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술, 「해방 후 50년 시 동인지의 역사」, <<시와 시학>>(시와시학사, 1995 여름)


문흥술 교수는 한국문학사를 ‘파행적인 지배 체제의 담론에 맞서 싸운 역사’로 규정하고 지배 담론에 대한 문학적 응전을, ‘비판적 합리성의 반담론(60년대 참여문학, 70년대 소시민적 민족문학론, 80년대 민중적 민족문학론)’, ‘비이성적 반담론(50년대의 모더니즘, 60년대의 언어 실험파, 오늘날의 해체주의), ’전근대적 반담론‘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중 비이성적 반담론을 가장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인간 이성 중심주의 사고가 인간을 도구화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했고, 이 도구적 이성이 지배 담론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판단 하에, 도구적 이성에 의해 억압되고 있는 비이성적이고 무의식적인 측면을 드러냄으로써 지배 담론을 내부에서 전복‘시킨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한데, 이것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잘 모르겠다.
 

다음과 같은 언급도 기록해 둘 만하다. “60년대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안개’처럼, 지배 담론의 모순을 아직 베일에 감추고 있었던, 그래서 60년대의 <<현대시>> 동인들로 하여금 실체 없음의 상태에서 언어 실험과 무의식의 드러냄에 치중하게 만들었던 시대라면, 70년대는 지배 담론의 모순이 삶의 표층으로 부상되어 곳곳에서 구체화되는 시기이다.” (181면) 문흥술 교수의 문학사적 판단으로는 70년대까지 비판적 합리성의 반담론이 문학사적 평가를 받을만 한데, 80년대 민중적 민족문학론이 비이성적 반담론을 억압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 같다. 유물변증법은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봐야 하고, “도구적 이성으로 무장한 지배 담론의 광포한 억압 하에서도 맹렬하게 꿈틀거리고 있던 무의식의 상상력이야말로 80년대의 우리 사회가 그 내부에서는 이미 산업 사회를 넘어 탈산업 사회로 나아가려는 힘을 내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무의식의 동력을 포착하지 못함은 바로 민중민족문학이 그만큼 과학적 세계 인식에 불철저했음을 의미한다. 유물 변증법적 사고란 객관적 현실의 현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을 꿰뚫는 것일진데, 그러한 본질적인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 결과 그들은 80년대 말 이후 후일담 문학으로 전락하면서 발빠르게 변신한다.” (190) 이는 편향되거나 사후적인 언급이라서 가능한 것 같다. 일종의 운동으로서, 시쓰기를 민중민족문학 진영이 전개하였다면, 운동으로서 평가해야 된다. 유물변증법적 사고의 핵심은 수동적/사후적 과학적 세계 인식이 아니라, 실천과 인식의 변증법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결론에서 문흥술 교수도 새로운 동인지/문학 운동을 결의하고 있는 것처럼, 운동에서 핵심은 정세와 그에 따른 진영과 투쟁이다. 때문에 80년대 민중민족문학 진영이 비이성적 반담론을 배제한 이유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당대 문학장과 다른 장과의 관계들을 살피고 판단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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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2009-07-04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무진의 이미지가 왠지 연천에서 오랜시간 혼자 지냈던 자취방(관사)에서의 기억들과 겹쳐지는 것 같아서 제목만 봐도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