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옮겨놓고 보니 더욱 가슴이 아픕니다. 헌데 제 아픈 가슴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더욱 후벼파는 독자분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란 게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저게 무슨 굉장히 아름답고 섬세한 글씨야 차라리 악필이라고 해야 옳겠구먼. 아, 최소한의 동정도 없는 세상. 이 동정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 특히나 글을 쓴다는 건 애초에 미친 짓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독자분의 의견을 비난하진 않겠습니다. 세상엔 아름다움이란 걸 즐길 수 없는 불쌍한 영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받아야 할 몫의 동정을 저 독자분께 드리겠습니다. 그런데도 또 뭐라고 웅얼거리십니다. 그렇게 사나운 눈으로 저를 쳐다보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저는 더 이상...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독자분들께서는 안전제일 이라는 모토를 항상 유념하시면서 제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화제를 돌려서, 아니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저도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대통령 선거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린 건 기억이 나는데 그 전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해드리겠다고 약속하진 않았는지 그것도 모르겠습니다. 뭐 아무 말도 없으신 걸 보니 여러분도 같이 길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이럴 때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저는 아따리 씨의 책에서 이 방법을 발견했는데 지금처럼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써먹기 아주 유용해서 저기 바깥에 계신 분들께도 소개해드리려 하는 바입니다. 이 방법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호메로스란 사람이 서사시를 쓸 무렵부터 있던 것인데 전문용어를 써서 말하면 'deus ex machina 재수 억수 막히나'라는 것입니다. 혹시 배길수 씨를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아따리 씨 이야기가 성공을 거두면 저는 번 돈을 모두 갖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배씨 일가 연대기를 쓸 생각입니다. 그러니 배길수 씨를 잘 모르신다거나 더 알고 싶다거나 하시는 분은 아따리 씨를 다룬 이 책을 많이 사시고 선물로도 많이 하셔서 제가 돈을 많이 벌 수 있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께 아따리 씨 이야기만큼 기막히고 슬프고 장중하고 재미있는 배길수 씨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배길수 씨라는 분이 있는데 이분이 로마 시대에 서사시를 하나 쓴 게 있습니다. <이드아이네>라는 서사시인데 일설에 따르면 프로이트가 말년에 이 책을 발견하고 이드 밑에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충격에 빠져 미아찾기하듯 다시 정신의 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아따리 씨의 희대의 명작 <배길수와 둘한테>를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배길수는 둘한테가 살던 시대까지만 해도 하나의 전설, 아니 세상 만사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백과사전, 아니 그걸 넘어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 신은 구원을 준다 하지만 언제 줄지 몰랐고 배길수는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주었기 때문에 오히려 신보다 더 유용했다. 그러므로 근대의 실증주의는 신에 대한 배길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려운 문제가 닥치거나 도저히 갈피를 못 잡아서 뭘 해야할지 모를 때면 항상 목욕재개를 한 후에 성스러운 다락방에 모셔두었던 배길수의 서사시 <이드아이네>를 꺼내왔다. 그런 다음 잔디가 가득한 정원으로 나와 양피지를 굴린 다음 하늘을 보고 침을 뱉어 침이 양피지에 떨어지면, 바로 침이 떨어진 곳에 적힌 단어를 답으로 생각하고 그 단어가 지시하는 대로 행동에 옮겼다. 이는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 응용한 deus ex machina라 할 수 있다. 재수 억수 막히나...참으로 시적인 표현이다. 가끔은 내가 뱉은 침이 다른 이의 양피지에 묻어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알레한드로 까나바르의 에 인용된 앙리 까슐리에의 에 인용된 꼬르넬리우스 안토니누스의 에서 그 광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hortus plenum erat hominibus qui manibus idaenem ferenti. magna bella fuit cum saliva ceterae papyrae cecidit". 나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묘사를 찾아보려고 많은 책을 뒤져봤으나 아직 더 훌륭한 묘사는 찾지 못했다. 둘한테가 자신의 작품에서 배길수를 천국에 들지 못하는 자로 묘사한 이후 많은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르네상스의 힘을 업고 둘한테가 권위자로 인정받으면서 배길수의 전설은 사라져버렸다. 둘한테가 그 자리를 곧 차지했으나 온데군데에서 혁명이 일어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아예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않는 게 속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둘한테 또한 잊혀졌다. 그렇다면 deus ex machina란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린, 별로 기억할 필요도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하는 게 옳을까. 그렇지 않다. 나는 내년에 쓸 책에서 이를 증명해보이려 한다". 안타깝게도 아따리 씨는 자신이 약속한 책을 쓰지 못했습니다. 재수가 억수로 막혔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따리 씨가 그의 애인이었던 요릭 가토스 1세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아따리 씨는 현대의 deus ex machina가 가능한지 증명하기 위해 집에 있는 모든 책을 폈다 덮었다 하며 예전사람들이 배길수와 둘한테에게서 자문을 구했듯이 글을 쓰다가 막힐 때면 책을 펼쳤을 때 처음 눈에 띄는 단어를 옮겨쓰고 즐겁게 글을 이어가다가 또 막히면 다른 책을 펼쳐보고 덮고 하기를 반복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길 듣고 아따리 씨처럼 책을 덮었다 펼쳤다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몇시간을 계속한 결과, 저는 백퍼센트 완벽하게 제 막힌 길을 뚫어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 여러분 그렇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그런 책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몇시간 몇일 몇달 몇년이건 열심히 찾다보면 분명히 여러분에게 맞는 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아따리 씨가 증명하려 했던 게 바로 이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즉, 현대에는 배길수의 서사시나 둘한테의 코메디아 같이 모든 이들에게 다 정확한 답을 줄 수 있는 책은 없지만 각각의 개인에게 정확한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책이 반드시 한 권은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나 성급한 독자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확신이 있기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라 생각하시고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이미 살만큼 산 사람입니다. 아무런 말이나 씨부렁거리는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시간은 예술가, 하잘 것 없는 것도 황금으로 만든다네. 그럼 잠시 기다리면서 뭐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계시면 신성한 다락방에 올라가 책을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이제 제대로 된 길을 찾으면 지금 느끼시는 약간의 지루함을 보상하고도 남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들 눈앞에 펼쳐질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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