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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가족 살해 美병사 “살인하고파 왔다”
입력: 2006년 07월 31일 18:17:14
 
“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 이곳(이라크)에 왔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30일 일요판 섹션 ‘아웃룩(Outlook)’의 전면에서 이 같은 충격적 제목의 인터뷰를 실었다. 인터뷰를 한 사람은 미 성조지의 이라크 종군기자 앤드루 틸먼이며, 대상은 스무 한 살의 이라크 주둔 미군 이등병이었다.

틸먼 기자가 인터뷰한 시점은 5개월여 전인 지난 2월이었으며, 장소는 이 병사의 소속부대인 101 공수사단 502 보병연대가 주둔하고 있던 마흐무디야라는 곳이었다. ‘죽음의 삼각지대’ 중 하나인 마흐무디야는 이라크 전쟁 이래 저항세력과의 교전이 가장 격렬하게 전개된 지역. 이곳에는 약 1,000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으나 1주일에 1명꼴로 미군 사망자가 발생해 왔다.

당시 틸먼 기자는 이라크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미군을 취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 여러 군인들과 인터뷰해 기사화했지만 이 이등병의 이야기는 송고하지 않았다. 아주 드물게 자기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는 미군 정도로 생각했으며, 또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그때의 전투상황에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는 게 틸먼의 설명이다.

틸먼이 이 병사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인터뷰를 한 지 3주 후 미국 언론의 전면에 등장한 그의 사진에서였다. 그는 이라크에서 14살난 소녀와 그의 가족들을 잔인하게 강간하고 살해한 혐의로 본국으로 송환됐던 것이다. 병사의 이름은 스티븐 그린. 서부 텍사스주 출신인 그린은 당시 이라크에 주둔한 지 4개월밖에 안된 상태였다.

그린은 틸먼에게 군에 자원한 동기에 대해 “솔직히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삶을 바꾸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이곳에 오게 됐다”면서 “이곳에 와서 나는 그렇게 했으며 이제는 ‘무슨 일을 하든 뭐 어때’라는 식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언젠가 차량검문소에서 근무할 때 정지명령을 어긴 사람을 쏜 적이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면서 “이곳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개미를 짓밟는 것과 같고, 마치 ‘자, 피자 먹으러 가자’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그린은 지난해 12월 함께 차량검문소에 나갔다가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아 목에 총알이 박힌 하사관이 부대로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숨져가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 이라크에서의 가장 끔찍했던 순간이었다면서 “나는 단지 살아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 이라크가 어찌됐던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또 “이 전쟁은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들이 싸웠던 것과는 다르다. 그 전쟁들은 무언가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 전쟁은 그런 게 아무 것도 없다”고도 했다.

틸먼은 그린이 다른 미군들과는 달리 함께 주둔했던 이라크 군인들과도 잘 지냈다고 했다. 한번은 그린이 자신을 이라크군이 운영하는 임시 찻집으로 데리고 가서는 이라크 군인들과 아랍어로 인사말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때 그린은 이라크인 병사들을 “멋진 친구들”이라면서도 “그러나 이들이 모두 죽어버려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은 어린 군인들을 가장 공포스럽고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 속으로 몰아넣는 군과 정치인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남들은 어쩌다가 총을 맞지만 우리는 항상 공격받고 곤경에 처해진다”면서 “우리는 정치인들, 또한 우리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이곳 전선이 어떤지 아무 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의 볼모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틸먼 기자는 나중에 그린에게 마약과 음주 문제가 있었으며 가정도 불우했고 경범죄 전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기사와 함께 전문가 4명으로부터 그린의 정신상태를 진단하는 별도의 기사를 실었다. 전쟁의 정신적 후유증 전문가인 로버트 립턴은 그린에게 전쟁에 대한 명백한 목적의식이 없었던 점을 한 요인으로 꼽으면서 “군인들이 2차대전처럼 전쟁의 목적이 분명할 경우 정신적 외상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심리적으로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군사회학자인 데이비드 시갈 박사는 “지난 30년 동안 만난 어떤 군인으로부터도 그린처럼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서 “군 입대 기준이 정상적이라면 진작에 걸려졌어야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정동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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