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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문화사 ㅣ 살림지식총서 224
박철수 지음 / 살림 / 2006년 4월
평점 :
최근 엄마의 성화에 못이겨 몇몇 메이저 건설사 아파트,모델하우스를 찾았다.운전 연수겸 못 이기는 척 따라갔지만 얼마나 가짜집(?)을 잘 지어 놓았나? 하는 약간의 궁금증도 사실 좀 있었다.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아파트를 하나의 상품으로만 보았지,절대 나와 내 가족,이웃이 살 집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직원은 잘 훈련된 앵무새처럼 주식이나 펀드투자 하듯이 상품가치를 역설하기 바빴고,묻지도 않은 발코니확장 비용 등을 얘기하기도 했었다.3군데를 들렀는데 모두 같았다.최고급 가구와 시설은 있었으나,그곳은 인간이 살 집인지 로봇이 살 집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메마르고 탁한 공간이었다.
90여쪽의 자그마한 이 책은,그 같은 아파트 현실에 대한 이해를 드높이고 왜 그렇게 되었나? 에서부터 그럼 어떻게 나아가야 되는데? 까지를 아주 압축적이고도 적실성있게 잘 드러낸 책이었다.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참으로 멋들어졌다.보통 건축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이라면 매우 딱딱한 접근이 예상되는게 맞을 것이다.그러나 시대와 함께해온 우리 소설들 속에서 그같은 일련의 흐름을 물 흐르듯 보여줌으로서,독자의 접근도를 보다 친숙하게 한다.이호철의 ‘서울은 만원이다’,최인호의 ‘타인의 방’,서하진의 ‘라벤더 향기’,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김채원의 ‘푸른 미로’,김인숙의 ‘그래서 너를 안는다’,공지영의 ‘부활무렵’,공선옥의 ‘한데서 울다’ 등 주옥같은 소설들을 이 책에서 만날줄은 전혀 예상 못한 덤이었다.책에서 언급한 책들을 언제 읽었더라? 왜이리 생소해? 하면서 다시 펼쳐보는 재미까지 이 책은 선사했다.이를테면 주(註)를 따라가는 책 여행의 즐거운 여정이 되기도 했던 것.
책을 읽으며 전적으로 동의한 구절들을 조금 깊게 생각해 본다면..
1.단지의 자폐를 끊어라.
강풀의 원작을 영화화 한 고소영 주연의 ‘아파트’에선 그 같은 자폐의 흔적들을 적나라한 공포로 형상화한다.이미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괴물이 되어 버렸다.결국 그것의 해결책은 이 책 전반의 중요한 화두이기도 한 공동공간의 확보 문제와 연관이 있는데..지난 월드컵이 치루어진 독일의 어느 도시에선 도로폭을 줄이고 보행자거리를 대폭적으로 확충하는 의식의 전환을 보여주었다.차가 지나가야 할 도로에 벤치가 들어서고,아이들이 차 걱정 하지 않고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그것은 결국 사적인 편의가 아닌 공동의 공간을 마련한 의미있는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아파트도 마찬가지이다.집값 떨어진다고 단지내 재래시장 형태의 간이장이 서는걸 막아대고,놀이터 없애고,이중삼중으로 막아둔 섀시는..하나의 견고한 성이다.그 속에 접속과 봉합,소통과 전도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재고주택의 성능향상과 유지관리에 힘쓰자.
우리나라의 재고주택 갱신년도가 14.8년이란다.중학생 정도에 소멸하는 수명이다.반면 영국은 141년,미국은 103년,일본도 30년이란다.우리 건설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집을 짓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재건축과 재개발을 통한 어떤 이익을 감안한,것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잘못된 관행과 암묵적 합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하는 대목이다.이건 시공사나 아파트에 사는 사람 모두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일.
3.고령인구에 대한 주거공간의 배려나 주택형 개발에 관해 관심을 갖자.
순간,일본영화 ‘메종 드 히미코‘ 가 떠올랐다.영화안에선 게이 실버타운이란 좀 독특한 자리매김을 하곤 있지만,어쨋든 그곳은 노인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우리의 고령화 추세로 볼때 이 부분은 반드시 중요한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독신자 아파트처럼 특성화되어 노인의 요구와 편의에 맞게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본다.다만 책에서 언급한 뒷부분이 더 의미가 있는데,부모 세대를 자식세대가 한 지붕 아래에서 봉양할 수 있는 3대동거형 아파트에 대한 재검토와 정책적 지원이 그것.어떤 인센티브를 말하는 걸로 이해했는데,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따로,똑같이..란 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면,충분히 의미있는 따로국밥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파트를 열어라!
아파트 형태의 공간에 산지 15년째다.그 자폐의 공간의 위험성을 알면서도,편하다는 이유로
애써 눈감아왔던 것들에 대해,지금 현재..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의미있는 책이었다.내가 살고 있는 이곳,일요일 한 지역방송에선 ‘아파트를 열어라!’ 란 제목을 단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는데,굉장히 의미있는 시도로 읽힌다.숫자로만 호명되는 1304호 아저씨,1609호 아줌마,1708호 할아버지등이 포장마차에 한데 모여 야식도 먹고,이야기도 나누는데..한 아파트 단지내에 살면서도 거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란 것이 특징.그러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털어놓는데,다들 사는게 고만고만 하다.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왜그리 무심했을까.가끔 보다보면 서글퍼질때도 있다.동현이네 집,나영이 엄마,김영우 할아버지가 아니라 몇 호집네 사람,숫자로 고만고만 읽혀질때..씁쓸한 어떤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건 과연,나 뿐일까?
결국 아파트를 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아파트를 상품으로 보면 그속에 인간은 없다.아파트는 내 가족과 이웃이 함께 살아가는 터전이다,라고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기능중심으로 만들어놓은 아파트지만,우연한 만남과 그에 대한 기대의 장소로 탈바꿈 되기를,바래본다.쉽지는 않겠지만,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믿고 싶다.이 책이,그 희망의 작은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