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를 보았다. 흔히 유하 감독의 폭력 연작이라고 일컫는 '말죽거리 잔혹사'가 학교=군대=사회 였던 80년대를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이 '비열한 거리' 또한 '비열한(천박한?) 자본주의 현대'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이야기의 욕망'이 죽음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이 영화는 안에 '남부건달항쟁사(?)'라는 또다른 영화가 들어 있다. 조인성(건달)의 친구로 나오는 남궁민(영화감독)이 조인성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다. 물론 조인성은 이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요구 하지만, 남궁민은 이를 영화로 가공하고 만다. 그리고 조인성은 남궁민에게 이를 다른 사람에게 밝히지 말라고 협박하게 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바로 곽경택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친구' 때문에 실재 건달 친구가 문제를 건 적이 있었다. 정확히 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곽경택 감독과 건달 친구 때문에 떠들썩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서브 텍스트를 유하는 활용하면서 죽음을 담보로 하여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현대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보여주고 있다.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는 이야기를 해야만 죽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계열의 이야기는 '비밀'을 밝히고 싶어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또 그 '비밀'은 결코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왜 사람들은 '비밀'을 폭로하고 싶어할까. 비밀을 공유함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친분을 다지기 위해?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무언가 사람은 말하고 싶어하고, 이것이 어쩌면 문학의 출발점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비밀'을 폭로하고자 하는 욕망이 '조폭'이라는 집단과 맞물리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흥미롭다. 조폭이란 법의 경계에 완전히 포착되지는 않는 존재로, 사회의 밖에 있는 존재이다. 국가 장치에 의해서 완전히 포착되지는 않는 '주체들'. 이 영화에서는 그들을 의리에 죽고 사는 무협지식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그 주체들 또한 '이익'이라는 자본주의의 작동방식에 충실할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자본의 외부는 없다는 것. 아니, 자본은 그렇게 작동한다는 것.

자본 속의 이야기. 어쩌면 유하가 처한 사태인지도 모른다. 비열한 거리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는 것. 죽음을 담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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