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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바둑왕 23 - 완결
홋타 유미 글, 오바타 타케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머나먼 과거와...
머나먼 미래를 잇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존재한다! 난!!
우리는...
모두는...
이러한 대사로 "고스트 바둑왕"은 23권으로 끝을 맺는다. 누구나들 일본만화의 '저력'을 이야기한다. 미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갤러리 페이크>>, 고고학과 특수부대와 같이 마니아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는 <<마스터 키튼>>, 철학적인 깊이에 빠져드는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 등.
바둑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고스트 바둑왕" 또한 마찬가지이다. 읽으면서 내내 내 안의 '민족주의적 주체' 때문에 거슬리는 부분은 분명있었다. 바둑하면 한국이 제일 아닌가, 그리고 이창호 9단이야말로 세계제일 아닌가. 라는 생각 때문. 그러나 만화에서는 역시 일본 최강이 세계 최강으로 그려진다. 시리즈의 말미에 가면 조금 다르게 그려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민족주의'의 폐쇄성과 폭력성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었던 나지만, 이는 이성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감성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것이었다.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떠한 계기 때마다 나는 호명된다. 이는 국가 대항전 스포츠 등과 같이 '우리' 대 '타자'의 관계맺음 때 발생한다.
사실 나는 바둑에 별반 관심이 없다. 1여년전까지 이창호 9단이 세계최강인 것은 알았지만, 요즘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만화를 보면서 불편해 했다. 바둑에서 한국이 최강이든, 일본이 최강이든 전혀 나와는 상관이 없지만, 나는 상관이 있는 것으로서 받아들인다. 이는 내가 이 만화를 보면서 민족주의적 주체로 호명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일본 만화의 저력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에 가서이다. 물론 이는 이 '고스트 바둑왕'이 중국, 홍콩, 그리고 한국에서도 인기리에 연재되고 있다는 것을 작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할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국가나 민족 따위는 초월해서 작가는 '우리'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한다. 일본이라는 작은 '우리'이자 다른이들을 배제하고서 얻어지는 정체성이 아니라, '인류'라는 '우리'에 대해서.
머나먼 과거와...
머나먼 미래를 잇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 존재한다! 난!!
우리는...
모두는...
이러한 추상적인 대사가 감동적일 수 있었던 것은, 이 만화의 초기 설정 때문이다. 처음에 바둑에 관심이 없었던 평범한 초등학생인 히카리가 바둑을 두게 된 것은 1000년 전 최강의 바둑기사의 영혼이 그에게 빙의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빙의'라고 하면 엑소시스트 같은 것이 생각나서 빙의되기 전 인간을 조종하고 그런 것 같지만, 여기서 '빙의'는 그냥 히카리의 눈에 귀신이 보이고 귀신이 히카리를 항상 따라다닌다는 것 정도이다. (이렇게 보면 작가의 최신 인기작인 <<데스노트>>의 설정과 닮은 것이 있다.) 이러한 영혼(sai)의 인도 하에 히카리는 바둑에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되고, 어느날 sai는 사라지고 만다.
이 sai가 사라진 것은 히카리가 이제 자립할 수 있고, 자신의 바둑을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히카리나 다른 바둑기사들은 '신의 한 수'를 먼 과거부터 추구해온 사람들이다. 물론 '신의 한 수'는 절대로 인간이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바둑 기사들은 오늘도 이를 추구한다.
머나먼 과거에서부터, 머나먼 미래의 한 점으로서 끝까지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를 바둑기사의 나아가 '온 인류'의 삶의 의미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인생론은 바둑을 매개로 표현된다.
아니 이는 바둑을 통해 인생을 바라본 결과 나오게 된 결론일지도 모르겠다. 만화 상에서 바둑은 끊임없이 과거의 기보를 연구하고 새롭게 강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이들로 나타난다. 어떻게 하면 '신의 한 수'에 이를 수 있을까, 하고 1000년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먼 미래에까지 바둑 기사들은 고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위 '바둑 인생론'이 도출 되는 것이다. 머나먼 과거와 머나먼 미래를 잇기 위해서 존재하는 '나'로서 말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역사와 한 개인의 유한한 삶에 대해서 하나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의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