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온라인 저널인 '자율평론' 제16호(06. 04. 19)에서 하승우씨의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오해와 차이'를 옮겨온다(필자는 폴 애브리치의 <아나키스트의 초상>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으며, <희망의 사회윤리 똘레랑스>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맑스 새롭게 읽기'라는 기획하에 진행된 강연원고로 보이는데(맑스의 '정치문제에 대한 무관심' 읽기이다), 아나키즘과 관련하여 러시아 인민주의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듯해서이다(오늘날 가장 유명한 아나키스트 지식인으로는 노엄 촘스키와 머레이 북친 등을 들 수 있겠다). 이 참에 나도 한번 읽어보고. 참고로, 인용문 전체에 대해서 따로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나의 군말에 대해서만 (*)를 표시했다. 모든 강조와 이미지는 나의 것이다.  

1. 들어가며
오늘 같이 얘기할 텍스트는 아마도 이번 강좌 중에서 가장 짧은 글이자 가장 분명한 입장을 가진 글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짧고 분명한 글이기에 우리는 이 글의 맥락을 짚어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 글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아나키즘을 분명하게 소개하고 난 뒤에 비판하지 않고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들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구성하면서 그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분명 아나키즘과 맑스주의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고 특히 정치적인 입장에서 차이를 드러냅니다. 그런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아나키즘에 대한 우리의 오해부터 먼저 해소시킬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2. 하나의 아나키즘? n개의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하나의 단일한 이론적 내용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당대의 유명한 아나키스트들인 프루동, 바쿠닌, 크로포트킨, 골드만, 베르크만의 사상은 조금씩 그 결을 달리 했습니다. 더구나 아나키스트들은 이론적인 노력보다 실천적인 투쟁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에 하나의 이론적인 흐름을 구성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대충 4가지 정도의 유파로 아나키스트들을 분류할 수 있을 듯합니다.

 

 

 



①아나키스트-꼬뮨니스트: 국가만이 아니라 사적인 소유권을, 조직을 거부하고 꼬뮨을 통한 대안사회 건설에 역점을 둠(대표적인 사상가로 표트르 크로포트킨)

②아나코-생디칼리스트: 노동조합을 통한 집산주의 사회건설을 목표로 삼음(대표적인 사상가로 미하일 바쿠닌)

③아나키스트-개인주의자: 꼬뮨과 노동조합 모두를 의심하며 자율적인 개인의 직접행동을 주장(대표적인 사상가로 막스 슈티르너)

④ 소박한(just plain) 아나키스트: 자신에게 어떤 접두사나 접미사를 붙이길 거부했던 아나키스트(대다수의 익명의 아나키스트들)

 

맑스가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판하고 있는 프루동은 ‘역설의 사상가’(a man of paradox)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고, “나는 체계적인 이론을 만들지 않겠다”, “나는 분파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인물입니다. 이 인물은 체계적인 이론보다 신문을 만들고 정세를 비판하는 언론인, 평론가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평론을 쓰면서 비아냥과 역설을 적절히 구사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의 말만 가지고 프루동을 읽을 경우 오해의 소지가 많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엥겔스가 “권위에 관하여”에서 비판했던 바쿠닌 역시 마찬가지의 인물입니다. 바쿠닌은 “어떤 이론이나 이미 만들어진 체계, 이미 씌어진 책이 세계를 구하지 못한다. 나는 어떠한 체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나는 참된 탐구자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사회의 가장 소외된 계급들에서 혁명의 잠재력을 보았고 이론보다 본능적인 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찾았습니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의 혁명을 주장하면서도 자기 스스로는 비밀조직을 만들었던 바쿠닌 역시 역설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러시아의 인민주의 전통
아나키즘의 토대를 마련한 바쿠닌이나 크로포트킨 모두 러시아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귀족이었으나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했던 농노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해방을 위해 삶을 바친 혁명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그 모범이 되었던 러시아의 인민주의 전통이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짜르의 전제정치는 많은 반란을 자극했고, 스텐카 라친(*'라진'이다)과 에멜리안 푸카체프(*'푸가초프'이다. 영어식 표기는 'Pugachev'인데, 모음 'e'는 여기서 'yo'로 소리난다)의 반란이 대표적이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푸가초프에 대한 최초의 역사서를 쓴 사람은 시인 푸슈킨이었다). 이런 농민반란은 현실에 대한 저항과 증오를 자극했고, 나로드니끼라 불리던 인민주의자들은 러시아 민중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짜르에 대한 저항을 시작합니다.

귀족층을 중심으로 했던 인민주의자들의 활동은 테러를 비롯 짜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수용하는 과격한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사상과도 연관되는데, 이들은 러시아 인민이 로마법적인 재산관념, 즉 사유재산의 절대성에 대한 관념을 가지지 않았고 평화로운 농민공동체를 받아들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국가는 적이었고 모든 권력은 악이고 죄라는 생각이 인민주의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거기에 러시아 특유의 기독교 전통도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습니다. 두호보르 종파처럼 “신의 자식들에게는 짜르나 통치권력, 그밖의 어떤 인간의 법률도 필요하지 않다”고 선언한 종파도 있었습니다(*이 두호보르 종파가 탄압을 받게 되자 캐나다로의 이주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쓴 소설이 톨스토이의 <부활>이다. 실상 작가 톨스토이의 사상 자체가 아나키즘과 친연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레오(*Leo는 Lev의 영어식 표기이다) 톨스토이처럼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인민주의를 실현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톨스토이는 소박한 영혼을 지닌 러시아 인민이야말로 역사의 핵심적인 동력이라고 봤습니다. 아나키스트는 인민에 대한 이런 신뢰를 이어받았고 대중이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고 봤습니다(*이때의 '인민'은 물론 '농민'이다. 아나키스트들과는 달리 맑스-레닌은 농민을 신뢰하지 않았다).

이 인민주의의 전통은 러시아 급진주의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인민에게 깊은 신뢰를 품었다는 점에서 동일했지만 그 신뢰를 드러내는 방식, 즉 혁명을 추구하는 방식은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톨스토이처럼 평화적인 방식을 추구했던 사람도 있고 트가체프처럼 짜르의 암살과 폭력만이 러시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1881년 3월에는 인민주의자들이 실제로 짜르 알렉산드르 2세(*사진)를 암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테러를 혁명의 방법으로 선택했던 이런 급진주의자들에는 인민주의자, 맑스주의자, 아나키스트, 허무주의자(니힐리스트)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전통에는 네차예프라는 인물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 인물과의 관계 때문에 바쿠닌은 <인터내셔널>로부터 제명을 당하게 됩니다(흥미롭게도 로버트 서비스의 <레닌>에 따르면 레닌은 이 인물이야말로 조직을 가장 잘 이해했다고 칭송했다는군요).


 

 

 

 

4. 아나키즘과 맑스주의
사실 아나키즘과 맑스주의의 차이점은 목표보다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아나키즘을 어떤 하나의 이념으로 분명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에 여기서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살피려 합니다).

첫째, 아나키스트들은 맑스주의가 강조하는 전위조직이나 계급독재를 거부합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대중이 스스로 ‘직접행동’(direct action)할 때에만 새로운 사회가 건설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연히 아나키스트들은 “노동해방은 노동자의 힘으로”, “농민해방은 농민의 힘으로”라는 구호를 외쳤지요. 서로간의 연대는 가능하고 필요하지만 실천적으로 운동을 이끌어갈 사람들은 반드시 그 당사자들이어야 하고 그 현실에서 생활하고 살아가는 일반 대중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특정한 계급이 전체 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거나 의사결정과정이 중앙으로 집중된 조직을 반대하는 것으로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단순히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정치혁명이 아니라 삶의 영역 전반에서 벌어지는 생활의 혁명, 즉 사회혁명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둘째, 아나키스트들은 역사가 특정한 발전법칙(역사적 유물론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에 따라 실현된다는 생각을 거부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인 청사진이 미리 마련될 수 없다고 봤고 새로운 사회가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의 집단적인 활력을 통해 건설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아나키스트들이 과학적인 합리성과 의식보다 대중의 본능과 연대에 희망을 걸었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바쿠닌은 대중이 지닌 반란의 본능과 파괴적인 충동에 희망을 걸었고, 크로포트킨은 서로 돕고 보살피는 본능에 희망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아나키즘 사회는 냉철한 이성이나 지성보다 창조적인 파괴를 지향하고 서로 보살피는 본능에 바탕을 뒀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은 탁월한 지성과 능력을 갖춘 엘리트의 중요성을 감소시켰습니다(*때문에 지식인-아나키스트는 지식인-맑시스트와는 사뭇 다른 '애매한' 포지션을 갖는다).

셋째, 러시아를 중심으로 발전한 아나키즘 이론은 노동계급보다 농민을 중심으로 혁명 이후의 사회를 구상했습니다(프루동 역시 프랑스의 가난한 농민 출신이었죠). 물론 아나키스트들도 산업혁명이나 과학기술로 인한 생산양식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고 그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봤지만 대규모 공장체제를 수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사회경제적인 변화를 잘 감지하지 못했고 농민공동체가 가진 본능적인 측면에 주목했습니다(*그런 맥락에서 아나키즘은 러시아의 전통사상 내지는 자생적 사상이며, 러시아 맑스주의는 (수입된) 서구의 사상이다. 오늘날 이것은 '농민의 사상' 대 '노동자의 사상'으로 대별될 수 있다). 또한 한 사회를 중앙화된 권력으로 통합하지 않고 각자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사회전체적인 이론틀이나 이론적인 청사진을 개발하지 않았습니다(*아래 그림은 프루동과 바쿠닌).

4. 맑스는 왜?
“정치 문제에 대한 무관심”에서 맑스는 프루동과 프루동주의자들을 격렬하게 비판합니다. 정당을 구성하지도 않고 파업을 반대하는 입장은 맑스의 말처럼 “어리석거나 천진난만하다”고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맥락을 조금 더 세밀히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 맑스는 프루동의 <소유란 무엇인가>를 “통찰력이 뛰어난 책”이라며 그 가치를 인정하기도 했고, 그 뒤 <신성가족>에서도 프루동이 “위대한 과학적 진보이자 정치경제학을 혁명화하여 비로소 참된 정치경제학을 가능케 한 진보”를 이루었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44년에는 파리에서 프루동과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맑스와 엥겔스가 주도하던 <공산주의자 통신위원회>에 프루동의 동참을 요청했는데, 프루동은 그 취지에 동의했지만 “우리가 운동에서 앞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편협성을 드러내는 지도자가 되지는 맙시다. 새로운 종교의 사도인 척 하지 맙시다”라고 주장했고 “문제제기를 결코 소모적인 것으로 여기지 맙시다”라고 전제를 달았습니다. 그리고 프루동은 혁명적인 행동을 개시하자는 주장에도 반대했습니다.

프루동은 “나는 가진 자들에 대한 성 바르돌로뮤의 밤[대학살]을 거행해서 그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것보다 소유를 천천히 불태우는 쪽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 이후 프루동과 맑스의 관계는 깨지고 <철학의 빈곤>으로 맑스는 프루동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죠.



프루동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정당합니다. 프루동은 선거참여를 비판했고 노동조합이 파업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그 당시 프랑스에서 사회주의자로 이름이 높았던 프루동이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라는 점이죠.

사실 프루동이 정치참여를 비판한 것은 이론적인 입장이 아니라 현실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프루동은 1848년에 수립된 임시정부가 보통선거권을 도입하자, 보통선거권이 가지는 약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보통선거권은 반(反)혁명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르 레프레젱탕 뒤 페플>이라는 자신의 신문에서 프루동은 “공화국은 모든 의지가 자유롭고 국민이 한 사람처럼 생각하고 말하며 행동하는 통치형태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실현하려면 모든 사적인 이해관계들이 사회를 거스르지 않고 사회를 위해 움직이는 게 필수적인데, 그것은 보통선거권으로 가능하지 않다. 보통선거권은 공화국의 이기주의이다. 이 체제가 오래 유지될수록 경제혁명은 계속 이루어지지 않고 그럴수록 우리는 왕정과 독재, 야만주의로 퇴보할 것이다. 선거권이 더 늘어나고 합리화되고 자유로워지는 한 이 모든 건 더 분명해진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이게도 프루동은 1848년 선거에 출마했고 의원으로 당선됩니다. 그러나 프루동은 1848년 6월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고 카베냑의 군대가, 노동자들의 군대가 자신의 형제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 난 뒤 의회에서 다른 의원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하게 됩니다.



프루동은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과제를 정치적인 수단에, 더구나 선거라는 수단에 맡기는 것이 환상일 뿐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이건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를 구원하는 문제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에 버려졌다. 우리는 부르주아지를 구원해야만 한다. 하층 부르주아지를 배고픔으로부터, 중간층 부르주아지를 파멸로부터, 상층 부르주아지를 그 악마같은 이기주의로부터 구원해야만 한다. 6월 23일 프롤레타리아트의 문제는 오늘날 부르주아지의 문제와 동일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참 역설적인 문체이죠. 언론인으로서 프루동은 이런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결국 이런 활동으로 프루동은 의원직을 제명당하고 감옥에 갇혔으며 선거를 통해 예견했던 루이 보나파르트와의 긴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뒤 프루동은 “정치에 몰두하는 건 똥물에 손을 씻는 짓”이라고 선언했습니다.

루이 보나파르트가 자신의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보통선거권을 이용했을 때, 프루동은 선거와 정당이 현실을 변화시키는 수단일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투표거부운동을 벌이게 됩니다. 프루동은 정부의 책략에 가담하기를 거부하는 인민이 정부당국과 인민의 본질적인 갈등을 가장 잘 부각시킬 수 있다고 선언하며 투표거부주의자들(abstentionists)과 함께 했습니다.

이 운동은 적어도 두 가짐 점, 즉 정치행태에서 지배적인 요소이던 편의주의(expediency)를 거부하고(필자주: 어떤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근본적인 원인을 건드리지 않고 그 순간만을 적당히 넘기려 하는 주의. 근대정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투표를 보편적인 정치적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민주주의의 신화를 거부하는 운동으로, 특히 아나키즘과 생디칼리즘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프루동은 계급갈등을 가급적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프루동은 부르주아지에게 그들이 과거에 혁명적인 세력의 역할을 했다는 점을 상기시킴으로써 부르주아와 노동자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부르주아와 노동자 모두를 해방시킬 혁명을, 정치혁명이 아니라 사회의 경제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혁명을 촉진시키려 했습니다.

노동조합에 대한 프루동의 부정적인 생각은 노동조합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조합이기주의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루동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조합이 독단으로 여겨지기에 잠재적으로 자유에 해롭지만, 더 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조합은 유용하다고 봤습니다. “노동자들의 조합은…그들이 달성한 결과가 얼마나 성공적인가가 아니라 사회공화국을 옹호하고 세우는 그들의 조용한 추세에 따라서 판단되어져야 한다.…노동자들의 노동의 중요성은 조합의 사소한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난번 혁명이 건드리지 않고 남겨둔 자본가와 고리대금업자, 정부의 지배를 부정하는 데 있다. 그런 뒤에 정치적인 거짓말을 극복했을 때…노동자 집단들은 자신들의 타고난 상속물인 대부분의 산업을 접수해야 한다.”

또한 프루동은 노동계급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인 능력을 가져야 한다고 봤습니다. 맑스가 인용하는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능력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프루동은 “정치적 능력을 가지는 것은 자신을 집단의 일원으로 의식하게 하고, 이 의식의 결과로 이념을 확정하며, 그 이념의 실현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런 세 가지 조건을 결합한다면 누구라도 가능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프루동은 프랑스 노동계급이 실제로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기 시작하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프루동은 노동계급의 이념을 상호의존의 이념으로 봤습니다. 프루동에게는 상호의존이라는 이념만이 (농민을 포함하는) 노동계급을 부르주아지와 분리시켰고 노동계급에게 진보적인 성격을 부여했습니다. 왜냐하면 상호관계가 발달하면서 결국에는 노동자들이 사회의 경제생활에 정의를 도입하고, 부르주아 계급의 반反상호주의적 정신이 실행을 막아왔던 평등주의 기반 위에 사회를 조직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인 면에서 상호주의는 인민의 참된 주권을 보장할 연방주의로 표현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연방 공화국에서 권력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고, 일련의 대표들이 인민의 일반의지를 실행하는 조절위원회들에 결합하는 ‘자연스런 집단들’에 의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루동은 자유의 건전한 성장에 해롭다고 여겼던 내전의 폭력 없이도 전체 공동체가 해방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당시에 사회의 분할구조를 인식하고 사실상의 계급투쟁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았지만, 프루동은 이 투쟁의 유동성에서 상호주의의 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프루동은 계급투쟁을 공식화해서 영원한 분할을 만들지 모를 어떠한 방법도 피하려고 노력했다. 파업에 대한 비판은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사족으로 얘기하자면 프루동의 인민은행 계획에 대한 비판은 주로 화폐와 소유를 잘못 이해했다는 점으로 얘기됩니다. 그런데 그런 비판은 프루동이 추구했던 것을 오해하게 만들기 쉽습니다. 프루동이 폐지하고자 한 것은 소유 자체가 아니라 소유의 축적이었습니다. 노동거래소를 통한 노동권의 유통은 단지 화폐를 노동권으로 교체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노동권이 축적이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5. 엥겔스는 왜?
엥겔스는 “권위에 관하여”에서 바쿠닌을 겨냥해 비판을 가합니다. 그런데 바쿠닌은 권위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바쿠닌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모든 권위를 부정한다고? 그건 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장화에 관한 한 나는 장화 만드는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집, 운하, 철도에 대해선 건축가나 엔지니어와 협의한다.…그러나 장화 만드는 사람이든 건축가든 내게 자신의 권위를 강요하는 것을 나는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롭게, 그리고 온당한 존경심을 갖고 그들의 말을 듣는다.…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도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다. 그런 믿음은 나의 이성, 나의 자유, 그리고 내 과업의 성공에 치명적일 것이다. 그런 믿음은 나를 즉각 어리석은 노예,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의지와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엥겔스는 바쿠닌을 비판했을까요? “권위에 관하여”가 씌어진 1872년과 1873년 사이의 시기는 <인터내셔널>을 놓고 맑스, 엥겔스와 바쿠닌간의 싸움이 격렬하게 벌어지다 결국 1872년 9월 헤이그 대회 때 바쿠닌이 <인터내셔널>에서 제명된 시기입니다.

 

 

 

 

맑스주의자들은 바쿠닌이 <인터내셔널> 내부에 분파를 만들고 조직을 장악하려 한 악당이라고 주장합니다. 소련공산당 맑스-레닌주의 연구소가 펴낸 <맑스 전기>는 바쿠닌이 “무력하고 억압받는 인민 대중들과 농부들 및 쁘띠부르조아들의 회의”를 대변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바쿠닌이 <인터내셔널> 내에 분파를 만들고 테러와 관련된 비밀조직을 운영했기 때문에 제명을 당했다고 주장합니다(필자주: 그리고 바쿠닌이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 점은 러시아 짜르의 오크라나라는 비밀경찰제도를 생각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유럽의 혁명가들과 달리 러시아의 혁명가들은 망명 이후에도 끊임없는 체포위협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레닌도 마찬가지였죠 *오크라나? '오흐라나okhrana'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합니다. 아나키스트 작가인 조지 우드콕은 맑스와 바쿠닌의 대립을 개인적인 대립이 아니라 중앙집권적인 권위주의자와 반권위주의적 자유인의 대립으로 묘사합니다. 특히 우드콕은 <인터내셔널>의 다수를 차지했던 조합주의자와 상호주의자들이 바쿠닌을 지지한 반면 맑스의 총무위원회(general council)가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인터내셔널>을 지배했다고 비판합니다. 둘 중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는 선험적으로 판단할 수 없지만 이 글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아나키스트의 분류에 따르면, 개인주의자나 소박한 아나키스트들은 분명 정치적인 권위를 절대적으로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아나코-생디칼리스트나 아나코-꼬뮨니스트들은 정치적인 권위를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의 권위에 대한 생각은 우크라이나에서 농민꼬뮨을 건설하려 했던 마흐노(N. Makhno, 1889-1934)의 연설에서 잘 드러납니다.

마흐노는 마을에서 백군과 지주들을 몰아낸 뒤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여러분을 도우러 왔습니다. 우리는 지주들과 그들의 마름들을 따랐지만, 이제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여러분끼리 땅을 분배하십시오. 그리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동등한 관계에서 일하십시오.”

 

 

 

 

그리고 1936년 스페인 시민전쟁 때 국제의용군으로 자원했던 작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얘기는 권위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생각을 잘 드러내 줍니다. “의용군 체제의 핵심은 장교와 사병간의 사회적 평등이었다. 장군에서부터 사병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똑같은 보수를 받았고,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 똑같은 옷을 입었고, 완전한 평등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생활하였다.…물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다. 그러나 명령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아니라,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것임을 인식했다.…실제로는 그런 방법이 장기적으로 ‘효과’가 있다.…나는 명령을 따르게 하거나, 위험한 일의 자원자를 얻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혁명적’ 규율은 정치적 의식에 달려 있다. 왜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지 이해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아나키스트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분열은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1995)에서도 잘 표사된다.)



아나키즘은 이를 위해 먼저 거대화된 권력을 잘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권력은 크게 뭉칠수록 통제에서 벗어나고 그것에 영향을 받는 개인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반세계화운동과 아나키즘을 연관짓는 숀 쉬한(Sean M. Sheehan)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아나키즘은 스스로 없애려고 하는 권위주의의 씨앗을 내포한 관료제를 낳지 않으면서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의사결정 구조를 개발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흔히 반세계화 운동으로 불리는 흐름이 지닌 긍정적인 측면인 친지역화(pro-localization)는 탈중앙화한 공동체들을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공동체들은 엘리트나 관료집단의 손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크로포트킨은 스위스의 <쥐라연합>을 통해 이런 구상을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회란 마땅히 이래야 한다는 이론으로부터 이상적인 공화국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자들에게 현존하는 사회악을 인식시키고 토론과 집회를 통해 지금보다 나은 사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사고하도록 유도했다. 국제대회에서 제기된 문제를 모든 노동조합의 연구주제로 추천했다. 그러면 한 해 동안 유럽의 모든 지부에서 직업과 지방의 특성에 맞게 토론되었다. 지부의 결론은 지역대회에 제출되었고 그것은 좀더 정리된 형태로 다음 국제대회에 제출되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사회구조는 이처럼 이론과 실천이 철저히 아래로부터 수렴되는 것이었다.”

이런 얘기는 엥겔스의 비판, “권위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나쁜 원리인 것처럼 말하고 자치의 원리를 절대적으로 좋은 원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권위와 자치는 서로 다른 사회 발전 양상에 따라 그 범위가 서로 다른 상대적인 것들이다.”라는 비판이 조금 어긋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 줍니다.

6. 오해를 넘어서 차이로
아나키스트들과 맑스주의자들은 분명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하나로 묶었던 것은 사회주의였고, 적기와 흑기가 함께 휘날렸던 적은 아주 많았습니다. 사실 아나키스트들의 가장 큰 적대자는 맑스주의 자체라기보다 그 지류인 볼셰비키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다중네트워크에 모인 분들도 볼셰비키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레닌을 제거한 맑스주의? 지젝식의 비유를 빌자면, '니코틴 없는 담배'나 '카페인 없는 커피' 정도가 되겠다).

그렇다면 이제 과제는 아나키즘에 대한 오해를 넘어서 그 차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점입니다. 계속 낯선 이방인으로 배제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다르지만 함께 할 수 있는, 때로는 그 상대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벗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사실 맑스주의나 아나키즘 자체가 지금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우리가 배울 것은 누가 더 올바른가라는 점보다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만들어나갈 단초를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들의 고민을 허투루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고민은 아직 가지 않은 길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06.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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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바디우와 레비나스

 

 

 

 

제목은 '바디우와 레비나스'라고 붙였지만 이 글은 두 철학자 간의 비교라거나 대조와는 거리가 멀다. 단지, 필요 때문에 바디우의 <윤리학>(동문선, 2001)에서 2장 '타자는 존재하는가?'를 읽었고, 이 장은 순전히 레비나스의 윤리학에 할애돼 있기에 자연스레 '바디우와 레비나스'란 이름 혹은 주제를 떠올려 보았을 뿐이다.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지만, 알랭 바디우(1937- )는 들뢰즈/데리다 이후의 프랑스 철학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철학자의 한 사람이다. 한데, <윤리학> 외에 <철학을 위한 선언>(백의, 1995)과 <존재의 함성>(이학사, 2001) 정도가 그의 책으론 더 번역돼 있고,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에서도 그의 철학이 핵심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존재와 사건> 같은 그의 주저들이 번역/소개되지 않은 탓에 왜 그가 그 정도로 중요한 철학자인지는 실감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지젝이 동시대를 대표할 만한 철학자로 아감벤과 함께 바디우를 들고 있는 터여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바디우의 책들을 주섬주섬 긁어모으고는 있다(대부분의 저작이 영역돼 있으며 최근에는 연구서들도 '매우'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읽으면 '친화감'을 갖게 되는 아감벤과는 달리 바디우는 여전히 나에겐 '타자'이다. '친구의 친구'로 소개받기는 했지만, 아직은 서먹한 관계인 것.

한데, 그 이유가 순전히 바디우에게만 있는 건 아니다. 그의 두툼한 주저들을 독파해나갈 만한 형편은 아니어서 좀 편안한 번역본들이 나오길 기다리고는 있는데, 이제껏 나온 번역본들은 '편안함'에 대한 기대를 별반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존재의 함성> 같은 경우는 서론 정도만을 읽었기 때문에 아직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철학을 위한 선언>이나 <윤리학>은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자갈밭 같은 언어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결코 편안한 독해를 허용하지 않는다(<선언>의 경우엔 나중에 부득불 영역본과 러시아어본을 구했고, <윤리학>도 영역본을 구한 뒤에야 다시 들춰볼 수 있었다).

가령, '타자는 존재하는가?'란 장의 첫문장은 이렇다: "'타자에 대한 윤리' 또는 '차이의 윤리'로서의 윤리라는 관점은, 칸트의 명제들이 레비나스의 명제들로부터 시작된다."(33쪽) 내용을 따져보기 이전에 통사적으로 이미 비문이다(주어 '관점은'을 받는 술어가 없다). 그리고 내용상으로도 오류이다. 영역본상으로 이 문장은 "The conception of ethics as the 'ethics of the other' or the 'ethics of difference' has its origin in the theses of Emmanuel Levinas rather than in those of Kant."(18쪽)에 대응하며, 그 뜻은 "'타자에 대한 윤리' 혹은 '차이의 윤리'로서의 윤리라는 개념은 칸트의 명제들보다는 레비나스의 명제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정도이다.

이 <윤리학> 국역본의 경우 출판과정에서 해프닝이 좀 있었고 곧바로 내용이 부분 교정된 2쇄가 나온 걸로 알지만(해서 오역/오류들이 전적으로 역자의 책임은 아니라지만), 반가운 마음에 단박 초판 1쇄를 구입한 나 같은 독자는 이런 '비문'을 그대로 뒤집어써야 한다(도서관에 들어와 있는 책도 1쇄본이어서 교정내용을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정상적이라면, 이 첫문장은 필히 교정돼 있어야 한다.(한데, 형이상학의 '사유(thought)'를 '사고'로 옮기는 것 등의 취향도 역자가 아닌 편집자의 것일까? '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라는 한국어 구문상 어색한 부제도?) 그런 맥락에서, 이전에 제1장 '인간은 존재하는가?'를 읽고 불만을 적어놓은 걸 여기에 다시 정리해서 옮겨놓는다.  

이 책의 번역에 좀 문제가 있다는 건 이미 여러 사람들에게서 지적된 바이다. 역자의 책들을 여러 권 갖고 있는 나로선 좀 유감스럽지만, 나는 그를 신뢰할 만한 저자로는 분류하고 있지는 않다. 그 주된 이유는 물론 그의 번역이 미덥지 못하기 때문이다(바디우의 책으로 그는 <철학을 위한 선언>도 번역한바 있는데, 이 또한 인용하기 껄끄러운 번역이다). 모든 훌륭한 저자가 훌륭한 번역자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실한 번역자일 수는 없다는 게 나의 편견이다(방안이 없는 건 아니어서, 굳이 번역 같은 허드렛 일에 손대지 않고 좋은 책들의 저자로만 남으면 된다).

개인적으로 번역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기준은 인용가능성의 유무이다. 번역문 그대로 다른 글에, 혹은 논문에 인용할 수 있다면, 그건 나름대로 좋은 번역이고 신뢰할 만한 번역이다. 그리고 그러지 못하다면, 유감스러운 번역이자 (최악의 경우엔)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은 번역이다(유감스럽게도 그런 번역이 드물지 않다). <윤리학>에 대해서는 역자와 출판사간의 마찰설까지 흘러나왔지만, (출판사에서 함부로 개칠한 번역이 아닌 이상) 그렇다고 해서 역자의 책임이 면제될 수는 없다.

알라딘에서 읽어본 한 서평에서는 이 책이 "동문선 출판사에서 나온 다른 번역들에 비하면 비교적 나은 편에 속하고, 바디우에 관해 학문적인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무난하지만, 이 번역서는 여러가지 세부적인 문제를 지니고 있어서 학문적으로는 신뢰하기 어렵[다]."(balmas님)고 돼 있는데, 나로선 학문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일반독자들이 읽기에는 무난하다는 평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일반독자들이 무난하게 읽을 수 있는 번역이 좋은 번역이며 따라서 어려운 번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일반독자'(나는 불어 원서를 대조해볼 수 있는 '전문독자'가 아니다)인 나로선 무난하게 읽을 수 없는 번역이었다.

먼저, 서론에서 저자가 책의 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대목: "윤리에의 준거의 사회적 인플레이션에 맞서서 현재의 관건은 이중적이다"(9쪽) 이에 대한 영역은 "With respect to today's socially inflated recourse to ethics, the purpose of this essay is twofold:"(2쪽) 나는 역자만큼 불어를 잘 하지 못하지만 이런 대목들은 불어본을 구해서 확인해보고 싶은데(도서관에 없길래 참아두었다) 하여간에 영역본이 좀더 이해하기 편한 건 사실이다. '현재의 관건'을 '이 에세이의 목적'이라고 풀이한다는 점에서.

바디우는 이 컴팩트한 분량의 책 서문에서 자신의 요점을 분명히 하는데, 그가 전제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윤리 인플레이션'이다. 개나 소나 다 '윤리(학)'를 떠들어댄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그는 무얼 말하고 싶은가? "첫째, 의견들과 제도들 속에서 통용되는, 현시점의 주된 '철학적' 경향인 이 현상의 정확한 성격에 대한 검토를 행해야 한다. 우리는 이 현상이 실상은 진정한 허무주의에 불과한 것임을, 모든 사고에 대한 위협적인 부인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9쪽)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아니지만, (영역본을 참조하건대) '이러한 철학적 경향'(=윤리 인플레이션)의 정확한 성격에 대해서 "검토해볼 것이다" 정도가 왜 "검토를 행해야 한다"라는 의무로 번역되는지는 잘 모르겠다(이어지는 문장들도 다 그냥 미래시제이기 때문이다).

"의견들과 제도들 속에서 통용되는"은 영역으로 "as much in public opinion as for our official institutions"인데, 나라면 "공론장에서뿐만 아니라 대학 제도 내에서도" 쯤으로 옮기고 싶다. 짐작에 official instituitions란 주로 대학 등의 제도권 기관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뒷문장을 옮기면, "나는 이러한 현상이 그 실상에 있어서는 순전한 허무주의에 불과하며 사유 자체에 대한 위협적인 부정이라는 걸 입증하고자 할 것이다."(I will try to estblish that in reality it amounts to a genuin nihilism, a threatening denial of thought as such.")

그의 두번째 목적: "우리는 윤리라는 단어에 완전히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경향으로부터 이 단어를 탈환할 것이다.이 단어를 추상적 범주들(인간, 권리, 타자...)에 연결시키기보다는 '상황들'에 관계지을 것이다. 이 단어를 희생자들에 대한 동정의 차원으로 삼기보다는 개별적 과정들에 대한 지속 가능한 준칙으로 삼을 것이다. 이 단어를 보수적인 양심의 무대로 삼기보다는 그 속에서 진리들의 운명을 문제삼을 것이다."(9쪽)

먼저 첫문장에 대한 영역은 이렇다: "I will then argue against this meaning of the term 'ethics', and propose a very different one."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짐작에 영역본은 약간 의역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하여간에 영역본이 더 이해하기에 용이하므로 그에 준하여 다시 옮겨 보면, "나는 (윤리 인플레이션에서의) '윤리'란 말의 이러한 의미(사용)를 반박하면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제안할 것이다."

이어지는 영역은 "Rather than link the word to abstract categories (Man or Human, Right or Law, the Other...), it should be referred back to particular 'situations'. Rather than reduce it to an aspect of pity of victims, it should become the enduring maxim of 'singular processes.' Rather than make of it merely the province of conservatism with a good conscience, it should concern the destiny of truths, in the plural."(3쪽)

계속 이어서 옮겨보면, "즉, 윤리란 말은 (인간이나 권리, 타자 등과 같은) 추상적 범주와 연결되기보다는 개별적인 '상황들'과 연계되어야 한다. 윤리는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의 차원으로 축소되기보다는 '단독적인 과정들'의 영속적인 준칙이 되어야 한다. 윤리는 양심을 들먹이는 보수주의의 영역에 남겨지기보다는 (복수로서의) '진리들'의 운명과 관련지어져야 한다." 요점은 유행/경향으로서의 윤리에 대한 바디우의 전면적인 비판/반박과 새로운 윤리의 제안이 이 책의 줄거리가 될 거라는 점이다. 

이제 1장으로 들어가서 바디우는 '윤리'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쓰이는 말인 '인권'에 대해서 검토해 들어간다. 윤리란 이런저런 '자명한'/'자연적인' 권리들의 수호/존중과 관련된 문제라는 게 우리 시대의 통념이다. 요컨대, '자연권으로의 회귀'(혹은 '퇴행')이 이 시대의 증상이며, 그것은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관련된다: '인간의 자연권이라는 낡은 교리로의 이러한 회귀는, 물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와 그에 의존하는 진보적 개입의 모든 형상들의 붕괴에 연관된다."(13쪽)

이 대목의 영역은 "This return to the old doctrine of the natural rights of man is obviously linked to the callapse of revolutionary Marxism, and of all the forms of progressive engagement that it inspired."(4쪽)이고, 이에 대한 번역은 "인간의 자연권이라는 낡은 교리로의 이러한 회귀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와 그것이 영감을 불어넣었던 모든 형태의 진보적 현실참여가 몰락하게 된 사정과 분명 연관된다." 이어지는 대목은 모두 바디우의 현실진단이다: "모든 집합적 지표를 상실하고, 역사의 의미'에 대한 사고를 박탈당한 채 사회혁명을 더 이상 희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지식인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의견을 만들어내는 많은 부문들은 자본주의적 형태의 경제와 의회민주주의에 동조해 버렸다."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있지만, 상당히 투박한 번역이다. 그리고, 영역본에 근거하자면, 바디우는 (1)현실정치와 (2)철학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의 현 정세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데, 국역본에서는 이러한 대비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먼저 이 대목의 영역은 "In the political domain, deprived of any collective political landmark, stripped of any notion of the 'meaning of History' and no longer able to hope for or expect a social revolution, many intellectuals, along with much of public opinion, have been won over to the logic of a capitalist economy and parliamentary democracy."이고, 우리말로 옮기면, "정치 영역에서는, 모든 집단적인 정치적 지향점(지표)을 상실하고 '역사의 의미'에 대한 모든 관념을 박탈당한 채 더이상 사회 혁명에 대한 아무런 기대나 바람도 가질 수 없게 된 많은 지식인들은 다수의 여론과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와 의회민주주의의 논리에 투항하고 말았다."

그리고 철학. "철학에 있어서 그들은 과거 그들의 적들의 불변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니고 있는 덕목들을 발견했다. 인도주의적 개인주의, 그리고 모든 조직화된 참여의 강제들에 대항하는 권리들의 자유주의적 방어가 그것이다. 집합적 해방을 위한 새로운 정치 용어들을 모색하기는커녕, 결국 그들은 기존의 '서양적' 질서의 준칙들을 받아들였다."(14쪽)

이에 대한 영역은 "In the domain of 'philosophy', they have rediscovered the virtues of that ideology constantly defended by their former opponents: humanitaruian individualism and the liberal defence of rights against the constraints imposed by organized political engagement. Rather than seek out the terms of a new politics of collective liberation, they have, in sum, adopted as their own principles of the established 'Western'order."(5쪽)

우리말로 옮기면, "철학의 영역에서 이 지식인들은 과거 자신의 적대자들이 항상 옹호하던 이데올로기의 미덕들, 가령 휴머니즘적 개인주의와, 조직화된 정치참여가 강제하는 억압들에 맞설 권리의 자유주의적 옹호 같은 걸 재발견했다. 새로운 집단적 해방의 정치학을 위한 용어들을 모색하기보다는 요컨대, 그들은 기존 '서구적' 질서의 원리들을 자신들의 원리로 받아들였다." 여기서 서구적 질서의 원리들이란 건, 앞에서 언급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의회민주주의' 같은 게 아닌가 한다.

바디우의 진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 상황은 사회혁명에의 전망 상실이 가져온 일종의 '패배주의'적 상황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 보수주의적 '윤리'이고 '윤리의 인플레이션'이다. 이러한 진단하에서 그는 인권의 윤리학과 (레비나스-데리다의) 차이의 윤리학에 대항하여 '진리들의 윤리학'을 새롭게 정초하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가늠하고 있는 이 책의 윤곽이다. 하지만, 이 윤곽을 다 드러내는 것은 좀더 시간을 필요로 한다. 

거기까지 읽고서 이번에 읽은 2장은 그래도 후반부로 가면 요지를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는 번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문단들에 대해서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유성이 실험되는 일련의 현상학적 테마들을 제시한다. 그 중심에는 얼굴의 테마, 자신의 몸의 현시를 통한 타자의 개별적이자 '사적인' 주어짐의 테마가 자리잡는다. 이 테마는 닮음을 통한 인정(나와 동일한 동류로서의 타자)을 체험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드러남으로써 타자에게 '바쳐진' 것, 나의 존재 속에서 그러한 소명에 예속된 것으로서의 나를 윤리적으로 체험토록 해주는 것이다."(34-5쪽) 

특히 마지막 문장이 자갈밭인데, 부분적으론 오역이기도 하다(바디우 자신도 레비나스를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짐작에는 역자도 레비나스를 참조한 것 같지 않다). 이 대목의 영역은 이렇다(전체가 한 문장이다): "Levinas proposes a whole series of phenomenological themes for testing and exploring the originality of the Other, at the centre of which lies the theme of the face, of the singular giving[donation] of the Other 'in person', through his freshly epiphany, which does not test mimetic recognition (the Other as 'similar', identical to me), but, on the contrary, is that from which I experience myself  ethically as 'pledged' to the appearing of the Other, and subordinated in my being to this pledge."(19-20쪽) 

삽입구가 많이 등장하는 탓에 좀 까다로워 보이는 건 중간에 나오는 관계사 'which'의 선행사를 찾는 것인데(역자는 '테마'로 보았다. 불어본의 경우에는 선행사를 식별하기가 더 쉬운지는 모르겠다), 다행스러운 건 'epiphany'나 'the Other'나 'theme of face'나 거의 같은 내용을 지시하므로 아무거나 잡아도 크게 오역은 아니라는 것. 나는 타자의 육체적 현현으로서의 '얼굴'을 그 선행사로 보고 다시 옮기도록 하겠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고유성(근원성)을 테스트하고 탐구하기 위한 일련의 현상학적 주제들을 제시하는데, 거기서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얼굴이라는 주제, 즉 고유한 것으로 주어지는 타자, 육체적 현현을 통해 '실물로서' 제시되는 타자라는 주제이다. 이것은 얼마나 닮았느냐라는 인정 테스트의 대상(나와 '유사한', 나와 동일한 자로서의 타자)이 아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나는 그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윤리적으로, 즉 이 타자의 출현에 저당잡혀 있는 것으로, 나의 존재가 이러한 저당하에 놓여 있는 것으로 체험한다." 

번역에 관한 나의 윤리는 '충실성이냐 가독성이냐' 이전에, 자신이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옮겨놓는 것이다. 해서, 잘못 이해했다면 잘못 옮겨놓는 것이 윤리이다! 하지만, 잘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 옮기는 건 윤리적이지 않다. 바디우의 <윤리학>을 읽다가 나는 엉뚱하게도 번역의 윤리에 대해서 다시금 되새겨본다...

06.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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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제임슨을 읽는 어려움

책은 남들 못지 않게 사놓고 정작 재미를 못보고 있는 대표적인 두 저자가 내겐 프레드릭 제임슨과 아도르노이다(제임슨이 아도르노 연구서를 쓴 건 당연하면서도 짓궂다!). 그 중에서도 최악이라 할 만한 건 제임슨인데, 일단 여러 권의 저작들이 소개되었으면서도 정작 대표적인 주저들은 번역/소개되지가 않았고(이럴 때 쓰는 말이 '닭 쫓던 개 제임슨 쳐다보기'이다), 그나마 번역된 책들 읽기 어려우며(어떤 것들은 이제 구하기도 어렵다), 그걸 좀 덜어주겠다고 나온 해설서들 마찬가지로 난삽하기 짝이 없어서이다. 이때 '난삽함'이 비단 어려운 내용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니다. 오역의 난잡함을 좀 에둘러 말했을 뿐이다.

 

 

 

 

이번에 '크리티컬 씽거즈' 시리즈로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앨피, 2007)과 함께 출간된 <트랜스 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앨피, 2007)이 이 시리즈의 성격에 걸맞게 '가장 쉬운 제임슨 입문서'의 구실을 해주려나 은근히 기대를 가졌건만 어젯밤에 첫장인 '왜 제임슨인가?'를 읽고서 기대를 접었다(정말 묻고 싶다. 왜 제임슨인가?).

사실 <자크 데리다의 유령들>도 기대에 부응하는 번역은 아니었다(지나가는 김에 지적하자면 알라딘은 이 책명을 '자크데리다의 유령들'로 붙여놓아서 '데리다'로는 도서검색이 안된다. 업무량이 그토록 과다한가?). 원서와 비교해보면 앨피출판사의 국역본 시리즈는 편집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정작 '콘텐츠'가 뒤를 받쳐주지 못하는 형국이어서 안타깝다. 책은 껍데기가 아니잖은가. 공연한 험담을 늘어놓는 게 아니다.

가령, "여러 차례 그는 네덜란드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에게서 얻어낸 통찰, 즉 결정이 순간은 광기라는 진술을 상기한다."(42쪽)는 구절을 읽으면 당신은 무엇이 상기되는가? 어느 시인의 말대로 이거 송충이 씹는 맛 아닌가? 어쩌자고 덴마크의 '고독한 단독자'의 국적을 네덜란드로 바꿔놓는단 말인가?(나도 '어려운 오역'을 좀 지적하고 싶다.) 물론 우리가 축구 사랑의 인연으로 네덜란드에 더 친밀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겠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떻게, 역자와 편집자는 '네덜란드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를 아무생각 없이 접수할 수 있었단 말인가?(많이 쓰는 이름인 '키에르케고르'를 '키르케고로'로 표기하면서 '네덜란드 발음은 이게 더 가깝지'라고 생각했을까?) 

그렇듯 시작이 께름칙해놓으니까 이래저래 주의해서 읽을 도리밖에. 그래도 <자크 데리다>의 경우 1장에서 몇몇 의문스런 번역을 제외하면 2장부터는 가독성이 좋은 편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을 내가 먼저 다뤄보기로 한 건 그 때문이다. 멀쩡하게 씌어진 역자 서문을 지나 '왜 제임슨인가?'의 몇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도 괜찮다. 제임슨의 두 화두인 마르크스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두 주저인 <정치적 무의식>과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논리>에 대해서 유익한 해설을 읽을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감마저 갖게 한다. 한데, 이러한 기대는 제임슨의 이력을 읽어나가는 대목에서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1960년대에 제임슨은 하버대학에서 강사와 조교수로 재직했고, 이어 1967년 샌디에이고의 캘리포니아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71-76년까지 불문학 및 비교문학 전공 교수로 일했으며, 1976-83년까지는 예일대학에서 프랑스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때까지 듀크대학의 비교문학과 명예교수직도 겸했다."(29쪽)

사실 제임슨의 이력이 어떻다는 것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역자에 대한 신뢰이다. 우리말로도 말이 안되는 게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때까지... 겸했다."? '그때까지'는 언제를 말하는가?(1983년 이후는?) 1983년까지 예일대학과 듀크대학의 교수직을 겸했다고?(유렵대학의 명망있는 교수들이 미국대학에도 초빙교수로 양다리를 걸치는 경우들은 드물지 않지만, 같은 미국내에서도 그렇게 'two job'을 갖는다?) 

상식에 맞지 않는 내용은 대부분 오역이라고 보면 된다. 원문은 "SInce then he has been Distinguished Professor of Comparative Literature at Duke University."(3쪽)이다. "그 이후로 그는 듀크대학의 비교문학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에서 '명예교수'는 정년퇴임 이후 봉직기간 등 해당대학에서 규정하는 조건을 충족시키는 교수에게 수여하는 명예직이다. 그리고 미국대학에서 'Distinguished Professor'는 내가 알기론 해당분야의 탁월한 업적을 이룬 교수들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대우도 물론 좀 다를 거라고 예상되고). 그게 몇년 전부터 국내에 도입된 '석좌교수'직과 성격이 비슷할 거라고 본다(물론 영어에서 석좌교수를 가리키는 말은 따로 있지만).

원문 어디에도 '겸했다'란 말은 나오지 않는다. 'since then'을 '그때까지'라고 옮겨놓으니까 수습차원에서 '겸했다'란 말을 집어넣었을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단순 사례이지만 내 독서경험에 비추어 앞으로 역자가 어떻게 번역해놓았을지 얼추 짐작하게 한다. 사실 본문 첫문장 "프레드릭 제임슨은 아마도 오늘날 영미권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비평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23쪽)에서 '아마도 오늘날 영미권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비평가 중 한 사람일 것이다'에 인용부호와 인용출처가 빠져 있는 데에서도 번역의 충실성에 대한 의혹은 슬슬 기어나오기 시작했었다. 그러니 사단이 벌어지는 건 시간문제였을 따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들여다보기 전에 '제임슨을 읽는 어려움' 일반론에 대해서 먼저 정리를 해둔다. 이러한 국역본의 소제목들은 아마도 편집자가 붙인 듯하지만(32-43쪽까지에 해당하는 내용이 원서에는 'The Challenges of Jameson's Work'로 돼 있다) 내용에는 부합한다. "일반적으로 제임슨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앞서 말한 대로 그가 속한 비평적 맥락이 복잡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임슨의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시적인 문체를 읽어 내려가야 하는 어려움이다."(32쪽)

'복잡하고 광범위한 비평적 맥락'으로 치자면 슬라보예 지젝 같은 경우 한술 더 뜨기 때문에 제임슨만의 두드러진 난점이라고 할 수는 없고 오히려 매력일 수도 있겠다. 문제는 그의 '화려하고 장식적이며 시적인 문체'. "제임슨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한결같이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33쪽)니까 특별히 번역상의 문제만으로 우리가 곤란을 겪거나 분통을 터뜨리는 건 아니겠다. 반면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  같은 경우에 "나는 종종 서가의 문학이론서 자리에서가 아니라 시나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이 꽂힌 자리에서 그의 책을 뽑아든다."(33쪽)고 하니까 그의 문체(스타일)이 악평만을 얻고 있는 것도 아니고(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글턴의 활달하고 재기넘치는 문체를 더 좋아한다).  

물론 대세는 역시나 꼭 그렇게까지 문장을 꼬이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다. "제임슨의 스타일을 피곤하고 번잡스러우며 어쭙잖다고 평가절하하는 비평가들도 있다. 더글러스 켈너는 제임슨의 스타일을 형편없다고 얘기했다."(33쪽) 켈너는 국내에 <탈현대의 사회이론>(현대미학사, 1995)부터 <미디어문화>(새물결, 2003)까지 여러 권의 저작이 소개돼 있는 좌파이론가이다(보드리야르와 마르쿠제 연구서가 유명하다).

한데, 형편없다'고 옮긴 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켈너가 쓴 단어는 'infamous'이며 사전적 정의대로, '악명 높은'이라고 해야 더 적절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역본엔 이 말의 출처가 빠져 있지만, ('제임슨의 모든 것'이란 참고문헌 해제에 포함돼 있는 바대로) "제임슨의 다양한 논문을 실은 책" <포스트모더니즘/제임슨/비평>의 편자 서문에 나온다. 그 편자가 바로 켈너인 것. 따라서 "제임슨의 문체는 악명이 높다" 정도이지, "제임슨의 스타일은 형편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그의 난해한 문체가 시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잖은가!).  

왜 그럼 제임슨은 그렇게 쓰는가? 아도르노의 난해한 문체를 옹호하면서 제임슨이 주장하는 바이기도 한데, "요컨대 독서는 어렵고 불편한 일이어야 한다"고 그가 믿기 때문이다. "독서가 고통스러운 작업이 아닐 때, 그것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다."(35쪽) 그러니까 드러누워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차라리 안 읽는 게 낫다, 라는 게 제임슨의 글쓰기론이자 문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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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담론의 공간이 불안하다

제목은 좀 거창하지만 내용은 '문예지 휴간, 폐간 잇따라'란 부제에 그대로 들어 있다. 뜻밖인 건 지난 겨울 창간 5주년 기념호를 낸 <문학판>이 무기한 휴간을 결정했다는 소식인데, 그 기념호에 5주년을 기념하며 앞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기대한다고 한 여러 편의 축사를 읽은 나로선 좀 황당하기까지 하다. 내부사정이 갑작스레 악화되었을 리는 없고 '기념호'란 게 마지막 불꽃놀이였나 보다. 물론 폐간은 아니지만 당분간도 아닌 '무기한' 휴간이라니. <비평과 전망>이 소식이 뜸한 지는 오래이고 <문학과 경계> 또한 인공적으로 수명을 연장하고 있는 게 문예지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문학잡지가 너무 많다. 더불어, 계속 창간된다. 그리고 폐간된다.

 

2001년 겨울호부터 출간한 『문학판』(열림원)은 최근 무기한 휴간을 결정했다.

컬처뉴스(07. 02. 06) 담론의 공간이 불안하다

도서출판 열림원에서 내고 있는 계간 문예지 『문학판』이 최근 재정적 어려움으로 무기한 휴간을 선언했다. 소장 평론가들이 주축이 돼 지난 1999년부터 의욕적으로 발행해왔던 반년간지 『비평과 전망』 역시 사실상 폐간 상황에 처해있으며, 계간 『문학과경계』는 재정난으로 ‘2006년 겨울호’를 내지 못하다가 뒤늦게 편집인과 문인들이 십시일반 재원을 마련해 최근 겨울호를 발행했다. 

지난 2001년 겨울호로 창간된 계간 문예지 『문학판』은 ‘문학의 상업화에 맞선다’는 기본 취지 아래 대중적 감각과 지성적 이해를 결합시키며 평단에서 소외된 신인작가의 전위적 작업을 부각시키겠다는 포부로 시작됐다. 지난해 겨울호까지 통권 21호를 출간했으나 어려운 경제적 여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무기한 휴간을 결정한 것이다.

반년간지 『비평과 전망』은 2000년 이후 문단을 달군 ‘문학권력 논쟁’의 복판에 섰던 문예지로, 이명원, 고명철, 홍기돈, 엄경희, 최강민, 오창은 등 소장평론가들이 의욕적으로 현장비평의 장을 열었지만 역시 재정적 어려움으로 통권 9호(2005년)에서 멈춰있다.

 

 

 

 

 

 

 

 

 

 

 

통권 23호까지 나온 『문학과경계』는 ‘진보 담론의 새 공간을 제공하자’는 모토 아래 이진영 시인이 지난 2001년 가을 사재를 털어 창간한 잡지다. 지난해 가을 이진영 사장의 건강이 나빠지고 잡지사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부득이 폐간신고를 내기도 했지만 잡지를 이어가지는 데 뜻을 모은 편집인들과 문인들의 도움으로 뒤늦게 겨울호를 낸 것이다.

과거 ‘문예지’는 신인작가 등단의 장이자 문학논쟁의 전초기지로 문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또 87체제 이후에는 군부에 의해 폐간되거나 휴간됐던 문예지들이 복간되면서 폭발적으로 ‘문예지’가 활성화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90년대 들면서 ‘한국문학의 위기’가 공공연해지고 외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작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예지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낮아졌다. 또 출판의 상업화와 물리면서 규모 있는 출판사에서 발간하고 있는 문예지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으나 독자층의 감소와 함께 재원 마련이 어려워진 독립적인 문예지들은 문예진흥기금에 의존하거나 자체조달 방식으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앞서 언급한 문예지들처럼 휴간하거나 폐간에 이르게 된다.

『비평과전망』 편집주간인 이명원 평론가는 “문학매체 안에서도 문학권력과 같은 카르텔구조가 성립되면서 자본을 동력으로 작가를 포섭하고, 작가들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결국 마이너 매체들도 출판시장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메이저 매체들의 방식을 따라가게 되고, 마이너 매체들이 메이저와 차별성을 갖지 못하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독자적 시각을 펼치는 독립매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재원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출판시장에서 작품출판과 분리된 독자적 매체가 재원을 마련할 길이 막막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배경에는 문예지와 대형 출판사 간의 ‘공조’로 창작과 비평의 폐쇄적인 순환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독립 문예지들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측면도 있다.

기존 문예지와 ‘차별성’을 내세우며 등장한 독립 문예지들이 이 같은 출판시장의 거대 자본에 휩쓸리면서 방향을 잃고, 소멸되어가는 모습들이 오늘 우리 문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깝다(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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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07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시장에 의존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은 사실이죠. 저 같은 전공자 또는 지망생도 계간지 2개 월간지 1개 겨우겨우 보는 것이 고작인데.. 나머지는 중요한 글 실리지 않으면 안 보고, 볼 수도 없는데. 도서관들이 많이 구입해주고 그러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많을 필요가 있나, 어떻게 각 문예지들은 구분되는지를 다시금 반성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전출처 : 바라 > 진보 꿈꾸던 대학생들, 졸업 후 어디로 가나

진보 꿈꾸던 대학생들, 졸업 후 어디로 가나
[오마이뉴스 2007-02-03 15:49]    
[오마이뉴스 홍성희 기자] "남들이 그러지. 넌 왜 좋은 대학까지 나와서 굳이 공장에 들어 가냐고. 그런데 노조니 파업이니 무슨 대단한 목적이 있어서 들어온 게 아냐. 그냥 노동자가 되어 보고 그들을 이해하고 싶었어."

지난 1월 13일 밤 8시, 충북 청주시 가경동의 낯선 밤거리에서 세 달 만에 '그'를 만났습니다. 저 멀리 러브호텔과 룸살롱의 화려한 네온사인 밑으로 고동색 점퍼를 걸친 한 노동자가 이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학생 티는 온데간데없고, 그는 완연한 노동자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편하게만 살아오던 그가 '현장'을 결심한 건 작년 10월입니다. 대학 시절 오랫동안 학생운동을 해왔던 그는 졸업을 앞두고 고심 끝에 청주의 한 전자공장에 위장취업했습니다. 졸업이 운동을 정리하는 데 공식적인 면죄부가 되고 있는 요즘의 학생운동 풍토에서 그는 흔치 않은 선배였습니다.

80년대 학생운동 활동가들의 활발한 공장 이전은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신화가 된 과거일 뿐입니다. 졸업에 겁부터 나는 것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올해는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제 80년대처럼 정해진 길은 없습니다.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운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다양한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80년대가 '현장으로'였다면, 오늘날 이들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요?

낯선 곳에서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이란

그가 혼자 살고 있는 열 평 남짓한 방은 사람이 적을 두고 생활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어느 이름 모를 기차역 부근의 여인숙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작은 방에 비해 어색하게 큰 침대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냉장고에는 생수통만이 있었습니다. 그의 현장 생활의 고단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침대에 기대어, 글라스에 소주를 부었습니다.

"요즘은 운동을 직업적으로 고민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사회가 많이 바뀌었으니까. 꼭 공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돈과 명예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봐. 남들의 자기를 어떻게 볼까 신경 쓰이는 거지."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심정이 이런 걸까요. TV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어서 "근데 우리가 진로를 고민할 수 있다는 거 자체가 특권이더라, 여기서 보니까 공고 졸업하고 바로 공장에 들어와 돈 버는 사람도 많거든"하고 덧붙였습니다.

밤11시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나 침대에 좀 누워도 되지?"하고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습니다. 졸음이 몰려 오는 모양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후배와 한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었는지 늘어진 테이프처럼 힘겹게 말을 이어갑니다.

"노동자는 정치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어. 10시간 일하고 나면 정치고 뭐고 피곤해서 다 귀찮거든. 일하고 자는 게 전부야. 피곤해서 다들 집에 가기 바쁘지."

그가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는 전자공장은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7시 30분에 퇴근이라고 합니다. 12시간에 가까운 노동입니다. 게다가 일요일도 없습니다. 그날은 토요일 밤이었지만 그는 벌써 다음날의 출근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언론계 진출, 소신일까 환상일까

 
▲ 2004년 10월, 고려대 타이거플라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백시원씨.
ⓒ2007 홍성희
고려대 앞 카페에서 만난 백시원(고려대· 사회학 3년)씨는 졸업을 앞두고 방송사 PD시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녀 역시 학생운동을 했습니다.

2004년 그녀는 당시 학교의 신축건물이었던 '타이거플라자'의 건설 비용에 학생복지기금이 유용됐다며 항의운동을 벌였습니다. 2005년에는 과 학생회장으로 교육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이제는 과실에 갈 시간도, 과실에 갈 계기도 찾기 힘들다고 합니다. 졸업을 앞두고 언론사 입사를 택한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선두에서 급진적으로 투쟁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한 발자국 나가는 게 더 중요한 거 같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진보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보수가 안정적이라는 이유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그녀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회의감이 들 때도 많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결정이 현실과의 '타협'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원래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게 꿈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메이저 방송사에 들어가면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없을 거란 고민도 들어요. 특히 노동현장을 담는 데는 제약이 많이 있겠죠. 시청률도 발목을 잡는 거고."

복잡한 심정이 엿보였습니다. 한 활동가는 운동권이 언론계로 몰리는 현상을 두고 "기자란 직업을 통해 자신의 정치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큰 착각"이라며 씁쓸해 했습니다.

얼마 안 되는 활동비, 그래도 원하는 길을 걷는다

남부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최성화(24)씨는 작년 12월부터 사회운동단체에서 기관지를 만들며 상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동국대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작년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사정을 묻는 질문에 "학생운동이 버거웠고, 집안 문제가 있었다"며 말을 흐렸습니다. 사회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까닭을 물어보았습니다.

▲ 사회단체에서 상근하고 있는 최성화씨.
ⓒ2007 홍성희
"운동권에게 선택권은 별로 넓지 않아요. 선배들 대학원 가는 게 대부분이에요. 할 거 없으니까 대학원 간다고 하는 게 결국 쉬운 길 찾아 가는 게 아닌가 싶죠. 운동판에서도 지식인이나 인권변호사는 우대 받고 노동자는 멸시 받는 세상이에요. 저는 여기서 노동자들 만나고 기관지 만드는 게 좋아요. 나중에는 교육과정을 이수해서 성폭력 상담사가 될 거에요."

그녀는 상근활동가 중에서 자신이 가장 어리다고 했습니다. 보통 사회단체들이 그렇듯이 '활동비' 명목으로 주어지는 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원하는 길을 떳떳이 걷고 있는 그녀입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출소한 노동자를 취재한다며 청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활동가 A(28)씨는 "요즘은 평생운동이란 개념이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운동이 학생 때만 하는 것은 아닌데…"하고 씁쓸해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활동가들의 사회진출이 다양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노동현장에 집중됐던 80년대와 달리 요즘은 미디어나 환경, 여성, 교육 분야로 폭넓게 진출하고 있습니다.

활동가들에게 직업은 단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대학 시절 품었던 이상과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이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운동하며 먹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는 한 활동가들의 푸념이 귓전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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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07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 거 없으니까 대학원 간다고 하는 게 결국 쉬운 길 찾아 가는 게 아닌가 싶죠." 가슴을 찌르네요. 학문과 삶이 같이 간다는 것, 쉽지는 않지만 역시 행복한 고민입니다.

2007-02-07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2-07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ㄱ님/네 그렇죠. 그래도 계속 활동하는 선배보면, 결혼을 하지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결혼 후에는 아무래도 힘든 점이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