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비자림 > 대학 시절의 기억

 대학 시절의 기억

 

캠퍼스에는 말끔히 낯을 씻은 사계절이 순환하여 좋았다

남자에 대해선 관계의 빗장을 꽁꽁 걸고 살면서

가장 첨예한 각이 생긴 自意識만 쓰다듬고 살았던 나  

집으로 가는 길에 내 눈동자를 파고 들던  깨진 보도블럭은

4년 내내 내 의식의 촉수를 건드리고 물어 뜯었다 

연극반에 들어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며 나를 잊던 시간들

시시한 배역도 모두 중요했던 무대 위 인생들

알베르 까뮈, 노암 촘스키,  전태일 그리고 또 누구누구누구

우리는 모두 멘토를 열심히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시대의 우울은 전염병처럼 퍼져 아침부터 해가 지는 날이 잦았고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정육점 갈고리처럼 허공에 걸리던 외침들 

우리는 막걸리를 마실 때만 서로의 가난한 마음을 부빌 수 있었는데

연애하던 이들이 함께 하면 주점의 인조나무마다 겨울눈이 돋았다

자취방으로 들려오던 기괴하고 흉흉한 밖의 소문들

장마철 빨래처럼 눅눅해진 우리는

결국 쭈그러진 자아를 매만지며 학사모를 쓰게 되었고

저마다 작은 배에 올라 타 재빨리 돛을 세우고 나아갔다 

한 번도 방황하지 않은 사람처럼 서러움을 감추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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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6-09-09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형도의 <대학시절>이 떠오릅니다. 마지막 구절은 또 다른 느낌이면서, 기형도와의 세대적인 차이와, 그 이미지나 느낌이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