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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의 노래 ㅣ 생각의나무 우리소설 1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현의 노래. 지겹다. 그러나 다 읽고 나니. 울리는 것이 있다.
고등학교 때. 나는 줄곧 일본소설들을 읽었다. 하루키의 팬이었고, 무턱대고 읽었다. 심지어 하루키 여행 사진첩까지 읽었다. 맥주를 마시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하고 핀볼을 하거나 야구를 보고 여행을 떠나도 좋았다. 그냥 그런 이야기였고, 갑자기 양인간이 나와서 어이없는 말들을 하고는 했다. 고등학교 모범생 삶 속에서, 짜여진 규율 속에서 하루하루 지워나가던 나는, 그러한 하루키의 하루키스러움이 마냥 좋았다.
일본어 번역투는 무언가 가벼운 면이 있다. 그래서 일본어 번역 소설들을 좋아했다. '아니, 그거 곤란한데' 따위의 대화가 천연덕스럽게 50대 남성 주인공의 입에서 나왔다. 곤란하다. 이런말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을 읽게 되었다. 충격이었다. 그야말로 시다. 일식의 순간 주인공이 십자가에 묶여 화형당하기 직전 태양, 혹은 태양의 부재를 보며 사정한다. 십자가에 묶여 화형당하는 남성과, 일식의 순간 직립한 남성의 페니스에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져 내리는 하얀 정액들... 읽는 내내 재미있었지만, 그 순간은 눈물 겨웠다. 시였다.
학부 때. 나는 소설을 시로 읽는다는 말을 들었다. 소설을 시로 읽는다면, 꽤나 긴 시로 읽는 셈이다.
김승옥의 '서울 1964 겨울'을 읽고 내가 했던 주된 말은. 서울과 겨울. 그 울림의 동일함. 각운. 즉 서울 1964는 겨울이었다는 것. 이었고. 최인훈의 광장을 읽으면서는. 바다를 건너가는 '타고르'호에 대해서. 타고르에 대해서 이야기했었다. 그러니. 소설 전공한 선생님께서는. 소설을 시로 읽는구나. 그랬다. 나는 그렇구나. 그랬다. 다행히도. 시를 소설로 읽는구나. 라고 한 선생님은 없었다.
현의 노래는 울림이 있다. 지겹게 지겨운데, 절정의 순간이 보인다. 김훈의 정치적 허무주의.
일흔의 신라 노장군과 일흔의 가야 노악사가 만난다.
이 변방 산성에까지 어떻게 왔느냐?
개포 나루 건너 귀국의 서부 전초에 의탁했소. 귀국의 사신이 그리 일러주었소.
데리고 온 자는 누구냐?
내 심부름을 하는 사람이오.
귀부하는 뜻이 무엇이냐?
이제 신라 병부령께서 가야를 토멸하실 것이니, 다만 살아서 소리를 내려 하오.
그뿐이냐?
그뿐이오.
너는 가야의 녹을 받았느냐?
많지는 않았소.
가야의 악사는 무슨 일을 하느냐?
왕들이 죽으면, 무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금을 뜯으며, 소리를 베풀었소.
왕의 장례에 소리를 베풀며 녹을 받던 자가 적국으로 귀부함이 온당하냐?
귀국의 도끼에 맞아 죽는 것 또한 온당치 못할 것이오.
이사부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사부는 온몸을 흔들며 웃었다.
그렇겠구나. 세상에, 온당하기란 쉽지가 않구나.
돌연 삼국지가 생각난다. 멋있는 장수들은 모두. 내 목을 베어라 했다. 그러면 베는 이도 있었다.
졸장부들은 살려주시오. 했다. 그러면 베는 이도 있었다. 전자는 존경했고, 후자는 침을 뱉었다.
이런 것을 읽으면. 결국 전쟁에서 지면, 내 목을 베어라 한 다음에 죽는게 더 괜찮겠구나 하게 된다. 살려주시오. 하고 죽으면 좋을게 별로 없으니까. 알게 모르게 그런 생각이 굳어졌다.
그래서인지. 유쾌했다. 우륵은 다른 이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한다. 도끼에 맞아 죽는 것 또한 온당치 못하다.
마치. 전혀 곤란하지 않은 어투로. 양인간이 갑자기 찾아와서 맥주를 두 병쯤 비우고 나서.
우리 여행을 떠나야 되. 라고 했을때. 하루키가
'아 그것 참 곤란한데.'라고 하는 것이 떠오른다.
곤란하고 온당치 못하다. 하루키를 계속 읽다보면, 무언가 될대로 되라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될대로 되면 좋겠다 싶다. 김훈의 '칼의 노래' '현의 노래' '화장'을 읽었다. 화장은 꽤나 복잡하게 삼중으로 꼬여있는데. 하루키가 유쾌하고 쿨하게. 아 될대로 되라지. 라고 한다면.
김훈은 우울하고 침중하게. 아 될대로 되는거야. 라고 한다.
당대문학은 참 곤란하다.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상승하는 집단, 뚜렷한 중심 전선의 부재. 모선생의 재구된 리얼리즘론은 매우 깔끔했다. 이론이 깔끔하다는 것은 내가 최고의 장점으로 치는 것이다. 그러나 이론이 명확한데, 그 이론을 이해하고 나서 세상이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만큼. 슬픈 일은 없다.
될 대로 되라. 뭐 이렇게 된다. 역시. 김훈과 하루키. 그만 읽어야 되지 않나 싶다.
다시 20~30년대에서 놀아야겠다. 지난 방학 때는 방현석을 읽고 베트남을 꼭 가야지 했다.
역시. '지금-여기'는 무리다. 이라크, 베트남, 1920~30년대. 임화는 왜 1940년대 돌연, 30년대 말의 우울한 현장비평에서 U턴을 해서 다시 문학사 쓰기로 돌아갔던가.
50년 후 친구들은 또 비웃겠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