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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
아이유 (IU)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아이유, 가을아침을 들었다. 여혐논란이 되고 있는 모양인데, 매우 흥미로운 가사다.
이병우 작사. 아이유 노래. (원곡 양희은)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가 하나 가득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엉금엉금 냉수 찾는 그 아들의 게으름이
상큼하고 깨끗한 아침의 향기와
구수하게 밥 뜸드는 냄새가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파란 하늘 바라보며 커다란 숨을 쉬니
드높은 하늘처럼 내 마음 편해지네
텅 빈 하늘 언제 왔나 고추잠자리 하나가
잠 덜 깬 듯 엉성히 돌기만 비잉비잉
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동기동기 기타 치는 그 아들의 한가함이
심심하면 쳐대는 괘종시계 종소리와
시끄러운 조카들의 울음소리 어우러진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응석만 부렸던 내겐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뜬구름 쫓았던 내겐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아이유/양희은이 불렀기 때문에 화자가 여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가사 자체는 이병우의 작사이고 그의 자서전적 기록이라고 하는 것과, 이 가사의 내용 자체가 '어머니'와 '아들'의 대립을 바탕으로 구성되고 있기 때문에 화자가 남성-아들로 볼 수 있다. 이것을 외부에서 '여성-가수'가 부르고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거리가 도입된다. 이는 추후에 논의하기로 하고, 일단 남성(아들)화자를 중심으로 이 가사의 의미에 대해서 논의해보기로 한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여기서는 어머니의 분주한 가사노동과 아버지/아들의 한가로움이 이항대립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나마 아버지는 “산책”을 갔다가 “효과를 알 수 없는 약수”라도 떠오지만, 아들의 “게으름”과 “한가함”은 “딸각딸각 아침 짓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토닥토닥 빨래하는 어머니의 분주함”과 대비되고 있다. 이렇게 가사노동하는 어머니와 뒤늦게 일어나서 냉수 찾고 기타 치는 아들은, 이런 가을 아침이 커다란 기쁨이고 커다란 행복이라고 노래한다.
이 때문에 이 가사가 불편하고, 여성혐오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며, 한가하게 놀고 있는 아들/아버지와 열심히 가사노동하는 어머니를 당연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해명되지 않는 것은 그렇다면, 이러한 “가을아침”이 “커다란 기쁨/행복”이라고 말하는 ‘아들’이 계속 반복하고 있는 “응석만 부렸던 내겐”/“뜬구름 쫓았던 내겐”이라는 한정어가 왜 계속 붙어있는가이다. 한가한 아들과 분주한 어머니를 대비하며, 이러한 가을아침이 응석만 부렸고, 뜬구름 쫓았던 내게는 커다란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것은, 이와 대비되는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응석과 뜬구름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물론 이 가사가 내내 강조하고 있듯이 아들과 이항대립적으로 놓여있는 어머니의 분주한 가사노동이다. 즉, “가을 아침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가 아닌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라고 하여 ‘내겐’을 강조하고, 또 다시 “응석만 부렸던 내겐”, “뜬구름 쫓았던 내겐”이라고 한정하여, 그렇게 응석을 부리고 뜬구름 쫓았던 ‘나’가 아닌 어머니의 가사노동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를 여성 가수가 부름으로써 다시 이 가사에 거리가 생긴다. 게으르게 늦잠자고 일어나서 한가하게 기타치는 ‘아들’에 대해서 양희은(91년 발표 당시 40세)이라는 ‘어머니’가 노래를 부르거나, 아이유(2017년 발표 현재 25세)라는 ‘누이’가 노래를 부름으로써 이 ‘아들’의 행동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가 더 확보된다.
가을 아침은 양가적이다. 햇살 가득 눈부시지만, 냉기는 서늘하다. 이 둘의 통합으로서 가을 아침이 존재하듯, 한가한 아들과 분주한 어머니, 그리고 ‘내겐’ 가을아침이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하면서 “응석”과 “뜬구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는 화자에게 ‘서늘한 냉기’는 물리적인 온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