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랙 시리즈는 정말 놀랍다. 특히 일제 식민지를 겪은 한국의 입장에서 Deep Space 9 시리즈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는 해방정국의 한국과 너무도 흡사한 상황이다. 특히 Ep19는 전쟁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문제, 민족주의-제국주의의 문제, 그리고 '윤리'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해방공간에서 여러 혼란에도 불구하고 연방의 도움하에 자리를 자리잡아 가고 있는 베이조 공화국. 예전 독립투사였던 키라 소령은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국심에 불타는 여장부로서 연방과 베이조 공화국을 매개할 수 있도록 우주기지에 부사령관으로 복무중이다.

 그런데 어느날 연방의 통제 하에 있는 우주기지에, 카다시안 전범이 질병 치료 문제로 들리게 된다. 이 남자는 베이조의 특수한 광산에서만 걸릴 수 있는 병에 걸려있었고, 때문에 그는 베이조의 노동자들을 유린하고 착취했던 사람에 분명했다. 남편 앞에서 부인을 강간하고, 노인을 생매장하는 등의 '활동'을 했던 그들. 키라는 그를 전범재판으로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카다시안인은 탄광에서 단순한 '서기'에 불과했다. 조사가 진행되자 그는 탄광 책임자이자 베이조인들을 살육한 인물로 밝혀진다. 그러나 더 조사가 진행되자, 그는 베이조인들을 살육한 총책임자를 자칭한 '서기'에 불과한 것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진다.

그렇다면, 뻔히 사형 당할 것을 알면서도, 왜 그는 자신이 탄광의 총책임자라고 밝혔을까? 그는 '카다시안 제국'을 위해서 그러한다. 제국은 식민지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그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믿으며, 자신이 재판에 회부됨을 통해서 카다시안 제국에도 일말의 반성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카다시아인들이 베이조인들에게 저질렀던 천인공노할 범죄들이 재판과정에서 공개됨으로서, 카다시아인들은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또, 탄광 시절 베이조인들의 비명과 카다시아인들의 살육을 목도했지만 괴로워할 수 밖에 없었던 일개 '서기'로서의 책임 또한 해소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스스로가 전쟁 책임자로 자청한다. 이러한 상황은, 해방정국의 한국의 상화과, 지금의 '한-일'관계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한다.

식민지에서 해방된지 어언 60년이 지났지만, 식민지의 잔혹한 일제의 기억들은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민족주의적 주체로 호명하게 한다. '우리'라는 집단의 정체성은 우리가 공통으로 기억하고, 또 망각하는 것을 공유함으로서 형성되는 것이다. 어떠한 스포츠든 '한-일'전에 열광하며, 최근 독도문제만 하더라도 인터넷 사이트등에서 욕설 가득한 네티즌들의 모습들.. '우리'는 식민지를 기억하며, 동시에 우리는 '지금'의 한-일 관계를 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수출입 관게 5위안에 들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다. 일본의 '한류' 열풍과, 한국에서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청년들. 일본을 여행하고, 일본문화를 좋아하면서도 '한-일'전과 독도문제에는 일본에 대한 증오감을 표출하는 '우리'.

스포츠 한-일 경기의 카타르시스는 '식민지 경험'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식민지 경험은 '우리'에게 열등감, 증오, 수치심, 과 일말의 도덕적 우월감을 부여한다. 이러한 열등감, 증오, 수치심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정직한' '룰'에 의해서 규정되는 스포츠 공간 안에서의 경쟁이다. 국가간 대항 스포츠는 일종의 대리 전쟁과도 같은 것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상상적으로 일본과 재전쟁을 벌이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식민지 시기 일본을 대표했던 조선의 마라토너 손기정과 관련한 '신드롬' 또한 이를 반영한다.


 

 

 

이렇게 끝나지 않는 식민지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일본의 공식적인 전쟁 책임이 일본이라는 상상적 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는 '천황'에게 물어지지 않았던 것과 이로 인해 일본인들이 공식적으로 전쟁과 식민지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는 것은 더욱더 '우리'를 분노하게 하고 증오하게 한다.

그리고 이는 '우리' 안에 있던 '친일파'들에 대한 분노로도 연결된다. 천황이 미국 신탁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전쟁 책임을 묻지 않았던 것처럼, 이승만 정권 초기 반민족특위 또한 친일파들이 정치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에 유야무야 흩어지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묻게 된다. 그렇다면 '친일'과 '비친일'의 경계는 무엇인가. 일제 헌병대원이었다면 무조건 '친일'인가. 아니면 낮은 계급이면 '면제' 될 것인가. 면서기는 어떠한가. 변호사는? 의사는? 지식인들은? 특별한 저항을 하지 않고, 직장에서 일하고 또는 농업에 종사하며 일정부분의 소득을 총독부에 '세금'으로 낸 사람들은 어떠한가? 여기서 '우리'는 식민지의 '회색지대'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어느정도 양보해 둔다고 하자. '우리'는 고통과 착취를 당했고,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다. 때문에 '우리'는 일제에 죄를 물고, 죄값을 받아내야 한다. 그러나, 일제 또한 의열단이나 애국청년단과 같은 '테러리스트'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 와중에 '그냥' 일본인들도 죽었다. '우리'가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싸웠다면, '그들' 또한 '그들'의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싸웠던 것이다. 그들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식민지가 필수적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죄값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하지 않다. '죄'를 저지른 '법적 주체'에게 우리는 죄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주체'만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체'라는 것은 '구조'의 효과이다. 논리적으로 생각해 볼때, 하나의 행동은 그 전의 상황에서 말미암아 필연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인간의 판단 또한 시냅스의 연결 등에 의한 물질적 화학적 반응에 지나지 않는 것. 인간은 사회구조 속에서 행위하고, 그 행위는 사회구조에 의해 '이미' 제약되어졌을 뿐이다. 기존 가정교육, 학교교육과 같은 ISA는 물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접하게 되는 매스미디어가 매개한 정보들, 사회제도 등등...

주체는 텅 비어 있을 뿐, 실체가 없는 효과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전쟁책임'을 한 개인에게, 개인들에게, 집단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칸트, 그리고 이를 구체적인 일본 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고찰하는 가라타니 고진을 참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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