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리 씨가 사라지셨다. 아따리 씨 이야기를 고대하는 무수히 많은 독자들을 위해 또 몇마디 변명을 늘어놓아야겠습니다. 사실 아따리 씨는 수없이 사라졌다 나타나고 죽었다 살아나는 분이기 때문에 잠시 사라지졌다 해서 놀랄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애초에 아따리 씨는 굉장히 긴 글이 될 거라는 걸 저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아따리 씨가 나타난 건 작년 2월쯤의 일인데 그때 저는 건물 2층 난간에 기대 담배를 피우다가 까딱 잘못해서 담배를 그냥 바닥에 떨어뜨려 버렸는데 그때 갑자기 머리가 아닌 발가락부터 엄마의 뱃속에서 기어나오는 아따리 씨의 이미지가 떠올랐습니다. 저기 왼편에 있는 저런 색깔이긴 했지만 아따리 씨는 머리가 없다는 특징이 있었지요. 그래서 쓴 게 밑에 첨부한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야기가 떠올랐다는 자체로 굉장히 흥분해서 썼는데 너무나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글 자체가 완전 엉망이었죠. 재밌다고 평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체로 한글이 이상하다 는 게 합의된 결론이었습니다. <트리스트럼 섄디>를 의식해서 아따리 씨가 태어나는 장면부터 해서 일생을 다 쓸 계획이었지요. 물론 조각난 이야기들이 마구 끼어들어서 단지 줄거리만 있는 그런 연속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저거 말고 또 쓴 게 있냐고 물어보시겠지요. 당연히 없습니다. 저걸 쓰고 나선 앞으로 어떻게 써야하겠다,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막연하게 칼리파 이야기를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다지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습니다. 여기서 강조해두어야 할 건, 저는 구상을 제대로 한 다음에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마르께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의 첫문장에서 끝문장까지 머리 속에서 다 써본 다음에 그걸 글로 옮기고 여덟번이나 교정을 보았다고 합니다. 머리 속에 그만큼의 글자를 기록할 수 있는 종이를 갖고 태어난 사람만이 그럴 수 있지요.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그런 종이가 한 장도 없습니다. 뭐가 들어있는지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종이는 없는 게 틀림없습니다. 종이가 있었다면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적어도 한 번은 들렸을 테니 말입니다. 어쨌든 저는 그냥 생각이 나면 아무 문장이나 쓴 다음에 거기서 다시 생각을 해서 이어나가는 식의 작업을 합니다. 그러니 호흡이 길지 않고 자꾸 끊기고 이야기가 엉뚱한 데로 많이 새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제게도 일종의 틀 같은 건 있습니다. 사실 제가 글을 쓰겠다고 생각할 때 글쓰기 전작업으로 하게 되는 건 바로 이 틀을 구상하는 일이지요. 내용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용은 언제든지 아무데서나 끌어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실 걸어다니다 보면 발에 차이는 게 내용 아니겠습니까. 제가 처음 들었던 고대철학사 교수님은 걸어다니면 발에 차이는 게 철학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철학이 아닌 철학사를 한다고 말입니다. 저 또한 그래서 문학이 아닌 문학사를 합니다. 그럼 과연 그 틀이란 게 무어냐, 라고 물으시겠지요. 묻지 않으시면 더 좋을 텐데 기어이 물으실 테지요. 우선 저는 한꺼번에 만개의 글을 쓸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두 가지 의미에서인데, 첫째는 만개의 서로 전혀 상관이 없는 글을 쓰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둘째 똑같은 이야기를 만개의 방식으로 쓰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더 큰 비중을 두는 건 첫번쨰 의미입니다. 제겐 줄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줄거리엔 별 관심도 없어, 라고 말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또 줄거리가 없다면 빨아먹을 피가 없어지는 거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진 못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머리 속에서 하나의 긴 이야기를 짜낸 다음 그걸 쓴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를 짜내고 싶지도 않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같은 글을 쓰는 게 평생의 소원이긴 합니다만 그것도 딱히 줄거리를 짜내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도 같습니다. 어쨌든 무능력과 비호감 때문에 줄거리를 굳이 만들고 싶지 않다,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별로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무수히 많이 만들어낸 다음에 여기에다 줄거리라는 혈관을 끼워넣는 게 더 쉬우면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예 상관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어떻게든 상관이 있을 겁니다. 다만 상관관계를 미리 생각하지 않고 미리 끼워맞추지 않고 글을 쓴다는 말씀입니다. 너무 모호한가요.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저도 명쾌하게 설명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 의미는 뭐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저는 글쓰기가 판화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똑같은 틀을 잉크가 다르게 아니면 누르는 힘이 다르게 어떻든 계속 찍다보면 모든 결과물이 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겉으론 똑같이 보이더라도 조금씩은 다 다른 것입니다. 보르헤스의 '삐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가 바로 이런 거지요. 물론 그냥 겉으로 똑같이 보이는 거를 다르게 읽는 거랑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개 쓰는 거랑은 분명히 다릅니다. 여기서 가장 재밌는 상황은 똑같은 이야기를 만개의 방식으로 썼는데 이 만개의 이야기가 다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상황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지요. 러시아의 어느 마을에 굉장히 마을 사람들의 신망을 받은 장군이 하나 살았습니다. 다른 도시에까지 소문이 퍼져서 한 외지인이 이 장군이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하고 그 마을에 갔는데, 아니 마을 사람들이 전부 다 똑같이 생긴 게 아니겠습니까. 알고 보니 모두들 장군을 너무나 좋아라 하다가 그만 장군을 닮아가서 결국엔 다들 장군과 똑같은 모습이 되어버렸던 겁니다. 또 너무 빗나갔나요. 어쨌든 그렇습니다. 이런 틀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틀을 짜는 데 있어서 또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문학사라는 괴물입니다. 앞에서 저는 지나가는 말로 '나는 문학사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도 그냥 아무 관계없이 부적절하게 끼어든 표현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발표 준비를 해야하는 관계로 아주 나중에 다시 아따리 씨 소식을 정하면서 제 소견을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밑의 글은 최초의 아따리 씨 이야기입니다. 희귀본이니 잘 간수하시기 바랍니다.

-------------------------- 아따리 씨! 나는 배는 고프고 돈이 없어 빵이라도 하나 얻어 먹을까 헌혈을 하러 갔다 아따리 씨를 처음 보았습니다. 장장 이틀째 굶었던 터라 거울로 보기에 그토록 초췌해 보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매우 힘이 없고 우울해서 그저 내가 정신이 몽롱해서 그런 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분명히 안경도 제대로 끼고 있었고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귀신 같은 건 한 번도 보인 적이 없고 굳이 대자면 공포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쯤일 텐데, 그렇다고 정신이 말짱한 이른 아침에 헛것을 본다는 것도 이상하고요. 짤랑, 하고 문에 달아놓은 자그마한 종이 울리는 소리까지 들었으니 문을 여는 그 몇 초 사이에 딴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거기 문을 열자마자 아따리 씨가 서있었던 것입니다. 뭐 그래도 기절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어 머리가 없네, 하고 굳이 울부짖으려 하는 소리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기까지 했으니까 말이죠. 어 머리가 없네. 아따리 씨는 머리가 없습니다. 아따리 씨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없었습니다. 아따리 씨가 태어날 때, 아이를 받아주던 유명한 산파 칼리파는 머리가 아직 배에 걸려서 나오지 않았을 거라 말하며 머리 없는 아이를 처음 보고 경악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 할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이런 경우를 몇 번 봤다우 머리라는 게 몸에 비해 워낙 큰 것이라 원래 제대로 나온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 셈이니까. 물론 아따리 씨의 엄마는 기적이란 게 참으로 잘도 일어나는 것이군요 라고 주제 넘게 나서서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저 칼리파가 시키는 대로 다시 배에 힘을 주기 시작했으니까요. 조금 더 힘을 주라구 곧 나올 거야. 아따리 씨의 엄마가 배에 힘을 주며 끙끙대는 사이, 먼저 밖으로 나온 머리가 없는 아따리 씨에겐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들 정말 아직 머리가 안 나왔구나 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러다가 아따리 씨 엄마가 지쳐 끙끙대길 멈추자,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물론 아따리 씨의 울음소리였지요. 그러니까 마치 동굴에서 들리는 메아리 같았습니다. 어렸을 때 개구리를 잡으려다가 발을 헛디뎌 우물 속에 갇혔을 때 제 목소리가 그렇게 들렸지요. 개구리 소리, 우물 벽, 물, 두레박에 부딪혀 비틀거리고 갈라지던 그런 목소리 말입니다. 간호사가 나와서 헌혈 하러 오셨어요 하고 말을 건넬 때까지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멈춰서 있었습니다. 원래 동굴에 갇혔을 때엔 우선 눈을 감고 가만히 멈춰서 있어야 어지럽지 않거든요. 아 아따리 씨 이쪽에 앉아 계시겠어요. 아따리 씨는 간호사에게 손을 잡힌 채 의자에 앉았습니다. 혈액형이 뭐냐고 아따리 씨가 아직 그 자리에 서있던 제게 물었습니다. 에 에이비형인데요. 그랬더니 아따리 씨는 신선한 게 먹고 싶었는데 라며 두 손을 탁 하고 치던 것이었습니다. 아 네.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 아따리 씨 기분이 상할 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 당시엔 제가 에이비형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확히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아마 제가 잡아먹히고 말거라는, 그러니까 아따리 씨가 무슨 식인종이라도 되는 것마냥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합니다. 그다지 터무니 없는 상상은 아니었던 게, 실은 아따리 씨가 식탐이 좀 있긴 하니까 말입니다. 칼리파는 울음소리를 확인하려고 아따리 씨 엄마의 자궁에 귀를 갖다 대었습니다. 저기 어디 깊숙이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한데, 조금만 더 힘을 줘보라구, 안에 있는 게 틀림 없어. 아따리 씨 엄마가 다시 배에 힘을 주고 끙끙대기 시작했습니다. 이상하네요, 분명히 울음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리 힘을 줘도 나오지 않는 걸요. 그때까지 아무 말 없던 아따리 씨 아빠도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입을 열었습니다. 그럴 만하기도 했던 게,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따리 씨 엄마가 끙끙대기 시작한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그저 울음소리만 들릴 뿐, 게다가 울음소리가 그다지 커지지도 않는 게, 머리가 있으면 저 깊숙이 어디 있을 거라고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열 시간이 지나자 열한 쌍둥이까지도 받아본 칼리파도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아따리 씨 엄마는 이미 잠들어 버린 지 오래였지요. 아무래도 배를 갈라야 할 것 같아. 칼리파는 수건에 물을 적셔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말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배를 갈라서 난 아이가 출중하다는 전설이 있긴 하지만 굳이 머리 하나 보자고 배를 가를 순 없습니다. 아따리 씨 엄마 어깨에 있는 주사 자국 조차도 싫어하는 아따리 씨 아빠가 말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있긴 하지. 칼리파는 땀을 닦은 수건으로 손에 묻는 피를 닦아 내며 말했습니다. 똥. 아따리 씨가 피를 음식으로 먹는 건 아니었습니다. 아따리 씨는 머리가 없고 맨 윗부분에 머리가 떨어져 나간 자리 때문인지 구멍이 하나 있었기 때문에, 가끔 자칫 발을 잘못 디뎌 넘어질 때면 그 구멍으로 피가 새어나가, 피를 마시는 것으로 피를 보충해야만 했습니다. 아따리 씨는 피는 음식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맛있는 피가 먹기에도 좋고 피를 많이 마셔본 사람만이 피 맛을 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아타리 씨가 피를 그다지 좋아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어쩔 수 없이 먹을 수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맛있는 게 낫다, 그런 뜻이지요. 하지만 어쨌든 아따리 씨가 주스 같은 그리고 굳이 덧붙이자면 피 같은 즙 종류를 좋아하는 건 사실입니다. 오줌도 좋아하냐고 농담 삼아 물어보긴 했는데, 대답을 해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따리 씨는 이빨로 음식을 씹지 못하기 때문에 어차피 즙과 같은 액체로 된 음식이 아니면 제대로 맛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아따리 씨가 즙 종류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인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아따리 씨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은 거의 없을 정도로, 세상 모든 것의 맛을 느껴볼 대로 느껴본 지라, 이빨로 씹어야 할 음식의 맛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해도, 어쨌든 전부 다 먹어보고 즙 종류가 좋다고 하는 것이니, 정말 아따리 씨는 즙 종류를 좋아하시네요, 라고 단호히 말할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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