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자다 밤 중에 깬 날은 우울하다. 비가 내린다. 학부 1, 2학년 때는 열심히 시를 썼다. 시인인 교수님께서 시 쓴 것을 가져와보라고 하셨다. 가져가니, 드려다보시고 물으신 말.

"왜 국문과에 들어왔나?"

"자유롭고 싶어서요."

선생님께서는 한동안 조용히 계시더니, 학교에 오면 보통 어디에 있냐고 물으신 후, 연구실에 나와 있으라고 하셨다.

자유롭고 싶다. 국문학을 한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왜 그 때, 저런 말을 했을까.

모든 것을 벗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국문학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었고, 문학은 무수히 많았으며,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문학은 공부가 아닌 것, 즉 자유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업으로, 학문으로, 공부로 국문학을 하고 있다.

학부에 들어와서는 선배들과의 세미나, 교양학교, 수업 등등에, 그것에서부터의 일정한 거리에서 시를 썼다. 시를 쓰는 행위는 선택이었고, 자유였다. 그런데 요즘은 '시를 써야 한다'라는 의무다.

자유,

나의 선택.

내가 이런 것을 소중히 하는 이유에는, 삶은 유한하다, 나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 죽음, 등등에 대한 강박이 놓여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삶은 본질적으로 비자유.

사람들이 시를 쓰라고 하니, 소설을 써 볼 셈이다. 또 사람들이 소설을 쓰라고 한다면, 시나리오라도 써야겠다. 사람들이 무엇이든 쓰라고 하면, 무엇이든 쓰지 않거나, 무엇이든 쓸 것이다.

쓴다, 라는 것에, 선택이라는 것에, 그래도 유한한 인간이 가장 창조적일 수 있는 것에, 탈출구가 있을 것만 같다. 그래도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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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6-08-1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런 것을 소중히 하는 이유에는, 삶은 유한하다, 나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 죽음, 등등에 대한 강박이 놓여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삶은 본질적으로 비자유.

요 부분에 이르니 어제 본 게드전기가 생각나네요..

비자림 2006-08-1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이런 것을 소중히 하는 이유에는, 삶은 유한하다, 나는 언젠가는 사라질 것, 죽음, 등등에 대한 강박이 놓여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 삶은 본질적으로 비자유.'

많이 공감되는 말이군요.
님의 오늘 페이퍼를 읽으니 님이 이제 글을 쓰는 그 자유, 그 속박, 그 매혹적인 늪에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기인님.^^


기인 2006-08-14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라리난쟁이해적님/ 님 페이퍼에서 게드본기 보았다는 말은 들었는데, 괜찮았다는 말도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엉망이라고 화냈던 것도 봐서 ^^;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네요.
비자림님/ 네. 에코가 말했던 것이 기억나요.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아이를 낳는 것과 글을 쓰는 일. 가끔 공감되다가, 가끔은 반박하고 싶어지다가.. 그래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