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하눅빌 스토리
유재현 지음 / 창비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흥미로운 소설집이다. 이제 80년대 뜨거웠던 리얼리스트 소설가들이 외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80년대 이른바 '공장소설'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인도 하에 노자의 착취관계와 투쟁의 '아름다운 새벽'을 그리기에 힘썼다면, 근래에 보여주는 리얼리스트 소설가들은 한국의 외부로 시선을 둔다.
 
90년대 이른바 '내면'과 '여성'의 발견은 충분히 유의미한 일이었지만, '역사의 종언'을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자본은 전지구적 제국의 비호아래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아직도 기층 민중은 신음하며 '역사'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한국은 OECD 국가의 일원으로, '당당히'(!) 선진 자본국의 대열에 들었다. 자본주의 세계체제 하에 우리는 이제 준주변부에서 중심부로 가기 일보 직전인 것. 신자유주의를 부르짖으며 중심부가 눈 앞이라고 조금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선동에서 시선을 돌리면, 주변부 민중을 착취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이 오래전부터 민감한 시각의 리얼리스트들은 주목해 왔다.
 
이주 노동자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소설가 방현석이 베트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언제나 '국사'시간에 배우는 우리'민족'은 선량한 '피해자'라는 '사실'은, 베트남 전쟁에서 부정되었다. '우리' 또한 일제와 마찬가지로 베트남 민중을 '국익'을 위해 학살했던 것이다. 여기서 더 시선을 외부로 준 것이 바로 유재현의 이 소설이다. 방현석은 비록 장소가 '베트남'이라는 '외부'였지만, 주인공은 한국인이었다. 어찌보면 이는 주변부에 대한 '우리'의 착취를 보다 잘 고발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유재현은 '캄보디아'라는 우리 소설문학에 있어서 생경한 공간을 캄보디아인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소설을 전개해 나간다. 캄보디아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한없는 피해자로 인식되었던 베트남을 가해자로 인식하는 공간으로서, 역사공간에서 일방적인 피해자 국가와 가해자 국가라는 것의 허구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결국 문제는 가라타니 고진이 말한대로 코스모폴리탄적인 '공공성'(public)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테다. 그런 의미에서 유재현의 이 소설은 '외부'를 통해서 '내부'를 고발해왔던 시선과는 달리, 담담하게 '우리' 중의 하나인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러한 유재현의 시선에 포착된 캄보디아 민중은 80년대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순수한 투쟁의 화신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남을 속이기도 하고, 작은 일에 웃고 울고, 또 일상에서 후회를 느끼지만 변화하는 것은 힘들어하는 일반인들이다.
 
그럼에도 시종일관 소설에서 보이는 따뜻한 시선은, 낙관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역사와 민중을 보는 긍정적 기운을 노출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온 사나이'라는 단편이다. 얼마전 유행했던 운동권의 소위  '후일담 계' 소설과 맞닿아있으면서도 다르다. 기존 '후일담계' 소설들이 순수한 운동권과 변절한 운동권이 벌이는 내적 갈등과 토론, 그리고 회의주의와 낙관주의를 적당히 버무린 엉성한 봉합이었다면, 유재현은 북한의 '순진하고 투철한' 사회주의자이자 군인을 내세워 그가 현실과 부닥치며 절망을 겪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와 같은 유재현의 특별한 차이들은, 어쩌면 리얼리스트 소설가들에게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