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첨의 영웅주의 - 최남선과 이광수
서영채 지음 / 소명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서영채 선생님의, "아첨의 영웅주의", 소명출판, 2011. 을 읽었다.


여러가지 생각꺼리들이 많이 생겼다. 가장 핵심적으로는 '식민지성'이 얼마만큼 결정적이고 큰 차이인가? 언어의 억압, 정치적 대표를 뽑지 못하는 제한? 일단 후자는 소위 ‘내지인’들과 얼마만큼의 차이를 지니는가? 더 나아가 오늘날의 상황과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가? (오늘도 식민지의 연속이라는 점에서가 아니라, 모든 나라는 모든 다른 나라와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결국 식민지가 아닌가.) 즉 식민지임으로 인해서 ‘굴절’된 근대성이, 식민지가 아님으로 인해서 ‘굴절되지 않은’ 근대성을 지닌 제국과 비교한다고 했을 때, 제국 안에서도 특정한(가상적) 주체를 제외하고는 결국 식민지인과 매한가지가 아닌가? 일본 안의 오키나와 같은 예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의 농부들, 지식인 안에서도 계급과 권력의 유무, 젠더 등등을 생각해보면, 과연 ‘식민지성’이 그렇게 큰 결정 요인일까? 


식민지적 근대성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어떤 '민족'이나 국가가 근대성의 수신자인자 발신자인지, 또 제국체제에서 권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근대성의 특징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를 각 제국의 근대성과 어떻게 다른지, 이것이 제국간의 근대성과의 차이보다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인지, 아니면 제국 간의 근대성의 차이는 논의할 여지가 없이 '공통'적인 것인지도 논의되지 않는다. 영국의 근대성, 네덜란드의 근대성, 혹은 영국 캠브리지의 근대성과 룩셈부르크의 차이? 영국 중산층 이성애자 여성과 독일 하류층 동성애자 남자 사이의 어떠한 '공통성'? 이러한 차이들은 모두 지워지고 어떤 '서구적 근대성'이라는 형태로 제시되는데, 이것은 증명되지 않은 자명한 공리처럼 여겨지지만, 결코 그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민족이나 국가를 단위로 해서, 어떠한 '근대성'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 그 경계는 물론 유의미한 경계이지만, 다른 수 많은 경계들과 함께 있다.


구체적으로는 특히 최남선 신체시에 관한 논의가 흥미롭다. 거칠고 단순한 논의이지만, 최남선 시의 형식과 주제에서부터 출발해서 근대성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한 논의까지 과감하게 이어낸다. 최남선 신체시의 형식은 주지하듯이, 완전히 정형적인 것은 아니지만, 각 연은 유사한 형식을 되풀이한다. 한자로 표현하자면, 定形은 아니지만 나름의 整形이 있는 것이다. 이를 서영채는 보편성에 맞서는 특수성, 전체성에 맞서는 개별성으로서의 주체성의 원리와 연결된다고 본다. 사실 쉽게 생각하면, 기존 시형식이나 노래형식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을 창안했다는 것 자체가, 주체성의 원리와 연결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별적인 규범으로서 기존의 보편적인 규범을 대체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과연 기존 한시의 규범이나 시조, 가사, 창가, 민요 등의 노래에서의 규범이 ‘보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일반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그냥 ‘규범적인 것’ 사이의 구분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 과감한 논의는, 이렇게 보편성에 맞서는 특수성, 전체성에 맞서는 개별성으로서의 주체성의 원리를 모더니티의 핵심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사실 이런 ‘모더니티’ 개념을 이렇게 사용한다면, 그렇다면 이옥 등의 18세기 ‘새로움’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모든 외적이고 전체화된 혹은 중심화된 원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자유로운 개인을 탄생시키는 것, 또한 국민국가의 형성에 기본적인 이념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그리고 모든 전통적 규범을 거부하고 자아의 개성과 독창성을 강조하는 것으로서의 낭만주의 예술 등이 모두 이러한 주체성의 원리에 근거한 것이며, 또한 근대성의 상징인 것이 아닌가.” (241)

  그리고 그렇다면, 이 근대성이라는 것은 이념형이며, 유독 ‘식민지’인 조선에서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제1세계’에서도 문제가 된다. “모든 외적이고 전체화된 혹은 중심화된 원리로부터 벗어나 있는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것은 어찌보면 공산주의 사회의 이상이면서 동시에 자유주의 사회의 꿈이다. 이는 언제라도 서영채 교수가 말하는 ‘사회적 근대성’과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즉 이념형으로서의 ‘근대성’을 논의하는 것이라면, 서영채 교수가 근대시의 이념형을 ‘모든 외적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 고립된 개인, 고독한 개인의 독백을 전제’하지만 최남선은 오히려 웅변이나 방백에 가깝다고 비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대목은 고민을 하게 한다.

“청년 지식인 최남선이 처해있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제국주의적 현실 속에서 무엇보다 문제적인 것은 국가 자체의 존립과 안위였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자유와 평등을 말하고 있는 최남선에게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관념적(추상적) 주체- 개인 주체- 문학적 주체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구체적) 주체 –집단 주체 –민족적 주체의 길이다. 최남선이 어느 노선에 있었는지는 명확하다. (...) 그에게 우선적인 것은 당연히 민족적 주체성을 옹호하는 것이다. 국가의 존립이 무너진다면 개인의 자유와 평등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최남선은 계몽의 방식으로 잡지라는 매체를, 그리고 시라는 형식을 선택했다. 이것은 현실 사회의 제도를 떠나서는 존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둘이 서로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제1세계에만, 곧 보편사적 경향이었던 근대성의 본거지, 계몽이성의 본거지에만 국한되는 것이다. 이미 그 자체가 제국주의적인 권화로 변모해 있는 그곳에는 국권에 대한 그 어떤 위협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남선이 제1세계의 지식인이자 시인이었다면 이 둘은 서로 조화로울 수도, 그리고 그는 집단 주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 주체의 자유와 평등을, 그리고 문학 자체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길을 따라 나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253)

  간단히 설명하면, 국권 자체를 빼앗긴 식민지인으로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미적 근대성’을 추구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회적 근대성, 또는 ‘민족 주체성’을 추구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를 제1세계와 비교하면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못내 불편하다. 제1세계의 지식인-시인이 ‘미적 근대성’만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의 예가 있을까? 보들레르, 랭보, 말라르메 같은 프랑스, 혹은 릴케 같은 독일(어권), 또는 파운드나 엘리엇 같은 영미 시인? 이들의 생애를 살펴보면, 이들이 제국주의 또는 한 국가의 정치나 국권의 상황과 무관하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추구할 수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집단 주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인 주체의 자유와 평등을, 그리고 문학 자체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길’이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실행된 사례가 있을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말라르메의 시를 그런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제1세계에서 집단 주체를 무시하는 것만큼, 제3세계에서도 집단 주체를 무시하며 시를 쓸 수 있다. 이는 단지 식민지인가 아닌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나는 미적 근대성 논의와 함께 ‘식민지적 근대(성)’이라는 것이 어떠한 완성된 형태의 ‘(제국서구의) 근대’와는 다른 무언가로 논의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당연히 제국은 식민지를 전제한다. 제국의 근대성(이란게 있다면)이는 결코 자족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식민지와 함께 창출되어 변화하고 운동하는 것이다. 때문에 식민지 근대성과 제국의 근대성은 쌍생아이지 부자관계가 아닌 것이다.

  

2015, 독서일기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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