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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서함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57
박라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2월
평점 :
만개한 용기 -박라연
끼니 걱정
집 걱정하는 이웃을 위해
간판 하나 내걸고 싶을 때 있다
천상의 시간에서나
맛볼 냄새
식물들이 밤새워 지은 밥상을
받을 수 있는
새나 곤충
식물들의 운과 명이 번져
끼니도 집도 허공에게서
노지에게서 하사받을 수 있는
허공과
노는 땅을 실어 와 분양해주는
占집 같은 간판들을 여기저기
덧걸고 싶을 때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참 마음에 들다가, 읽을수록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화자는 끼니 걱정, 집 걱정도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만은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지만, 끼니 걱정 안 하는 식물, 새, 곤충들에 생각이 번진다. 허공과 노는 땅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은 누구는 몇십채의 집을 소유하고 누구는 집이 없어 걱정하며, 필요 식량보다 생산 식량이 많은데도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
그런데 과연, 식물, 새, 곤충은 끼니 걱정을 안 하고 사는 것일까? 말라죽은 풀, 고속도로에서 터진 내장을 드러낸 새, 잡아먹히는 곤충들.. 나는 자연 대 인간이라는 상상력의 구도자체가 불편하다. 원초적 어머니, 풍요로운 대지로서의 자연과 이에 반대되는 인간의 구도. 이 또한 인간의 특권화가 아닌가.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점집 같은 간판'을 덧거는 어떤 공상, 미신의 영역으로 갈무리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손가락 의자 -박라연
더 이상은 날 수 없다는 듯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더 이상은 바라봐선 안 될 한계 그늘에서
쉬고 있는 내 여윈 검지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옆 사람에게 미안했지만
심장 박동 수가 비슷해서 굴러 온
축복이려니, 조심조심 지친 숨을
다독여주었다 기댐과 돌봄 사이에
행여 금이 갈까 두려워
온몸에 쥐가 나도록 한결같았는데
어쩌나! 엄지손가락에 다른 잠자리가
또 내려앉아 심장 박동 수를 맞추게 하니!
이런 시는 참 부럽다. 섬세한 화자의 마음은 '옆 사람에게 미안했지만'이라는 구절로 잘 표현된다. 늘 이웃을, 옆 사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냥 잠자리 한 마리 내 검지에 내려앉은 것 뿐인데, 옆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내려앉은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