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열광과 정치적 무관심
박슬기(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대학신문 snupress@snu.ac.kr

 

며칠 전, 지하철을 기다리며 역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주머니 두 분께서 한참 대화에 열을 올리고 계셨다. 엿들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지만, 워낙에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셔서 어쩔 수 없이 내용을 듣게 되었다. 두 분 다 행상이신 듯 물건 판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서울 시장 선거로 화제를 돌렸다.

“당연히, 오세훈 찍어야지. 마스크도 깨끗하고.”

“뭐, 그렇지. 여자가 시장이 될 수야 있나.”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삼스러운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놀라운 일이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입성한 지도 꽤 되었건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해와는 정반대의 정치적 지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계급적 이해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민주노동당 지지율보다 높겠는가.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하여, 고용의 불안정성 등 ‘일하는 사람들’이 위협받는 문제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그것보다 국가나 민족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육아를 사회가 책임지는 문제는 도외시하면서 저출산율 때문에 곧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처럼. 혹은 어느 집단에서 파업을 하면 나라 전체 경제의 손해로 이어진다고 여긴다든지.

글을 아는 사람이긴 하지만, 경제학이나 사회학 전공이 아닌 나로서는 그런 걱정에 정말로 근거가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강남에 땅 한 평 없으면서, 나라에서 세금을 부당하게 매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여성이긴 하지만 그래도 ‘시장은 남자가라고 생각하는 그 아주머니들도 분명 그러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는 계급적 이해에 선행하는 무엇인가가 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아마도 개인을 넘어서는 숭고한 가치에로의 지향이 아닐까. 나 개인은 비록 비루하지만, 내가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나의 국가나 단체는 위대하다는 신념, 그러므로 나 역시 위대할 수 있다는 오래된 이상이 아직도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대 앞을 떠나지 않는 황우석 지지자들을 보면서 무엇이 저들을 저토록 헌신하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들이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내가 만난 아주머니들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고 선거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의 현실적 문제나 이해를 배제해버리고, 정치나 국가의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정치나 국가의 문제를 추상화시킨다는 점을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들 용기가 없는지도 모른다. 아니,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의 자유를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텅 빈 내면을 채워줄 이상과 권위를 찾아 복종하지 않으면 불안한.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열광과 정치적 무관심은 동일한 현상일 것이다.

 

나의 대학원 생활를 풍족하게 해주었던, 혹은 대학원 '생활' 자체를 가능하게 해 준 두명의 선배가 있다. 좌슬기 우민애라고 지칭하는데, 그 중 한 명이 쓴 글. 짧고 포인트 있게 글을 잘 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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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1 0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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