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리얼리즘 비평선집 - 자료편, 교재용
김윤식 엮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농민문학 문제를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다. 비교적 명료하게 입장을 밝혀 놓았다. 실상 조선의 특수성을 고려해야만 한다고 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반자 농민'이라고 정의하고 농민문학문제를 이끌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농민은 문학을 향유할 여유도 없고 능력도 없으며, 창작을 할 여유나 능력은 더군다나 없는 것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 방안을 내놓는데, '농민신문'이나 '농민운동원'등 농민은 작가에게서 점차적으로 문학을 배워서 농민작가가 되고 작가는 농민에게 농촌의 실상을 배운다는 것인데 말도 안된다.

우선 농민 중 일부 지각한 농민은 기존 농민으로 보아야 될 것인지. 그리고 문학가에게서 '형식'을 배운다는 것인지. 그거 배운다음에 진정한 '농민에 의한 농민문학'이 가능할 것인지.

안함광은 무얼 잘못 생각하고 있다. 글로 쓰는 '문학'을 통한 혁명을 지상과제로 설정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구비문학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 민중성과 용이성을 간파하지 못했다. 당대 진실한 의미에서의 맑스주의 문학 운동을 하려 했다면 구비문학에 주목했어야 한다.

또 조명희나 이기영의 작품을 비판하면서, 이러이러한 면모가 없다고 지적하는 것은 방민호 선생님의 기존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을 생각나게 했다. 결국 리얼리즘은 문학을 이해하는 도구가 아니라, 문학을 교조화시켜서 그 생명력을 고갈시킨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보아야 한다. 각 작가의 개성과 능력은 무시되고, 이론과 규범이 있어 이를 따라야 한다. 물론 안함광이나 김우진 같은 이들은 문예의 제2차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종교에 대한 비판은 꽤나 재미있다. 맑스나 모택동의 명제인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를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종교의 기원은 '원시공산제'사회에도 있었으니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현혹시키기 위한 도구라는 것은 발생적으로는 옳지 못하다. 그렇게 사용되는 측면은 물론 있다. 그러나 실로 서구나 중국, 조선의 경우에 있어서 상층계급의 종교와 하층계급의 종교는 다르거나 양상이 많이 달랐고 오히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대한 악독한 착취를 제한하는 역할과 기능을 강조했던 것도 분명하다. (물론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면도 있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