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김훈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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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化粧)이란 무엇인가. 본질을 가리기 위함. 아니 더 넘어서 화장 한 얼굴 자체가 본질이다. 상품광고는 상품의 화장이고, 맨얼굴의 덧칠이 화장이다. 시뮬라르크의 시대.

그리고 또 화장(火葬)이란 무엇인가. 육신을 불태워 사라짐이요, 소멸이다. 마치 없었던 것처럼 몇개의 뼈조각만을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다. 불교에서 스님들의 사리식이 그것. 헛것인 육신을 불길로 지우는 것.

이러한 '화장'에 대해 김훈은 이렇게 표현한다. '건더기는 없고 껍데기뿐이었지만, 이 업계에서 건더기와 껍데기가 구별되는 것도 아니었고 껍데기 속에 외려 실익이 들어 있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헛것들이 사나운 기세로 세상을 휘저으며 어디론지 몰려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러한 화장을 김훈은 중첩시켜서 표현한다. 화장품 광고 상무이사로 화장품에 대한 광고 방안을 아내 상을 당하면서 까지 보고를 받고 결정을 한다. 정작 이 사내는 사내 어느 여직원을 '환상' 속에서 사랑하고 있다. 변변히 말한마디 건네본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이 사내는 '이름'과 '실재' 사이의 간극에 대해서 고민한다. 아니 결국 '실재'라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제가 당신을 당신이라고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 속으로 사라지고 저의 부름이 당신의 이름에 닿지 못해서 당신은 마침내 3인칭이었고, 저는 부름과 이름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건너갈 수 없었는데, 저의 부름이 닿지 못하는 자리에서 당신의 몸은 햇빛처럼 완연했습니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말의 환영일 테지요.'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이는 아내가 말기 뇌종양이 되자 냄새의 구별을 못하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아내는 아이스크림이나 더운밥에서 구린내가 난다고 냄새를 맡지 못한다. 이에 주인공은 생각해 본다.
'아내가 치를 떨던 그 구린내는 본래 음식 깊은 곳에 종양처럼 숨어 있던 냄새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뇌가 온전할 때 맡을 수 없었던 그 냄새가 종양이 번지자 비로소 아내에게 감지되는 것은 아닌지'

본질, 실재라는 것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의 인식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 이상의 '실재'는 그야말로 '물자체'인 것.

또 화자는 TV에서 이라크 전쟁을 본다. 화장장에서 자신의 친지의 죽음에 울부짖는 사람들 속에서. 거대한 살인 현장을 무덤덤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TV속의 살인은 더 이상 '실재'가 아닌 것. 화면 속의 살인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무덤덤하다. TV 화면 속에서 이라크 군인에게 잡힌 미국 포로들은 '너는 이라크 군인을 몇 명이나 죽였니?'라고 묻지만 대답하지 못한다. 전쟁은 실재가 아니다. 오락이다.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에서 보면 실재로 미국 군인들은 하드락 음악을 들으면서 포를 쏘아댄다고 한다.

주인공은 집에 돌아와, '보리'라는 개를 안락사 시키고, 화장 상품건을 처리하고 의식이 허물어지듯 깊은 잠에 빠진다.

김훈의 위와 같은 '실재'에 대한 물음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를 인간 존재의 죽음과 '화장'이라는 소재와 연결시킨 질문은 새롭다. 인간은 살아가며 '자신'(즉 실재)을 숨기며, 사회 또한 자신의 진면목(실재)를 숨긴다. 아니, 인간은 살아가며 여려가지 가면을 얻게 되고, 사회 또한 그 인간의 가면들마다 각자의 사회로 존재할지 모른다. 공허한 가면 축제에 가면들만이 부유한다. 짙은 화장을 덧칠하고, 언젠가는 화장으로 사라질 것을 망각한 채로...

이러한 화장들을 하고, 화장을 잊는 것이 이 사회를 유지하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오늘도 하루 하나뿐인 생명을 소진시키며 일터에 나서게 한다. 자본주의 허상, 광고, 여인들의 화장, 친지의 죽음, 등은 너무 쉽게 잊혀지거나, 매우 빨리 잊혀지려고 노력된다. 자본주의는 이러한 화장술로 사람들에게 망각을 부여하고, 사람들은 그러한 화장들에 취해 자본주의를 유지하게 한다.

김훈은 덤덤히 질문을 던진다. 그런 것인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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