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발작 창비시선 267
조말선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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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놀이라는 것은 넓게 보면 모든 문학 작품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좁은 의미의 말놀이, 동음이의어나 발음이 유사한 말을 가지고 하는 장난은 예전부터 우리 문학 속에 유머와 해학으로 존재해 왔다. 조말선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러한 말놀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시를 구성해내간다. 말놀이 자체가 새로운 상상을 하게끔하는 원동력이 되는 거이다. <비스듬히>라는 다음 시를 보자.


사다리가 말한다

나무에 걸린 내 치마 좀 걷어줄래?


죽은 다리를 올라간다


내 머리통이 탐난다면 조샘해,

나는 삐걱거리는 그를 달랜다


내 다리로 걷고 싶다면 조심해,

그는 후들거리는 나를 달랜다


내 머리통을 달고 그가 말한다

이 치마는 내 다리에 더 어울려


네 개의 다리로 올라간다

사다리의 팔이 되려고 올라간다

사다리의 얼굴이 되려고 올라간다. (중략)


사다리는 死다리로 읽히며 또 四다리로 읽는 시인. 사다리를 ‘死다리’로 읽었을 때 화자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사다리를 오르며 四다리로 읽었을 때는 네 개의 다리를 생각하며 오른다. 이러한 말놀이를 통한 시쓰기는 시집 내내 반복되며, 새로운 시를 쓸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만나다와 맛나다를 반복 배치하며 혼동을 주는 <나는 나를 맛볼 수 없었다>, 편해했다와 편애했다를 교묘하게 바꾸어쓰는 <소파의 위치>, 맞는다와 막는다를 반복하는 <달맞이꽃>, 반복이 아닌 번복을 반복하는 <번복하는 오이디푸스나무>, ‘가공’의 두 가지 뜻 가공할 만한과 가공하다를 반복하는 <물고기>, 도마를 준비하고 뱀이 주 요리 재료인 ‘도마뱀요리’ <도마뱀>, 꽃병을 불치병이라고 말하는 <오이디푸스나무의 꽃>, ~마!라는 명령조의 반복과 ‘비’가 내리는 것이 겹쳐서 ‘마비’가 되어버리는 <마비> 등, 시인의 말장난은 때로는 기발하고, 때로는 의미심장하게 되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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