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야민의 이 글은 폴드만의 응답과 데리다의 해체적 읽기를 통해 재사유되는 고전의 지위를 획득한 글이다.  읽으면서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해당 텍스트의 언어를 번역자의 언어화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언어가 외국어를 통해 강력하게 영향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는 논의는 충격적이기 까지 하다. '한국어'스러운 번역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어' 스러운, 또는 '영어' 스러운 번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전제에는 벤야민의 언어관이 있는데, 그는 '순수언어'라는 것을 상정해서, 번역의 과제는 해당 작품의 '순수언어'를 번역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어들은 모두 근친성을 지니고 있고, 이의 근원에는 "표현할 수 없는 말, 창조적인 말로서 모든 언어 속에 의도된 것" 인 순수언어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언어를 번역하는 것은 그 언어가 속해있는 문화 전체를 번역하는 것이며 동시에 하나의 언어체계를 확장하는 일이된다.  

이 논의는 벤야민의 '순수언어'라는 개념을 의문시하더라도(이는 랑그-빠롤이나 이데아-사물같은 이분법을 연상케한다.) 충분히 유의미한데, '한국어스러움'이라는 것, 그 순수성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반성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성의하거나 무책임한 '오역'을 두둔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다만 한국어로 '잘 읽힘'만을 지상과제로 설정하는 것에 대해, 그 전제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힘을, 벤야민의 위 텍스트는 갖고 있다. 

 * 근 몇년 사이에 출간되고 논의되기 시작되는 번역관련 글들 

 

 

 

6월에 벤쿠버에서 열리는 한국문학 작품 번역 워크숍에 참석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내가 무엇인가를 발표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으나, 비공식적 잡담은 꽤나 많이 떠맡아야 할 위치에 처하게 될 것 같다. '번역'에 대해서 나름의 관점을 정리해야 될 필요를 느낀다. 이를 위해서는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한국에서의 번역관련 담론들 (번역관련 학술지나 학회도 포함해서)은 물론 번역에 관한 철학적 담론이나 번역학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정리를 해야 될 것 같다. 헐; 언제 하지? -_-; 

 

(최근 책 두권, 많이 논의되는 책 두권정도 우선 골라본다.. ㄷㄷㄷ 원서로 최근책도 몇권 포함...)

 항상 한국문학 전공하는 젊은 국내학자들이 외국학자들에게 아무 말도 못하게 고개만 끄덕여서 답답하다고 노학자들에게 꾸중을 들어왔었기 때문에서라도, 이번에는 가서 말을 많이 할 필요를 느낀다. 뭐, 노학자들이 그렇게 꾸중을 해서 말한다기 보다, 나로서는 이번이 석사학위 취득(-_-)후 처음 학회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실컷 있는말 없는말(?) 다 하고 올 예정이다;;; 

그러려면 공부할 것이 산더미인데... 쩝. Of course you guyz have read 벤야민~ 하면서 이야기내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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