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지음, 이용대 옮김 / 한겨레출판 / 2003년 1월
구판절판


고대의 왕들이 보통 사제를 겸했다고 말하더라도, 결코 그것만으로 그 직책의 종교적 측면을 완전하게 밝혔다고 할 수는 없다. 그 시대에 왕을 둘러싼 신성(神性)은 공허한 말의 형식이 아니라 엄연한 믿음의 표현이었다. 왕들은 대개 단순히 사람과 신의 중개자인 사제로서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신으로서 유한한 인간의 능력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초인간적 존재에게 기도와 제사를 올려야만 얻을 수 있는 축복을 신민들과 숭배자들에게 베풀 능력을 지닌 존재로 숭배를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왕들은 흔히 적절한 계절에 비와 햇빛을 주어 농작물을 자라게 해줄 것이라는 따위의 기대를 받는다.-81쪽

우리에게는 이러한 기대가 이상해 보이지만 고대인의 사고방식에는 꼭 들어맞는 것이다. 미개인은 더 진화한 인류가 보통 생각하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의 구별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가 생각하는 세계는 대부분 초자연적인 동인(動因)들, 다시 말해서 자신과 같이 충동과 동기에 따라 행동하며, 자신과 같이 연민과 희망, 공포로 호소하면 감동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세계를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미개인은 자기 이익을 위해 자연의 운행에 영향을 미치는 자기 능력의 한게를 알지 못한다. 기도나 언약, 협박을 통해야만 신들은 좋은 날씨와 풍성한 수확을 자신에게 보장해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때때로 믿듯이, 신이 자신의 인격으로 화신(化神)한다면 자신은 더 높은 존재에게 호소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미개인은 자기 자신과 동료들의 번영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모든 권능을 자신 속에 지니게 되는 것이다.-81-82쪽

이것은 인간신의 관념이 형성되는 경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또다른 경로도 있다. 세계가 정신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다는 세계관과 나란히 미개인은 그것과 다른, 어쩌면 훨씬 더 오래된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 세계관 속에서 우리는 근대 자연법 사상, 또는 자연이 인간적인 작용의 개입 없이 불변의 질서 속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는 자연관의 맹아를 찾아낼 수 있다. 내가 말하는 그 맹아는 대부분의 미신체계에서 큰 역할을 하는 이른바 공감주술(sympathetic magic)에 내포되어 있다. 고대사회에서 왕은 흔히 사제이면서 동시에 주술사이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종종 사술(邪術)이나 법술(法術)에 능란해 보인 덕택에 왕권을 획득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왕권의 발달과정과 미개인이나 야만인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직책의 신성한 성격을 이해하자면 주술의 원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며, 또 고대의 미신체계가 모든 시대 모든 나라에서 인간 정신에 미친 비상한 지배력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82쪽

단군왕검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