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단장
김춘수 / 미학사 / 1991년 10월
평점 :
절판


3. 김춘수, "처용단장", 미학사, 1991.

김춘수의 무의미 시에 대해서, 김수영이 의미와 무의미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한데,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다고 쓴 적이 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를 지금 돌이켜보면, 이승훈-김혜순-'미래파' 등에 큰 영향일 미쳐, 결국 한국 현대시의 핵심적인 흐름 중 하나로 된 것 같다.

나는 이게 '전위'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전위의 방향성에 대해서 늘 의심해왔다. 초현실주의에 한 발 더 나아간 어떤 지점에 '무의미'라는 것이 있다. 대상, 의미, 관념은 고정되지 않고, 언어들은 자율적 유희를 시작한다고 할 때, 시가 음악을 또는 시가 미술을 지향하는 것에서, 시는 추상화의 세계로 나아간다. 색과 선의 느낌이 야기한 감각은, 어휘들이 야기하는 감각과 상통한다. 다만 여기에는 기표들 배후의 기의들의 다양한 결합으로 의미는 확정되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지며 유희하고, 기표 배후의 기의들은 통제할 수 없는 연상들로 확장된다.

 

 

그러나 무의미시가 표방하는 것과는 달리, 이 시집에는 어떤 누빔점들이 있다. 꿈과 무정부주의, 그리고 일제 시대와 6.25가 그것이다. 전쟁의 참혹한 기억, 식민지의 기억으로 계속 퇴행하며, 화자는 꿈을 꾸고, 이 기억을 반복하여 어떠한 순간에 도달하려 한다. 이는 계속 무정부주의라는 어휘, 또는 무정부주의자가 결코 되지 못한 자신이라는 말로 시가 온전히 무의미로 해체되지 않았음에 대한, 또는 온전히 과거-현재라는 시간축이 투영된 '자아'라는 것도 해체되지 않았음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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