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얼굴 서정시학 서정시 108
최동호 지음 / 서정시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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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시집으로 최동호 선생님의 "얼음 얼굴"을 읽었다. 양면적이다. ‘선생으로서 설교할 때는 참 불편한데, 노시인으로서 추억을 더듬을 때는 아름답다. 이런 분류로 보면 시집의 1부는 주로 설교조의 시들이고 2~4부는 추억을 노래하는 시들이다. 검집에서 검을 빼지 않아야 검이라는 시론으로서의 "명검"이라는 첫째 시부터 시인보다 30년 이상 어린 나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 검은 써야 제 맛 아닌가? 특히 오늘날 같은 시대에 말이다.

 

지인(至人)

 

옛날의 지인들은

죽음을 진짜로 알고

삶을 가짜로 여겼는데

오늘의 지인들은

죽음도 삶도 다 가짜로 안다

 

잘나고 똑똑한

가짜들이 인터넷 속에서도 티브이 속에서도

사랑하고 알을 까고

술집과 백화점을 누비며

마네킹 미인에게 돈을 뿌리고

죽음도 삶도 없는 화려한 스크린 인생을

 

멋지게들 신바람나게 살고 있다.

 

 

오늘의 지인들은 죽음도 삶도 다 가짜로 안다, 라는 판단은 곱씹어볼 만하다. 至人, 즉 지극한 위치에 선 사람들. 예전 지인들, 예를 들어 석가모니나 예수와 같은 이들은 지상에서의 삶이 헛되며, 죽음(또는 죽음 뒤의 삶)을 진짜로 여겼다. 하지만 오늘날은 삶을 그냥 허비해 버릴 뿐이라는 지적. 옳은 말씀이시지만, 이 시의 발화 위치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화자는 그 오늘에서 벗어난 어떤 초월적 위치에서 이 모든 것은 가짜라고 말한다.

이러한 설교보다는 오히려 들국화의 "이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단언이 더 공감이 간다. 우리는 쉽게 남이 삶이 가짜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있고 아픔이 있을 것이다. 멀리서 나는 내 삶과 아픔으로서 그들의 그것들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그게 시의 자세가 아닐까.

그러나 앞서 말했듯, 노시인이 추억을 노래하기 시작할 때, 즉 자신의 삶에서 시를 시작할 때는 참 아름다운 시편들이 흘러나온다.

 

들꽃에 숨겨진 히말라야

 

히말라야는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베니냐 칸막이 옆방에서 소근거리는 소리로

며칠째 밤잠을 설치고 일어나

키 낮은 산집 주인들과

구름 인사 나누고

바람과 함께 밤이슬 털고 있던

 

마당가 낮은 돌담 앞에서

발걸음 막 옮기려 할 때 알 수 없는

미소가 한순간 언뜻

내 콧등을 스쳐지나갔다

 

그 엷은 바람의 기미, 그때 알아채지는

못하였으나 십 년 너머 지나

우연히 꺼내 본

그날 사진에

높고 신성한 산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돌담 사이 홀로 핀 꽃에 숨겨진

산의 미소, 콧등을 건드리는 꽃잎처럼 다가와

환하게 햇살 퍼트리며

이슬도 채 말리지 못하고 가는 사람에게

 

설산의 정상으로 향하는 오솔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원채 이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모티프를 좋아한다. 영화 "러브레터에서처럼, 함께 있었고, 경험했지만, 나는 몰랐고 상대는 알았던 일들. 그래서 상대의 반응을 사소하게 흘려보냈지만, 훗날 알게 되는 상대의 마음에 의해 과거의 그 반응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며, 과거가 일회적으로 흘러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의미를 띄고 그 순간이 생생하게 다시 살아난다. 주관의 파편적인 경험이, 총체적으로 다시 구성되는 느낌.

위 시의 은유들은 새롭지는 않지만(최동호 시인의 거의 모든 은유가 그렇다), 친숙해서 적절하다. 산의 미소로서의 들꽃. 사소해서 당시에는 스쳐지나갔지만, 오랜 후에 그 장면을 찍었던 사진으로 과거의 경험이 재해석 된다. 그때 내 콧등을 스쳐지나갔던 엷은 바람의 기미는, 당시에는 너무 작고 일상적이라서 스쳐지나갔던 꽃이었다. 그래도 그 순간 나는 어떤 작은 설레임을 느꼈을 것이고, 곧 지나치고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더 지난 후에 꺼내본 그때 찍힌 사진에는 내 얼굴 옆으로 작은 들꽃이 피어있었고, 그 들꽃은 히말라야 정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들꽃이야말로,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였던 것이다!

낮은 산집 주인들과 낮은 돌담과 들꽃과 오솔길이라는 어찌 보면 상투적인 '친숙함'과 히말라야와 설산의 정상이라는 대조가 너무 극명해서 감동이 조금은 휘발되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러한 대극이 실제 일어났던 일이었던 것을.. 그리고 이는 어쩌면 시인의 태극적인 사유 속에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 극은 다른 극으로 통한다.

이러한 극과 극을 대조시며, 동시에 연결시키는 시편들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불교적인 사유인 티끝 안의 우주가 담겨있다는 생각이다. 시인은 매우 작은 것 안에서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는 것을 본다.

 

가을빛 목소리

 

가을빛 속에는 쩌렁쩌렁 울리던 할아버지 목소리가 숨어있다

숨죽이고 대청에 기어들었던 유년의 강물도

운행을 늦추고 스러져가는 빛을 잡으려고

잔 물살 참방거리고 있다

 

저무는 가을빛 속에는 낮잠에 빠져 먼 길 가다가

불현듯 멈춘 내 발걸음이 있다

해질녘 등 돌리고 기다리던,

어린 시절 물에 빠져 죽은 동무가

 

장독대 뒤에서 연기처럼 살아나와

하염없이 스러지는 빛 속에서 가냘픈 목소리로

잠깬 나를 부르고 있다

불러도 대답하지 않던 동무가

 

돌연히 고개 돌려

등뒤 제 목소리를 묽그러미 들여다보는 가을빛 속에는

물에 젖은 노란 낙엽처럼,

숨어서 듣지 않으려 해도 등에서 떼어낼 수 없는 애잔한 목소리가 있다

 

나에게는 위 시가 이 시집 "얼음 얼굴" 중 가장 아름다운 시이다. 연 안에서의 도취법과 연 밖에 행이 걸려 중의적 의미를 적절하게 살려낸다. 해질녁 등 돌리고 기다리던 동무는, 내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혼자 강물에서 놀다 죽었을까? 그가 그렇게 부르던 나, 내가 그렇게 부르던 그. 이것이 겹쳐지며 환청처럼 들리는 목소리. 이는 모두 가을빛 속에 다 숨겨져 있다. 이러한 사유는 다음과 같은 시에서 직접적으로 들어나 있다.

 

지구 뒤꼍의 거인

 

어린 시절 우주에 거인이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지구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놀거나

태양을 한 점 불쏘시개로 여기는 거인이

 

지구의 뒤꼍 우리 집

장독 감나무 옆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줌 흙이나

바람에 날려 보이지 않는 먼지 속에는 지금도

 

우주를 움직이는 힘을 가진 거인이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 치마폭에 숨어서 장독대 옆 감나무 잎을 반짝이게 하고

 

메주 덩어리 곰팡이를 발효시키는 바람의 씨앗을 키우며 살고 있을 것이다

 

 

지구를 공깃돌처럼 가지고 노는 거대한 거인, 그 우주의 신비와 같은 거대함은, 메주 덩어리 곰팡이를 발표시키는 보이지 않는 먼지와 같은 작은 세계에도 들어있다. 온 우주가 한 띠끝 안에 들어있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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