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 미디어 디스토피아에서 미디어 유토피아를 상상하다
정여울 지음 / 강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정여울 선배. 또는 여울이 누나. 학번차가 6년 되고, 또 학부는 선배가 독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내가 석사과정에 들어와서야 알게 된 선배다. 석박사 공통 비교문학 수업을 하나 같이 들었고, 그 때 누나의 강렬한 파토스가 실린 발표문에 놀랐었다. 아, 저 누나는 대학원 제도가, 글쓰기 방식이 글을 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글을 쓰는 구나 하는 부러움. 물론 그 수업이 비교문학과 수업이었고, 선배-선생님 ^^;이 하시는 수업이었기도 했지만, 민족주의에 대한 일상에서 퍼올린 누나의 고민과 글은 강렬한 감정과 함께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연은 그정도 까지였다. 6학번차고 전공도 다르니 자주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그 때의 수업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과, 선배가 씨네21을 비롯한 학문스럽지 않은(^^) 곳에 쓰는 글들, 그리고 수유 연구실에서 낸 책들을 통해 심상치(?) 않은 선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뿐.

그런데, 훈련소 입소 전에 선배의 (계속 선배라고 하니까 이상하다. ^^;)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못 읽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계속 선배가 부러웠고, 또 더 옆에서 알짱거리면서(?) 친해져 놓을걸 하는 후회가 든다. 안 그래도 읽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몇년만에, 아마도 난생 처음 선배한테 문자도 보내봤다. ㅋㅋ

선배는 '미디어 디스토피아에서 미디어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있다. 드라마, 시트콤, 영화를 통해, 희망을 보는 것. 언제나 유념하고 있던 것이지만, 실천하기는 힘들었던 일. 방에 tv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tv볼 시간이라는 것 자체도 '시간낭비'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공교육의 힘이 어디갈까! 이제 우리의 길은 그 곳으로 밖에 통하지 않는다라고 몇년전에도 스스로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그들'이 '문, 사, 철'이라는 경계를 지워놓은 곳에서만 알짱되고 있었다. 열정은 계속 식어가면서.

가끔 tv 드라마를 힐끔 보게되면, 그 상투성을 욕했고, tv는 어쩔 수 없어라고 하며 거대 자본과 결탁된 방송사, 광고과 드라마제작 등등을 떠올리기만 했다. 미디어로 중개되지 않는 세상이란 없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전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배는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고, 그 결과물이 이렇게 유쾌하게 산출되었으니 어찌 아니 부러울소냐.

그러나 읽으면서 이것이 정말 미디어의 '외부'일까는 아직 설득이 잘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더 부러울 수 밖에. 선배는 정녕 미디어의 외부를 보았단 말일까. 나는 안만해도 안 보인다. ㅜㅠ 사실 이게 내 최고의 문제랄 수 밖에. 희망도 없고, 길도 아직 깜깜해 보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데, 길이 어렴풋하게라도 보일때의 치열함과는 질적으로 다를정도로 치열해야 하는데, 정말 힘들다.

정말 우리의 삶을 한 발짝씩 변혁시키는 것은 큰 일이고, 그것을 통해 균열이 일어날까. Prison Break에서 나오는 후커의 법칙처럼, 단단한 벽에 정확한 구멍을 내면 그 단단함은 사라진다는 것처럼. 확신이 없다. 무기력한 나.

아, 나도 희망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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