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문학.판 시 7
김민정 지음 / 열림원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시집의 첫번째 시를 읽고 충격이 있었다. 잠들기 직전에 읽고, 시집을 덮었다. 그 다음날에야 시집을 다시 집어들었는데, 결국 나는 첫번째 시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 시집의 첫 시 '내가 그린 기린 그림 기림'이라는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시를 보자

내가 그린 기린 그림 기림

계란이 터졌는데 안 닦이는 창문 속에 네가 서 있어

언제까지나 거기, 뒤집어쓴 팬티의 녹물로 흐느끼는

내 천사

은총의 고문으로 얼룩진 겹겹의 거울 속 빌어먹을 나야

 

'그린'과 '기린'의 관계는 '그림'과 '기림'의 관계와 같다. 'ㅡ'가 'ㅣ'로 바뀐 것. 이 제목을 발음하면, 범상치 않은 포스를 느끼게 된다. '그린'과 '그림'의 관계는 '기린'과 '기림'의 관계와 같다. 'ㄴ'이 'ㅁ'이 되었을 뿐. 이러한 관계는 거울을 떠오르게 한다. 이는 '안 닦이는 창문', '얼룩진 겹겹의 거울'이라는 시구로도 확인된다. 시인의 언어적 감수성과 재치!

식민지 시대의 詩人 이상이 말한바, '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처럼 소통할 수 없음은 '계란이 터졌는데 아 닦이는 창문 속에 네가 서 있어'로 변주된다. 거울 안의 너를 닦아도 거울 밖에 터진 계란을 묻은 나는 닦이지 않는다. 이러한 터진 계란은 '뒤집어쓴 팬티의 녹물'로 변주된다. 이러한 상상력은 이 시인이 계속 되풀이하는 성적인 코드를 보여준다. 이는 다시 '은총의 고문'으로 변주되어 性적인 것과 聖스러운 것의 등가성이라는 말장난스럽고, 어찌보면 '古代的' 인 상상력이다. 그러나 이 시인에게 어울리는 것은, '발랄한 폭력성'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내 거북은 염산을 타 마시고 목구멍이 타버려'(거북 속의 내 거북이) '욕창으로 썩어가는 눈알'(다시 무정란 속으로) '이발 쑤시듯 식칼로 배꼽 후비길' (댁의 엄마는 안녕하십니까?)등등의 신체적, 성적 폭력이 발랄한 어조로 반복된다.

다시 첫시로 돌아가자면 마지막 연에 가서 터진 계란, '팬티의 녹물'은 '겹겹의 거울 속 빌어먹을 나'로서 판가름된다.

이러한 혼란스럽고, 性과 聖이 혼용되고, 언어유희적인 시를 얼굴로 삼고 있는 이 시집은 일관적이게 자신의 얼굴을 되풀이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이 시를 '얼굴'로 삼은 이유의 전부일까. 아니, 이 시 자체가 이 시집에 대한 시인의 생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 기림'이라는 제목 자체가 이를 보여준다.'기린 그림'을 기리는 이 시에서 '기린 그림'이란 무엇인가? 바로 언어라는, 시라는 '은총의 고문으로 얼룩진 겹겹의 거울'속의 '빌어먹을 나'가 바로 그것이다. '기린'을 그렸지만, 이는 기실 '나'라는 것. 이 '나'는 겹겹의 거울 속에 시라는 '은총의 고문으로 얼룩진'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 즉,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는 '시'라는 '은총의 고문' 속에서 변형된 시인 김민정.

이는 시라는 장르자체의 한계이자,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보여준다. 시란 본질적으로 1인칭 독백체이며, 시인의 내면을 드러나는 고백이다. 그럼에도 '시'라는 언어를 통과하며 그 내면은 묘하게 뒤틀리고 변형될 수 밖에 없다. 시인은 '언어'라는 주어진 '상징계'를 활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상징계'를 교묘하게 비틀고 전유하여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기타 일반인들의 '고백'과 시인의 '시'가 다른 결정적 지점. 결과적으로 이 시인은 자신의 시를 보고 그 뒤틀려진, '겹겹의 거울' 속에서 '은총의 고문'을 받은 기괴한 쌍둥이를 목격하고 이를 시화 한것을 이 시집의 첫머리에 붙인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 기림'이라고.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의 시론이라 할법하고, 식민지시기 李箱을 우중충하게 보이게끔 하는 권두시. 권두시의 역할대로, 이 시집을 드러가게 해주는 훌륭한 대문 역할을 해주고 있다.

겹겹한 거울 속의 발랄한 폭력성!

젊고 발랄한 시집과 시인의 등장. 날카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