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외교관 엄마의 떠돌이 육아 - 격렬하기 짝이 없는
유복렬 지음, 세린.세아 그림 / 눌와 / 2015년 12월
평점 :
프랑스(3년), 한국(2년), 튀니지(2년), 프랑스(3년반), 한국(1년반), 미국(2년반), 알제리에서 한 외교관 엄마가 두 딸을 키웠던 경험담을 자신의 교육철학과 한국과 외국의 교육환경, 정책등에 대한 분석과 함께 풀어놓은 수필. 아이를 믿으라는 소신을 자신의 경험담으로 풀어놓는다. 아이와 특정 국가 교육환경과 정책에 대한 개인적 경험이기 때문에 일반화되기 힘들고, 학문적 논리도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는 한계가 있지만, 일반화되지 않는 개인 경험을 통해 깨닫게 하는 면도 많다.
외교관 아내를 둔 남편으로, 앞으로 아내의 부임지들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나에게는 도움이 된 책이다. 아쉬운 점은, 이 책에서는 분명 엄마, 아빠, 두 딸이 함께 다닌다고 했는데, 아빠의 역할은 거의 서술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빠는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었는지, 아니면 아예 전업주부였는지는 전혀 서술되지 않아서 궁금증을 낳게 한다. 아빠와 두 딸의 관계도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엄마와 두 딸의 ‘격렬’한 성장담 뒤에 희미하게 아빠의 존재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특히 흥미롭고 한국에서 육아를 하거나 육아정책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부분들은 프랑스의 육아 정책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저자 자체가 프랑스 전문가로, 한국에서 프랑스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7년 유학을 하고 프랑스 문학으로 박사를 받고, 외교부에 들어가고, 그 이후로도 프랑스에서 6년반을 부임해서 아이들을 프랑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보냈을 만큼 정보도 많다. 예전에 조재룡 선생님께도 잠깐 들은 적이 있는데, 프랑스는 정말 공교육의 천국이자 부모들이 별다른 걱정 없이 아이들을 보육시설과 학교에 맡길 수 있다고 한다. 얼마 전 화제의 프로였던 SBS의 “엄마의 전쟁”에서 덴마크에서 ‘전업주부’라는 말 자체가 낯선 말이라고 한 것처럼, 프랑스 노동가능연령대 여성의 85%가 ‘사회활동’을 한다고 한다.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전액 무상교육이다. 만3세부터 의무교육, 무상교육, 무종교교육이다. 출산휴가는 첫아이는 출산 전 6주, 출산 후 10주고, 둘째아이부터는 출산 전 8주, 출산 후 18주이고, 매달 양육비를 국가가 부모한테 직접 지원한다. 매년 새학기에는 개학 준비금도 지원하고... 생후 2개월부터 유치원가기 전까지는 자신이 사는 곳 구청에 탁아소 등록을 하면 탁아소도 보낼 수 있게 제도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즉, 정말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대비하여 한국의 교육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엄마들은 모두 능력이 넘친다.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직장에 다녔으나 아이를 낳게 되면서 전업주부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뒷받침해주지 못해 생기는 우리나라의 불행한 현실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난 데다 시간까지 많아진 엄마들은 자녀에게 유난스런 관심을 쏟다 보니 조기교육, 영재교육, 선행 학습, 예능 교육, 꿈나무 교실 그리고 태교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종류의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엄마들의 부추김으로 생기는 프로그램이니 엄마들이 개발한 것이나 진배없다. 그리고 사회 전체가 이런 과열된 교육 현상을 수용한다. 국가에서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인해 이런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다.” (99) (강조 인용자)
현직 외교관으로서, 국가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국가가 아이들의 육아와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프랑스와의 비교를 통해, ‘국가’라는 것의 책임범위를 전제하고, 이에 미달되는 한국의 현실을 비판한다. 다음과 같은 목소리도 좋다.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남녀평등에 대한 강한 의지와 주장을 국가와 사회가 받아들이도록 노력하여 관철시켰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육아 제도는 힘겨운 전투에서 승리한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보상인 것이다.” (50)
그러면서 프랑스 엄마들이 ‘엘리제 궁’을 때려부시더라도 어떤 정책을 반대할꺼라는 말을 하는 프랑스 엄마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우리로 치면, 청와대를 때려부시더라도 어떤 정책에 저항하겠다는 말을, 현직 한국 외교관이 소개하면서 이러한 투쟁이 프랑스 사회를 만들었다고 서술하는 데서는 통쾌함까지 느껴진다.
앞으로 외국에서 윤아를 키우게 될 터인데, 이 책을 읽고는 조금은 불안이 가셨다. 우리는 미국(2년) 한국(2년) 후에 어느 나라로 갈지 미정이다. 윤아가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이 책처럼 3~4개국은 더 다닐 터인데, 그 경험이 이 책의 아이들을 강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윤아를 강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