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tant Reading (Paperback)
Moretti, Franco / W W Norton & Co Inc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15. Franco Moretti, Distant Reading, Verso, 2013.

 

두 번째 읽은 책. 역시 좋은 책은 두 번째 읽었을 때, 또는 관련하여 어떠한 글을 써야 된다는 압박이 있을 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특히 ‘Conjectures on World Literature’‘Distant Reading’의 핵심과 앞으로 전개될 모레티 작업의 출발점을 볼 수 있다.

 

모레티는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세계문학이라는 체계(시스템)에 도입한다. 중심부-준주변부-주변주라는 도식으로, 세계문학을 멀리서 읽기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문학에 대한 연구는 국민문학 연구를 토대로 이루어진다. 즉 개별 텍스트들을 읽지 않고, 텍스트에 대한 연구들을 토대로 세계문학이라는 시스템을 그려낸다는 것. (조동일 선생의 작업과 본격적인 비교가 필요하다.)

 

그는 문학 연구를 세계문학과 국민문학으로 나누고, 이를 파도와 나무의 비유로 설명한다. 파도가 다양성을 어떠한 힘이 덮어버려서 퍼져나가는 것이라면, 나무는 태초의 같은 기원이 다양성으로 파생되는 것을 의미한다. 둘 다 필요한 것이지만, 모레티는 자기와 같은 비교문학자는 파도의 설명력을 더 믿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레티의 대담한 글은, 이미 발표된 지 16년이 지났기 때문에(New Left Review 2000 spring) 한국의 학자들도 어느 정도 이 방법론과 주장에 친숙해지고 이를 적용하기 시작한 시점(황호덕, Wayne 등의 연구)에서 읽어도, 이 책은 여러 사유의 계기들을 던져준다.

 

일단은 모레티의 주장의 허점들을 짚어보자.

    

 

 

1. 모레티의 세계문학의 방법론은 기존 연구들을 토대로 이를 종합하여 일반화된 법칙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도출된 일반화된 법칙은 문학 텍스트 내부에 있는 어떠한 공통된 특질이나 현상이 아니라, 문학 텍스트를 바라보는 연구 시각의 균질성일 가능성이 있다. 즉 문학이라는 현상의 세계적 보편성이 아니라, 아카데미적 시각의 균질성, 서구적 아카데미즘의 세계화. 물론 문학 연구가 문학 텍스트와 상호작용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이를 메타적으로 접근할 때 근대-아카데미라는 것의 패권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내 논문의 핵심은 한문맥과 근대시이고 한문맥의 잔존과 이의 영향에 대해서 논의하고, 이는 한국 근대문학이라는 학문장의 형성, 그 안의 권력들의 배치 때문에 탐구되지 못한 면이 있다.

    

 

 

2. 물론 모레티 스스로도 이것을 완성된 이론이라 하지 않고, 포퍼식의 추측과 논박에 열려있다고 했다는 점에서 모레티의 오류라기보다는, 그의 논의를 보충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모레티식으로 근대 이후 세계문학이란 서구의 영향과 지역의 교섭이라 할 때, 각 지역들 마다의 섬세한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이를 언어/문자/에크리튀르를 포함한 사유방식을 개념화할 수 있는 문맥’(한문맥/구문맥 등)이라는 개념으로 볼 때, 동북아의 한문맥, 그리고 그 내부에서의 차이(특히 한중일베트남에서의 차이. 중국 베트남을 양극으로 하여 일본은 보다 중국 쪽에 한국은 보다 베트남쪽에 가까운 문맥의 구성) 는 예컨대 남미 문학에서 원주민 언어의 소실과 마술성, 즉 마술적 사실주의 전통과의 비교 등은 유의미하고 보다 다층적인 논의를 가능케할 것이다.

    

 

 

3. 모레티는 중심 -> 주변으로의 흐름만을 상정한다. 이는 두가지 차원에서 문제적이다. 첫째는 실증적으로 주변 -> 중심으로의 영향도 분명하다는 것. 에즈라 파운드, 고흐 등은 물론 몽고, 아랍 등등.

 

두 번째는 서구 -> 주변부의 영향이 절대적이고 영향의 방향성이 일방향이라 해도, 주변부 문학의 특성이 서구의 보편성을 위협하고, 이의 해석과 수용에 절대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에드워드 사이드는 Representing the Colonized: Anthropology’s Interlocutors에서 유럽 텍스트들이 타자들을 재현하는 방식의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한다. 권나영(Aimme Nayoung Kwon)은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주변부 텍스트에서의 재현의 위기를 근대 보편적인 재현의 위기로 명명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기존 서구의 보편적 가치를 재현한 것으로 여겨지던 고전은 오히려 왜곡되고 파편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탈식민적 읽기를 통해, 서구 보편의 서사가, 남성, 백인, 서구, 이성애라는 주변부’(그렇다 서구야말로 주변이다.)적인 비틀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다. 즉 중심이 주변을 외면하고, 주변은 중심에 절대적 영향 아래 있어도, 그 주변자체가 중심의 의미를 전복한다. (이런 의미에서 조동일 선생의 생극론이 도입될 수 있다. 데리다적인 해체.)

 

 

 

4. 더 나아가 가장 핵심적으로 문제적인 것은, 중심, 주변부, 세계문학, 국민문학이라는 개념틀 자체가, 여전히 국민국가라는 경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보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체제는 국민국가 단위로 분석가능하다. 물론 이는 다른 단위들 속에서 움직이며 상당한 영향을 주고 받지만, 이는 개념적으로 통계적으로 경계를 지을 수 있고, 연구의 대상을 확정할 수 있다. GDP, GNP 등의 개념들이 그러한 경계를 바탕으로 산출된 개념이다.

 

문학도 그러한 것처럼 보인다. 한 나라의 언어로 쓰인 문학이라는 경계는 견고한 듯 보인다. 그러나 문학은 언제나 여러 언어들의 혼합으로서 존재했다. 방언과 방언 사이,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 언어와 언어 사이. 한글, 한문, 영어, 불어, 일어, 에스페란토어로 텍스트를 읽고 한글, 한문, 에스페란토어, 일어로 글을 쓴 김억. 그가 국()문체(한국어)로 쓴 작품을 국민문학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오늘날 작가들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언어만을 하는 작가라 해도, 이미 그/녀는 여러 언어들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 김연수는 한국문학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문학인가?

 

문학은 늘 클라인씨의 병과 같은 구조 속에 있다. 외부에서는 경계가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면 길을 잃고 경계는 흩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국민문학 연구는 늘 비교문학 연구이고 세계문학 연구이다. 또 반대로 세계문학 연구는 늘 비교문학이며 국민문학 연구이다.

 

언어는 화폐처럼 교환되지만, 화폐가 아니다. 화폐는 환율을 바탕으로 교환되고 그 과정에서 환전 수수료가 약간만 부가된다. 그러나 한 언어 속에는 이미 다른 언어가 삽입되어 있고, 한 언어는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모든 것을 잃고 처음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을 재획득하려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국민문학세계문학’, ‘중심/준주변/주변이라는 개념은 그 경계가 뚜렷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연구자의 시선 속에만 존재한다. 한국의 경제상황이 나쁘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있는 명제이지만, 한국의 문학상황이 나쁘다는 것은 사실 한국의 문학(자본/시장/작가)의 상황이 나쁘다는 말에 불과하다. 문학은 어떠한 국가/언어의 경계를 늘 넘어서 존재한다.

    

 

 

5. 그럼에도 모레티가 말한 중심/()주변의 개념으로 세계문학을 바라볼 수 있다. 일단 경제적인 관점에서 세계문학을 바라본다고 할 때, 가장 먼저 손쉽게(?)할 수 있는 연구는 전세계 각 국가별 출판시장에서 자국어 출판과 번역출판 사이의 비율과 그 의미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어떠한 보편적 논의가 도출 가능할 것 같다.

 

미국출판시장 (2008)에서 번역서가 차지하는 비율은 3%, 문학에 한정한다면, 그 비중은 더 낮아져서 전체 문학 중 번역서는 0.7%이다. 제국은 견고하게 동종번식을 하며 이웃에게 무지하다. (유럽인들의 오랜 농담이 있다. 언어를 하나만 하는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게? 미국인.) 한국은 2008년 통계상 29%가 번역서라고 한다. 2016년 판매량으로 따지면 이것보다도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전세계 출판시장을 바탕으로 중심-주변보다는 각국 사이의 서로 어떠한 네트워크망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대학의 교수진이 어느 국가에서 왔는지 검토한 네트워크 망처럼) 그러면 보다 다극적인 (그러나 영어 중심인) ‘문화 체제가 실증적으로 밝혀질 것이고, 이것을 시간축으로 변화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의 몰락과 맹주로서의 프랑스, 중국의 부각. 한일의 가까움 등등)

    

 

 

6. 조동일 선생의 작업을 모레티나 이브 조하르의 작업과 본격적으로 비교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얼마전 UBCRoss King 선생님도 조동일 선생의 작업이 영미권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고 한 적이 있는데, 모레티와 이브 조하르와 대결시킬 수 있다. 특히 생극론에 바탕을 둔 조동일 선생의 세계문학사를 탈식민주의적으로 다시 읽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 연구도 언젠가 하고 싶은데, 일단 졸업하고... 할 것은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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