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1학기 때 '매스컴과 현대사회'라는 수업을 들었다. 속칭 '매현사'라고 하는 수업이었는데, 꽤나 인기 수업이어서 10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들었다. 이 수업과, 이 수업에 추천한 책들을 읽어나감으로서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필터로서의 '매스미디어'가 전혀 객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비판적으로 읽어야만 된다는 '사실'은 '사실'로서 신문과 뉴스를 접해왔던 나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매스미디어'는 큰 자본이 투하되는 일종의 '사업'이다. 때문에 이윤을 발생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문, TV의 주된 이윤은 어디서 올까? 독자들의 구독료, 시청자들의 시청료? 물론 아니다. 매일 열장이 넘는 신문들이 한 달에 2만원도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몸값 비싼 연예인들이 하루 온종일 나오는 TV는 시청료를 내본 기억도 까마득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업'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물론 광고료이다. 때문에 신문이나 TV는 자신의 주수입원인 대기업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삼성의 '자매사'인 중앙일보는 말할 것도 없고, 메인 주간지들은 대기업이라는 '주인'을 비판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공중파는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데, 국가가 상당한 양의 주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TV광고주들의 대부분이 또 대기업이다. 이렇게 우리는, 국가와 대기업들의 입김이 상당정도 삼투되어 있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문의 독자나 TV의 시청자는 제한되고 가공된 정보들 속에서 서서히 그들의 입맛에 맞게 세상을 바라보고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적인 매체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에서의 '알 자지라'방송 같은 매체, 또는 적은 자본으로 중요 일간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정론들을 피력하는 '말'지나, 인터넷의 '오마이뉴스', '딴지일보'와 같은 통로는 세상을 보는 다른 시각을 통해서 '현실'을 바라보게 한다.
최근 개봉된 조지 클루니 감독의 'Good Night, and Good Luck'은 이러한 대중매체의 외부적 압력과 이에 맞서는 언론인들의 고투를 보여준다. 그 유명한 '빨갱이 열풍'의 '매카시' 상원의원과 대결하여 마침내는 그의 악질적인 마녀사냥 수법을 폭로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불편했던 심정은, 자본주의나 정치권력과 언론의 유착에 대한 폭로보다는 결국은 미국의 장점과 그 이상을 드러내는 데 주력하지 않았나 하는 심정 때문이다.
"미국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이라는 명저는 미국인들의 이상을 '미국 혁명'이라는 원초적인 장면을 통해서 보여준다. 미국의 선거를 보면서 계속 골때리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각 주마다 상원의원 2명과 인구수 비례 하원의원을 뽑는 상원-하원 제도, 각 주마다 투표를 해서 몰아주기를 통해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 각 주마다 법체계가 달라서 살인범이 주 경계를 벗어나 사형제도가 없는 주로 들어가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 등등, 도저히 3천리 국토의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이는 '개인'과 '국가' 사이의 상충에서부터 비롯된다.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도 미국의 주들에서 총기가 허용되는 이유는 이러한 '개인'의 자기방어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에 의해서 침해될 수 없는 개인의 인격과 자유라는 것이다.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에서도 이러한 점이 표나게 강조되어 있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침해될 수 없는 권리를 부인하는 이가 어디있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2005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언론에 대한 비판보다는 미국의 이상을 강조하고 있으니 갑갑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청년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아름답게 묘사한 "미국의 민주주의"는 당시 프랑스 구권력을 비판 견제하며, '민주주의'라는 자신의 이상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2005년 시점에서 조지 클루니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라크 침공의 온갓 거짓들과 고문들을 은폐하려고 애써 노력하는 부쉬 행정부를 꼬집은 것이 의도였다면, 이 영화는 언론인의 성공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그들의 투쟁과 외부의 압력에 더 초점을 맞춰야 되지 않았을까?
또 개봉된, 조지 클루니가 출연한 영화 '시리아나'를 보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해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