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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호 띵똥 아저씨 - 환경이야기 (층간 소음, 배려) ㅣ 노란돼지 창작그림책 27
이욱재 글.그림 / 노란돼지 / 2014년 5월
평점 :
11. 이욱재, "901호 띵똥 아저씨", 노란돼지, 2014.
층간 소음 문제를 역지사지로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 온 별이와 산이, 1001호에서 신나게 뛰어노니, 901호의 무서운 아저씨가 띵똥 누르면서 올라온다. 매번 발소리를 낼 때마다 올라오는 아저씨가 무서워 최대한 소리 내지 않게 걷는 연습을 하다가, 사촌들이 와서 뛰어놀아서 아빠랑 띵똥 아저씨랑 대판 싸우게되고, 아빠는 애들이 지금 가고 없다면서 층간 소음이 다른 집 소리 아니냐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1101호에 엄청 시끄러운 아이들이 이사 오게 되서, 1001호는 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901호 띵똥 아저씨가 올라오는 것보다, 1101호의 시끄러운 층간 소음이 더 싫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중에 실수로 901호 아저씨에게 케익을 드리게 되면서 901호 아저씨네 집에 초대도 받고, 아저씨 부인이 교통사고로 몸을 못 움직여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고, 1001호 가족은 조심하게 된다. 1101호 집에도 케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맺는다.
이웃 간의 층간소음으로 인한 피해를 역지사지 해보자는 이야기인데, 여러가지 사안에 확장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사실, 이 동화의 해결방식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꽤나 억울하다. 피해자가 먼저 가해자에게 ‘케익’을 건네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인 1101호는 아이들이 난리를 치는데, 올라가서 항의하니 아이들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아이들은 방에서 킥킥대면서 웃고 있다. 하지만 1001호도 할 말은 없는 게, 자신들도 901호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1001호가 먼저 1101호에게 케익을 건넨다. 이는 소수자 운동에 대한 유비로도 읽힌다. 1101호의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1001호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소수자 운동도 이렇게 해야하나? 혐오를 멈추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수자/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그것이 가해인지도 모른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며, 선물을 건네며 우리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우리도 인간’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 방법일까.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동화를 읽으면서 미러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너희가 하고 있는 짓이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방법. 역지사지는 동서고금의 황금율이다. 그런데 문제는, 만약 1101호 위에 1201호에 방방 뛰는 아이들이 왔다면 1101호는 아, 1001호도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방방 뛰는 것을 삼갈까? 그렇다면 사람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미러링이 상대를 변화시키는 전략으로 적절할 때는 상대가 ‘사람’일 때 만이다. 사유하지 않고 소수자를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그럴 때 소수자/피해자가 먼저 ‘케익’을 건넨다는 것이 과연 적절한 대응일까. 근래까지 미국에서 동성애운동의 주류 방향성 중 하나가 “우리도 인간”임을 계속적으로 이성애중심 가정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도 인간”이라는 것은 우리도 이성애중심 가정들처럼, 서로 사랑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아픔도 있고 등등을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우리도 사람이다. 너라면 이러한 차별을 받는게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가? 라고 역지사지하게 하는 전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너희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차별(교정)을 받아야 한다는 믿음 앞에서 이러한 역지사지 전술은 무력하다. (그렇다면 뭘 어쩌자는 것인가?)
피해자가 먼저 케익을 건네면서, 우리도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왜 피해자가 그래야 할까. 아니라면 무슨 방법이 있는가. 우리는 1001호이고 그들은 1101호에 사는데,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층간소음 관련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어떤 선생님은 이것을 법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변호사의 자문도 구했는데, 이게 법적으로 정해진 데시벨 수위를 측정해야 하는 등, 법적 처리는 매우 힘들다고 한다. 법은 물론 변화할 수 있지만, 법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선행해야 하기도 하다. 그럴 때 무엇을 해야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