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둔갑 1 - 선천(先天)의 도(道)
조진행 지음 / 북박스(랜덤하우스중앙)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이우혁과 김진명의 공통점은 그 둘이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장르작가라는 점도 있지만, 그들이 민족주의를 노골적으로 팔아먹는다는 데에 있다. 많이 팔리는 대중문학들 중 십중팔구는 이런 ‘한국 아니 대!한!민!국! 최고’라는 소리를 계속 질러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도 한국 판타지 문학들은 어느 정도 민족주의 장사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또 무협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검이나 도를 쓴다. 좌백의 혈기린외전은 암기를 썼고 진산의 당산대형은 독과 암기를 주로 쓰는 주인공을 등장해 신선함이 있었다. (묘하게도 내가 예로 든 두 작가는 부부며, 한국 무협지 중 가장 읽을만한 것들을 생산하고 있다.) 그런데 조진행의 ‘기문둔갑’은 기문둔갑술과 부적술을 바탕으로 천하제일의 고수가 되는 왕소단이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색다른 설정에도 작가의 필력이 딸리면, 이는 설정만 신선한 것으로 남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진행의 서술은 박진감있고 진행 또한 흥미진진하다. (물론 드래곤볼 식의 계속 강해지는 주인공과 이기고 보니 이놈이 악의 대빵이 아니네.. 식의 스토리이기는 하지만 ^^; )

 

왕소단이 배우는 기문둔갑은 알고 보면 고구려에서 흘러나왔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 서술이 있다. 그리고 왕소단에게 경공술을 알려준 스승인 이정갑은 당대 천하제일인이자 고구려의 유민으로 고구려 비밀 모임인 ‘치우회’ 소속이다.

 

이쯤의 설정을 보면, 결국 고구려가 짱이고, 송나라 무림은 다들 나쁜 놈이다 라는 식으로 흘러갈 것을 예상할지도 모르나, 스토리가 교묘하게 짜이면서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장면들이 통쾌하다. 송나라 ‘한인’들로 주축이 된 강호무림은 고구려 ‘치우회’ 소속이며 한족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정갑을 배척한다. 마찬가지로 이정갑을 제외한 치우회 소속 맴버들은 한족을 싫어하며 안티-한족 세력을 결집하여 무림을 집권하려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족이면서 고구려에 뿌리가 단 기문둔갑과 부적술을 배우고 치우회 스승에게 경공술을 배운 왕소단이라는 인물과 치우회 소속이지만 민족감정보다 대의를 앞세우는 이정갑이라는 인물이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자 긍정적 인물로 그려지게 되는 것이다.

 

동북공정이니 독도문제니 해서 서로 배타적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형태로 언론들이 몰아가고 있는 지금, 그 틀을 벗어나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물들이 승리하는 멋있는 무협. 매력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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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26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6-10-26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M님/ 네 저도 동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