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Ritournelle > * 민노당 대권 후보 3인방 집중 분석 #1 : 권영길 후보

      레디앙이 민주 노동당의 '유력 대권 후보 3인방'(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게 어패가 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민중의 희망, 민중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날까지)의 정치적 취약점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재미있는 기사를 냈다.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후보는 권영길씨다. 벌써 3번째 대권 도전이라니 믿기지가 않고 세월이 무상하기까지 하다.

 

* 레디앙(207. 5. 16) / 너무 신중한 삼수생, '안주'하고 있나
[그들의 약점①-권영길] 진보대연합 성공 여부 약점 극복 키워드

민주노동당 세 후보의 약점 또는 단점을 살표보는 일은 쉽지 않다. 지지하는 쪽은 감추려하고 경쟁 진영은 강조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1백% 객관적 평가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레디앙>이 약점 또는 단점이라는 문패를 달고 이들을 살펴보려 한 까닭은 후보들의 약점에 대한 솔직하고 다양한 시각과 이를 '방어'하는 쪽의 논리가 부딪치는 어느 지점에서 진실의 편린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객관성의 확보는 아니지만 객관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유익한 정보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주>

진보 진영의 터줏대감.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 예비 후보를 소개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언어는 없다. 이 표현 속에는 권 후보를 대변하는 안정감, 신뢰감, 따뜻함 등이 총체적으로 집약돼있다. 이를 포괄하는 권 후보의 트레이드마크는 '신중한 리더십'으로 집약된다. 이에 대해 박용진 전 대변인은 권 후보에 대해 "침묵으로 말하고 의지로 실천한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실제 권 후보의 '신중한 리더십'은 수많은 갈래의 진보 진영을 한 조직 안으로 끌어안을 때 마다 십분 발휘되며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냈다. 1997년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에 맞서 정부 수립 후 최초 정치 파업을 이끌어낸 것을 시작으로 1988년 언론노조 설립, 1995년 민주노총 설립,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등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의 전면에는 권 후보가 있었다. 

안정인가 안주인가, 미덕이 구태로

   
  ▲ 자료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그러나 권 후보의 '한계'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현재'에 주목한다. 현재 봉착한 민주노동당의 '위기'가 권 후보의 '한계'와 맞닿아 있다는 관점이다. 한 최고위원은 "위기를 맞아 무력감으로 정체돼 있는 당의 오늘이, '안정'이 아닌 '안주'하는 권 후보의 그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당의 혁신을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 당직자도 "정치적 지분이 적은 진보정당에게 안정감도 중요하지만, 지금 절실한 것은 이 위기를 타개해 낼 돌파력과 고립을 벗어나기 위한 공세적인 역동성”이라며 "지금까지 보여준 권 의원의 '좌고우면' 리더십만으론 결코 당의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듯 당의 혁신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권 후보의 미덕인 '안정'과 '신중함'이 '안주'와 '좌고우면'이라는 '구태'로 비춰지고 있다. 특히, 이번 대선 출마 선언과 관련해 권 후보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는 '좌고우면' 성향에 '쐐기'를 박는 사례라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어 권 후보의 또 하나의 아킬레스건은 정치부 기자들이 가장 많이 궁금해 하는 '삼수론' 이다. 이에 맞서 권 후보는 '감동론' (삼수 한 사람이 당선돼야 더 감동적이다)에서 시작해 '자격론' (나는 대통령감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을 거쳐 '시대정신론'(빨치산의 아들인 권영길이 평화 통일의 시대정신이다)을 잇달아 제시하고 있지만, 주변의 반응은 여전히 '막연하다'는 게 지배적이다.

이에 권 후보를 애정있게 지켜보고 있다는 한 당직자는 "지난 번 당 대회에서 처음으로 (권 의원이) 삼수를 내세우며 자신이 돼야 더 감동이라고 했을 때, ' 당에서 가장 재미없는 권영길이 처음으로 당원을 웃겼다'(웃음)"며 "무거운 걸 가볍게 잘 다뤄 기대가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 뒤 삼수론에 대해 더 발전된 그림과 명분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 한 인터넷 매체의 정치부 팀장은 "삼수론은 설사 본선에 진출 한다고 해도 계속 끊임없이 권 후보를 따라다닐 것"이라며 "지금의 명분으론 부족하다. 더 구체적인 역할과 밑그림을 제시해 야 한다"고 주문했다.

권 후보의 '삼수'는 자연스레 '나이' 문제로 이어진다. 이를 의식한 듯 권 후보는 기자들을 만날 때면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 있는 한나라당 대선 예비 주자인 이명박 전 시장과 '동갑'임을 자주 강조한다.

권영길과 이명박은 동갑내기

그러면서 권 후보는 삼수 끝에 당선된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네 번의 도전 끝에 당선된 브라질의 룰라,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넬슨 만델라를 내세운다. 그러나 '나이' 문제는 단순히 주민등록번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당내 한 관계자는 "이 문제에 대해 권 캠프가 그저 나이가 많고 적음의 평면적 문제로 단순히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나이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새로운 걸 보여주거나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더 나아가 대통령 후보로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담지 못해 그에 따른 미래의 비전과 내용이 부족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게다가 권 후보가 먼저 출발한 두 주자보다 '상대적으로' 느린 행보를 보이고 있어 당 안팎에서는 이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보폭이 느리다보니 자연스레 언론 노출의 빈도도 떨어지고, 당내 첫 경선을 위한 '흥행'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극적인 권영길 ... 선배가 먼저 멍석을 깔아줘야

권 후보에게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한 당직자는 "(권 후보의)느린 행보를 보면 우리가 오히려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면서 "후발 주자에다가 (대표를 하느라)개인 의정 활동도 딱히 내세울 상징이 없는 분이 그리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당의 한 관계자는 '선배론'을 꺼내들었다. 그는 "그래도 최소한 '권영길'인데, 처음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선배라면 후배들에 앞서 먼저 멍석을 깔아주고 통 큰 정책이나 공약을 제시하면서 흥행을 몰아줘야 하는 게 맞다" 면서 "지금봐서는 내용이 없는 건지, 아니면 또 특유의 우유부단함을 부리고 있는 건지 솔직히 종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조금 더 솔직하다. 그는 "캠프 내부에서는 경선 당선권에 근접한 것으로 자체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소극적인 행보는)어떻게 보면 당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수 도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 한 인터넷 매체의 정치부 기자는 권 후보의 소극적 행보에 대해 "기자로서 (권 의원 캠프에) 아쉬운 게 있다면, 우리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왜 권영길이 ‘뉴스’가 되지 못하는지 캠프는 한 번 쯤 고민하고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 자료사진=레디앙 문성준 기자
 
권영길의 핵심 키워드는 ‘진보대연합’ - 새로운 대선 구도와 판짜기

이렇듯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권 후보의 약점에 대해 권 캠프 쪽은 공세적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우유부단의 리더십은 이 시대의 갈등을 치유하는 포용의 리더십으로, 삼수론과 나이는 노련함과 연륜으로, 느린 행보는 본선 승리를 위한 권영길의 시간표로 대치시킨다.

권 후보가 이번에 '진보대연합을 통한 진보적 정권 교체를 달성 하는 것'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권 후보는 기자 간담회를 할 때마다 매번 ‘진보대연합’을 강조하며, 선언적 의미를 뛰어넘는 실질적인 행동을 이끌어내겠노라고 강조했다.

즉, 진보대연합의 판을 성공시키는 것이 이번 대선에 나서는 권영길의 역할이자 시대적 명분이라는 것이다. 권 캠프의 한 관계자는 “공약이나 정책이 결코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진보대연합’인데, 이에 따른 권 후보의 행보나 결과가 쉽게 가시화되지 않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에게 가장 절실한 건 위기를 돌파 할 새로운 정치판의 구도와 전망”이라면서 “이번에 권 의원이 나온 것도 그러한 판을 구성하고 짤 수 있는 유일한 ‘적임자’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면에서 권 후보 특유의 ‘신중한 리더십’은 여전히 유효하는 입장이다. 즉, 진보대연합을 이뤄내기 위해 그 어느 때 보다도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이는 권 후보의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과 당의 위기론에 대해 상황 인식은 같이하지만, 그에 따른 해법으로 반대의 리더십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또 권 후보의 편안한 이미지가 주는 익숙함에 대해 캠프 측은 “좌파의 강성 이미지를 희석시켜주는 자산”이라며 “대중 정치인으로서 오히려 더 강조하고 부각시켜야 할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어 캠프 측은 “구체적인 정책이나 공약에 관해서는 5월 말부터 서서히 공개 할 예정”이라며“당이 합의한 경선 시간표를 어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앞서 선언한 두 후보를 기준으로 권 후보가 무조건 느리다고 지적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또 권 캠프 측은 “국민들이 진보에게 원하는 건 신선함이 아니다. 진보 정권도 수권이 가능하다는 저력을 보고 싶어 한다”면서 바로 그 역할의 적임자가 권 후보임을 강조한다.

즉, 권 후보가 필승 카드로 내세우고 있는 ‘진보대연합’의 성공 여부가 그의 약점을 ‘미덕’으로 승화시킬지 아니면, 도태된 ‘구태’로 내몰지 가늠하게 만드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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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ephistopheles > 27년전 역사 그리고 지금..

1980년

5월 17일 (토요일, 맑음)

24시 00분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 시내의 각 대학에 계엄군이 진주하며 학생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5월 18일 (일요일, 맑음)

9시 40분
계엄군이 전남대생 50여명의 등교를 저지했다.
10시 15분
전남대생들이 "계엄해제", "휴교령 철폐"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이자 공수부대원들이 곤봉으로 진압. 이에 학생들이 금난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15시 40분
유동 삼거리에 공수부대가 충돌하면서 진압작전을 개시했다.
19시 02분
계엄사령부는 광주의 통행금지시간을 저녁 9시로 앞당겼다.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3시 00분
증파된 11여단 병력이 광주역에 도착했다.
9시 30분
광주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시위진압에 맞서 누문동 파출소를 불태웠다.
10시 00분
금남로에서 시민들의 수가 점점 불어나면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이 전개되었다.
14시 40분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진압작전을 전개했다.
15시 00분
광주 시내의 기관장과 유지들이 대책회의를 갖고, 시위진압을 완화해달라며 계엄당국에 건의했다.
16시 30분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 부상을 입었다.

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8시 00분
광주시내 고등학교에 휴교조치가 내려졌다.
10시 20분
가톨릭센터 앞에서 시위중이던 남녀 30여명이 속옷차림으로 공수부대원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다.
18시 40분
금남로에서 200여대의 택시가 일제히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였다.
20시 10분
도청을 향하는 시위대들은 금남로, 충정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및 경찰과 대치했다.
21시 05분
노동청 쪽에서 시위대의 버스가 경찰저지선을 돌진하여 경찰 4명이 사망했다.
21시 50분
광주의 실상을 왜곡보도하는 데 분노한 시위대가 광주 MBC건물에 방화했다.
23시 00분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이 사망했다.

5월 21일 (수요일, 맑음)

0시 35분
노동청 방면에서 시위대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을 전개했다.
2시 18분
광주 전역의 시외전화가 단절되었다.
4시 00분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남로로 향했다.
4시 30분
시위대가 광주 KBS건물에 방화했다.
8시 00분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시위대가 20사단 병력과 충돌했다.
10시 15분
실탄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드링 전면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10시 19분
광주세무서 건물이 전소됐다.
11시 10분
대형헬기 1대가 도청광장에 도착했다.
12시 59분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했다.
13시 00분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퍼지면서 공수부대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13시 20분
금남로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에 쓰러졌다.
14시 15분
도지사는 경찰헬기를 타고 시위해산을 종용했다.
14시 35분
시위대가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과 장갑차 수십대를 탈취했다.
14시 40분
시위대가 지원동 탄약고에서 TNT를 탈취했다.
15시 48분
공수부대원들이 시내 빌딩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을 시작했다.
16시 00분
화순, 나주 지역에서 무기를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공수부대와 시가전을 전개했다.
16시 43분
대학생들이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2대를 설치했다.
17시 30분
공수부대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다시 철수했다.

5월 22일 (목요일, 맑음)

9시 00분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이 집결했다.
10시 30분
군용헬기가 공중을 선회하며 경고전단을 살포했다.
11시 25분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을 호소하고, 도청 옥상에는 검은 리본과 함꼐 반기가 계양되었다.
13시 30분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를 방문하여 7개항의 수습안을 전달했다.
15시 08분
서울에서 내려온 대학생 5백여명이 광주에 도착했다.
15시 58분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40분
도청광장에 시체 23구가 더 도착했다.
21시 30분
박충훈 신임 국무총리가 "광주는 치안부재상태" 라고 방송했다.

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떄 흐림)

10시 00분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10시 15분
학생수습위가 특공대를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을 시작했다.
11시 45분
도청과 광장 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가 계시되었다.
13시 00분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을 가해 시민 17명이 사망했다.
15시 00분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고, 계엄사의 경고문 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되었다.
19시 40분
최초 석방자 33명이 도청광장에 도착했다.

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13시 20분
공수부대가 운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을 가했다.
14시 20분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 간의 오인 총격전이 발생했다.
14시 50분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5월 25일 (일요일, 비)

11시 00분
김수환 추기경이 광주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와 함께 구호대책비 1천만원을 광주시에 전달했다.
15시 00분
제 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00분
재야인사들이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1시 10분
학생수습대책위원들이 광주지역 범죄발생 예방, 식량공급, 청소문제등을 논의했다.

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5시 20분
계엄군이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했다.
8시 00분
시민수습대책위원들이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일명 "죽음의 행진"을 감행했다.
10시 00분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4시 00분
학생수습위원회가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금 등 8개항을 요구했다.
15시 00분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가 개최되었다.
17시 00분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이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을 브리핑했다.
19시 10분
계엄군의 공격 가능성이 대두됨에 따라 시민군은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조치시켰다.
24시 00분
광주지역의 시내전화가 일제히 두절되었다.

5월 27일 (화요일 맑음)

3시 00분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4시 00분
도청 주변이 완전포위되었고, 금남로에서는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4시 10분
계엄군 특공대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에게 사격을 계시했다.
5시 10분
계엄군이 도총을 비롯한 시내전역을 장악하고 진압잔전을 종료했다.
6시 00분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방송했다.
7시 00분
공수부대가 20사단 병력에게 도총을 인계했다.
8시 50분
광주지역의 시내전화가 다시 개통되었다.

 

5.18 항쟁당시 165명 사망.
5.18 항쟁 이후 약 376명 사망.
사망자들 평균연령 27.5세.
고등학생 11명
중학생 6명
초등학생 2명


외면하지 마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27년 전 그날의 역사입니다.


2007년 1월 28일, 경상남도 합천군의 군민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황강변 "새천년 생명의 숲"의 새로운 명칭을 "일해공원"으로 확정했다.
日海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아호이다.

믿으세요....
바로 지금 우리의 역사입니다.

 

뱀꼬리 : 일해공원에 관련된 사항을 인터넷을 통해 찾아봤습니다. 군민들의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는 벌인 적도 없다더군요. 군수의 단독행동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하는군요.  과연 합천군수의 뇌구조는 어떤 몰골을 하고 있을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궁금증에 합청군청의 군수 프로필을 봤습니다. 존경하는 인물항목에서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이해가 되더군요.  박여사는 든든한 원군이 있으셔서 좋으시겠어요..

출처를 빼먹었어요..^^ 지식체널 e 라는 책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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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未知生焉知死 > 위기의 탐구자, 가라타니
탐구 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새물결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1.

  본서의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독아론」과 「타자」라는 두 개의 문제로 귀착된다. 이것들은 물론 철학의 영역에서는 데카르트 이후 지치지 않고 반복되어온 진부한 화제에 속한다. 그러나 가라타니의 전략목표는 이것들의 논의에 새로운 논점을 첨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아론」과 「타자」를 둘러싼 기존의 문제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도」하는 것에 두어져 있다. 이 「전도」작업은 독아론의 극복을 내세우면서도 독아론을 재생산해 온 것에 지나지 않는 지금까지의 철학(가라타니는 그것을 「변증법」이라 부른다)의 전면적인 부정으로 직결되고 있다. 가라타니가 비트겐쉬타인과 만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우리는 통상 나와 타자와의 사이에 「언어게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전부터 피아(彼我)의 사이에 공통의 규칙(코드)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라타니에 의하면 이러한 사고야말로 「독아론」의 전형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독아론이란 「나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고방법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견되는 타자는 「다른 하나의 자기의식」에 불과하고, 여기서 행해지는 언어게임은 외관은 어떻든 간에 단지 「자기대화(모노로그)」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는 타자의 「타자성」이 처음부터 누락된 것이다. 현상학을 비롯한 「내성(內省)」을 특권적 방법으로 하는 철학은 「나」로부터 「우리」로의 통로를 확보하려는 것에 불과하며, 결국 진정한 「타자」를 발견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2.

  자기대화의 폐쇄된 영역을 타파하기 위해 가라타니가 요구하는 것은 「말하다 - 듣다」 입장에서 「가르치다 - 배우다」 입장으로의 근본적인 시좌의 전환이다. 소쉬르의 언어학에서 오스틴의 행위론에 이르기까지 「말하다 - 듣다」관계를 기초에 두고, 그것들을 교환 가능한 역할로 간주하는 입장은 결국 「모노로그」에 귀착될 수밖에 없다. 소쉬르의 「랑그」, 오스틴의 「관습」 등은 공통의 코드를 새롭게 설정하는 것에 의해 역으로 「타자」의 존재를 은폐하는 개념장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하여 비트겐쉬타인의 독창성은 규칙을 공유하지 않는 외국인이나 어린아이에게 말을 「가르치다」라는 관점에서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고찰하는 것에 있다. 가르치는 입장에 설 때 우리는 동일한 「의미」나 「규칙」을 아프리오리하게 전제할 수 없다. 오히려 의미이해의 주도권은 항상 「배우는」측의 자의에 맡겨져 있다. 「의미하는 것」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여기서는 「사적 규칙」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때문에 언어게임은 「어둠 속의 도약」(크립키)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는 「공통의 규칙」이 되는 것은 후지혜(後知惠)로서 날조된 사후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확실히 이러한 가라타니의 비트겐쉬타인 해석은 크립키의 규칙수순(規則隨順)을 둘러싼 고찰에 많은 것을 신세지고 있다. 그러나 크립키가 사적 규칙에 관련된 패러독스를 「공동체의 선행성」에 호소하여 해소하려고 할 때, 가라타니는 크립키로부터 결별한다. 비트겐쉬타인의 사적 언어비판을 사회적 제도나 공동주관성의 우위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늘날에는 일종의 「공인된 학설」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가라타니에 의하면 그것은 공통의 의미나 규칙을 「기계장치의 신」으로 무대에 등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며 결국 데카르트의 「신」의 대체물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되었든 간에 그것은 문제의 회피가 아니면 순환논법의 아포리아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3.

  「말하다 - 듣다」라는 관계가 결국은 자기대화(독아론)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하여, 「가르치다 - 배우다」라는 관계는 그 속에 가교설정이 불가능한 심연을 안고 있는 것에 의해 역으로 진정한 「타자」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타자란 공동체의 내부가 아닌, 외부에 속하는 자인 것이다. 이것을 가라타니는 "대화란 언어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자와의 사이에만 있다. 그리고 타자란 자신과 언어게임을 공유하지 않는 자가 아니지 않으면 안 된다"하고 간결하게 요약한다. 물론 이것은 역설 등이 아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근원적인 「비대칭성」은 타자를 타자답게 하는 성흔(聖痕, stigmata)인 것이다. 이러한 「타자」를 가라타니는 키에르케고르의 「예수」개념 속에서 발견한다. 즉, 「절대타자(=신)」도 아닌, 「상대타자(=사람)」도 아닌 「神人」이라는 양의성을 지닌 예수야말로 우리들의 언어게임을 「異化」하는 힘을 갖는 본래의 의미에서의 타자인 것이다.


  가라타니가 비트겐쉬타인과 키에르케고르에서 발견한 것은 이른바 「이인(異人)으로서의 타자」이다. 그것은 공동체의 외부로부터 부지불식간에 도래하고 공동체의 동일성(identity)을 위기에 처하게 하는 폭력적 존재에 다름 아니다. 그것을 「예수」라 불러도, 혹은 「바로바로이」라 불러도 같은 것이다. 플라톤 이후의 철학은 「대화」라는 미명 하에 이 「바로바로이」의 존재를 고의로 은폐하고 배제하는 것에 의해 점차 공동체 내부에 모노로그의 질서를 보지해 왔다. 가라타니가 이의를 제기한 것은 이러한 「모노로그의 질서」 혹은 「독아론적 이성」의 수호신으로서 자신을 바쳐 온 기존의 철학에 대한 것이다.


  「나」와 「공동체」는 대립개념이 아닌 보완개념에 불과하다. 공동체 내부에 안주하는 한, 「내」가 「우리」로 확장된다 해도 그것은 독아론의 꿈을 꾸는 것임은 변하지 않는다. 독아론의 일장춘몽은 타자와의 조우에 의해서만 깨어질 수 있다. 언어에 그 진면목을 묻는 것은 바로 이 장면에서이다. 즉, 「대화」란 공동체와 공동체의 「사이」에서 생기하는 스릴 있는 사건에 다름 아니다. 적어도 가라타니는 비트겐쉬타인의 「언어게임」과 맑스의 「등가교환」 속에서 그러한 「대화」의 있어야 할 모델을 발견한 것이다.

* 蛇足 : 내가 가라타니의 저서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탐구 1, 2이다. 아마 가라타니의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문예평론가에서 비평가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한 부분에서 쓴 글일 것이다. 가라타니 스스로도 자신이 태도의 변경이 이루어졌음을 고백하고 있는데, 나는 거기에서 미답의 영역으로 처음 들어가려는 고독한 가라타니의 그림자를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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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늘빵 > [퍼온글] 피터 싱어 교수 인터뷰

 

피터 싱어 교수 인터뷰(2001년 5월)


   윤리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 짓는 중요한 잣대이다. 그러나 최근 주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을 둘러싼 조건이 급격히 변화하면서 무엇이 윤리적으로 옳은지에 대한 판단이 흔들리고 있다. 인류의 새로운 윤리적 기준을 세우려고 하는 미국 프린스턴대 피터 싱어 교수를 침례신학대 배국원 교수가 만나 그가 주장하는 '실천윤리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편집자)


―당신은 실천윤리학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정립한 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윤리는 당연히 실천을 전제로 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실천윤리학이라는 말의 의미가 모호해집니다. 실천윤리학이란 과연 무엇이며 왜 필요합니까?


"실천윤리학(practical ethics)은 전통윤리학의 한계로 인해 요청됩니다. 현대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낙태·안락사·환경오염·독점자본 등 문제들이 새롭게 등장해서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윤리학은 이런 문제들에 적절하게 대응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것은 윤리학자들이 구체적인 윤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윤리 그 자체의 의미를 질문하는 방법론적 탐구에 더욱 치중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실천윤리학은 이름 그대로 현대인의 윤리적 실천을 목표로 하는 학문으로서 이론적 탐구에 그치는 윤리가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구체적 윤리를 제시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은 다양성과 상대성이라고 말합니다. 상대주의가 지나쳐 허무주의까지 거론되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 윤리가 가능합니까?


"윤리의 전통적 기초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에는 동의합니다. 종교적 권위 혹은 계몽주의의 이성적 권위에 의거한 도덕률은 현대인들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현대인에게 도덕(morality)은 무의미할지라도 윤리(ethics)는 필요합니다. 인간은 반드시 행동을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하고 이는 윤리적 선택과 기준을 요구합니다. 윤리적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기준으로 삼자는 나의 결과주의(consequentialism)는 물론 공리주의로부터 영향 받은 것입니다."


―결과주의를 잘 보여주는 예가 동물 살상에 대한 당신의 반대라고 보여집니다. 사람이 육식을 하는 것이 왜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쓴 '동물해방'의 중요한 논지는 인격체인 동물에 대해 인간이 지극히 비인격적인 살상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더 많고 더 좋은 고기를 얻기 위하여 온갖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사육하고 살육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가축을 기르기 위해 산림을 목장으로 개조하면서 환경을 훼손하게 되고, 또 목장의 가축들은 전 세계 메탄가스의 20%를 배출하여 더욱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동물도 인간과 같은 '인격체(person)'라고 강조합니다. 전통적으로 사람이라고 해석되어 왔던 이 단어(person)를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사물들은 세 가지 범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무감각한 것, 감각은 있으나 자의식을 갖지 못한 것, 감각과 자의식을 가진 것, 세 종류입니다. 이 중에서 마지막 범주에 해당하는 생명체는 모두 인격체(person)라고 나는 정의합니다. 나는 비록 동물학자는 아닙니다만 물고기 등은 두 번째 유형에, 다른 많은 동물들은 세 번째 유형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이 다른 모든 인격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20 세기에 들어와서 남성우월주의와 인종차별주의는 종식을 고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인간우월주의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인격체의 정의는 획기적입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똑같은 정의를 적용해서 당신이 낙태를 찬성하고 불구로 태어난 유아의 살해를 지지한다는 사실입니다. 획기적인 정의가 오히려 엽기적으로 적용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뱃속의 태아는 감각을 느끼지만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두 번째 유형에 해당하는 비인격체입니다. 뇌가 없게 태어난 무뇌아 등 특정한 불구아들도 역시 정당한 의미의 인격체가 아닙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오해하듯 내가 무조건적인 낙태와 불구아 살해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런 가능성을 위한 윤리적 근거가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서두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실천윤리학은 우리 시대를 위한 윤리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요청됩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는 복제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데 정작 실천윤리학자들은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테크놀로지가 너무 빠르게 발달하여 대응하기 숨이 가쁠 지경입니다. 원칙론적 의미에서 인간 복제는 윤리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3대 독자로 태어난 자식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정황에서 복제 결정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것은 복제의 테크놀로지가 일부 특권 부유층에 의해 왜곡되거나 남용될 가능성입니다. 우생학적 방법으로 신귀족주의적 사회계층이 형성되는 등의 부적절한 결과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실천윤리학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국적 기업의 횡포 등 기업 윤리를 바로잡는 일도 심각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역시 올바른 환경 윤리의 정립입니다. 지금 지구는 날이 갈수록 오염되어 가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인간만을 위한 윤리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위한 공생의 윤리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에 대한 경제적 특권을 포기하고 나아가 인간이 다른 종에 대한 지배적 특권을 포기할 때 참다운 공생의 윤리가 수립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배국원·침례신학대교수

chosun.com 2001.05.08


■싱어 누구인가


실천윤리학의 새 지평 개척


   실천윤리학의 세계적인 거장인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현대 사회의 복잡한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분명한 입장 표명으로 유명하다.

   1946년 호주의 유태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싱어는 멜버른 대학을 거쳐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호주 모나쉬 대학에서 가르치다가 1999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생명윤리 교수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고 있다. 현재까지 모두 27권의 저서를 집필 또는 편집한 싱어는 '실천윤리학'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활발한 기고와 강연 활동을 통해서 윤리적 견해를 거침없이 피력해 온 싱어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철학자들 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싱어가 29세 되던 1975년에 출판했던 '동물해방'은 40만권이 넘게 팔렸으며 9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동물 살해을 반대하는 철학적 논증과 더불어 채식주의자를 위한 요리법까지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딱딱한 철학 서적에 식상해 있던 독자들은 삶에 있어서 철학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싱어의 명성만큼이나 그에 대한 비판도 세계적이다. 철학자들은 그가 너무 피상적이라고 비판하고 일부 청중들은 낙태와 안락사를 지지하는 싱어를 인종 청소를 주장했던 히틀러에 빗대어 야유한다. 프린스턴 대학으로 옮길 때 또 한 차례 반대 여론에 직면했던 싱어는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현재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편집 by Ha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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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말은 듣지 않는 노동부 기관, 고용지원센터


필리핀 노동자 3명이 상담소에 찾아와서 월급봉투를 내민다. 작년까지는 근로계약서대로 식비, 기숙사비를 회사에서 부담했었는데, 올해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식비와 기숙사비를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공제하고 있다고 한다. 월급봉투를 보니 사업주부담으로 되어 있어야 할 산재보험금도 공제되고 있었다. 자꾸만 사업주가 말을 바꾼다며, 공제된 금액을 전액 환급받고 회사도 바꾸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사업주는 노동부에 다 물어봤다며 노사 간에 협의하면 되니 새로운 근로계약서를 쓰겠다고 한다. 아니, 새 근로계약서가 있으니 계속 고용하겠다는 식이다. 노동자가 날인도 하지 않은 계약서를 가지고, 노동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했으니 된 거 아니냐는 식이다. 사업주는 일방적인 고지를 ‘협의’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거나, ‘근로계약’이 어떻게 효력을 발휘하는 것인지를 모르는 것일까. 또 노동자 얘기는 듣지 않고 근로계약을 어긴 사업주에게 협의하라고 조언한 노동부는 또 어떻게 된 것인가? 더군다나 최저임금제도의 취지가 노동자의 최저생활보장을 위한 제도임을 생각한다면, 최저임금인상을 이유로 실근로조건을 하향시키는 회사 측의 입장을 노동부가 용인하는 것은 최저임금제도의 취지를 무색케하는 행위이다.

회사 측에 산재보험에 대해서도 물어보니, 사보험으로 상해보험에 든 것이라며, 산재가 났을 때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좋지 않냐고 한다. 공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것인데, 결국 이것은 산재은폐로도 이어질 수 있는 문제이다. 더군다나, 필리핀노동자들은 사보험에 가입하겠다는 동의도 한 적이 없다.

회사 측에 아무리 공제금액 환급과 업체이전을 요구해도 ‘협의’하면 된 거라고만 하니, 우리는 고용지원센터와 노동부에 진정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용지원센터 담당자의 태도가 더욱 가관이다. 김해고용지원센터 직원은 인권모임에게 ‘일일이 다 보고해야 하냐’며 필리핀 노동자들에게 직접 통화하겠다고 했으나, 필리핀 노동자들은 어떤 연락도 받은 바가 없어,  고용지원센터에 찾아갔더니, 담당자는 노동자들은 쳐다도 보지 않고, 사업주 허락은 받고 왔냐? 사업주랑 같이 오라며 문전박대하였다. 필리핀노동자들이 국민연금공단에 알아본 바로는 국민연금마저도 1년이 넘게 공제하고는 단 한 푼도 내지 않았으나 사업주는 오히려 “사업장에 일하는 10명 다 국민연금 안 내고 있다며 필리핀 사람만 차별하는 게 아니”라며 어이없는 큰소리를 치고, 고용지원센터 담당자는 업체이전을 요구하는 노동자에게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공단 가서 알아보라”며 나몰라라 한다. 결국 업체이전은 되었지만, 아직도 체불금품은 남아있다.

 회사에 잘못된 근로계약 관행을 조언하고, 노동자를 홀대하는 고용지원센터가 과연 노동부 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불어사는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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