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부터 노현정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상상플러스 올드 & 뉴'를 보기 시작하여, 이제는 매우 열심히 시청하고 있다. 오락성과 공공성을 함께 가져가려는 KBS가 성공한 프로 중 하나이다. 요즘은 이휘재의 손가락 욕이나, 노현정 아나운서의 안티들 때문에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꽤나 재미있으면서도 배우는 것도 많은 프로그램이다. 또, 노현정 아나운서도 무척 이쁘고 말이다.

프로그램 상에서 비속어나 외래어 대신에 '우리말'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 자체에 조금 거부감도 없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상파 tv라는 영향력 큰 매체에서 많은 고유어들을 다시 살려낸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면서도 프로그램 제목은 '상상plus Old & New'라는 것은 조금 아이러닉 하지만.

꼭 '우리말'만을 사용하자는 것은 언어민족주의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외국어 반 한국어 반으로 대화하는 몇몇 '인테리'들도 거부감이 들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는 문화자본과도 연결될 것이고 일종의 '구별짓기'로 작용하는 것 같다. 특히 문제시되는 것은 법전과 의학용어들. 일본식 한자어로 무장(?)한 법전과 영어와 라틴어를 그대로 가져다쓰는 의학용어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 또 최근에 이르러서는 작은 성과도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세대간의 '소통'의 문제에 대해서 '미제'라는 단어 때문에 최근에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세대'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J군은 20대 중후반의 청년이고, 민주노동당 당원이다. J군의 아버지는 50대 중반으로 한나라당의 지지자이다.



이런 J군이 오랜만에 집에 갔다. 딴에는 효도를 하겠다고 아버지와 같이 장도 보고 했다. 그 때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꿀 미제야"

J군은 순간 당황했다. '미제(米帝)'라는 용어를 아버지가 쓰시다니. 50대중반 한나라당 지지자요, 삼성맨이며 ROTC 장교 출신의 아버지가 '미제국주의'라는 용어를 쓰다니. 이 용어에 대한 추억은 한 96학번 선배가 커피는 미제꺼니 마시지도 말아야한다는 말을 80년대 학번 선배에게 들었다는 말을 듣고 놀란 새내기 시절의 나에게로 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순간 놀랐던 마음, 이후 쇼핑이 끝나고, 이틀 집에서 묵고 다시 자취하는 방으로 돌아가서 곰곰히 따져본 이후에야, '미제'라는 것이 '美製'인 줄을 알았다.

아. 우리 세대에게 있어 '미제'라는 말은 美製가 아니라 米帝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후자로 인식되었던 것.

이렇게 쓰는 단어에서부터 아버지와 J군 사이는 건널 수 없는 갭이 있다. 어찌보면 가장 가까운 사이일 수도 있는 부자관계. 언젠가 J군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가 전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단정하시면 화를 내기까지 하던 아버지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심연을, 우리는 어떻게 건너야 할 것인가. 이제 조금 있으면 5.31 서울시장 선거. 우리는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美製인가, 米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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