낸 수많은 범주들이 있을 텐데 그러한 범주들이 현실에서 이론적 적합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그런 답변을 기대 했는데요. 어쨌거나 본질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주관적으로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의 양식이라는 것은 비물질 노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하셨는데 이와 같은 비물질 노동이 지배적이라고 본다면 본질적 정치경제학에서, 경쟁 자본주의 시대에 관철되어있던 가치법칙이 유효성을 상실해 버린다는 그 말씀이시죠. 그런데 맑스 이론을 통독하다 보면 흥미로운 사실은 발견하는데 맑스라는 사람은 가치라는 범주, 가치법칙이라는 범주에 기반 해서 수많은 범주들을 재구성 해내죠. 대표적으로 조정환 선생님께서는 직접적으로 비물질적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지 비물질적 상품이라는 표현을 안 썼는데요. 이러한 상품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고, 수많은 이러한 범주들 자체들이 가치법칙, 가치라는 범주의 재구성이거나 그러한 범주에 관철된다고 봐야 하는데 이렇게 가치법칙을 폐기하고 나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맑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는 과연 쉽사리 상품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수 있겠느냐? 선생님께서는 다분히 무정부주의 자율주의자인 네그리에 상당히 경도되어 있는데 그 사람 같은 경우에 계급투쟁을 필요이상으로 침소봉대 시키거든요. 그런데 이 계급투쟁이라는 개념도 맑스 이론을 꼼꼼히 분석해 보게 되면 기본적으로 가치법칙에서 파생되거든요. 이처럼 가치법칙이라고 하는 것은 맑스 이론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적 범준데 이것을 부정하고 나서 맑스 이론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 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맑스이론의 부정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결국 대안을 부재하게 만드는 무정부주의로 귀결하는, 그런 이론을 설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선생님의 답변을 부탁 드립니다.

조정환 : 우선 상품에 대해 말하자면 비물질적 상품이라는 말이 발제에는 나오지는 않았지만 하트나 네그리의 제국에 보면 비물질적 상품을 생산한다는 표현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상품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얘기 해 본다면 자본론의 맨 첫줄은 부르주아 사회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상품들의 더미입니다. 상품의 무더기라고 말하는데. 맑스의 자본론 첫줄에서 제시된 관점에서 재조명해 보면 무더기라는 표현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맑스는 농민들에 대해 농민들이란 피티와는 달리 푸대 속의 감자들이라고 표현 하면서 개체들 간의 네트워크의 횡적인 단절성을 얘기 했습니다. 즉 감자을 담고 있는 외적인 힘(주권이나 권력)이라는 틀에 의해서만 묶여질 때만 집합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존재라는 비판이었죠. 맑스가 부르주아 사회를 바라보는 첫 문장이 부르주아 사회를 감자 푸대처럼 취급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상품들이 부르주아 사회라는 감자 푸대 속에 무더기로 담겨 있다는 느낌인데요. 그것은 근대자본주의의 초기국면에서 이 세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초기국면에서 물질적 생산물들, 상품들은 생산되면 유통되고 분배되고 소비되어야 하는 분산된 것들로 나누어져 있었고 이것들을 연결 짓는 것은 국가가 사회간접 자본들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엮어졌으니까요. 그러나 탈근대에서는 각각의 상품들이 감자 푸대안에 있지는 않는 것이죠. 상품으로 취급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형식적 관계를 넘어 내용적 축면에서 고찰해 보면 개개의 힘들은 결코 절대적으로 분리 되서 감자처럼 집합화 될 수 있는 분산된 개체가 아닌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에너지들이 보편적(공통적) 네트워크 속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더기라는 표현은 현대 상품을 지칭하는데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지금 이경천 선생님은 가치법칙에서 모든 것들이 파생되어 나온다고 생각하시는데 이것은 이경천 선생님의 독특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계급투쟁이라는 것마저도 가치법칙에서 나온다고 했을 때 그것은 맑스하고도 정면에서 사실상 대립하는 것이고요. 예컨대 공산당 선언에서 세계사라고 하는 것은 계급투쟁의 역사다라고 말했지 가치법칙의 역사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계급투쟁의 과정은 가치법칙이라고 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인간들만의 역동적인 사회적 관계이지 시간을 분절하고 있는 자본의 근대적인 지배전략이 인간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유일무이하게 지배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저는 가치법칙이 그 무엇보다도 맑스주의의 핵심적이고 우선적인 원리라는 생각에 정면에서 철저하게 반대하고 싶습니다. 가치법칙이 끝난다 할지라도 맑스는 끝나지 않고 맑스의 정신과 맑스의 눈은 결코 그 위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경천 : 인류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말을 했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그 말은 맑스나 엥겔스가 한말이 아닙니다. 레닌이 쓴 무엇을 할 것인가에는 ‘그 말이 고전적 브루조아지가 한 말이다’라는 식의 얘기를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계급투쟁이 가치법칙과는 서로 무관하다라는 식의 주장을 하셨는데 사실은 무연한 것이 아니라 맑스는 그것을 초역사적 계념으로 만들지 않고 자본주의의 특수한 역사적 개념으로 계급투쟁을 재해석하거나 재구성하기 위해 가치법칙과 연관을 지으려고 하는데, 선생께서는 계급투쟁을 마치 초역사적인 현상으로 풀이를 하면서 맑스의 계급투쟁 이론을 갖다가 주의주의 내지는 자율주의에서 얘기하는 계급투쟁이론으로 전락시키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이거는 대단히 잘못되었다는 시각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맑스의 계급투쟁을 가치법칙과 무관한 상태에서 얘기하게 되면 맑스계급투쟁은 주의주의밖에 안됩니다. 다시 말해 의지는 의지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계급투쟁이 어디서 나오는가, 인간의 내면에선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객관적 조건에서 나오는 것인가. 선생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역사는 모두 계급투쟁의 역사로 환원해 버리는데 우리가 자본주의사회에서 밝히는 것은 계급투쟁의 특정한 성격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자본과 연관해서 그것은 분명 가치법칙과 연관된 것인데 가치법칙을 무시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계급투쟁으로 환원시키지 말라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자율주의의의 가장 결정적인 맹점이고 이것 때문에 자율주의가 정통 맑스주의에서 철저하게 비판을 받는 지점입니다.

조정환 : 지금 제가 가치법칙과 계급투쟁이 무관하다고 말씀했다고 주장하시는데 그건 결코 아닙니다. 그 양자 간의 관계에서 계급투쟁이라고 하는 인간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의 우선성을 이야기 한 것이고 가치법칙이라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채택한 계급투쟁의 전략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긍냥 살아가다 보면 가치법칙으로 살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거든요. 인간들이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의 노동활동의 성과물들을 교환이라는 방식으로 변환해서 맞바꾸고 그걸 통해서 공통적 사회관계를 구축해 나아가게 된 어떤 과정. 여기에 끼어들어서 그 교환 과정을 착취와 축적의 과정으로 변환시키고자하는 욕망이 작동한 것이고 그것이 부르주아지가 원하는 독특한 계급의 형성을 가져온 것이니 만큼. 이미 가치법칙의 형성 과정 속에서 부르주아지의 등장과정이 있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구축과정이 있는 만큼 계급의 형성과정을 맑스는 계급투쟁과정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보기에는 가치법칙을 부르주아지의 계급투쟁의 전략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한에서 계급투쟁과 가치법칙은 분화되지 않을 뿐 아니라 가치법칙을 근원적인 계급투쟁만으로 설명해낼 수 있는 근원적 원리로 정의하는 것은 역사 속에서 일시적으로 등장했던 하나의 전략 형태를 연구화하고, 그것이 위태로워지고 흔들리게 되는 것이 맑스주의의 위기이고 혁명의 전망의 위기라고 설파할 때, 지금 새로운 대안을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부르주아적 원리를 받아들이도록 설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아니라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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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04-2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제국을 읽었는데 참 어렵더라구요; 네그리하고 조정환하고 또 들뢰즈 맑스주의(쏘번)하고 서로 어떻게 다른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자율주의자들은 맑스를 푸코랑 들뢰즈로 (보충이 아니라) 대체한다는 비판에 좀더 관심이 기우는군요. "가치법칙이라는 것은 부르주아지가 채택한 계급투쟁의 전략"이라... 글쎄요.

기인 2007-04-2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최근에 들뢰즈 '유목주의' 관련 논쟁도 있었는데. 어떻게 정합적으로 이용해서, 어떠한 효과를 가져오느냐가 문제겠지요..
조정환 선생과 네그리의 차이는 조정환 선생의 '제국기계비판'에서 쫌 드러나지 않을까요? 관련 대담도 참조할 만한데요, "문학수첩' 2005년 여름호에 조정환 선생 대담이 실려있습니다 ^^
 

대한민국 과학은 ‘남성과학’
[한겨레21 2007-04-24 08:09]    

[한겨레] 6년간 보건복지부 연구 중 ‘성인지적 관점’ 고려한 과제 6.1%…성별 구분해야 한다는 기본 의식 세워야

▣ 김동광 과학저술가·고려대 강사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수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성인지 또는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관점을 공공정책에 도입시키려는 움직임이 여성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이뤄져왔다. 양성평등이나 성차별 배제 대신 성주류화라는 조금 생소한 개념을 사용하는 까닭은 단순한 양적 평등이 아니라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회문화적 성에 대한 인식이 개입돼야 하고, 제도적으로도 성평등과 성적 특이성에 대한 의식적 배려가 정책 수립과 집행 과정에 부단히 입력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만 반쪽짜리 평등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적 평등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노당과 박진희 교수의 연구 결과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정책 연구와 수립 과정에서 성인지적 관점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어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가 동국대 교양교육원 박진희 교수에게 의뢰해서 진행한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서의 여성 수요 반영 현황과 개선방안’이 그것이다. 이 연구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성평등이라는 문제의식의 사각지대에 해당됐던 과학기술 분야도 이제 성주류화라는 인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사뭇 의의가 크다.

흔히 사람들은 과학기술만큼은 성이나 계급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서 비켜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이런 생각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기 힘든 신화에 불과하다. ‘과학기술과 성’이라는 주제는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과학기술사회학에서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왔다. 과학 연구도 천문학적 연구비가 투여되고 많은 수의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활동이기 때문에, 그 연구 주제나 방향에 따라 혜택을 입는 사회 집단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가장 쉽게 예를 들 수 있는 분야가 의료이다. 그동안 대부분의 보건 관련 연구와 신약 개발 등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이뤄져왔고, 임상실험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여성들은 남성들을 척도로 개발된 약을 먹고 남성들을 잣대로 삼아 마련된 처치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남성을 기준으로 삼은 그동안의 관행은 가히 ‘의료 남성주의’라 부를 만한 것이다.

다른 나라들은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미 1980년대 말부터 다양한 움직임을 보였다. 미국의 경우 1989년에 국립보건원(NIH)이 임상연구에서 여성과 소수민족들을 연구주제와 피실험자로 포함시키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이듬해에는 산하에 ‘여성건강연구국’을 설치했다. 이 기관의 설립 목적은 여성들의 건강과 연관된 지식이 남성들에 비해 거의 축적되지 않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성건강연구국이 제기한 원칙은 첫째 기초 연구에서 임상실험 및 적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성 차이가 다뤄져야 하고, 둘째 효능실험이나 안전실험에 임산부, 소수민족 여성, 그리고 노년층 여성 등을 포함해서 연구의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다.

2004년 임상연구에서 57건 중 1건

유럽연합도 그동안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덜 대표되면서 받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1999년에는 ‘여성과 과학 프로그램’을 채택해서 과학기술 연구정책에 성주류화의 관점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감시하는 ‘젠더 감시체제’를 발족하기까지 했다. 이 프로그램들은 과학기술 연구에 대해 폭넓은 성별 영향평가를 수행해서 많은 사회적 비용이 투여되는 연구사업의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서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다.

복지 선진국들이 과학기술 연구에서 그동안 소외됐던 성 영향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는 반면, 우리의 과학기술에는 아직까지 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미흡하다. 민주노동당 한재각 정책위원은 박진희 교수의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2000년부터 2005년까지 6년 동안 보건복지부에서 수행한 연구과제 5557건, 연구비 총 7522억원 중에서 성 특이성(gender specific)이나 성별 구분이 가능한 연구는 341개, 269억4천만원으로 전체 과제의 6.1%, 연구비 총액의 3.6%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반면 유럽연합은 2002년에서 2006년까지 진행한 연구개발 사업 중에서 성별 영향평가 대상이 된 303개 과제 중에서 27.4%인 83개 과제가 성인지적 관점에서 연구됐다.

박 교수는 특히 신약 개발의 경우 우리나라의 성 특이성 연구 비율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성차가 중요한 임상연구의 경우에는 2002년 국립병원 임상연구에서 38%에 도달했지만, 보건의료기술이나 신약 개발에서는 1999년 이래 5% 아래를 맴돌고 있으며, 2004년에는 전체 과제 57건 중 단 한 건으로 1.8%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단지 건수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연구에서 성별을 구분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다. 박 교수는 “미국의 경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서 예외 없이 성별·인종별 데이터를 분류해서 수집하는 반면, 우리의 경우에는 임상실험에서 성별 데이터가 거의 축적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가령 노인질환에 대한 연구에서도 ‘고령화에 따른 시각기능 장애’와 같은 주제에서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아예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양적인 성장주의라는 유일 가치를 추구해왔고, 이처럼 독점된 가치는 사회 구성원들의 뇌세포에 깊이 새겨졌다. 그리고 오로지 성장동력으로만 간주돼온 과학기술은 이러한 현상이 가장 심화된 영역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도 “지금 한가하게 무슨 성주류화냐”라고 개탄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은 그동안 제대로 대표되지 못했던 소외된 영역들을 들춰서 우리 사회의 공적 비용으로 이뤄지는 공공연구의 혜택을 골고루 받게 하려는 진지한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성주류화 담론이 주요한 까닭은 이러한 양적 성장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이제 계량적 지표만으로는 지배집단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성장이나 경쟁력 강화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성주류화 담론은 남성들을 척도로 삼는 양성평등이 가지는 한계를 제기하면서, 의료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주요한 과학기술 개발이 그 대상과 기준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 인종, 노령층, 소수민족, 사회적 약자 등을 ‘존중’하고 고려하는 연구 다양성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 그동안 남성, 백인, 화이트칼라, 젊은이, 중산층 등을 기준으로 삼은 연구의 편향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시급한 까닭은 임상연구를 비롯한 기초 데이터의 축적에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성적 편향 바로잡는 대안은

박 교수는 성적 편향을 바로잡기 위한 대안으로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성별 통계 포함을 의무화하고, 연구 지원 심사와 사후 평가에 성별 영향평가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또한 심사위원과 국가 연구개발 사업 기획 등의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 참여의 비율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성주류화의 관점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적 평등, 즉 수의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다양성은 우리 시대의 의제가 됐다. 생물학적 다양성이나 종 다양성이 우리가 후속 세대와 생태계를 위해 지켜내야 할 중요한 자산이라면, 과학기술의 연구 다양성은 우리 삶의 질과 평등한 과학을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얻어내야 하는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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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 팔아 돈버는 세상' DJ가 열고 盧가 끌고
  [FTA 현미경&망원경(7)] '금융화'와 한미FTA(上)
  2007-04-23 오전 8:50:37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일반 상식'이 있다. '자유시장의 상징'이라는 미국. 투자자는 '국경을 넘어, 규제의 어둠을 넘어' 자유로워야 한다는 '사상의 조국' 미국. 그런데 이 나라의 은행이나 대기업에 '자유롭게'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 당신은 혹시 알고 있는가?
  
  잘 알려지지 않은 상식은 또 있다. 당신이 미국인이 아니라면 아무리 좋은 학력과 경력, 금융 테크닉, 바다처럼 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졌다고 해도 미국 은행의 이사가 되기는 힘들다. 도대체 왜?
  
  한국엔 없고 미국엔 있는 것
  
  미국 은행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미국 상장은행의 주식을 10% 이상 소유한 대주주가 되려면 감독기관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미리 주식매수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FRB가 거부하면? 그걸로 끝이다.
  
  미국의 상장은행들은 워낙 매머드 급이라서 그 주식 10%를 구입할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손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규제한다.
  
  미국 은행의 이사가 되기는 더 어렵다. 미국 은행법 72조를 보라.
  
  "모든 은행 이사는 재직 중 미국 시민이어야 한다. 또한 이사 가운데 3분의 2는 취임 1년 전부터 은행이 소재한 주(州), 혹은 그 은행으로부터 100마일 내에 거주했어야 한다. 그 은행이 외국은행에 합병되었거나 자회사인 경우에도 미국 시민이 이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해야 한다."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독자들 중엔 필자가 왜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미심쩍은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조치가 아닐까. '국민경제의 혈맥'이라는 은행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함부로 외국인에게 넘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싱가포르, 필리핀, 독일, 영국 등 여러 나라들이 법률적으로 '내국인 이사 과반수' 규정을 명문화하거나 금융감독 당국이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당연한 일에서 한국은 예외라는 것이다. 한국의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 이사의 자격요건은 다음과 같이 매우 '단순'명쾌하다.
  
  "금융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자로서 금융기관의 공익성 및 건전 경영과 신용질서를 해할 우려가 없는 자."
  
  이처럼 한국은 은행의 이사 자격에 관한 한 만국평등의 박애정신을 자랑한다. 오대양 육대주의 누구나, 미국인이든, 프랑스인이든, 모잠비크인이든, 아르헨티나인이든 국적과 관계 없이 누구나 능력(?)만 있으면 한국 시중은행의 이사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더욱이 외국인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인 외국인 투자 지분 제한 제도(은행의 전체 주식 중 외국인의 몫을 제한하는 제도)도 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이후 폐지됐다.
  
  그 결과, 2006년 현재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의 외국인 지분율이 84.57%, 그 다음 순위 2~3위를 다투는 하나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각각 79.93%와 63.4%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자유 시장', '자유 투자'의 아름다운 정신을 내던지고 은행의 소유경영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국민경제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필설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제조업 부문의 웬만한 대기업 하나가 망하더라도 국민경제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중은행 가운데 한 곳이라도 문을 닫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만큼 은행은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기관이고,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IMF 사태 당시 은행의 부실을 공적자금, 즉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줬던 것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은행의 사회적 성격을 일단 '은행의 공공성'이라고 부르자.
  
  그렇다면 국민경제의 공공성을 지킨다는 관점에서 지금이라도 은행법을 수정하면 어떨까? 외국인 이사의 수를 제한한다거나, 외국인 이사의 자격 조건으로 한국 영토 이내 혹은 해당 은행으로부터 200km 이내에 1년 전부터 거주해야 한다는 규정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
  
  정답은 '몹시 어렵다'이다. 그 이유는 한국이 다자간 협정인 우루과이라운드(UR)의 은행서비스 부문 협상에서 '외국인도 내국민과 동일한 대우를 한다(NT, 내국민대우)'는 내용을 이미 양허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 규정을 변경하려면, 한국은 다시 여러 나라들과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 국가 간 협상은 이토록 되돌리기 어려운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엔 '역진불가(Ratchet, 래칫)' 조항이 없는데도 그렇다.
  
  지난 4월 초 협상이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조항 중 하나는 바로 이 '역진불가'이다. 국민경제의 공공성을 위해 은행법을 수정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로 바뀌는 것이다.
  
  기업과 은행을 상품으로
  
  사실 국민경제의 핵심 부문 중 핵심인 은행 소유경영권을 이 정도로 통 크게 외국인에게 넘겨주는 '개방적'인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결코 흔치 않다.
  
  이런 비상한 사태가 한국에서 발생한 계기는 물론 10년 전의 IMF 위기였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IMF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한국의 기업과 금융기관에 요구한 것보다 훨씬 큰 범위의 '변혁'을 '자발적'으로 수행했다. 그래서 당시 김대중 정부의 개방은 'IMF 플러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변혁의 기본적 내용은 아주 간단한 하나의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 바로 '금융개혁을 통해 한국의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으로 바꾼 것'이었다.
  
  그렇다면 IMF 사태 이전의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은행을 사고팔 수 없었단 말인가. 그랬다. 대기업과 은행에 대한 거래는 거의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은 피라미드 형태로 그룹을 이뤄 재벌 가문의 손아귀에 장악돼 있었다. 재벌들 역시 주식(기업의 소유권)을 팔아 얼마간의 사업 자금을 조달하긴 했으나, 그룹에 대한 자신의 지배 권력을 위협할 수 있는 규모의 주식을 시장에 내놓는 일은 없었다.
  
  은행은 사실상 국가의 소유였다. 기업은 대부분의 사업자금을 바로 이 국가 소유의 은행으로부터 조달해 투자했고, 이 과정을 국가가 감독했다. 한국의 기업들은 사업자금을 소유권, 즉 주식 판매의 형태로 조달한 것이 아니라 은행 대출로 마련했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기업의 부채비율은 높을 수밖에 없고, 이와 반대로 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 비율은 낮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기업과 은행은 부채, 즉 은행 대출을 통해 서로 밀착해 있는, 쌍두사(雙頭蛇)의 두 대가리로 서로의 몸을 칭칭 얽으며 세계시장의 틈새로 파고들었다.
  
  기업과 은행의 이같은 밀착관계를 끊어낸 수단이 바로 김대중 정부의 금융개혁이었다. 이는 기업의 경우 부채비율 200%, 은행의 경우 BIS 비율 8%로 나타났다. 즉, 기업은 은행 부채를 줄이는 대신 주식(소유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고, 은행 역시 기업대출을 대폭 줄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과정을 거쳐 기업과 은행은 강제 이혼을 당했고, 각각 주식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는 상품이 되었다.
  
  변혁의 코드 '금융화'
  
  그러나 한국의 기업과 은행이 단지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세계화의 시대, 기왕 상품이 되는 바에야 국제적 상품이 되어야 했다. 즉, 외국자본도 주식시장(자본시장)에서 한국의 기업을 사고팔 수 있게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외환의 유출입도 자유로워져야 했다.
  
  이를 위해 김대중 정부는 기업 주식에 대한 외국인의 소유한도를 철폐하고, 대기업의 주식을 취득할 때 시행되던 여러 규제들을 폐지했다.
  
  국내 주식·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 자유화 등 경천동지할 규모의 '금융개방'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짧은 시기에 강행되었다.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허용돼, 외국인들은 한국 기업 주식의 50% 이상을 취득해서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 2003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김대중 도서관' 개관식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쯤에서 우리는 초국적 자본이 사고팔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은 단지 한국 기업의 주식이 아니라 '50% 이상의 주식', 즉 경영권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은행의 소유경영권이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도 김대중 정부 당시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왜 경영권인가. 그냥 주식을 사두고 그것이 오르기만 기다려도, 즉 포트폴리오 투자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다. 결코 충분하지 않다! 그런 '구식'의 금융 테크닉으로는 '리스크'도 '헤지(hedge, 분산)'할 수 없고, 큰 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재벌에 장악된, '나쁜 소유지배구조' 때문에 한국 기업의 주식가치가 저평가되고 있다면(코리아 디스카운트), 그 기업의 경영권을 획득해서 비(非)핵심 사업 부문을 매각하고 노동자들을 잘라 주가를 올린 다음 되팔면 된다(바이아웃 투자).
  
  이는 자본을 조달하고 노동력을 관리해 어렵게 생산한 재화를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김대중 정부가 노동자들의 지지에 정리해고제로 보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같은 초국적 자본의 돈벌이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 경영권의 매매로 돈을 벌겠다는데, 여기에 노동자들이 '엉겨 붙는 바람에' 매매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면 정말 곤란하지 않겠는가.
  
  물론, 초국적 자본의 입장에서는 경영권을 장악하지 못한다 해도 다른 차선의 길이 있다. 의미 있는 주주로서 '경영권 불안정'의 상황을 유지하기만 하면, 재벌 가문은 제 발 저린 강아지처럼 고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보답한다.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폐기하면 총 주식 수의 저하로 주가가 상승한다.)
  
  이렇게 '기업(은행) 매매를 이용한 돈벌이'가 사회경제 시스템 전체를 지배하는 현상을 '금융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이런 질서 속에서 한국 기업과 은행의 으뜸 목표는 종전의 성장(매출량)에서 수익률(ROA, ROE)로 변모했다. 주식가치를 지배하는 것이 수익률이고, 주식가치를 올려야 퇴출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합병(M&A) 되지 않기 때문이다(자본시장의 징계 메커니즘).
  
  금융화 현상 속에서 기업은 이제 주식시장, 즉 금융투자자들의 '인기투표'에서 이겨야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금융투자자에겐 10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을 버는 수익률 10%의 기업 A보다, 100원을 투자해서 50원을 벌어들이는 수익률 50%의 기업 B가 훨씬 사랑스러운 법이다. 비록 고용이나 산업 전후방 효과에서는 A가 훨씬 우수하겠지만 말이다.
  
  이처럼 금융투자자의 권력이 지배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은 내적으로 '저투자-저성장-고실업' 경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경제의 저투자-저성장 패턴이 정착되어 온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권은 "좌파 빨갱이 어쩌고" 하는 사회 일각의 정신분열증적인 마타도어와 반대로 지구적인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추세에 자신의 국가를 가장 잘 적응시킨 정부이다. 노무현 정권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같은 '성공'의 결과가 사회 한편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기업들 및 한 해 수천 억 원 규모의 순이익을 올리는 대형은행', 다른 한편에서는 '100만 원 이하의 저임금 노동자와 청년 실업자들'이 병존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계속>
   
 
  이종태/금융노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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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딸기 > 오랜만에 국제뉴스... 프랑스 대선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집권 우파 국민행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52) 후보와 좌파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53) 후보가 나란히 결선에 진출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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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통신 등 프랑스 언론들은 22일 실시된 대선 1차 투표에서 사르코지와 루아얄이 각기 31.1%, 25.8%를 득표해 다음달 6일 결선에서 맞붙게 됐다고 보도했다. 중도파 돌풍을 일으켰던 프랑수아 바이루는 득표율 18.5%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1차 투표의 투표율은 84.6%를 기록, 이번 선거에 쏠린 유권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결선을 치르게 된 사르코지와 루아얄은 모두 2차대전 이후 출생한 이들이어서, 누가 당선되든 프랑스 정계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게 됐다. 헝가리 이민자 출신 아버지와 유대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르코지는 "오늘의 투표 결과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승리"라면서 "루아얄과 내가 맞붙게 된 것은 두 종류 이념과 가치 사이의 논쟁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희망에 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의 옛 식민지 세네갈에서 태어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사상 첫 여성대통령을 노리고 있는 루아얄은 "야만성 없이 프랑스를 개혁하는 것이 믿는다"면서 "주가보다는 인간의 가치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이들은 모두 함께 모이자"며 좌파 지지를 호소했다.


루아얄 결선 진출에 환호하는 사회당 지지자들. /AFP


이변 없이 좌-우, 性 대결로

이변은 없었다. 22일 치러진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우파 집권 국민행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 후보가 30% 남짓한 득표율로 1위에 안착했다. 프랑스 사상 첫 여성대통령을 노리는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도 예상과 거의 비슷한 25%대의 지지를 얻어 결선에 진출하게 됐다. 이제 승부는 다음달 결선으로 넘어갔다. 일단 사르코지가 우세한 것으로 점쳐지지만, 이민자들을 비롯해 지지층 못잖은 `안티팬'들을 갖고 있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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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결과는 `예상대로'

1차 투표 결과는 이달 들어서만 100여 차례 실시됐던 각종 여론조사결과와 거의 일치하는 수치를 보여줬다. 한때 돌풍을 일으켰던 중도파 프랑수아 바이루 후보는 18%대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극우파 장마리 르펜 후보는 11%대의 지지를 얻었다. 후보들 간 격차는 크지 않았지만 그 작은 차이들을 아무도 뒤집지 못했다.
2002년 자크 시라크 현대통령과 함께 결선에 진출해 `극우파 바람'을 일으켰던 르펜이 이번에 예상보다 당초 낮은 지지를 얻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전체 사회의 보수화 분위기가 바뀌어 좌파 지지가 많아진 탓이 아니라, 반대로 `온건 보수'를 지향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에 르펜의 표가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사르코지는 비록 압도적인 지지를 끌어내지는 못했지만 르펜의 `고정표'로 여겨졌던 극우파들의 표를 상당히 끌어낸 것으로 분석된다. 톨레랑스(관용)와 자유주의의 보루였던 프랑스에서 이제는 바로 그런 개방성으로 인한 피로감이 커지고 있고, 그 사이로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감이나 반이슬람정서 같은 배타성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사르코지는 `강력한 어법'으로 그런 정서들을 결집시키면서도 르펜 같은 `막가파식' 극우주장과는 일정하게 거리를 둠으로써 온건 보수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좌파는 지리멸렬

반대로 좌파는 이번 선거에서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5년전 대선 때 르펜에 눌려 결선 진출에도 실패했던 것에 비하면 나아진 셈이지만 정치노선이나 정책보다는 루아얄 개인의 매력에 기인한 바 컸다.
루아얄은 당선 가능권에 들어선 사상 첫 여성 후보라는 점, 유권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특유의 친화력 등으로 젊은 팬들을 거느리며 선거전 초반 기세를 올렸고 그 여파를 몰아 결선 진출권을 따냈다. 1차 투표를 앞두고 사회당 안에서는 중도파 바이루와 제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루아얄은 결선에 진출할 자신이 있다면서 거부했다. 어쨌든 결선에 나서게 됐으니 당내에서는 루아얄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본인이 늘 주장해온 것과 달리 `본선 경쟁력'은 여전히 회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루아얄이 판세를 뒤집으려면 좌파 전체의 연대에 더해 중도파를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1차 투표 결과 사회당을 제외한 좌파와 극좌파 후보 5명은 모두 합쳐 10%에 불과한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투표 결과가 나온 뒤 일제히 `루아얄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의 표를 모두 더해봐야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더이상 `좌파 연대'가 호소력을 갖기 힘든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얘기다.

`통합' 성공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

파이낸셜타임스는 "1차 투표때까지는 유권자들을 분류해 잘 끌어들이는 사람이 성공했지만 결선에서는 갈라진 여론을 통합하는 사람이 엘리제궁(대통령 관저)에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22일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 사르코지는 결선에서 52∼54%의 지지율로 46∼48%의 루아얄을 누를 것으로 예측됐다. 사르코지는 보수층에겐 인기가 많지만 자유주의적인 젊은 유권자들이나 이민자들 사이에서는 미움을 받고 있다. 2005년말 소요 사태 때 사르코지 당시 내무장관의 탄압정책에 시달렸던 파리 교외 이민자 청년들과 저소득층은 "사르코지만 아니라면 누구든 좋다"고 할 정도다. 사르코지와 루아얄의 지지층은 확연히 갈라져 있고, 서로 상대방을 싫어한다. 파리정치대학의 도미니크 레니에 교수는 AFP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 당선자는 전례가 없을 만큼 강력한 반대 정서에 부딪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과거 대선에서도 1차 투표 2위자가 결선에서 승리한 전례가 있다.


'인물 선거'에 투표율은 높았다

22일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결과는 `예상대로'였지만, 이번 선거 자체는 과거 프랑스의 대선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결선에 진출하게 된 니콜라 사르코지와 세골렌 루아얄 두 후보는 나란히 우파와 좌파를 대변하고 있지만 실제 이번 선거는 좌-우 이데올로기 대결보다는 `인기 투표'처럼 진행됐다. 두 사람의 캐릭터가 선거전 판세를 결정짓는 전형적인 `인물 선거'가 됐다는 점에서 과거 프랑스의 대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파이낸셜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우선 이번 선거가 과거와 다른 가장 큰 차이는 `압도적인 후보가 없었다'는 것이다. 1차 투표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사르코지가 루아얄에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긴 했으나, 두 후보 모두 지지율 3위의 중도파 후보와 맞붙으면 패배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혼전 분위기가 강했다. 한마디로 `몰표'가 없었다. 결선에서도 후보들 간 표차이는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02년 대선 결선 때 자크 시라크 현대통령은 82.21%의 압도적인 지지율로 극우파 장마리 르펜 후보의 17.79%를 눌렀었다.
지지율이 그만그만한 수치를 보이는 것은, 후보들 간 차이를 극명히 드러내주는 핵심 이슈가 없었기 때문. 표면적으로는 좌우 대결이지만 두 후보는 모두 `색깔'을 줄이려 애썼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이슈도, 이데올로기도 없는 선거가 됐다.
그런데도 투표율은 매우 높았다. 85%에 이르는 유권자가 투표소로 향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정 이슈로의 집중은 없었지만 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집권당에서는 엘리트 산실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오지 않은 이민자의 아들이 출마했고, 제1야당에서는 여성후보가 출마했다. `마이너리티들 간의 대결'이라는 것이 이번 선거의 흥행에 가장 큰 요인이 된 셈이다. 사르코지와 루아얄은 모두 50대 초중반의 전후세대로, 누가 이기든 프랑스 정치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게 된다. 시라크 대통령의 12년 집권에 식상한 유권자들이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투표소로 몰려간 것도 투표율을 높인 이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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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민주화 20년과 지식인의 죽음

 

 

 

경향신문(07. 04. 23) 지식 찍어내는 사회, 지성은 숨쉬는가

서울대 경제학부 김수행 교수는 1989년 3월부터 서울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마르크스 강의였다. 학생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300명 규모의 강의실은 매번 만원이었다. 비좁은 계단을 파고들어 앉아 기어코 강의를 들었다. 91년에 이 강의를 수강했던 신모씨(36)는 “중간·기말 고사 때 1000여명이 모여 시험을 치르느라 건물 한 동을 다 빌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로부터 18년이 흐른 지난달 30일 오후 1시 서울대 멀티미디어강의동(83동) 506호. 김교수는 여전히 마르크스를 가르치고 있었다. “케인스는 상당히 훌륭한 경제학자예요. 자기가 살던 시대 문제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현대마르크스 경제학’ 과목. 이날 수업은 케인스의 유효 수요 이론과 장기 정체설에 관한 것이다. 210명 규모의 강의실에 40여명의 학생만 앉아 있다.

조교 정상준씨(32)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수업에는 안 들어와도 시험 때 들어와서 밖에서 토론하고 ‘학습’한 가락으로 일필휘지 답을 적고 나가던 ‘고수’들이 있었다. 지금은 강의를 열심히 듣지만 판에 박힌 답안만 제출한다”고 말했다.

김교수는 “요즘 학생들을 보면 다들 취업에 너무 매달려. 신입생 때부터 그래. 이해는 돼. 대한상공회의소 이런 데서는 성적표에 마르크스 경제학 표시가 돼 있으면 ‘이런 수업을 왜 들었느냐’고 물어본다지”라고 했다. 올해 정년을 맞는 김교수는 요즘 후임 문제를 걱정하고 있다. “경제학부 교수가 34명인데 미국 박사가 31명이야. 비주류 경제학은 나 하나뿐이야. 올해 내가 정년퇴직하면 비주류 경제학이 없어질지 몰라. 요즘 새로 들어온 경제학과 교수들 대부분이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어. 마르크스 경제학을 둘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가진 젊은 교수들이 많아.”

이 문제는 비주류 경제학자를 뽑을 것인가라는 단순한 임용 문제가 아니라 한국 지식 사회에 비판적 지식인의 재생산 구조가 존재하는가의 문제이다. 학부 시절 김교수의 ‘마르크스’ 수업에 열광했던 인문학자 고병권씨는 ‘지식인의 비극적 죽음’을 예감했다고 한다. 그는 “예전에는 김교수 같은 분들의 글이 잡지에 실리면 논쟁에 불이 붙고, 대자보도 붙이고 했는데 지금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제는 대학을 ‘지성의 전당’이라고 말하는 이도 드문 세상이 됐다. 실용과 부가가치 창출은 대학의 최고 목표가 되었다. 일부 대학의 국문학과는 ‘시나리오 학과’로 명칭을 바꿨다. 대학가 인문과학서점은 하나 둘 줄더니 요즘 대부분 문을 닫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걸쳐 전개된 ‘지식기반사회’ ‘지식기반경제’는 우리 사회가 지식을 비판이성의 관점이 아닌, 산업으로 수용하도록 주입시켰다. 교육의 목표는 ‘올바른 시민’의 육성이 아닌, ‘시장반응형 인간’ 양성으로 변했다. 기업은 대학의 진정한 주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교육부와 전경련이 함께 경제교과서를 만들어 노동을 모욕하고 재벌을 찬양하는 세상이 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식인’이란 명사를 동사로 만들었다. 지식인에게 묻는다는 것은 ‘지식iN’ 네트워크와 검색툴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지식은 붕어빵처럼 대량생산되는 복제품이 된 것이다. 한때 시대 정신을 선도했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저술활동은 쓴 사람과 평가하는 사람들만 읽는, 틀에 얽매인 지루한 논문들로 대체되고 있다. 학자는 ‘논문 작성 노동자’로 변모하고 있다. 이것이 지식인의 죽음이 어른거리고 있는 한국사회의 풍경이다.(김종목·손제민기자)

경향신문(07. 04. 23) 2007년 한국 지식인의 풍경

“지식인의 몰락 또는 위기 담론에 동의하는가.” 특별취재팀이 지식인들에게 던진 물음이다. 한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위기’니 ‘몰락’이니 하는 건 그 이전 지식인이 큰 힘을 쓰던 시절이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건데, 과연 그랬던 적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김진애(도시건축가)는 “‘합리적 대안 생산자’ ‘대승적 소통자’로서의 지식인 역할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진애는 “‘지식인의 ‘위기’니 ‘몰락’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을 맞아 등장하고 있는 지식인의 죽음 논쟁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야 정권 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전상인(서울대 교수)은 “관 주도로 전 국민을 직업과 지위에 관계없이 신지식인으로 만들겠다는 김대중 정부의 발상은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의 개편과 교체를 예고한 서막이었다”고 말한다. 98년 12월4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2차 경제대책조정회의. 김태동 정책기획수석이 학력 위주의 지식인 개념을 독창성·능동성 위주로 확장시킨 ‘신지식인상’을 보고했다. 이듬해 초 신지식인 찾기 운동이 ‘제2의 건국’ 캠페인과 맞물려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용가리’로 272만달러 수출 계약을 성사시킨 심형래씨가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되었다. 그는 신지식인 광고에 나와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당신도 신지식인입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부가가치 창출의 다른 말이었다. 졸지에 ‘구지식인’으로 몰린 지식인들이 반발했다.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지식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바로 엄격한 비판정신과 사회적 책임감에 있을 것이다. 신지식인은 이러한 지식인의 근본적 의미를 완전히 무시한다(경향신문 99년 4월29일자 칼럼)”고 했다.

지식인은 이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자’가 되었다. 지식인은 비판적 이성이 거세된 전문가로 대체되고 있다. 권력에 위험하지 않은 지식인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키워지고 있다. 교육부 정식 명칭은 교육‘인적자원부’이다. 사람을 어떻게 효율적인 생산 수단으로 만드는가를 고민한다는 뜻이다. 교육부가 2005년 대통령 보고에서 “다양화·특성화된 ‘시장반응형’ 인력을 양성”하고 “지식기반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라 ‘산학연 협력 활성화’를 통해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시장반응형 인적 자원? 이들이 바로 새 세대의 지식인이 될 것이다.

아직도 수많은 학자들이 있는데 우리 사회가 쉽게 이런 새 세대 지식인들에게 압도당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의심스러워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학자의 세계를 들여다 보자. 한 교수가 말한다. “대학 교수에게 중요한 게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연구 업적이고 또 하나는 연구비를 따오는 거예요.” 그는 자기 학교에서 우수 교수 평가 기준은 ‘연구비 수령 건수와 액수’라고 전했다. 이런 현상은 학계의 ‘빅브라더’ 한국학술진흥재단과 관련이 있다. 이른바 ‘학진’이란 약자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연구 지원 기관은 학계의 거대한 지배자다. 학진의 힘은 연간 1조원 가량을 쓴다는 사실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이 기관의 연구비 지원을 받으려 경쟁하는 체제, 이것이 한국 학술의 레짐(regime·체제)이다. 프랑스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온 김모씨. “전 에세이식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학진 체제 아래서는 빛을 볼 수 없어요. 학진은 정형화된 논문식 글쓰기밖에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어진 김씨의 말. “이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 마감 맞추는 걸 가리키는 말이에요. 좋은 평가로 연구비 지원을 받아 먹고 사는 ‘논문 작성 노동자’만 수없이 양상되는 거죠.” 그는 “학진 체제 아래 지식인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계간지 편집장은 “학술지 또는 계간지에서 그야말로 ‘재미있는’ 글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담론 논쟁을 주도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졌다. 모두 학진 등재지에 딱딱하고 재미없는, 심지어는 같은 전공자들도 안 읽어줄 글을 쓰느라 밤 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틀에 박힌 지식을 재생산하는 데는 학진 체제가 유용할지 몰라도, 한 시대를 뛰어 넘는 창의적인 저술, 그 저술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라는 지식사회의 풍경은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느 대학 교수는 “예전에는 권력이 정부에 반대되는 글쓰기를 통제하는 정도였다면 지금 학진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식인들의 글쓰기를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문 성과? 최근 한 문화재단에서는 학술상 심사를 벌였다. 심사위원 5명 중 2명이 추천대상을 내놓지 않았다. ‘사회개혁·발전과 학문업적을 연결시키는 저작’이 수상 요건이었지만 적격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다수 학술상 주최측이 수상 요건 미흡 때문에 수상자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논문의 양은 갈수록 늘지만 ‘성과’라 할만한 결과물은 갈수록 줄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 교수들은 이런 체제에서 행복할까? 요즘 교수들은 정치권력, 경제권력과 사귀는 데 점차 익숙해지고 있다. 어느 방송 진행자는 “최근 모 대선 주자 캠프 소속의 지식인이 참여한 정치 관련 토론을 진행하다, 그 지식인의 눈에서 불꽃이 튀는 걸 봤다”고 말했다. 이런 살기어린 토론은 교수와 정치의 관계를 잘 드러낸다. “잘 나가는 대선 주자 캠프에 지식인 수백명이 줄서 있다”는 소문은 터무니없는 과장이 아니다. 어느 대학 교수는 지식인이 정치에 참여하려면 3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①정·관계에 진출하려면 대학에 사표를 내야 한다. ②대학에 있으면서 특정 정치 집단의 브레인이 되면 그 사실을 공개해야 한다. ③각종 위원회에 참여한 경우 그 활동을 통해 얻은 금전적 수입과 활동내역을 대학에 보고해야 한다.

부수입 올리고 영향력 행사하며 재미는 다 보고, 학생 가르치기는 소홀히 하는데도 ‘업적평가’ 점수를 덤으로 받는 이들이 오늘날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모습이다. 이렇게 정치권력에 종속되거나, 아니면 저항하거나 양 극단 사이에 방황해 온 것이 한국 지식인 사회이다.

기성 지식인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지식인 재생산 메카니즘이 고장난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더 이상 지식인은 막걸리 집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강의실에서의 논쟁을 통해, 감옥의 사색을 통해 등장하지 않는다. 지식인은 미국이라는 거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은 지난달 말 미국을 제외하고 올해 가장 많은 학부 합격생을 배출한 국가는 한국이라고 밝혔다. 35명이다. 불과 두자릿수라서 적다고 여겨진다면, 미국 이민세관국(ICE)의 최근 발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ICE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국 내 외국인 학생 중 한국 출신이 9만3728명으로 전체(63만998명)의 14.9%를 차지, 국가별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미국 고등교육전문 주간신문 ‘고등교육 연감(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에 따르면 99년에서 2003년 사이 미국 박사 학위 취득자의 학부를 조사한 결과, 서울대가 1655명으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지식인 재생산의 주권을 잃어가고 있다.

오늘날의 지식인은 ‘경제권력’과도 잘 어울린다. 대학은 재벌 총수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주지 못해 안달이고, 산학협동은 ‘산학일체’로 진화중이며 대기업 연구 용역비를 받는 상당수 교수들은 재벌개혁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지도 않는다.(김종목·손제민·장관순기자)

경향신문(07. 04. 23) 지금 왜 지식인이 문제인가

지식인은 신분적 특권이나 재산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지식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고 힘을 행사한다. 지식인과 그 출신 배경이 반드시 직접적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지식인의 지식은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지식인의 자유로움에 대한 주장은 이런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식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독학으로 유명 지식인이 된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지식을 통해 힘을 행사하는 정도의 지식인이 되려면 권위 있는 교육기관에 소속되어 오랫동안 배우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동안 지식의 습득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동학(同學) 끼리 유대 관계도 맺어진다. 이른바 학벌(學閥)이라는 것은 이런 친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지식인은 한편으로 신분과 계급으로부터의 상대적인 자유로움과 독립적인 사고를 자랑하고, 다른 한편으로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해 결속을 하며 문화적인 동질성을 도모한다.

집단으로서의 지식인은 두 가지 다른 집단을 상대한다. 하나는 지배 엘리트로서 정치적, 경제적 지배 집단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피지배 집단인 일반 대중이다. 지식인은 지배 엘리트와 결탁하기도 하고, 피지배 집단에 봉사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지식인은 기존 체제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주장하며 지배집단의 헤게모니를 정착시킨다. 후자의 경우에 지식인은 현 지배체제의 착취구조를 폭로하며 대중의 혁명의식을 고취시켜 새로운 지배체제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체제 고착이든 체제 전복이든 지식인은 자신의 무기인 지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어느 경우에나 지식인의 힘은 자신의 이해 타산을 숨기면서 공정하고 보편적인 수사학을 동원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지금의 체제가 강고하게 버티건, 아니면 뒤집어져서 새로운 체제가 되건 그건 아무래도 좋다. 지식인이 지닌 관점을 보편성의 준거로 삼으면서 그의 상징적 권력을 인정해주는 상황이라면 지식인은 어느 쪽이라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어떠한가? 그럴 경우라면 지식인의 위기를 논하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 사회에서 집단으로서의 지식인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왕조가 위기에 처한 한말과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던 일제시대이다. 기존 신분제가 해체되고 새로운 권력 기반이 형성되는 상황에서 지식인은 당시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질곡에서 벗어날 방향을 일반 대중에게 알려주면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했다.

망국의 울분을 토로하고, 독립의 희망을 간절하게 표현하면서 지식인은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선구자로서 인정받았다. 더구나 위기상황 돌파의 유력한 방법으로 교육을 통한 체제 갱생을 강하게 주장함으로써 지식인은 자신의 재생산 기반을 쉽게 마련할 수 있었다.

해방이 되자, 그동안 민족독립의 공통분모 아래 억눌려있던 지식인 집단의 다양한 노선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당시의 냉전 상황에 따라 좌우의 극단적 대립을 보이면서 지식인은 양극화되었다.

이런 대립은 결국 한국전쟁으로 나타났고, 휴전과 더불어 남쪽과 북쪽의 체제는 각각의 이데올로기를 섬기면서 서로 이질적 이데올로기의 배제와 탄압에 골몰했다. 우파의 반공 이데올로기가 지배하게 된 남쪽의 경우 지식인 집단은 민족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북쪽과의 경쟁에 적극 참여했다.

좌우의 민족통합 이데올로기가 억압된 상태에서, 1970년대의 지식인들은 한편으로 경제성장을 위한 개발독재의 옹호, 다른 한편으로 보편적 인권과 민주화 지향 노선으로 나뉘어 복무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하여 대부분의 지식인은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화 노선의 역사적 타당성에 동의하게 되었다.

민주화 노선이 대세를 점하기 시작한 1987년부터 지금에 이르는 20년 동안 많은 지식인들이 인권과 민주화의 명제를 확산시키는 작업에 주도적으로 가담했고, 그 명제의 안정적인 정착과 함께 그동안 상대적으로 억압되었던 민족 통합의 이데올로기도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의 차이를 넘어서서 민족 통합을 이루려는 이와 같은 남쪽의 시도는 동유럽과 소련의 해체, 중국의 급속한 개혁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던 북한의 모험주의를 견제하고, 새로운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요청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이처럼 민주화와 민족 통합을 동시에 이루고자 노력했고, 지식인의 담론도 대체로 이런 방향에 호응했다고 볼 수 있다.

노무현 정부의 시기에는 인권 보장과 민주화의 장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고 정착되었다. 언론에 대한 권력의 직접적 통제도 사라졌고, 그동안 금기 영역이었던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비판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공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이 불편함을 토로할 정도였다.

그동안 지식인 현실 참여의 주요 통로였던 민주화 명제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고, 민족 통합에 대한 전망도 남북 교류의 정책으로 구체화되었다. 하지만 부시 정권의 북한 퇴출 압박에 북한이 핵개발로 맞서면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었다. 이런 국제정세의 변화를 계기로 하여 남쪽과 북쪽의 대결을 주장하며, 민족 통합의 지향을 견제하는 담론이 부각되었고, 이른바 ‘신우파’라는 세력이 형성되었다.

민주화의 실현과 정착에 따라 지식인의 민주화 명제는 구호의 단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취를 위한 것으로 변화되었다. 민족 통합의 명제는 정부의 주도 아래 검토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 ‘신우파’의 미미한 견제만 보일 뿐이다. 민주화의 명제가 현실화되고, 민족 통합의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진행되면서, 이를 맹렬하게 요구하던 지식인은 담론의 초점을 잃고 새로운 열정을 찾아 헤매고 있다. 더구나 공산주의가 몰락한 국제환경의 변화와 더불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한국 사회가 강제로 포섭된 사건은 지식인의 위기의식을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여러 이데올로기가 각축하는 가운데 스스로 보편성을 구현한 존재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지식인이 이제 신자유주의의 나팔수로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세계적인 ‘투명’ 경쟁 체제의 효율성을 당연하게 선전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관점은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역사의 종말을 외치며 자신이 절대 지존임을 자랑한다.

그 헤게모니 체제에 대항하는 지식인은 대안 없이 허풍만 떠들어대는 자이고, 현실성이 없는 자로 취급 받는다. 지식인의 상상력은 대항 체제를 만들어내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공장 체제 안에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써야 한다고 선전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식인의 전통적 권력도구였던 글쓰기도 점차 힘을 잃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문자시대가 가고, 새로운 구술시대와 영상시대가 오고 있는 마당에서 지식인은 자꾸 낯선 곳으로 몰리고 있다. 이전에는 ‘감히’ 명함도 못 내밀었던 자들이 지식인의 독점 영역에 침입하여 ‘신지식인’임을 주장한다. 그에 따라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구지식인’으로 치부되는 형편이 된다. 보편적 지식인의 요새였던 대학의 변신도 현저하다.

대학도 수요와 공급 법칙의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대학의 지식인은 상인(商人)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 지식인은 시대의 방향을 이끄는 선구자가 아니라, 문화상품을 만들어 파는 샐러리맨의 처지가 된 것이다.

지식인은 더 이상 자유롭고 독립적인 사고를 자랑하지 못한다. 그들의 지식은 문화 콘텐츠 개발에 연관될 경우에만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적 동질성도 더 이상 확보될 수 없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들의 기반인 글쓰기의 위상 변화에 보이는 그들의 당혹감일 뿐이다. 그들의 옛 열정은 사그라졌고, 그들의 상징권력은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기 때문에 바야흐로 지식인의 위기가 설왕설래되고 있다.(장석만 충간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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