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묘지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14
조정권 지음 / 민음사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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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月은, 달리는 강물, 들소들의 콧김소리.
오렌지색 무늬를 등에 두르고
달려오는 들소들의 거친 숨소리.
정오의 태양은 中天에서 곤두박질치며
들판에 화살촉을 날리고,
바람은 실로폰 소리같이
大地의 실핏줄을 터뜨려
이미 흘러간 냇물줄기를 다시 끌어당기고 있다.
흙먼지 자욱한 바람 속에서
턱이 굳은 꽃들이 피고 있다.
아, 턱이 굳센 꽃들이 딛고 있는
땅덩어리 같은 힘, 그곳에서
고통이 나를 움트게 하고 나를 내딛게 한 것인가.
위대한 정신이여 오라.
영혼 속으로 방문하라, 두드리라.
지금 저 광막한 大地에서 북을 두드리는
강철 같은 打鍵, 저 소리들이 귀를 단단히 하고
무르팍을 곧추세우게 하였는가.
자, 들어보라, 그들이 오고 있다.
힘의 씨앗을 은밀히 마련하며
영혼 속에 기쁨을 부여하는 봄사냥꾼들,
북소리 울리는 大地를 두 발굽으로 들어올리며
달리는 봄사냥꾼들이
끌어 안으면서 넘쳐 버린 유리빛 바다여,
위대한 정신이여, 다시 오라,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저 대지의 북소리 속에서
내 피를 푸르게 튀게 하라.
거기서 내가 듣던 꽃들의 은밀한 打鐘,
영혼의 마지막날 하얀 성찬.
한 잎 한 잎 내 근심을 벗기어 주는
빗방울보다도 가볍고 작은 손들의 打鐘.
위대한 정신이여 한번만 더 오라,
돌밭에 발굽을 찍으면서 달려가버린
내 푸른 말잔등을 한번만 더
혼신의 힘으로 난타하게 해 달라.
난타하게 해 달라.-28쪽

2

허나, 우리들의 낮 속으로는 거대한 밤이 뒤따르고 있다.
내 시계는 벌써 밤이었다.
나는 몇 번인가 그 밤을 찾아갔다.
초침 하나가 정거해 있는 황막한 대지의
황량한 역,
거기에는 모든 시간들이 정거해 있었다.
내 시계는 벌써 밤이었고
무수한 사람들이 헝겊으로 눈을 가리운 채
까마득한 낭떠러지 밑의 어둠 속으로 인도되고 있었다.
그해 여름 내내 내 노트에는
쇳덩어리 같은 암흑이 응고되어 있었다.
다음해에도 내 노트에는
쇳덩어리 같은 암흑이 응고되어 있었다.
우리들의 시계는 이미 밤이었고
초침 하나가 황막한 들판에서 녹슬어 가고 있었다.
나는 벌써 도착해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도 나는 몇 번인가 그 밤을 찾아갔다.
황막한 들판과 계곡, 강물.
밤은 푸른 파충류의 처녀 같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 강가에서
우유빛 달을 하나 놓아 버리고
돌아왔다.
내가 갈대를 헤치고 강물 위로 띄워 놓은 소쿠리가
神의 문간으로 도착하기를 기대하면서.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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