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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김광주 외 ㅣ 연세국학총서 73
연변대학교 조선문학연구소 지음, 김동훈 외 엮음 / 보고사 / 2007년 6월
평점 :
9. 연변대학교 조선문학연구소 편, “중국조선민족문학대계 13- 김학철, 김광주 외”, 보고사, 2007.
김광주의 소설은 상당수가 상해를 배경으로 한다. 3.1운동 이후 상해는 조선인들에게 특별한 공간이었다. 상해임시정부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승만, 안창호, 김구는 물론 박헌영과 주세죽이 있던 곳이고, 이광수와 주요한이 독립신문에 참여하던 곳이다. 독립, 혁명, 문학이 들끓었던 곳이다.
1930년대 중반에 김광주는 이러한 ‘이미지’를 매섭게 비판한다.
“춤과 계집과 술과 마장, 연분홍빛 향락을 쫓아 일생을 살랴는 계급들-그러나 지사의 거리 ‘상해’라는 이 아름다운 명사가 그들의 이런 생활을 곱게곱게 덮어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
껍질을 벗껴야한다. 그들의 생활을 덮고 있는 이 어두컴컴한 껍질을 벗껴서 밝은 태양아래 드러내야 한다.... 나는 이것만 위하야서도 일생을 붓대를 들고 싸워보자!” (296) 「남경로의 창공」, 조선문단 시가특대호, 1935.6.
김광주는 작품 속 인물의 말을 통해 이와 같이 ‘상해의 껍질을 벗기는 것’을 자신의 문학적 포부로 밝힌다. 김광주에 의해 그려진 1930년대 중반의 상해는 벌거벗은 삶 자체이다. 지사로 포장된 이들은 아편매매와 인신매매를 하는 이들로 그려지고, 가난한 조선 여성들은 상해에 와서 성매매를 하고, 인텔리들은 자신의 무능만 자책할 뿐이다. 상해의 조선인들은 하루 벌어서 하루 먹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통해 재산을 축적하는 이들로 나뉜다.
김광주는 이를 마치 발자크의 “인간희극”처럼, 다양한 소외된 자들을 묘사하는 것을 통해 총체적인 상해의 어둠을 밝힌다. 전직 독립군으로 상해에 와서 암살당하는 노인(「장발노인」), 전직 혁명가이지만 이제 가난한 룸펜으로 아내 출산에 임박해서 돈을 구하러 다니는 가난한 인텔리(「포도의 우울」), 지사였지만 이제는 아편밀매업자인 아버지 밑에서 고민하는 문학청년(「남경로의 창공」), 꿈 많던 문학소녀에서 상해에서 성매매를 하게 된 여성(「야계」), 가난 때문에 결국 상해에까지 흘러들어왔다가 자신의 아내 닮은 처녀에게 연정을 품고 그 집에 칼을 들고 찾아갔다가 추방된 남성(「북평에서 온 영감」)등을 통해 상해는 우울하고 비참하고 가난하고 위선적인 군상들로 그려진다.
김광주에게는 당대 카프 작가들이 보이는 전망도 없다. 최서해적인 분노와 파멸도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김광주는 상해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할 뿐이다. 그의 분노는 ‘지사’인 척하지만 사실은 아편밀매나 인신매매를 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명예욕만을 채우려하지 실상 민중을 위하지는 않는 ‘운동가’들을 향해있다.
이는 어찌 보면 90년대 후일담 소설의 선배 격이다. 1931년 신간회 해소 후, 공산주의에 거리를 둔 이들이 갈 수 있었던 길 중 하나를 김광주가 보여준다. 이는 채만식과 비교를 통해 보다 그 의미가 분명해질 수 있다. 김광주는 ‘주의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며 가난한 이들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하려 한다. 반면에 채만식은 주의자를 위선이라 비판하는 이들을 조롱하여 식민지 사회에 ‘적응’을 잘한 ‘친일파’들을 묘사하고 (「치숙」(1938), 「태평천하」(1938)) 가난한 이들의 삶의 궤적을 핍진하게 그려낸다. (「탁류」 1937). 김광주를 읽으며, 오히려 채만식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물론 김광주와 같은 작업도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지사’인 척하지만 이것이 일종의 ‘가면’으로만 기능한다는 비판도 적절하다. 그리고 이는 김광주의 소설을 읽는 당대 식자층에게 뼈아픈 자기반성의 계기를 마련해줄 수 있다.(후일담 소설이 그런 것처럼) 그러나 채만식의 글들에는 시대를 읽는 눈이 있다. 채만식이 장편소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하고, 김광주가 단편소설을 선택한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김광주가 소품 수준의 짧은 글들로 상해의 인물상을 스케치한다면, 채만식은 장편으로 살아있는 주인공을 창조하고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도 함께 부조해낸다.
그럼에도 한국소설사에서 김광주의 이 작품들은 ‘상해’라는 공간에 이주할 수밖에 없던 초라한 사람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당대 상해의 물질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민족 간의 분열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면서도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판 초면인 사람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자신의 집에 함께 거주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김광주의 직간접 체험이 녹아있을 소설들에서, 일자무식의 가난뱅이와 성매매 여성들은 타자화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주체화되어 있다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김광주는 계속 적어갔다. 해방 후 경향신문 편집국장까지 지낸 김광주. 이는 나중에 경향신문의 기사나 논조와도 연결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