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미스터리
에르난도 데 소토 지음, 윤영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41. 에르난도 데 소토, “자본의 미스터리”, 윤영호, 세종서적, 2003.

재미있다. 명확한 비유를 통해 ‘자본’의 개념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3세계 국가들에서 자본주의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제3세계는 명확한 재산권 체제가 확립되지 않아서, ‘재산’을 ‘자본’으로 활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페루 태생의 경제학자답게, 페루를 비롯한 ‘제3세계’의 상황을 분석한다. 제3세계 빈민들의 부의 총합은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이것이 국가의 자본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이들은 합법적인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단위 또는 이를 넘어선 단위에서 문서화되지도 못하고 합법적인 거래의 단위도 되지 못한다. (물론 그 지역 소규모 집단 내에서는 나름의 규칙에 따라서 이는 거래 될 수도 있지만, 국가 단위 또는 국제법에 근거해서 보호받는 재산이 아니기 때문에 광범위한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것을 자본, 즉 잉여가치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재산으로 활용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재산과 자본의 차이는 무엇인가? 그는 저수지의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 어떤 사람이 저수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이 거기서 물 떠먹고 그 풍경을 즐기는 것으로만 사용한다면 이는 재산이다. 그런데 이 저수지의 물에너지를 바탕으로 수력발전을 해서 전기를 만들어서 그 전기를 팔아서 그 전기가 다시 다른 산업생산에 도움이 되게 하면 그것이 바로 자본인 것이다.

식민지 시대 토지조사사업도 이와 연관되어 해방 후 한국사 연구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데 소토의 관점에서 보자면, 조선시대 토지에 대한 권리는 ‘자본’이라고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관리들은 수조권을 ‘국가’로부터 이양받은 것이며, 경작권은 농민이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토지를 ‘근대적’으로 관리하여 세금을 거두고 ‘착취’하기 위해서, 일본 총독부는 근대적 형태의 소유권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경작권’이 조선시대에 어느 정도의 권리로 인정 되었는가이다. 이영훈 등의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소작농의 토지에 대한 물권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과전법은 경작권을 보호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경작권이 보호되었는가? 보호되었다면 이 ‘보호’라는 것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가?

사실 ‘근대적’이라고 하며, 서구 중에서도 일부 서구의 근대만을 이야기하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조선시대 토지에 대한 경작권과 수조권이라는 이중의 권리의 현대적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예를 들어, 현재 어떤 건물이나 상가의 매매권과 임차인들의 점유권 등, 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와 법들을 적극적으로 사유해볼 때, 이것이 수조권/경작권 등의 이중성과 매우 다른 것 같지 않다. 독일에서 거주의 목적으로 아파트를 임차하는 경우, 그들의 권리는 매우 강하게 보호된다는 점에서, ‘서구 근대’의 물권도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 헌법’이 타당하다면, (물론 논리적 비약이지만) 경작권/수조권의 이중적 권리라는 전통적 물권 개념에 비추어, 임차인들의 점유권은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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