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화, <폴테쓰파의 선언>
임화의 1926년도 글. 흥미롭다. 맑시스트 이전의 임화. 사회 진화론은 이미 이 시기에도 뿌리박혀 있었던 듯.

'우리 빈약한 여명기에 잇는 조선예단' '일본에도 잇셧스나 복잡과 몽매한 극에 잇다' '고-간'의 그림이 모양화라고 단번에 말한다면 대단한 광언갓치 생각되나' 등. 서구-일본-조선 이라는 위상이 작동되고 있다.
'녯날 고시대엔 권위잇는 상류사회의 귀부인들이 기라를 걸고 호기잇게 왕래하든 곳이엿스나 근대엔 보기에도 지져분한 하층 라전인종에 재굴로 재굴에 모번지' 라는 말에는 '귀부인-빈자'의 위상이 나타난다. 맑시스트 임화여, 너는 젊은 시절 글들을 불태웠는가?
언제나 고등학교 중퇴 임화의 폭넓은 지식에 감탄을 했는데,
프랑스 고대의 동굴 벽화를 '그림이 아마도 동굴에 장식 목적으로 벽화갓치 쓰여저 잇는 것'이라는 데는, 임화의 무식이 드러난다. 물론, 그 무식은 특기할만한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임화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것.
결국 이 글의 핵심은 '폴테쓰파'의 미술인 것. 그 미술에 임화가 매료된 이유는? 아마도 이것.
인간에 전정력의 발현을 가지고 곳 예술에 생명으로 하랴고 했다. 즉 석기시대에 '더-동'동에 벽 갓흔 훌융한 조각이 엉긴 것을 생각해 보면 고대인류에 대정력은 야수와 영지를 쟁탈하는 데 발현하고 잇는 것이다. 그러고 이 대정력이 야수를 정복하고 우마 갓흔 것을 가축으로 잡아온 대승리에 광영에 취해 잇슬 때에 제작임으로 도저히 근대에 것과는 상상조차 밋치지 못할 생명잇슨 예술이 생긴 것이라고 그리엿다. 또한 '폴테쓰'파에 주장에 대체를 드러보면 풍요한 토지에 주민은 수직적 에술을 짓고 빈약한 토지의 주민은 수평적인 예술을 창조했다고 한다. 이것은 즉 풍요한 토지 이집트 갓흔 나라에 사는 민족은 만족한 토지에 집착하고 그 토지를 직히는 데 전정력을 쓰고 잇슴으로 이집트인에 폴테쓰는 그 십자탑이나 '오레리슥크'와 갓흔 수직적 예술을 산출한 것이다. 여기서 폴테쓰파의 선언에 제일조가 된 '조각의 정력은 첨형의 산이다'란 의의는 이 수직적이란 것을 의미함이다.

사회와 예술에 대한 성찰. 너무 광범한 구분이나, 매력적이다.
최남선, 정지용이 '바다-> 산'으로 나아간 것은 무엇? 친일로의 행적과 관련하여 설명할 수 있는가. 기존에는 근대 문물이 밀려오는 '바다'에서 전통의 '산'이라고 했지만, 최남선, 정지용은 결국 '민족->친일'의 구도(이러한 구도설정이 거칠게 나마 가능하다면)로 갔던 것.
어쩌면 '빈약 -> 풍요'의 도식이 가능? 그저 한 번, 들이대 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