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라는 사상 - 장병린과 한자권의 언어론적 비평이론 문자.사회.문화 총서 10
린사오양 지음, 서광덕.최정섭 옮김 /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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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린사오양, 󰡔수사라는 사상 장병린과 한자권의 언어론적 비평이론󰡕, 서광덕, 최정섭 옮김, 연세대학교 대학출판문화원, 2013.

 

이 글은 장병린(章炳麟: 1868~1936)의 논의를 修辭라는 키워드로 묶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5.4운동의 주역, 특히 호적과 이의 응원자라 할 수 있는 루쉰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중국의 전혀 다른 국학에 대한 계보를 접하게 되어서 많이 배웠다. 특히 루쉰은 백화문 뿐 아니라 고전 문어에도 밝은데, 루쉰도 장병린에게 사사받았다고 하니 이 연결도 흥미롭다.

장병린은 소학의 대가이다. 소학은 그것을 가지고 본자가 자()를 빌려 변천하는 흔적을 분명히 하는 것”((󰡔장태염전집󰡕 7, 415)으로, 고증학의 일파라고 할 수 있다.

 

(), (), ()는 대체로 한자학에서 글자의 3요소이며, 3요소에 대응하는 학문영역은 각각 근대적으로는 문자학, 음운학, 훈고학으로 나뉘고 있지만, 전근대에 삼자는 불가분한 것으로서 소학이라고 불리는 문자언어의 학문분야로서 인식되었다. (248)

 

중국 고전은 수천년을 두고 전래되어 왔고, 글자는 원래 의미에서 변하기 때문에 고전을 읽기 위해서는 소학에 통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렇게 변화된 글자와 뜻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방언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언이야말로 옛 음운이 보존된 것이고, 이 시각에 의해 방언이 어떻게 일부의 문자의 발전과 변천에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해지고, 보다 정확히 고전을 해석하기 위한 입구가 열리기 때문이다.” (154)

이러한 소학자의 입장에서, 장병린은 백화문중심주의(호적 등)를 비판한다. 백화문자들은 문어와 구어 사이의 거리가 너무 큼을 문제제기하고, 인민의 글인 백화문으로 모든 글을 쓰자고 주장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문어와의 단절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방언들의 균질화를 의미했다. 장병린은 이 둘 다를 비판한다. 문어와의 단절과 방언의 균질화는 결국 전통과의 단절을 유래할 것이며, 이는 결국 을 끊어지게 한다.

장병린에게 은 광의의 의미에서의 , ’(축간과 비단)에 드러나는 것 곧 모든 쓰인 문자를 의미한다. (문학총략(1906)) 이러한 문의 --를 통해 드러난다.

 

넓은 의미에서의 은 다음절 글자를 구성단위로 한, 음성의 규율적인 후렴과 변화를 가리킨다(일반적으로 말하는 음악성이다). 다음은 넓은 의미에서의 인데, 이것은 한편의 시에서의 공간성과 시각성에 대한 것이며, 이 공간성과 시각성은 글자의 내부의 최소 의미성분으로서의 의부 등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은 이러한 글자의 배치, 배열 등에 의한 형식감도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는 한자의 정적인 의미, 다소 고정적인 관념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러한 ’ ‘과 동적 관계성 가운데 있는 이상, 그것 자체도 정적인 채로 있는 것은 불가능하며, ‘’ ‘과 함께 독서의식에서 어떤 시적 텍스트의 정서()가 된다. 따라서 에 대한 고찰은 불안정하며 동적인 것에 다름아니고 사건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글자가 ’ ‘에서 잘라내어 고찰할 수 없는 것처럼, ‘에 대한 고찰도 그러한 글자의 3요소와 독서의식에서 잘라내어 고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덧붙여 중국의 문학적 작품 특히 근대시, 고전의 운문에서는 리듬초점과 정보초점(즉 본서에서 말한 의()의 초점)이 일치하지 않으면 안된다. 게다가 중국어에서 한자는 음절문자여서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음절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 ‘를 고립적으로 고찰할 수 없다. (248-249)

 

이러한 장병린의 개념은 중국에서 동한, 육조에서 문/필의 대립을 운이나 어떠한 형식성을 지닌 것을 의미한 것과는 다르게 광의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장병린은 문자의 本字를 강조하며, 과도한 引伸를 비판하여 하고 그 한다를 내세운다. 이런 점에서 “‘개념은 미를 특권화하여 의 역사성, 윤리성, 비판성을 멀리하는 미학주의를 비판하는 문맥에 있다.”(126)

장병린이 가차를 인신과 동일시하며, 이것을 아네자키의 표상이라는 개념으로 치환하고,이를 한자의 비유이론으로서 전개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어, “비가 내린다”()라는 표현에 있는 내린다라는 말은 본래 인간이 언덕으로부터 내려온다는 의미였지만, ‘인신된 결과 비가 내린다라고 비유하여 말해지게 되었다. (...) 이 자()들은 본래 비유였던 것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미 비유로서 인지되지 않게 되고, 일상언어로서만 느껴지게 된 것이다. 곧 폴 리쾨르가 말하는 죽은 은유가 되어버린다. (...) 우리의 세계, 어떤 의미에서는 인신이라는 비유적 언어체계에 의해 구축된 세계. 이 때문에 생인(生人)의 사상은 반드시 표상주의 바깥으로 등약할 수 없다라고 장병린은 아네자키를 부연하면서 결론적으로 서술하였다. (165)

 

이러한 관점은, 인지시학, 개념은유도식 등을 논의하는 현대 비유에 관한 이론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장병린이 인신을 중시한 것은 언어사상적 시각에서 보면, 자의의 비유성이 운동하는 성질과, 그 활발한 확장성과 자립성에 주목했음을 의미하고 있다. (...) 장병린은 소학에서의 과도한 자유(孳乳)와 종래의 비평이론에 있는 문식주의표상이라고 보았다. (...) ‘은 분리불가능하기 때문에 질로부터 멀어지는것을 표상주의라 하고, 그것을 문식주의라고 장병린은 규탄한 것이다. 질로부터 멀어짐문사가 더욱 정교해지는것을 인과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167)

 

이러한 관점은 논어와 주자학에서 계속 반복되는 本末, 文質 논의를 계승한 것이다. 장병린은 문의 질을 결국 으로 보았다.

이러한 장병린의 사상을 정리하면서, 저자 린사오양은 과감한 결론을 내린다. --()과 같은 제3항은 근대의 이원론 주관(인간)/객관(사물)을 비판할 수 있는 매개이며, 타자의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즉 이 이원론은 계몽적 폭력이나 한 쪽의 중심화로 나아갈 수밖에 없고, 언어라는 타자의 해석이 참여가능한 매개적 항인 언어적 공공공간이 제 3항에는 있다는 것이다. (323) 그리고 이러한 근대의 제3항 말소를 사회구조적으로 개인과 중앙 국가권력 사이에 독립성을 지니고 있던 향리질서의 말소, 문화적으로는 집단주의적 문화의 고양에 의한 다원적인 지역문화의 약체화, 언어적으로는 문언문의 전면폐지를 포함한, 문자언어의 다양성의 말소, 교육시스템에서 본다면 내셔널한 교육체계의 형성에 의한, 서원이라는 전근대의 민간지식인이 자주적, 독립적으로 활동했던 장 등의 말소” (324-5)와 연결시킨다.

이 서구 근대라는 것이 이원론적이라는 것은, 일부는 맞지는 일부는 너무 단순화했다. 사회구조적으로도, 정치사회-시민사회-시민이라는 3분법이 있다. 문제는 서구발 근대가 식민지나 반식민지에 도입될 때, 도입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근대자본주의, 근대국가관료체제는 도입되지만, 시민사회는 도입되지 않는다.(만민공동회가 이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여러 신문매체는 공론장 형성을 위해 노력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민사회의 힘이나 역할은 미진하다.) 이는 도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이고, 서구발 근대성의 제국주의적 속성으로 볼 때 서구발 근대성에 이의 형성을 기탁할 수는 없었다.

구어와 문어의 분리가 심각한 중국에서, 백화운동은 문어를 폐지하고 구어의 전면화를 의미한다. 문어는 엘리트층과 인민을 나누는 경계라고도 볼 수 있지만, 문어는 과거와 오늘날 그리고 중국의 방대한 지역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장병린과 같이 백화문이나 에스페란토어화를 반대했던 지식인은 이러한 문어의 역할, 그리고 문어가 3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에 주목했다. 반면에 호적과 같은 5.4운동의 주역들은 보다 평등주의적인 구어로의 변화가 급선무라고 보았다. 이러한 차이의 근본에는 이라는 것의 인식에 대한 차이가 있다.

 

문자가 기억의 매체라고 한다면, 고전문언문과의 자연적인 연속성을 단절하고자 한 근대중국의 배타적인 백화문이데올로기는 공화의 꿈을 꾸면서 처음부터 윤리적 혁명적인 동기를 강하게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문언문을 포함한 다원적인 전근대의 모든 기억과 모든 역사를 철저하게 말살하고자 한 의지에 다름 아니며, 제로에서 근대라는 새로운 의식,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위해 동일하게 새로운 기억을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유포하고자 한 의지 그 자체이기도 하다. (333)

 

이러한 지적은 이광수의 문학이란 하오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욕망에 대한 해석으로도 적절하다. 이광수는 문학이란 하오에서 문학은 literature의 번역어라고 단언한다. 이렇게 문학이 외래어의 번역어라고 주장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문학이라는 개념의 외연과 내포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광수의 이 글은 그러한 기존의 문학literature라는 기의로 변경하려는 시도이다. 그러나 그럴 때도, 그는 기존 문학의 의미망에서 온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기묘하게 의미들을 중첩시킨다. 이는 그의 문사와 수양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즉 한문맥적인 문사라는 자기 이미지가 핵심적으로 작동해서, 서구의 literature와 중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중첩성은 김억이 천리’, ‘사무사’, ‘격조등의 한문맥적 개념으로 자신의 논의를 설명할 때나, 김소월이 정성위음으로 자신의 시관을 드러내고 소식의 글을 이용하여 자신의 시론을 전개할 때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이는 그들의 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김억은 서구적인 멜랑콜리를 정조로 하고자 하지만, 이는 한시의 구조 속에서 발화된다. 김소월은 영원하면서도 변화하는 것의 길항을 시로 써내고, 이는 곧 그의 시론 속에서 서구적인 것과 한문전통적인 것으로 대별된다. , 한문맥적 사유와 구문맥적 사유가 긴장과 갈등을 이룬 것이 바로 소월의 시적 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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