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이야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77
성기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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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완은 前 시집 <<쇼핑 갔다 오십니까?>>를 통해서 자본 속에서의 비만화된 삶과 그 소통 불가능성에 대해서 냉소했다면, 이제는 그 ‘소통’의 문제를 분열된 자아들을 바탕으로 시화하고 있다. 이 시집의 시들은 큰 이야기를 구성하는 작은 이야기들로, 이 시집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는 전 시집의 <볼 만한 티브이 프로> 연작을 통해 했던 실험을 확장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시집의 이야기들은 서로 메타 텍스트의 관계를 갖기도 하며, 화자는 텍스트 자체 속에서 텍스트를 부정하고 지우는 ‘지우개’로 나타난다. 등장인물은 ‘초록의 고무 괴물’, ‘유리’, 그리고 ‘나’이다. ‘나’는 이야기의 화자이면서 초록의 고무 괴물의 일기를 훔쳐보고 이를 수정하는 사람이며, ‘유리’는 ‘나’의(또는 초록의 고무 괴물의) 단골집 창녀로 친해지게 된 사이로 유리의 일기 또한 내가 수정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일기를 수정하는 사람으로서의 ‘나’는 이 시집의 처음과 끝에 시나리오 작가로 짐작된다. 즉, 이 시집은 한 시나리오 작가가 상상하는 이야기(=영화)인 것. 그리고 이는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끊임없이 ‘초록의 고무 괴물’과 ‘유리’를 수정한다. 그들의 삶을 수정하는 것은, 그들의 ‘일기’를 수정하는 것으로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시가 환상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유리’와 ‘초록의 고무 괴물’이 ‘나’와 함께 살며 소통하는 것으로 그려지면서도, ‘나’가 일기를 수정하면(예를 들어 ‘보라’를 ‘쏘라’라고 수정하여 사람을 죽이게 하는 일을 하고) 이는 곧바로 ‘유리’나 ‘초록의 고무 괴물’에게 반영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절대적인 권력의 신이 인간 속에 살면서 그들의 운명이 적힌 책을 수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신은 외롭다. 우연히 ‘보라’를 ‘쏘라’로 수정하기도 하고, (초록의 고무 괴물이 집필을 하다가 깜박 잠든 사이, 난 우연히 그의 컴퓨터 키보드를 건드리게 되었어 유리를 보았어, 라고 써 있었는데 기분이 우울해서 <-를 세 번 누르고 쏘았어, 라고 고쳐 썼어 우발적인 일이 벌어진 거야 <39>) 자막이 올라가 영화가 끝났을 때는 ‘정말 순간순간 몰입했던 것 같아요 이제 어떻게 유리를 버리지요 아니 나를’ (<48>)이라고 독백한다. 만약 이러한 신이 인간과 함께 살면서 순간순간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면, 우리 인간 모두는 신의 일부일 것이다. 마치 작가가 창조한 텍스트라는 세계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작가의 한 부분을 반영하는 것처럼..


시인의, 소설가의, 텍스트를 만드는 사람의 고독함과 비애. 또는 세상을 창조하며,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 신의 비애. 다만, 텍스트의 인물들을 ‘조종’하는 작가가 아니라 텍스트의 인물들과 ‘소통’하면서 텍스트를 짜내려간 시인의 고독. 다음과 같은 독백은 창조한 등장인물(인간)들을 떠나보내는 시인(신)의 쓸쓸한 내면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 신이 끝났어 그래도 유리는 일어나지 않아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자막이 올라가 이제 유리의 일기장에는 한 글자도 남아 있지 않아 사랑하는 유리 나는 당신의 지우개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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