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247
박형준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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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은 습관적으로 비둘기를 사냥한다
억센 발톱을 밀어내며
상처를 잊기 위해 전율하며,
야외공연장의 난간에서 파란 불꽃을 쏘아낸다

밤공기 속에 몸을 묻고
팽팽한 근육에 화살을 매겨
단숨에 공중을 꿰뚫는
저 단단한 불꽃

한 때는 주인의 발밑에 웅크리고
졸음을 파고드는 손길에
나른한 목덜미를 맡겼으리라
근육은 오직 사랑을 받기 위해
둥글게 꼬리를 말아쥐는 데만 사용됐으리라

누가 꼬리를 잘랐을까
손톱 같다, 초원의 사자처럼
밤공기를 밟으며 나아갈 때마다
치켜진 꼬리에서 적의가 흘러내린다
눈가에 칼날이 긋고 간 흔적이 뚜렷하다

어둠으로 깊어진 눈동자에 들어 있는
저 초승달
전율하는 꽃이 거기 있었다는 듯
한순간에 비둘기의 울음소리를 낚아챈다

토요일에 연인들은 플라타너스 그늘
흔들리는 야외공연장에 팝콘을 던진다
입에 물린 상처를 내려놓고
야외공연장의 난간에서 고독은
다시 냄새를 맡는다-58-59쪽

가끔은 식스센스와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시 막판에 가서 충격을 주고, 시를 다시금 반추하게 만드는. 이 시 또한 2연까지는 뭔소리인가.. 하다가 3연에 와서야 '고독'의 정체를 알게 된다.
사람은 개를 좋아하는 사람과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의 타입으로 나뉜다고 하는데, 보통 문학도들은 고양이를 좋아한다. 그 도도함, 그리고 숨겨져 있는 애교. 애인은 강아지를 좋아한다. 언제 우리는 고양이와 강아지를 같이 기를 수 있는 날이 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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