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마르크스-강유원-보르헤스

"여러 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한" '비정규직' 철학박사 강유원의 신간이 출간됐다.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이론과실천, 2006)이 그것이다. 흔히 '경철수고'라고 불리던 책인데, 지난 1987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김태경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던 책이다. 그때 분량은 151쪽이었는데, 이번에 나온 번역본은 229쪽이다. 목차로 봐서는 후주의 분량이 많아진 탓인지 책의 판형 때문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아직 책을 직접 보지 못했다).

이 '경철수고'와 관련하여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국역본이 아니라 펭귄판 <초기 저작선(Early Writngs)>(1992)인데, 이 영역본의 분량으론 120쪽 가량이다. 책은 재작년에 모스크바대학의 구내 헌책방에서 50루블(당시 환율로 2,000원)에 구한 것이다. 국역본과 영역본의 표지를 나란히 놓고 보니까 마르크스의 사진이 비교될 수밖에 없는데, <공산당선언>이 발표되기도 전인 1844년에 나온 '경철수고' 자체가 청년 마르크스(1818-1883)의 저작인 만큼 영역본의 사진이 보다 어울려 보인다(그러니까 마르크스가 만 26세에 쓴 글이다).

 

 

 

 

짐작에 1841년에 쓴 박사학위논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그린비, 2001)를 제외하면 가장 젊은 시절 마르크스의 단행본 저작이겠다. 참고로, 김태경 번역본은 절판되었고, 박종철출판사에서 나온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1997)에는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가 발췌돼 실려 있다.   

신간의 출간과 관련하여 '강유원'을 검색해보다가 발견한 글은 재작년 교수신문에 실렸던 한 칼럼이다('독서유감'이란 제하에 당시 대학강사이던 강유원의 연재칼럼이 게재된 바 있다). '소설읽기의 괴로움'이란 제목이 달려 있으니 눈에 띌 수밖에 없는데 이 깐깐한 서평가에게 '소설읽기의 괴로움'이란 '철학읽기의 즐거움'이 갖는 이면이 아닐까란 생각도 들었다. 그의 '서평들'을 읽는 데 참고가 될 듯하여 옮겨놓도록 한다. 읽고나서 남는 게 없기 때문에 소설은 읽을 게 못된다, 그나마 보르헤스의 문학론 정도는 정보량이 많아서 읽을 만하다, 라는 게 대략적인 요지이다.  

교수신문(04. 04. 09) 소설읽기의 괴로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끝까지 읽지 못했다. 그의 다른 대하소설들 ‘아리랑’이나 ‘한강’도 마찬가지다. 대하소설, 견뎌내기 힘들다. 아무리 얇아도 소설 읽긴 너무 힘들다.

소설 읽기가 힘든 이유는 첫째, 소설은 논리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종잡을 수가 없다. 대강이라도 앞을 예측하지 못하는 건 불안만 안겨줄 뿐이다. 영화를 보러 갈 때도 미리 스토리를 다 알아야 하며, 유념해서 봐야 할 장면들을 챙겨서 가는 나로서는 소설의 이러한 돌발성을 감당하는 게 상당히 힘든 일이다.

두 번째로 소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읽고나도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진한 감동을 남기지 않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지만, 글쎄 그렇게 남은 감동이 도대체 내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별로라는 대답이 저절로 나온다. 오히려 내가 소설을 읽고나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그 소설에 아주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을 때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판타지 문학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이것만은 꼭 읽어야겠다 싶어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붙잡고 낑낑대다가 결국 손에서 놓고 말았다. 뭔 책인들 제대로 읽었겠는가마는, 어쨌든 판타지 문학은 남는 거 없고 시간낭비에 작가의 상상력을 따라가지도 못하는 내 빈곤함 때문에 늘 실패로 돌아간다.

보르헤스는 톨킨과 마찬가지로 한참 '유행'할 당시, 한번 읽어보기나 해야겠다 싶어서 잡은 것이었다. 그런데 톨킨의 책을 내팽개쳤다면 보르헤스는 그러지 않았다. 보르헤스가 뭐 대단한 소설가여서가 아니라 그의 소설들은 짧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르헤스를 그 뒤로 계속 읽은 것은 그 소설들의 짧음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바로 그의 소설들이 재미없다는 것을 느꼈고, ‘허구들’(녹진 刊), ‘불한당들의 세계사’(민음사 刊), ‘셰익스피어의 기억’(민음사 刊)만을 읽고 말았다. 역시 소설은 소설인 것이다.

나에게는 보르헤스가 소설가로서가 아니라 문학과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매력이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 보다는 문학론, 책 이야기에 관한 책은 반드시 사서 읽게 된다. 그의 이런 책들은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정보가 풍부한 책들인 셈이다.

‘칠일 밤’에 들어있는 이야기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에서 그가 이야기하는 일곱 개의 주제들 중, '신곡', '천 하룻밤의 이야기', '카발라' 등은 오랫동안 날 매혹시켜온 주제들이다. 소설이 아니니 앞에서부터 읽지 않아도 그만이고, 그 주제들만을 골라서 읽어도 무방하다. 그러는 가운데 만나게 되는 몇몇 구절들은 나를 더없이 흥분시킨다.

이를테면 이런 것, "우선 헤로도토스의 ‘역사’ 9권에서 머나먼 이집트의 존재에 대해 밝힌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머나먼'이라고 말한 것은 공간은 시간에 의해 측정되고, 여행은 그지없이 위험한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들에게 이집트라는 세계는 가장 오래되고 위대한 세상이었고, 그들은 이집트를 미스터리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공간은 시간에 의해 측정된다"는 말에서 나는 '현대의 시공간 압축'을 떠올리면서 그 말을 음미하며, 선진국 이집트를 동경했던 플라톤을 생각한다.

또 이런 것. "그러나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적어도 괴테의 나선형식 진보를 믿습니다." 여기서 나는 괴테와 헤겔이 동시대인이었으며, 헤겔의 변증법적 전개가 나선형이었음을 상기하면서, 또는 칼 뢰비트의 ‘헤겔에서 니체에로’의 내용들을 이어 붙이면서 텍스트를 즐긴다. 어디선가 보르헤스가 말했듯이 책들끼리의 대화가 내 머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과독한 탓인지 내게 이런 즐거움을 주는 한국 작가는 아주 드물다. 당대의 소설가라는 사람들이 신문에 덜 익은 정견이나 발표하고, 무슨 정당에 가서 공천 심사나 하는 건 본 적이 있다. 이제 그런 거 그만하고, 일단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에 들어있는 '소설가가 작품의 전면으로 나설 때'를 읽은 뒤, 방에 들어  앉아서 공부들이나 좀 했으면 싶다.(강유원 / 동국대 철학)

06. 12. 21.

 

 

 


P.S. "무슨 정당에 가서 공천 심사나 하는" 작가가 알다시피 작가들의 공부방을 마련해놓고 강유원 이상으로 '교양'을 강조해마지 않는 소설가 이모씨라는 건 아이러니컬하다. 여하튼 이 칼럼은 '서평가' 강유원에 대해서 많은 걸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기에 유용하다. 거기에 덧붙여 읽어볼 만한 것은 서평집 <주제>(뿌리와이파리, 2005)의 서문이다(이 책은 얼마전 한겨레 고명섭 기자의 <담론의 발견>(한길사, 2006)과 함께 한국출판평론상을 수상했다. '출판평론'이란 이 경우에 '서평집'을 말한다).  

"내가 보기에 세상에는 '책'이 몇 권 있다. 아니 다섯 권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 <오디세이아>와 <오이디푸스 왕>, <신곡>과 <정신현상학>. 이 책들 중에서 <정신현상학>을 제외하고는 원어로 읽어보지 못하였다. 죽기 전에 진심으로 기원하여, 다음 생에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두 권 정도 더 읽어볼 수 있을 듯하다. 다시 또 죽은 뒤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나머지 두 권을 읽어보겠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보르헤스의 문학을 평하여 '진지한 농담'이라고도 하지만 이런 '소망'이야말로 진지한 농담의 전형 아닌가? 그의 분류를 그대로 적용하자면, '강유원 서평집'이란 부제를 달고 '니 주제를 알라!'란 표어를 내세운 이 서평집에서 그가 다루고 있는 책들은 <신곡>을 제외하면 모두 '책 아닌 것들'이겠다. 그러니 "여기에 묶인 글들은 주석이나 해설이나 베낀 것에 대한 하찮은 푸념일 뿐이요, 주석도 해설도 베낀 것도 아닌 것들에 대한 비웃음이다."란 자평은 액면 그대로 접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푸념과 비웃음에 또 '출판평론상'이란 게 주어졌으니 이 또한 고난도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고. 초급 아이러니스트인 내가 명함도 못내밀한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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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프로젝트 - 얼렁뚱땅 오공식의 만화 북한기행
오영진 지음 / 창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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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다닐때, 우리는 주사파를 조롱하고 비웃었다. 공부 좀 하라고, '아직도' 주체사상이냐고. 주사파로 묶일 수는 없지만, 소위 NL세력들에 대해서도 '통일'을 항상 소리 높여 부르짖는 그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북은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특별히 '해방'되어야 할 객체도, 우리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체'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별 관심 없었다. 타자. 사회주의 국가도 아니요, 남한 자본주의 모순을 극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주체는 더욱 아닌. 타자.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계기는, 대학원에 들어와서 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 때문에 금강산 관광 관련해서 간사를 맡게 되면서부터이다. 금강산 관광을 준비하며 북한의 까다로운 태도와 외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날카로운 감정들을 새삼 느끼면서, '북한'이라는 미묘하고도 까다로운 주체에 대해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록 제한되고 통제된 금강산이나마, 그 곳을 밟았을 때. 김정일, 김일성의 이름이 붉은 그야말로 '용사비등'한 문체로 곳곳의 바위와 건물들에 새겨져 있는 땅에 섰을 때. 그들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이야기를 걸고, 조금은 마른 북한 남자와 조금은 촌스러운 북한 여자들과 만나게 되었을 때. 그 때의 충격! 북한이라는 것은 남한을 전제해야만 존재하고, 남한은 북한을 전제해야만 존재한다는 것. 논리적으로도 '북'과 '남'은 떼래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 '우리'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 언어 민족주의의 '위대한' 힘이여.

남한에서 차로 불과 30여분 가서 북에 도착할 때 흘러나왔던 '방갑습네다' 노래는 철책선과 군인들의 살벌한 경계에 뛰던 가슴을 또 다르게 움직였고, 북에서 출발할 때 '다시 만날 그 날까지'의 가사가 가슴을 때렸다.

그랬던 북한. 또 훈련소 입소 때, 하필이면 그 때, 북한의 '핵실험'이 실행되어 비상이 떨어졌고, 하필 그날 야간행군을 끝내고 불침번을 서다가 졸았던 때, 중령이 시찰을 돌아서 걸리게 된 훈련병 나.

군에 있을 때, 북한은 악마이고 전쟁 외에는 알지 못하며, '미친놈'들이니 이제 갈 때까지 간 거라는 '세뇌'에 지쳐갔다. 북한의 '민중'들은 한 없이 가까우면서도, 한없이 먼, 그래서 정말 공포의 대상인 미지의 존재로 각인되어 졌다.

그리고 얼마 전, 중학생과 고등학생에게 논술을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북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었다. '불쌍한 나라'라고. 얼마 전에 있었던 핵실험이나 2002 월드컵 시기의 '서해교전'은 그들의 기억 속에 없었다. 한없이 불쌍한 나라지만, '타자'. 그들의 인식은 내 학부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북한에 사는 소시민들의 일상사. 일상을 통해서만이 '사람'됨이 드러나고 구성된다고 할 때, 정말 이 책은 '북한'의 소시민들을 잘 그려낸다. '북한'이 '타자'가 아닌 '우리'로 드러난다. 공포나 연민의 대상이 아닌, 대화와 일상을 공유하는 대상으로.

물론 북한은 그러한 대상만은 아니다. 대미관계나 미국의 압박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안온하게 살고 있는 남한의 소시민들을 압박한다. 2002 서해교전에서 국가장치에 의해 죽임을 당한 병사들은 죽어가며, 서로를 죽여가면서 '국가'라는 이름의 대리전쟁을 치른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인민'들은 다시금 '남한' 또 '북한'으로 호명되며 이는 다시 '북한-빨갱이 미친놈', '남한-미제의 압잽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각인된다. 우리는 다시 '우리'됨을 그치고 서로의 철책선을 상기한다. 북한과 남한으로 존재한다.

결국 문제는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기보다는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로 물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라는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 인민은 '남한'이라는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 국민들과의 특정한 관계 속에서 특정한 성질을 갖는 대상으로 드러난다. 그럴 때, 이와 같은 책의 역할은 '북한 인민의 일상'과 '남한 소시민의 일상'이 만나는 점에 있어서의 '북한'이라는 대상. 그 따뜻한 공유지점들과 소중한 다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남/북이라는 이데올로기로 호명되지 않은 균열지점들을, 하나의 인간과 또 다른 인간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이것이 '북한'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의 하나로 기능해 북-남, 남-북 관계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어 주기를. 아니, ‘북한’ ‘남한’으로 존재하는 것을 멈추고, 함경도, 황해도, 평양의 ‘우리’를 찾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결국 '우리'가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괴물인지, 동포인지가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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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arvey, Paris, Capital of Modernity(2003), 3~7

3. Prologue

4. The Organization of Space Relations

5. Money, Credit, and Finance

6. Rent and the Propertied Interest

7. The State

3. Prologue

1부가 전체 책의 서론격이라면, 이제 2부(Materializations: Paris 1848-1870)는 본격적으로 오스망화(근대화)되었던 시기의 파리를 다루고 있다. 1부가 Representations: Paris 1830-1848이라면 이제는 Materializations 된다는 것. 옮긴이(김병화)는 이를 각각 ‘묘사’와 ‘물질화’로 옮기고 있지만, Representation은 ‘상상’혹은 ‘재현’으로 옮기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representation-> materialization 으로 이행한다는 것을 살리려면 상상-> 물질화(실현)의 과정인 셈.

1848-1870은 루이 나폴레옹 3세가 공화국 대통령(1850~52), 황제(1852~71)로 재위했던 시기이며 오스망이 1853-1870년까지 파리의 도시계획을 책임지고 실행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1부에서 살펴본 1830-1848시기는 1830혁명으로 시작되어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기까지의 시기로 이 때 또한 기존의 사회-경제적 불만들이 누적되어 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이 시기에 혁명으로 해결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이 이제 나폴레옹 3세 정권에게 이행되게 된 것이다. 1)

도시를 옥죄고 있는 또 다른 족쇄는 실질적으로는 18세기적 구조 그대로인 제조업, 금융, 상업, 행정, 노동관계들을 지배하는 사회 관행과 사회 하부구조였으며, 이런 활동들을 제약하고 있는 여전히 주로 중세적인 물리적인 하부구조(medieval frame of physical infrastructure: 결국 이 물리적인 infrastructure에 대한 관심이 하비 책을 특징짓는 요소일 것이다. 이 infrastructure을 ‘하부구조’로 번역하는 것도 조금은 미스다. 하부구조라는 용어는 당연히 맑스적 의미에서 읽히게 될 수밖에 없다. 인프라 구조나 사회간접자본(?) 등으로 번역해야 옳지 않았나 싶다. 그것이 더 하비적 맥락에 맞을뿐더러 쓸데없는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역시 족쇄로 작용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7월 왕정 기간 동안 도시의 쇄신에 대한 이야기가 무성하게 나왔고 이따금씩 실제로 시도되기도 했지만 파리는 짓눌려 있는 상태였다. (143)

이러한 infrastructure는 ‘새로운 산업도시에서도 나타나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효율적으로 되어가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조직과 양립할 수 없었다’

자본 축적이 요구하는 새롭고 엄격한 수준을 충족시킬 만큼 효율적으로 파리가 움직이지 못한 정도에 비례하여 1847년에서 1848년 사이의 위기 동안 느껴진 고통은 배가되고 연장되었으며, 회복을 꾀하려해도 온갖 장애물이 널려 있었고, 정계와 문화계가 하는 일이라고는 의심과 혼란과 공포감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어서 문제가 더욱 복잡해졌다. (145)

결국 자본의 근대적 운동 방식(이윤 추구)에 방해되는 도시 구조는 당대의 상황을 읽고 이에 기민하고 정열적으로 대응한 오스망에 의해 변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제2제정의 18년간을 하비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그 기간은 지독하게 진지한 국가사회주의 형태, 즉 경찰 권력과 인민주의 기반을 가진 권위주의 국가의 실험이었다. 그런 실험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것도 전쟁과 불화로 인해 몰락했지만 그 기간은 강력한 노동 규율의 부과와 자본 순환의 기존 규제에서의 해방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정확하게 어떤 새로운 사회적 실천, 어떤 제도적 틀과 구조, 혹은 사회적 투자가 제대로 작동할지가 분명하지 않았다. 그때 제2제정은 자본주의, 즉 그 안에서 다양한 경제적 정치적 이익들이 의식적으로 이런저런 장점이나 해결책을 추구해보지만 자기들의 행동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에 얽매이는 일이 너무 잦은, 까탈스러우면서도 급속히 성장하는 자본주의에 적응하려고 분투하는 단계에 있었다.

황제와 자문관들이 파리를-그 삶과 문화와 경제를-그것을 까마득한 과거에 너무 답답하게 붙들어 매고 있는 규제들로부터 해방시킬 방법을 찾아나선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였다.(147~148)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이 본질적인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이 문제들에 대한 대응을 모색하게 했다. 이것이야 말로, 자발적 ‘근대화’의 고민과 면모들이며, 식민지 조선이 ‘주체적’으로 궁구하지 못했던, 맞닥뜨리지 못했던 문제들이다.

목적과 수단의 문제가 있었고, 개인의 이익과 자본 순환과 관련된 국가의 적절한 역할이 무엇인가, 노동시장과 산업 상업 활동이나 주거와 사회복지의 제공에 국가가 어느 정도로 개입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였다. 무엇보다 아직도 강력한 상류 부르주아들의 완강한 저항과 부딪히지 않으면서, 또 겉보기에는 안정되게 뿌리박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한계상황으로 내몰릴 위협 아래 놓여 있는 중간 계급의 불안정성을 더 크게 만들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을 노골적인 봉기로 내몰지 않고 파리 경제를 다시 확고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황제가 처음에는 그처럼 방자하게 대하고 멸시하는 듯이 의표를 찔렀던 계급세력에게 궁극적으로는 포로가 된 사람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148)

결국 일반화를 최종 목적으로 하는 역사학자답게, 하비는 오스망과 황제 또한 ‘계급세력의 포로’, 즉 역사의 주체로서의 ‘계급’과 역사의 동력으로서의 ‘계급’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오스망의 파리는 1870년에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뒤 30년이 지난 뒤에도 그가 규정한 노선에 따라 개발되었음으로 ‘오스망화=파리의 근대화’라는 명제는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하비의 저술이 문학도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경제적 심급과 ‘역사-지리적’변모가 의식과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며, 실제로 이에 대한 연구를 실행한다는데 있을 것이다.

제국 치하의 18년은 오스망의 작업이 도시의 물리적 바탕을 절개하고 개조하는 과정에서 파리인들의 의식 속 깊이 각인되었다. (149)

하비가 2부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시기 파리의 ‘역사-지리학적 변화’이며 이는 ‘도시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내적인 작동과 관계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하비는 각기 주제들은 모두 다른 주제들이 없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이 상호관계를 보여주려 한다. 특히 이 글이 구체적으로 다룰 5~7장인 ‘금융 자본, 부동산 이권, 국가’는

사회적 생산물이 이권과 임대료와 세금으로 분배된다고 하는 이론의 일부로서 함께 연결된다. 분배에 대한 고려가 생산보다 우선시되는 점이 좀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마르크스가 언급했듯이, 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극히 중요한 “원초적 생산-결정 분배”라는 것이 있다.(번역이 약간 이상한데 “an initial production-determining distribution"으로 ”생산을 원초적으로 결정짓는 분배”정도로 이해된다.) 이 경우에는 대체로 새로운 공간관계(내면적, 외면적 모두)는 국가와 금융자본과 토지 이권의 연정聯政에서 창출되었으며, 그들 각각은 도시 변형의 과정에서 시행되어야 하는 과제를 위해 고통스러운 상호적응 과정을 거쳐야 했다는 사실에 따라 위치가 설정된다. 물론 국가는 단순한 분배 도구 이상의 존재이며(비록 세금이 없으면 별 도리가 없지만), 국가 활동의 다른 측면들, 적법성과 권위도 여기서뿐 아니라 뒤의 적절한 지점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154)

4. The Organization of Space Relations

*생시몽주의: 19세기초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드 생 시몽은 빈민의 처지를 염두에 둔 '새로운 그리스도교'를 역설했다. 생 시몽파는 화합의 정신이야말로 사회발전의 기초이며, 여기에 종교가 주된 역할을 한다면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개인주의와 적대감정을 점차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은 자본이 유산계급의 사욕에서 벗어나 사회의 의지대로 처분되기 위해서는 상속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시몽파는 이러한 조처가 빈민들에 대한 착취를 효과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empas 백과사전)

철도의 확충과 도로망의 신설 등의 공간관계 변화에 따라 자본의 순환 시간이 짧아지고, 생산과 분배, 두 분야 모두에서 대기업 경영의 가능성이 열렸다. 오스망은 도시 구역 내에서 상품과 인간의 유통 능력을 개선시켰다. 이러한 오스망의 개혁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자본의 ‘요구’에 따르는 수동적인 개혁이었다.

오스망은 토지와 부동산 시장의 운영과 산업의 입지와 노동과정과 시장과 분배시스템과 인구 분산과 가정 형성 등의 온갖 변동 양상을 주도했다기보다는 그에 적응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므로 파리의 내부 공간의 개조는 이미 가동되고 있던 과정에 대한 반응이라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그 과정-산업과 상업 발전, 주거에 대한 투자와 주거 공간의 분리 등-이 뭉쳐지고 그들 자신의 궤적을 따라 활동할 수 있게 해주며 도시 진화의 새로운 역사지리학을 규정해주는 공간적 틀이 되기도 했다. (.....) 제국이 살아남으려면 자본과 노동력의 과잉은 기필코 흡수되어야 했다. 파리의 내부 공간을 그처럼 변형시킨 공공사업을 통해 그러한 과잉을 흡수하다보면 건조 환경의 특별한 공간 배치의 건설을 통해 자본이 자유롭게 순환하게 된다. 봉건적 족쇄에서 풀려난 자본은 파리의 내부 공간을 그 자신의 고유한 원칙에 따라 개조했다. 오스망은 파리를 서구 문명까지는 아닐지라도 프랑스에 걸맞은 근대적 수도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본의 순환이 진정한 제국주의적 권력이 되어버린 도시를 만드는 것을 도왔을 뿐이다.(167-168)

오스망은 도시공간을 하나의 전체로서 파악하고 다루었으며, 그 안에서 도시의 상이한 구역과 상이한 기능들은 상관관계를 맺고 활동하는 전체를 형성하였다. 이는 자본이 도시를 그렇게 파악한 것과 관계 깊을 것이다.

공간관계의 재형성과 그로 인해 발생한 공간적 규모의 변형은 도시화 과정에서 수동적 계기가 아니라 능동적 계기로 작용했다. 교통과 운송을 통한 공간의 실제 조직은 모든 역사적 지리적 분석이 반드시 파악해야 하는 1차적인 물질적 사실이다. 파리 안팎에서 이루어진 제2제정의 공간관계의 혁명은 연원이야 그 이전 단계에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1852년 이후에 이루어진 변화의 속도, 공간적 규모, 지리적 확장은 그 이전의 전반적 수준과 차원이 다르다. (172)

5. Money, Credit, and Finance

1851년의 당면 과제는 자본과 노동력의 과잉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 정부는 생시몽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직접적인 정부 개입과 신용 창조와 금유에 관한 구조 재정을 혼합함으로써 과잉 자본과 과잉 노동을 경제 부흥을 위한 기반인 새로운 물리적 infrastructure로 전환하려고 했다. (175)

그리고 이를 보조할 수 있었던 것 페레르 형제들이 ‘소액 저축을 동원하여 장기적 프로젝트를 감당하도록 신용기관들을 치밀한 위계적 형태로 조직하여 저축을 민간 차원으로 확산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금융-정부의 연합. 저축 즉 투자 붐의 근대적 시작.

계획의 실행을 위하 투기적 자본을 끌어 모으지 않는다면 근대성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열쇠는 소규모 실개천 같은 자본을 한데 모아 필요한 규모의 기획에 착수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흐름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 페레르 형제가 하려고 했고, 금융 분야에서 제도적 변화를 통해 달성하려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182)

실제로, 금융이 조금이라도 재편되지 않았다면 애당초 그처럼 빠른 속도로 변형이 진행될 수 없었다. 단지 도시가 돈을 빌려야 했다는 것(뒤에서 다룰 주제)뿐 아니라 오스망의 기획 자체가 그가 열어젖힐 공간을 개발하고 건설하고 소유하고 관리할 재정적 힘을 가진 회사의 존재에 기대었던 것이다. (178)

정부가 세금만으로, 공무원만으로는 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었다. 자본은 정부와 동시에 소시민들의 저축-투자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저축-투자를 하지 않으면 뒤떨어진다는 -손해를 본다는- 생각. 남들이 진보할 때 내가 서 있다면 나는 뒤떨어지는 것.

돈, 재정, 투기는 파리의 부르주아들에게 너무나 큰 강박관념이 되었으므로(“사업이란 다른 사람의 돈이다”라고 아들 알렉상드르 뒤마가 농담했다) 증권거래소는 지주들의 재산을 수없이 집어삼킨 무모한 투기와 타락의 중심이 되었다.(181) (ps. 채만식, 󰡔탁류󰡕에서 미두)

이러한 신용 시스템의 재편은 파리의 산업과 상업, 노동 과정과 소비 양식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모든 사람이 신용 거래에 의존했으니까. 유일한 질문은 누가 누구에게, 그리고 어떤 조건으로 빌려주느냐 하는 점이었다. 계절 실업으로 인해 시달리는 노동자들은 거기에 생계를 의존했다. 소규모 장인과 점포주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주문을 처리하려면 신용 거래를 해야 했다. 이 같은 연쇄는 끝없이 이어진다. 채무상태는 모든 계급과 모든 활동 영역이 당하는 만성적인 문제였다. (183)

신용 시스템은 자본의 연합을 통해 합리화되고 확장되고 민주화되었지만 대개 무절제한 투기와 중앙집중화되고 위계적으로 조직된 시스템 속으로 모든 저축을 흡수해들이는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스템 속에서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화폐권력을 조금이라도 지닌 사람들의 제멋대로이고 변덕스러운 일시적 기분에 더욱 피해를 입기 쉬운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공간관계에서 혁명이 일어나려면 신용 시스템에서 혁명이 필요했다. 그러나 파리 내에서 그 과정은 금융자본과 토지자신의 훨씬 더 긴밀한 통합에 의존하여 진행되었다. (184)

6. Rent and the Propertied Interest

임대료와 부동산 이권이 점차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하여 파리의 공간들이 분절되어 각기 용도에 맞는(높은 임대료를 부과할 수 있는 순으로) 구역들로 나뉘기 시작했다. 이제 파리의 부동산은 재정적 자산으로,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변모 되었다.

파리의 부동산은 점점 더 순수한 재정적 자산으로, 자본의 일반적인 유통과정에 통합된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전적으로 지배하는 의제자본 형태로 평가되었다.(185)

중하류층가 소부르주아들은 부동산 소유권에서 계속 배제되었고, 그들의 자리는 지주와 대상인들로 이루어지는 상류층 부르주아가 차지했다. 그러한 변화는 수공업과 소생산자와 점포주가 대상인과 금융에 종속되는, 상업, 금융, 제조업 구조의 중대한 변화와 일치한다. 모든 사회 집단들이 점점 더 투기를 위해 부동산 매매에 기꺼이 참여하고자 했다는 증거도 있다.

소유권은 분산되기 시작하여 계속 그러한 상태가 유지되었다. 도마르의 집계에 따르면 1846년에 평균적 소유자는 부동산 두 건만을 관리했고, 이들 가운데 개별적으로 대규모의 부동산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188)

파리의 부동산은 주식 시장의 전형적 특징인 불안정성으로부터 보호되는, 안정적이고 수익이 높은 투자처였다. (193)

이러한 인식변모의 와중에는 오스망이 파리라는 도시를 전체로 보고 이를 구역별로 운용하려는 그의 인식과 정책이 있다.

파리를 변형시키려면 자본을 동원해야 하는데, 그것은 매매뿐 아니라 전통적인 부동산 소유자들의 사생활 우선주의와는 상극이며, 집단적 원칙에 따르는 도시공간의 장기적 경영과 철거와 재편에도 투자할 자본이었다. (194)

오스망이든, 상류 부르주아든, 일반적 소시민이든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자본의 순환이라는 기반’에 한데 묶여 있었다.

토지와 건물 자산의 임대료와 가격은 갈수록 현저하게 자본주의적 논리에 기대는 용도에 맞춰 토지를 할당하는 작용을 한다(201)

새로 도로시스템은 공간관계를 체계화하여 토지가격과 용도가 보다 체계적으로 조직된 시스템으로 넘겨주었다.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는 용도는 점차 밀려났고, 감당할 수 있는 용도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2)

좀더 순수한 자본주의적 노선에 따르는 토지와 부동산 시장이 새로운 신용 시스템의 성장에 고무되어 재편성된 현상(좌안에서처럼 전통주의자의 저항 중심도 물론 있지만)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즉 파리 내부 공간의 재편성이 공간을 장악하려는 여러 다른 사용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격 경쟁에 점점 더 예속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 파리의 재건설을 통해 노동과 자본의 잉여를 흡수하는 일은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명백하게 병적이라고 여겼던 온갖 부정적인 결과들-퇴거당하거나 격리되는 일이 늘어나고, 일하러 더 먼 길을 가야 하며, 치솟는 집세와 인구과밀의 환경-을 가져왔다. (205)

이에 대해 이를 오스망-국가의 힘에 의한 일방적 결과인지는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물론 ‘자본’의 운동과정에 따른 결과라고 제출될 것이다.)

7. The State

하비는 당시 프랑스 제국을 ‘국가 기관들이 근대의 요구와 자본주의의 모순점과 보다 밀접하게 조화하는 데 기여한, 프랑스 정부와 정치에서 중요한 변천 단계’로 보고 ‘이 정치적 변천 과정이 파리에서 어떻게 일어났으며, 그 도시의 역사적 지형에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오스망과 그의 파리는 자본의 ‘과잉 축적이라는 거대한 문제를 적자재정을 통해 자체 재정을 충당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했던 한 국가 기구가 결국은 이권을 장악하는 화폐 자본의 순환에 내포된 아슬아슬한 모순의 제물이 되고 만다’. 그 ‘정치 시스템이 이 분야에서 성장하는 자본주의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결국 과잉축적을 해결하는 대외적 방법이 제국주의와 식민지 건설이라면, 내부적으로는 적자재정을 통한 건설경기 활성화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둘 모두가 원활하게 작동할 때, 제국주의시기 근대화는 가능할 것이다. 이는 안으로는 노동자들의 계급적 착취로 인한 자본의 증가와 밖으로는 식민지의 착취로 벌어지는 데, 둘 다 피지배계급의 저항에 맞닥뜨리게 된다. 식민지는 ‘준인간’이었기 때문에 무자비하게 죽이면 됬지만, 어느정도 ‘민주주의’의 역사가 있는 프랑스-파리에서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탄압하는 주체인 병사들 또한 설득되기 힘든 문제여서 결국 파리 꼬뮌으로 나아가고 만다.

이 시기 오스망의 강압적인 감시와 통제, 일방적 선전과 축제와 빵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억누르거나 달래지 못했다. (전두환 정권 시절의 무자비한 노동운동 탄압과 함께 3S정책의 투박함을 떠올리게 한다.)

오스망과 자본의 연합으로 실행된 ‘사회적 재생산 공간의 형성’을 통해 소득계층에 따라 ‘주거가 점점 더 격리되는 현상은 위험하고 범죄적인 계급이 가하는, 실제이건 상상에 의한 것이건 위험으로부터 부르주아를 보호할 뿐 아니라 점점 더 도시를 상이한 사회계급들의 재생산을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결국 오스망과 제국은 실각하고 만다. 파리 꼬뮌의 탄생이 그것이고, 이는 계급적 혁명을 의미한다.

도시 내에서 안정적인 계급 연대를 유지하기가 특히 어렵게 된 더 깊은 불만의 원천이 있었다. 변형 자체로 인해 “오래된 파리”가 사라지는 데 대한 광범위한 향수와 회환(귀족이나 노동자나 모두에게서)이 생겨났고, 이는 가이야르가 대단하게 평가하는 공동체의 상실감을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 낡은 방식과 구조가 뒤집어진 것이다. (.....) 오스망은 파리를 통상적인 의미의 공동체로 보고자 하는 입장에 확고부동하게 반대하고 그것을 “유목민적”인 이익과 개인들이 왕래하여 일체의 고정적이거나 영속적인 의미의 공동체 형성이 애당초 배제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자본주의적 도시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리를 국가가, 국가를 위해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었으며, 이 목적을 위해 그는 선출된 관리보다 임명된 지사의 손에 모든 행정 권력을 쥐어주는 1855년의 정부조직법안을 발의하고 옹호했다. 파리 공동체를 이행기에 있는 것으로 본 점에서는 오스망이 옳았을지도 모르지만, 수도에서 대중 주권을 부정한 것은 수많은 노동자와 부르주아를 코뮌 지지로 끌어들인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오스망이 영구적인 계급 연대를 유지하는 데 실패한 것은 그가 한 일보다는 그 일을 한 방식과 더 많은 관련이 있다. 또 그렇다면 권위주의적인 그의 행정 스타일은 애당초 쿠데타를 발생시킨 상황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그가 자유주의 제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223-224)

결국 자본의 작동방식과 역사발전 과정에 부합하지 못했던 이전 프랑스가 쿠데타를 통해서 무너지고 다시 집권하게 된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망이 근대적 기획에 따라 정부주도의 적자재정 경제정책을 폈지만 이 또한 내부적 한계로 무너지게 되었다. 여기서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은 당연히 오스망 직전과 직후의 프랑스 상황일 것이다.

1)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기까지의 시기에 대한 연구는 하비가 추천하는 마르크스 <1848년에서 1850년까지의 프랑스에서의 계급 투쟁>,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참조 할 것. 전자는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2󰡕, 박종철출판사, 1992, 1~114면. 후자는 277~393면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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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우리시대의 명저 50

연초부터 각 매체마다 책읽기에 유난한 관심들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의 '사회적 독서' 운동에 이어서 한국일보에서는 '우리시대의 명저 50' 시리즈를 연재한다고 한다. '명저'라고는 돼 있지만 목록을 보면, 당대의 베스트셀러들도 많이 망라돼 있다. '명저'라는 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책이란 뜻도 갖는다는 점을 고려한 듯싶다. 아무튼 이 50권에 대한 해제가 다 게재되면 올 한해도 다 가는 게 아닌가 싶다(하냥 섭섭할까?). 50권의 면면들을 구경해볼까라는 '무모한' 욕심도 품어봄 직하지만, 이미 펌글에 도서(상품) 이미지를 집어넣지 말도록 재차 당부를 받은 터라 자제하기로 한다(이러한 펌글도 가급적 자제할 예정이다). 맨숭맨숭하긴 하지만, 목록만을 한번 일람해보는 것으로 '책구경'을 대신해야겠다(시간이 남아서 좋긴 하군).  

한국일보(07. 01. 04) 우리시대의 명저 50

우리 저술의 숲은 건강하고 우람했다. 지성의 숲을 거니는 일은, 굳이 한 그루 한 그루의 결을 더듬고 껴안아보지 않고서도, 황홀하고 뿌듯했다. 책의 전문가들이 전해온 목록의 갈피에서 밀려오던 희열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또 저자와 책이 갖는 이름의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기획팀은 안간힘을 써야 했다. 그 고통마저도 행복했다.

추천ㆍ자문단과 기획팀은 선행 연구로 불모의 땅을 일군 선구적 저서와 학문적으로 고전의 무게를 지닌 책, 지식 대중화를 선도한 책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또 특정 저서의 가치 못지않게 해당 저자가 우리 지성사에 미친 영향을 높이 산 경우도 있다. 시대적 담론과 이슈의 중심에 섰던 문제적 저작들도 놓치지 않으려고 고심했다.

식민지 사관과 실증 사학을 넘어 지배집단의 교체라는 독자적 사관으로 한국사를 정립한 이기백의 <한국사신론>, 고난의 역사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로 나아가고자 했던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서양 신학과 전통 종교사상을 대비하며 우리 문화의 보편적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한 유동식의 <풍류도와 한국의 종교사상>, 재야 학자로서 학문적 엄밀성과 함께 역사의 빈틈을 성실히 메워준 이이화의 <한국사이야기>, 서양고대철학 연구의 수원지로 여전히 마를 기미 없이 푸르게 출렁이는 박홍규의 <희랍철학논고>, 우리 역사에서 ‘자생적 근대화론’ ‘자본주의 맹아론’의 학술적 근거를 실증해 그 문제 의식을 지금까지 이어온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 해당 분야에서 아직도 이들의 업적을 넘어서는 저작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는 김두종, 전상운, 김용준, 유민영 등의 노작들이 그렇게 선정됐다.

암울한 군사독재의 억압을 뚫고 비판적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지성의 균형점을 잡아준 리영희, 1980년대의 질곡에 <민중신학>이라는 독보적인 신학적 응답을 제시했던 안병무, <전태일 평전>으로 1970년대와 80년대 변혁운동의 맥을 이어준 조영래, 마당극이라는 전통 연희의 현대적ㆍ변혁적 연구와 실천으로 당대 문화의 큰 정신을 구축했던 채희완, 억압의 시절을 몸으로 살았고 몸의 고백으로 시대를 움직인 서준식 정수일 홍세화의 저작들도 놓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명저로 꼽혔다.

경제학이 강단을 벗어나 어떻게 현실과 만날 수 있는지를 가슴으로 보여준 정운영의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 고도의 과학 전문 연구분야를 대중적 글쓰기로 선도한 최재천의 <개미 제국의 발견>, 20세기 신화 열풍을 주도한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동양미술의 오주석, 서양미술의 이주헌, 한시의 정민, 미학의 진중권 등은 인문학 대중화의 전범으로 꼽혔다. 또 우리 글과 우리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을 아프게 일깨운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쓰기>, 우리 문학의 오랜 딜레마였던 ‘근대’의 숙제를 성실히 풀고자 한 김윤식 김현의 <한국문학사> 등도 목록에 들었다.

기획팀의 어두운 눈과 선택의 편의로 막판에 누락된 소중한 책들도 수두룩하다. 이들 책에 대한 응당한 예우는 눈 밝은 독자들의 몫으로 넘기고자 한다. 우리는 저자들이 먼저 닦은 저 편한 길을 최대한 힘들여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고자 한다. 인문학을 사랑하는 지성의 독자들과 함께.

● 추천 위원 기고: 무엇이 책을 숨쉬게 하는가

광복 이후 '나라 세우기'와 상응하는 '학문의 토대 쌓기'는 광복 직후의 혼란상과 한국전쟁의 상흔 탓에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김두종의 <한국의학사>, 김원룡의 <한국미술사>, 전상운의 <한국과학기술사> 등이 대표적이다. 수용자, 즉 독자 측면에서 보면 60년대는 전집 출판의 전성기였다. 외판원에게 구입한 문학이나 사상 전집을 거실에 꽂아두는 허영심이 팽배했으나, 그 허영심이란 바꿔 말하면 일종의 지적 허기이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의 60년대는 배만 고팠던 게 아니다.

특기할 만 한 것은 1970, 71년에 나온 김용섭의 <조선후기 농업사 연구>다. 이 책은 우리 역사에서 내발적(內發的) 근대의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써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김현, 김윤식의 <한국문학사>도 김용섭의 연구 성과에 크게 자극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70년대는 근대화의 기치 아래 개발 독재와 정치적 억압으로 점철된 시대였고, 출판과 책도 그러한 시대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나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의 시대로도 불리는 1980년대에는 좌파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많은 지식인들이 정당성 없는 권력의 폭압적 전횡에 맞서며 새로운 사회를 꿈꾸었다. 한완상의 <민중사회학>, 이진경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되찾은 우리 글과 말로 토대를 쌓고 틀을 짓는 시기, 어떤 의미에서는 각 분야에서 개척자적 노력이 요구되었던 시기가 1950, 60년대라면 1970, 80년대는 학문과 출판과 책이 시대와 현실의 요청에 충실히 응답하려 했던 시기다. 무너뜨려야 할 우상도, 싸워야 할 대상도, 이뤄야 할 목표도 분명했던 시대, 그래서 일종의 전선(戰線) 시대라 칭해도 좋을 그런 시대였지만 1990년대가 되면서 전선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잃은 것은 전선이었고 얻은 것은 다양성이었다. 우리 출판과 책의 지형도는 매우 다채로워진 것은 물론 훨씬 더 독자 지향적으로 바뀌었다. 개성 넘치는 문장 스타일, 입말에 가까운 글쓰기, 엄숙한 강의가 아니라 정겨운 수다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저자들이 부각됐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유홍준, <미학 오디세이>의 진중권이 그러했으며,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윤기가 그러했다.

최근 들어와 많은 이들이 책을 걱정한다. 그들이 보기에 독자들은 더 이상 책의 존엄을 경외하지 않는다. 어떤 주제의 얼개와 뜻을 깊이 파고드는 책은 좀처럼 환영 받지 못한다. 책의 위기, 책의 죽음까지 거론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출판과 책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언제나 책은 위기였다. 다만 위기 속에서도 시대의 중추를 정확히 건드리며 한 획을 그은 소수의, 아니 극소수의 책들이 있었기에 책의 역사는 단절되지 않았다.(표정훈 출판평론가)

07.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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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04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만길 등'이라는 표현이 눈에 띄네요. ㅎ 사실 '외'라는 표현은 참여한 학자들의 이름을 생각해봐도 너무 '소외'시키는 것 같아요. 앞으로 공저는 '등'으로 표현하면 좋을 것 같아요.
ㅋ 근데 고미숙 선생의 책이라니! 재미는 물론 있지만, 결국 연암의 글은 '우리시대'가 될 수 없다는 걸까요.
'우리시대'라는 것으로 묶으려는 시도는, 항상 '우리'라는 게 누구일까 궁금하게 합니다.
 
바다로 가득 찬 책 -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민음의 시 137
강기원 지음 / 민음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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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김수영 문학상’이라는 이름이 주는 기대감은 얼마나 큰가, 또 얼마나 자주 그 기대는 배신되는가. 그래도 가끔은 놀라운 시집들이 이 상을 통해 널리 소개되기에 나는 매년 김수영 문학상을 기다린다.

재작년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황인숙 시인의 <자명한 산책>은 그 기다림이 충족이 된 셈이고 작년도 함민복 시인의 <말랑말랑한 힘>은 그저 그런 수준. 역시 매년 <자명한 산책> 수준의 시집이 나온다면, 우리 시단은 놀라울 것이다. 나는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를 것이다, 라고 쓰자마자 이 얼마나 非詩的인 상투적인 거짓말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근래는 매년 한 권 이상씩의 뛰어난 시집들은 나오고 있는듯하다. 소설도 신선한 것들이 도출되고. 21세기 초, 문학이 죽었다, 구태의연하다라고 너무 빨리 단정했다. 조금만 지나자 우리는 박민규, 박형서, 김애란, 권리 등의 신진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시에서는 문태준, 진은영, 황병승 등의 신인들이 등장했던 것.

나는 최근 우리 문학의 '질' 때문에 일반 독자가 우리 문학을 외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문학에서 다른 미디어로 옮겨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일 뿐, 별로 호들갑떨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학은 문학 나름 계속 생산적 변모들을 거치고 있다는 것이 나의 평가. 라디오가 끝내 살아남아 나름의 수용층을 가지고 있듯이. 문학 또한 그러할 것이다.

어쨌든 이 시집은 정말 뛰어난 표제작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런 범작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도 표제작은 정말 환상적인 작품. 이런 작품 하나 있으면, 이 시집은 건진 셈이다.

바다로 가득 찬 책*

네가 한 권의 책이라면 이러할 것이네

첫 장을 넘기자마자 출렁, 범람하는 물

너를 쓰다듬을 때마다 나는 자꾸 깎이네

점점 넓어지는 틈 속으로

무심히 드나드는 너의 체온에

나는 녹았다 얼기를 되풀이하네

모래펄에 멈춰 서서 해연을 향해 보내는 나의 음파는

대륙붕을 벗어나지 못하고

수취인 불명의 편지처럼 매번 되돌아올 뿐이네

네가 베푸는 부력은 뜨는 것이 아니라

물밑을 향해 가는 힘

자주 피워 올리는 몽롱함 앞에서 나는 늘 눈이 머네

붉은 산호(珊瑚)들의 심장 곁을 지나

물풀의 부드러운 융털 돌기 만나면

나비고기인 듯 잠시 잠에도 취해 보고

구름의 날개 가진 슴새처럼

너의 진동에 나를 맡겨도 보네

운이 좋은 날,

네 가장 깊고 부드러운 저장고, 청니(靑泥)에 닿으면

해골들의 헤벌어진 입이 나를 맞기도 하네만

썩을수록 빛나는 유골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너의 너울거림

그 멀미의 진앙지를 찾아 그리하여

페이지를 펼치고 펼치는 것이네, 그러나

너라는 마지막 장을 덮을 즈음

나는 보네, 보지 못하네

네, 혹은 내 혼돈의 해저 언덕을 방황하는

홑겹의 환어(幻漁) 지느러미

*라니 마에스트로(Lani Maestro)의 사진집 제목.

초반에 성적인 은유들도 참신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타인이라는 은유도 뛰어나다.

‘모래펄에 멈춰 서서 해연을 향해 보내는 나의 음파는/대륙붕을 벗어나지 못하고/수취인 불명의 편지처럼 매번 되돌아올 뿐이네’라는 시인의 언어는 얼마나 간절한가. 그 이미지의 놀라움. 타자와의 관계에서 자아는 간신히 ‘대륙붕’에만 도달할 뿐. 타자는 끝없이 깊다. 그럼에도 그러한 타자의 ‘부력’은 한없이 타자의 그 깊이로 자아를 끌어당긴다. 그러한 타자는 바다 속 숨겨져 있는 산호초처럼 아름답기도 하고, 편안한 진동으로 화자에게 쉴 곳을 주기도 한다. 타자의 깊은 속에는 마주대할 수 없을 정도의 공포가 도사리기도 하지만 (해골들의 헤버러진 입) 그 말할 수 없음의 지점에도, 그 균열의 지점에도, 바다는 타자는 끊임없이 파도치며 부드럽게 화자에게 어떠한 파장을 보낸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끈이고 관계이고,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일 터이다.

화자는 그 진앙지, 그 ‘너울거림’의 진앙지를 찾아 ‘너=바다’라는 페이지를 넘겨보지만 끝내 보지 못한다. 그러나 또 본다, ‘홑겹의 환어(幻漁) 지느러미’를. 타자는 기실 ‘너’ 속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 속에도 있었던 것. 혹은 ‘너’ 속의 ‘나’가 만들어 내는 것. ‘네, 혹은 내 혼돈의 해저 언덕을 방황하는’ ‘홑겹의 환어(幻漁) 지느러미’라는 사랑에 대한 아름답지만 또 환상적인. 그래서 공허하고 덧없는 ‘환幻’이지만 그래서 더 애달픈. 그것이 ‘너/타자’와의 사랑 아니겠는가. 우리는 서로 ‘홑겹’의 ‘환어(幻漁) 지느러미’를 보고 있지만, 그러한 환상을 그래도, 같이 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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