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슈퍼맨의 등장이다. 이 영화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고독한 물음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본'은 홀로 다친 몸을 이끌고 걸어가며 카메라는 거대한 아파트를 비춘다. 인간소외, 군중, 익명성, 고독을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이 말은 단지 직장을 가지고 가족 안에 존재해야 하는 경제적, 성적 필요성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아는 관계를 통해, 타자를 통해서 자기를 확인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주인공 '본'은 기억도 없고 혼자이다. 완전한 의미에서의 혼자이다. 친구도 없고 애인도 없고 직장 상사, 부하 마저도 없다. 그는 군중 속을 걸어가지만 그 곳은 무인도이다. 그에게는 그 마저도 없다.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물을 수 밖에 없다. 'who was I?' 현재의 관계를 통해서 확인 받지 못한다면 과거의 기억을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받아야만 한다. 아니면 '나'라는 것은 없다.

언제나 슈퍼 히로들은 고독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실제로 자기 자신인 슈퍼 히로인지를 숨기고 현실 생활에 살아갔기 때문이다. 그들을 '알아주는'이가 없고, 그들의 삶은 분열되어 있다. 그러기에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슈퍼 히로일 때의 삶에서의 위안과, 일상 생활에서의 즐거움을 동시에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본'은 그렇지 않다. 일상 생활이 없고, 관계도 없다. 그는 끊임없이 '나는 누구였는가?'를 묻는다. 그에게 '지금'은 없음으로 그는 '과거'를 바탕으로 자신을 재구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는 과거에 킬러였다.
그러나 그의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과 그 여인이 죽는 것으로 이 영화는 시작한다. 이 여인과 그녀와의 관계가 '본'의 핵심이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에 CIA 관찰관이 그의 과거를 말해주려고 할때, 그가 거부 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그는 이제 'who I was'를 묻지 않는다. 그는 분명 킬러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과의 관계를 통해 이를 극복한다. 그녀는 죽기 직전 그에게 그가 킬러'였음'과 상관없이 그는 지금 '그'임일 수 있음을 말한다. 그 당시 그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간절히 그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 대답이 있다. 그는 이제 그녀가 사랑하는,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나'로서 위치를 규정할 수 있고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그녀의 간절한 눈빛은 한발의 총성과 함께 흐려진다.
'적'들에게 '본'은 아직도 킬러이다. '본'은 다시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였는지를 물으러 나선다.
그러나 그는 더이상 사람을 의도적으로 죽이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즉 '마리'가 그것을 원치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다. 그녀는 '그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즉 영화는 본과 마리의 모습과 대화를 통해 매우 처음에 이미 '본'의 물음에 대한 해답을 준비해 놓았고, '본'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그 해답을 자기화하게 된다.
그에게 그가 킬러였음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의 정체성은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서 보장되었다. '본'은 스스로를 그녀와 사랑을 했던 '본'으로 규정한다.



그래서 본 영화는 더욱 쓸쓸해지고, 우리의 슈퍼 히로는 더욱 불쌍하게 보인다. 왜냐하면 그녀는 죽었고, 그 이후에야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그녀를 사랑한 '본'으로 규정짓기 시작하였으며 '킬러'를 바라는 CIA와 대립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이제 그 여자를 사랑했던, 그리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갔던 그 '본'이다. (영화의 처음에 그는 분명히 말한다. 내가 떠오르는 추억 중 아름다운 것은 그녀와의 관계뿐이라고) 스스로 그렇게 인지하며 그는 더 이상 킬러이기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그를 킬러라고 생각하는 CIA와 러시아의 비밀요원은 아직도 그를 찾고 있다.
그러면 이제 그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의 폭은 적다. 그가 그임이 그녀와의 관계와 그 추억에 의해서 확인되었지만, 그 기억은 점점 옅어질 것이다. 그는 타인과의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그 관계 속에 '내'가 있다. 그러나 그 관계는 자신의 기억을 부정한채, '일반인'으로의 위장 잠입의 형태로 될 것인가. 이는 기존의 슈퍼 히로의 이중현실과 마찬가지의 패턴이 될 것이다. 그들은 두 현재를 살지만, 본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단절로.
아니면, 다시 본은 어떠한 경로로든 자신의 '적성'과 '과거'를 살려 킬러가 될 것인가. 그러나 이는 애써 정립했던 그녀의 애인으로서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녀와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떨쳐내는 일이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쉽지 않은 행로이다. 이제 그 대답을 하게 될, 3편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