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이학문선 1
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윤수종 옮김 / 이학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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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의 축적은 노동자들 사이의 모든 전지구적 통일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노동 분업의 위계제에 오랫동안 의지해 왔던 자본주의의 전략을 훼손하였다. 이미 유럽의 제국주의가 완전히 꽃피기 전인 19세기에, 엥겔스는 영국 프롤레타리아트가 "노동 귀족"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슬퍼했다. 왜냐하면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interest는 식민지 노동 계층들과 함께한다기보다는 영국 제국주의의 기획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쇠퇴기에 강력한 국제 노동 분업은 확실히 남아 있었지만, 모든 일국 노동자 계급의 제국주의적 이점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종속적인 국가들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공동 투쟁은 위기를 본국 영역에서 종속 영토들로 옮기는 구제국주의적 전략의 가능성을 제거했다.-349-350쪽

식민지 시대 조선 프롤레타리아트와 일본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연대할 수 없었던 이유.

아마도 전에는 제한된 유용성을 가졌을지도 모를 제3세계주의적 전망들은 이제 완전히 쓸모없게 되었다. 우리는 제3세계주의가 국제적인 자본주의 체제의 주요 모순과 적대는 제1세계의 자본과 제3세계의 노동 사이에 있다는 관념으로 정의된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혁명을 위한 잠재성은 분명하게 그리고 전적으로 제3세계에 있다. 이러한 관점은 함축적으로 그리고 명시적으로 다양한 종속 이론에서, 저발전 이론들에서, 그리고 세계 체계 전망들에서 제기되었다. 제3세계주의적 전망의 제한된 장점은 그것이 혁신과 변화가 항상 유로-아메리카에서 기원했고 오로지 거기에서만 기원할 수 있다는 "제1세계주의" 혹은 유럽 중심적 관점에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잘못된 주장에 반사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잘못된 입장에 이를 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제3세계주의적 전망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그 전망은 제1세계와 제2세계에서의 노동의 혁신들과 적대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 우리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데, 제3세계주의적 전망은 지배적은 국가들과 종속적인 국가들에 있어서 똑같이 세계를 가로지르는 투쟁들의 실질적인 수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350-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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